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최고의 법굴 법당
꽃이 문을 열고 닫는 3월 마지막 날
꽃 속에 꽃을 얻듯 일붕사에 들어섰다
봉황이 큰 부리로 물어다 짓고
다시 쪼아 굴을 파서 부처님의 미소를 모시다
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태종무열왕의 목소리도 들린다
전쟁에 목숨을 잃은 영령들은
둥근 종소리를 들으며 편히 쉬고 계시는지요
잠시도 멈추지 않는 발자국이
작고 큰 붓을 들고 새로운 일기를 쓰는데
쇠망치로 내리쳐도 꼿꼿하게
제자리를 지키던 미륵불을
쉼 없는 폭포가 씻고 씻어 받든다
('일붕사에서' - 행전)
서기 727년 신라의 혜초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이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다. 일붕사는 약 1330년 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때 최고의 격전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서 말말굽 소리가 들리고 창칼 부딪히는 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당시 왕군이 봉황대 영역 안에 이 지역의 수많은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태종 무열왕의 삼왕자가 계셨던 궁소 봉황대의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안치시켜 호국 일념으로 성덕왕의 덕을 기렸고 성덕대왕이 봉황대의 산세가 빼어남과 선당의 얼이 베인 곳을 천추만대에 기념하자는 뜻에서 자신의 왕호를 내려 성덕사라는 귀족적 사찰을 지었으니 과히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일붕사는 천혜의 자연 요건을 갖춘 봉황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이 사찰이 유명한 것은 동굴법당. 이 법당은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1986년 7월 26일 사단법인일붕선종회 (지금의 재단법인 일붕선교종) 창종주 일붕 서경보 종정 큰스님이 혜운 주지스님을 부임케하여 이 산 이름이 봉황산이라 산의 기가 너무 세어 사찰이 부지 못하니 기를 줄이기 위해 굴을 파야 한다고 하시므로 주지스님이 불사를 이룩, 사찰명을 일붕사로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아들 딸의 뒷 모습이 사랑스럽고 믿음직 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의령 석굴암은 기네스북 등재, 경주 석굴암은 세계유산=이 법당은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법당 크기는 석굴 대웅전 456.2m²(138평)와 석굴무량수전 297.5m²(90평)이다. 국보이자 세계유산인 경주 석굴암은 여행자의 접근이 차단돼 있지만, 이곳은 예를 갖춰 조신한 행동만 하면, 누구든 절대자의 면전 까지 갈 수 있다. 봉황산 가파른 절벽 기암괴석 지대에 안착한 일붕사는 여느 절 보다 입체적이라, 평지에서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니 보기에 좋다. 수십 개의 작은 부처상이 담 위에 도열한 모습 또한 특이하다. 그저 좀 특이한 절이다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가, 계단을 올라 대웅전 동굴법당에 이르면, 상황은 확 달라지고,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멀찍이 보았을 때 어두컴컴해 보이던 내부가 궁금해 대웅전 앞에 신발을 조심스럽게 벗고 들어선다. 법당 내엔 대문 기둥 같은 것이 있고 그 옆에 수호신들이 양쪽에 버티고 서 있어, ‘어찌 사찰의 실내에 야외 일주문 같은 것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동굴법당은 사원 속 또 하나의 사원이었던 것이다.
석굴 대웅전
‘신발이 꼭 맞을 때는 발을 잊고/ 허리띠가 잘 맞을 때는 허리를 잊으며/ 가슴이 올바를 때는 누굴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습니다. 쉽게 하는 길은 쉽다는 것을 모르고 가는 길입니다. 행복이나 성공도 꼭 맞는 신발처럼, 그걸 느끼지 못할 때, 그냥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입니다.’
석굴 무량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