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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생각은 사망,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2)
롬 8:5-11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설 교 >
육으로 난 자와 영으로 난 자
피종진 목사 / 로마서 8:5~10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살지만 사실은 썩은 나무를 붙잡고 생명을 기대하는 사람과 같고, 조각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면서 행복을 누려보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참 행복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가치가 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에 있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보면 육으로 난 자와 영으로 난 자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항상 우리에게 육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에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육은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고전 15:50)고 말씀했고, 심지어 골로새서 3:5에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라고 분명히 구별해서 말씀했습니다. 육은 육이고, 영은 영입니다.
그래서 같은 일이지만 영의 일이 있고, 육의 일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육신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백성이고, 하나님 나라를 보장받은 자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육으로 난 자와 영으로 난 자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육으로 난 자는 육의 일을 생각하게 되고, 영으로 난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육신를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5절)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있듯이 뭔가를 생각하며 삽니다. 생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육의 생각이고, 하나는 영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의 일만 생각하고 거기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고통과 번뇌 속에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나 영의 일은 생각할수록 기쁨과 소망이 넘치고 그리고 영과 마음도 강건해지고 환경 여건 조건도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언제나 영광스러운 세계로 점점 더 가까이 나가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땅의 것만 깊이 생각하면 땅처럼 얼굴도 우중충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를 생각하면 그 얼굴도 빛이 나고 그 마음도 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생각을 항상 영의 일에 집착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동안에 육체도 얼마나 귀한데 육의 일을 생각하거나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못하게 했을까요? 그 이유는
①육신의 세계는 잠깐이요, 영의 세계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육신의 세계는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시 144:4) 우리 육신의 세계는 그림자처럼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11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했습니다.
②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기 때문입니다(6절). 육의 생각은 사망 즉 죽음에까지 이르는 고통의 결과를 가져오지만,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준다고 했습니다. 영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하나님의 보장과 역사와 축복이 함께 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전도서 3:20에 보면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영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의 토기장이가 만들어놓은 옹기그릇과 같습니다. 생명 떠난 송장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영이 떠난 인간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이 있기 때문에 귀합니다.
또 우리 육체는 풀과 같다고 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우리 육체는 풀과 같이 마르고 꽃과 같이 떨어지지만, 영은 시들어지지 않습니다. 영은 영원합니다. 영은 영원한 생명과 함께 영광 중에 거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영혼에 두어야 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의롭고 진실한 삶, 정직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진실한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60억조의 세포로 이루어진 우리 육체는 70%가 수분이고, 나머지 30%는 단백질과 혈액이나 체액으로 구성되어서 하루에 520마력의 공기를 들어마시면서 거기에 있는 산소를 취해야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루 520마력의 공기를 마시지 못하여 숨이 막히면 그는 한 줌의 흙으로 인생이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을 성경은 자랑하지도 말고 정욕대로 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유 1:18,19) 여러분들은 정말 하나님 앞에 정말 경건하며 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되 특별히 우리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영혼이 잘됨같이'라고 한 것은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된다고 하는 전제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성공 실패의 표준을 여러분의 수단 방법 노력 혹은 어떤 사람이 도와주는 배경 여건 환경 경험 이런데 두면 안됩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도 잘되게 해주시고, 육체도 강건하게 해주십니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달변가라 할지라도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하나의 기계소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이 주관하고 성령이 충만하면 말 속에도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육으로 난 자는 사탄의 지배를 받고, 영으로 난 자는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큰 두 세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의 역사이고, 하나는 사탄의 역사입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각 전파들이 흐르고 있듯이 말입니다. 오늘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세상에 어떤 전파의 에너지보다도 강한 사탄의 세력과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추호도 사탄의 지배를 받지 말고, 성령의 지배를 받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연약하고 또 부족하며 환경이 나쁘다고 좌절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가난하고 궁핍하기 때문에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죄악의 험악한 풍파 속에 방황하기 때문에 목자되신 주님을 찾게 되고, 생명의 구주가 되시는 주님께 향하여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습니까?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야고보서 4:7에 보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마귀에게 항상 두려워 떨고 사로잡혀서 사탄이 시키는대로 생각하고 사탄이 시키는대로 말하고 사탄이 시키는대로 행동하면 마귀와 함께 포로가 되어 있는 생활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탄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고 담대하게 외치며, 마음 속에 어두움의 영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내쫓아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9에 보면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면 믿음을 강하게 무장해야 됩니다. 믿음의 소유자가 되십시오. 믿음의 능력을 활용하는 자가 되십시오. 이 세상에 핵미사일도 귀하지만 믿음의 힘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믿음으로 응답을 받고, 믿음으로 이적을 체험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약속받는 믿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혈루증 여인처럼 병을 고치는 믿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소경 바디매오처럼 주님 앞에 신령한 눈이 뜨여지는 믿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주의 모든 약속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소원을 이루어주실 때 어떤 방법을 취했습니까? 내 눈을 뜨게 해달라고 호소한 소경 바디매오에게, 혈루증을 앓는 여인에게,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데리고 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했습니까? 이 모든 사람들에게 '네가 나을 줄을 믿느냐?'고 말씀하시고 그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며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을 통해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많은 소원을 우리 가슴에 안고 있는데 사탄에게 이 소망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또 우리의 믿음이 약해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주님께 호소할 때 역사해주실 줄 믿습니다.
