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河有祥 탐미문학발행인/ 주간] "漫畵에 대하여..."
일전에 텔레비전의 교양 프로에서 대학교수가 나와 사회자와 구수하게 대담을 벌여 시청자를 흐믓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교수인 즉 『만화학』교수이며 대담 내용은 만화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그 프로를 보며 몹시 隔世之感에 잠겼었다. 대학에 만화학과가 생겼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정말이 었구나! 하는생각에 몹시 흥분했었다. 만화라면 덮어놓고 얕잡아 보는 사람이 수두룩 벅적한데, 나는 도리어 그런 사람들을 얕잡아 보고 싶다. 도대체가 만화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못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만화의 본질이란 안으로는 엄숙한 인생의 비평을 담뿍 담고 밖으로는 웃음을 한껏 머금는 데 있다. 그 참뜻은 슬픔이며, 풍자이며, 분개이다. 그러면서도 표현상으로는 익살과 비웃음에 의해 그 참 뜻을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수단으로서는 극단적인 과장법을 쓴다든지, 또는 괴기한 '그러테스쿠'의 특색을 크게 클로즈업 한다든지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웃음 그늘에는 눈물이 있고, 의분이 있고, 公憤이 있다. 또한 날카롭고 심각하고 통렬한 인생에의 관조가 없이는 훌륭한 만화를 그릴 수 없다.
익살은 그 날카로운 비평의 창끝을 감싼 겉가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착실하고 깊이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만화를 즐겨 본다고 하는 사실은 언뜻 보기에 모순된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모순도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철학교수는 철학책 못지 않게 만화를 즐기고 있다. 소설에 문예 소설이란 것이 있고, 영화에 문예영화란 것이 있을진대 만화에도 문예만화가 있음직 하다. 실상 요즘 우리 나라에도 성인용의 만화 수요가 부쩍 늘었는지 성인용 만화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가우데는 꽤 수준이 높은 것이 있었다.
하기야 이건 우리나라에 한 한 현상이지 외국에선 특히 일찍이 만화를 발달시킨 프랑스 같은 데서는 이미 예술만화라고 해서 꽤나 고답한 만화가 나오고 있다. 그런만큼 문예소설이나 문예영화가 예술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일컫는 것이라면 예술 만화가 곧 문예만화가 아니겠는가! 만화는 원래 회화 (그림)에서 파생한 것이지만, 회화 이외에 문학적 요소도 강하다. 어떤 만화는 회화적 요소 보다도 문학적 요소가 강한 것도 있을 정도이다. 이를테면 그림보다도 말에 더 무게를 둔 만화이다. 두말 할 나위도 없이 만화에서 말은 글자로 표현된다. 글자로 표현된 말은 문학이다. 떠라서 문학적인 수준 높은 만화, 즉 문예 만하가 되는 셈이다.
전에 조선 일보에 외국 걸작을 번역, 연재했었던 『사랑이란...(Love is...)』의 만화를 놓고 생각해 보자. 그 만화는 단지 한컷으로, 알몸의두 어린이의 지극히 단순한 포즈의 변화로 이루어진다. 즉, 回마다 약간 포즈가 달라질 뿐 남녀 어린이의 패턴은 같다. 거기에다 『사랑이란...두심장 사이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 (the shortest distance between two hearts)』라든지, 또는 『사랑이란... 그녀가 유도를 배울 때 넘어져 주는 역을 맡는 것 (being her fall guy when she's learning Judo)』이라든지 해서 回마다 재치있는 글로서 사랑을 다각적으로 재미롭게 표현하고 있었다. 보다 문학성이 강한 만화라고 하겠다.
연전에 여성지에 인기 만화를 오랫동안 연재했던 어느 여류 만화가의 TV인터뷰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녀의 말인즉은 『만화는 그림보다도 아이디어』였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는 얘기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다면 『만화는 그림보다도 얘기』가 되며, 따라서 『만화는 회화보다도 문학』이 된다. 거창하게 세계의 보기까지 들추지 않더라도 우리 나라의 이름있는 만화가가 문학적 소질이 풍부한 것으로서 그것을 증명한다. 만화를 劇畵라고 주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대학에 만화학과가 생기고 만화학 교수가 있게 된 건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흔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