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발행한 임시 소집영장.
일명 '빨간 종이'(아카가미)라 불리는거죠. 당시 살던 어르신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이게 '지옥으로 가는 직행 티켓'같은 것이었다고 하시더군요.
이 소집영장은 군이 예비역, 보충병, 국민병 등을 동원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소집에 응하지 않은 징병거부자들은 비국민으로 분류되어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식민지 한국에서는 1924년생부터가 이 징병에 첫번째 희생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924년생~1925년생이 가장 많이 끌려갔었죠.. 저희 외할머니(1927년생) 말씀따르면, 그때 끌려간 사람들 상당수가 필리핀 전선으로 갔다고 하는데. 거의다 죽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오늘날 1924~1925년생 어르신들이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저희 외할아버지 (1924년생~2001년 작고)가 저 '빨간 종이'받고 필리핀 전선으로 끌려갈 뻔하셨던...(다행히 왼쪽다리 크게 다쳤던거 때문에 면제처리 되셨지만..)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게 너무도 악명높아서 '징병 거부' 활동한것에도 항일의거, 독립운동으로 역사학계에서는 보고있더군요.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4755&cid=46623&categoryId=46623
예전에 어떤 어르신으로부터 들은얘기가 있었는데, 해방직후에 가장 발언권이 강했던 사람들이 '학병 징집 거부자'들이 만든 '학병동맹' 단체가 가장 발언권이 강했다고 하시더군요.. 이 분들 앞에서는 당시 정치인들 가운데 명망높은 사람들도 웬만하면 꿈쩍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Wehrmacht 학병 거부하면 이제 산으로 들어가서 공권력을 피해 숨어 살아야하니까요. 학병을 갔다온 사람들이 만든 동맹도 만만치 않은 발언권을 지녔지만, 학병 거부자들이 만든 동맹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했다죠.
저런대도 일본은 지들이 잘했다고...
호... 저게 저거였구나...
전에 부모님이 땅문서 확인좀한다고 이것저것 보시던데...(그중에서 저거 비슷한거 발견... 물론 비슷하게 생긴거지 한자를 모르기에 알수도 없고 게다가 버려서;)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필리핀 사상자보니깐 50만이 거뜬하게 넘어가던데요 ㄷㄷ;;
그냥 입영통지서도 멘붕인데 하물며 저거는 상상이 안되네요.
제 할아버지도 1924년생이셨는데 징용다녀오셨죠..
그때당시 '묻지마라 갑자생'이란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더 암울한 건 저 연세 분들은 해방 후 6.25마저도 겪어야 했다는 거죠. 단순이 피난민이 아닌 참전자로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