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2020.6.13.
석야 신웅순
딸이 전원 생활을 하고 싶다고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했다. 농사짓는 것은 아니나 새소리 들려오는 공기 맑은 곳에서 살고 싶은 모양이다.
거기에서 하루밤을 잤다. 아침 뻐꾹새 소리, 산비둘기 소리에 잠이 깼다. 멀리서 소쩍새 소리도 들려왔고 이름 모를 새 소리도 들려왔다.
텃밭이 있다해서 우리 부부는 전날 종묘사에 가서 상추, 가지, 고추, 들깨 모와 모종삽, 작은 쇠스랑, 호미 등을 샀다.
언제 일어났는지 집사람이 텃밭에서 풀을 매고 벌써 모종까지 마쳤다. 옆 밭에서 일하고 계신 할머니가 우리를 불렀다.
“상추 있어요?”
“아뇨. 없어요”
할머니는 내게 한웅큼 상추를 쥐어 주셨다.
“애써 농사지으신 것을 주시면 어떡해요?”
“아들이 오면 줄려고 했는데 기다려도 오지 않아.”
그래서 준다는 것이다.
딸에게 그 말을 했더니 그런다.
“아들 다 소용없다니까.”
사위가 있는 데도 그렇게 말을 한다.
딸아이가 옛날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였다.
남녀 따로 줄을 서는데 남자 아이들의 줄이 훨씬 더 길었다.
성비가 맞지 않은 것을 보고 학부형들이 말했다.
“저 아이들이 크면 어떻게 장가를 들까?”
이제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중국, 베트남, 미안마 등 많은 여성들이 한국으로 시집을 와 다문화 가족이 형성된 것이다. 남자 선호사상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우리 문화이다.
딸이 그랬다.
“아빠, 아들 아들 하더니 딸 낳기를 잘 했지?”
맞기는 맞는 말이다. 세상이 참으로 많이도 바뀌었다.
밖을 바라보니 천지가 산이다. 도시에서 바라본 산은 천지가 아파트이다. 달도 볼 수 있고 별도 볼 수 있다. 이만도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
“차고지 옆에 참새가 둥지를 틀었어요.”
그것을 본 딸 내외가 행운이라며 좋아한다.
산은 날짐승들과 길짐승들이 사는 곳이다. 이 집도 산 속으로 많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영역을 인간들이 침범한 것은 아닐까. 이제는 새들과 짐승들이 사람들과 공존하면서 살아가야할 시대가 된 것 같다. 사람도 그들처럼 자연의 일부인데 사람이 자기가 주인이라고 우겨댄다면 그들도 우리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른다. 코로나 19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남의 영역을 침범한데서 생긴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맞다. 늘그막 우리들에게 전원생활은 이미 없다.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한다. 그 동안 마음 속에 두고 있었던 로망은 이제 버려야할 것 같다. 꿈꾸다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 이제 와 아내를 두고 산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딸 집에 와서 풀이나 뽑아주고 텃밭을 가꾸는 것으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다.
시인 중에 도시를 탈출한 여제자가 있다.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을에서 백여평 밭이 있고 밭에는 반달 같은 집 한 채가 있다.
가끔씩 때가 되면 밭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따가지고 와 내게 계절을 알려준다. 귀농을 한 아름다운 손이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분다. 시원하다. 이런 청량감에 사람들은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하나 보다. 나 역시 전원 생활이 로망이었다. 정신없이 달려오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희까지 오고 말았다. 이제 와 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가 말린다. 어렸을 적 나는 시골에서 살았다. 시골 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시골 생활이다. 그런데도 마음 속에 전원의 로망을 꿈꾸어 왔으니 이제금 와 꿈은 꿈으로 접어야할 것 같다.
한 곳으로 올인하며 살아왔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온 방식은 이제 우리 세대로서 끝내야한다. 다음 세대인 딸은 우리가 꿈꾸어 왔던 삶을 즐기며 전원에서 여유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경기도 광주 오포에서
첫댓글 잔잔한 글에 울림이 있습니다.
첨엔 저기 서울서 먼 산골인줄 알았는데요.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해요
졸글에도 머무는 분이 계시네요.묵정 님 감사합니다.
또 다른 행복의 터전에서 오래도록 사랑샘이 마르지 않으시길요.^^*
오랫만이네요. 잘 계시지요? 고맙습니다.
멋집니다...딸이 좋군요...
딸이 좋습니다.
아늑한 전원생활 풍경이 그려집니다.
노후에 깊은 산속 생활은 불편하고
편안함보다 더 긴장된 삶일 수도
있습니다. 시장과 병원, 교통이
편리한 곳이 좋겠지요.
그렇게 산골이 아닌 곳에 조그만
텃밭과 유실수 몇 그루 심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지요.
이제는 건강 관리가 최우선일 것
같습니다.
흐릿한 하늘이지만 마당엔 나리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는
계절이 참 좋습니다.
♤ 부끄러워 땅만 내려다 보는 꽃...
땅나리꽃입니다.
저는 전원생활 엄두도 못낸 답니다.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지 로망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해야할 일이 너무 많고 교통도 불편해 힘들 때 위험 할 수도 있어 도심에서 살고 있습니다.그런데 우리 딸이 전원생활이 하고 싶다고 이사를 한 모양입니다. 대리만족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호박 가지 상추 등을 심어놓았는데 잘 자라고 있답니다. 다만 글로 때때로 시골의 정취에 젖곤합니다.
나리가 땅만 처다보고 있네요.가끔은 저렇게 살고 싶습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