에베소서 4:27에 보면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마귀는 틈만 있으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생각이 예수의 생각과 선한 생각으로 꽉 차 있어야 됩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의 생각으로 차 있을 때는 모든 의심이나 염려 불안 공포가 사라질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항상 마음 속에 이렇게 생각하고 고백하세요. '나는 잘된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보장해주시고 책임져주시고 나의 마지막 영혼까지 받아주신다.' 이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부정된 사고방식과 부정된 언어와 게으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하나님 앞에 부정된 마음이 아니라 긍정된 말로 응답을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6:11에 보면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사탄을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서서 진리로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엡 6:14∼17), 사탄의 권세를 이겨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는 능력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셋째, 육으로 난 자는 육체와 함께 멸망을 받게 되고, 영으로 난 자는 성령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게 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3∼17) 영으로 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어떤 할머니가 완전히 허리가 기역자로 구부러져서 지팡이를 의지해서 덜덜 떨면서 '아이구, 이 놈의 세상 내가 죽어야지. 너무 피곤하고 아파'라고 말했답니다. 그 때 어떤 효녀 손녀가 할머니를 도와드린다고 대접에 양잿물을 타 가지고 와서 '할머니 이거 잡수면 죽을 수 있어요'라고 하니까 담뱃대를 꺼내서 손녀의 머리를 때리면서 '이 놈의 자식이 날 죽이려고 한다'고 노발대발하더랍니다. 이 아이는 순진해서 할머니를 도와주려고 했던 거지요. 어떤 사형수는 사형장에 끌려가면서 발이 미끄러지니까 1, 2분 후에 죽을 몸인데 '이크,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라고 하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은 삶의 욕망이 다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다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다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하늘나라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아시아에서 살든, 아프리카에서 살든, 유럽에서 살든, 미국에서 살든 어디에서 살든지 우리의 고향은 이 땅이 아닙니다.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찬송 290장)
우리는 주님 나라에 가는 그 날까지 정말 주님을 의지하고, 육신의 세계에 어려움이 있다고 좌절하지 말고, 잘된다고 목에 힘주고 교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러분의 입술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넘치며, 여러분의 마음 속에 하나님과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충만하고, 여러분의 손과 발은 하나님이 쓰시는 의의 병기가 되어 발길과 손길이 가 닿은 곳마다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갈라지며,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마귀가 일곱길로 도망가며, 하늘나라가 확장되고 어두움이 권능으로 바꿔지며, 죽음이 생명으로 바꿔지고 가난과 궁핍과 저주가 온갖 축복으로 바꿔지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역사가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이 땅에 나타나 육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영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가지 생각
로마서 8:5-9 / 최병남 목사
에머슨은 말하기를 '사람의 생각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대로 운명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그 사람의 사람 됨됨이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고 그 사람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로 외부 환경이 우리 일생을 결정지어주는 줄로 알지만 그것보다는 생각이 우리의 일생을 결정지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잠23:7)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은 중요합니다. 성공을 생각하면 성공하게 되고 실패를 생각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또 행복을 생각하면 행복하게 되고 불행을 생각하면 불행해지게 됩니다. 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 되게 되고 못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못 되게 됩니다. 선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선하게 되고 악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악하게 되어집니다. 이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축복의 도구요, 그릇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가 어떻게 되느냐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두 가지 생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바로 육신의 생각이고 또 하나는 영의 생각입니다. 영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을 말하고 그 결과는 생명과 평안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죄의 생각, 악한 생각을 말하며 그것은 마귀의 생각이고 결과는 사망입니다.
1. 육신의 생각은?
먼저 육신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이 시간에 육신의 생각, 이 죄악의 생각, 악한 생각을 돌이켜서 모두 영의 생각, 성령의 생각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육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즉 악한 생각이요, 죄된 생각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막7:21-22)에서 이 육신의 생각을 잘 설명해놓았습니다. 즉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으로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등 모두 12가지인데, 악한 생각의 중추는 바로 음란한 생각, 더러운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음란한 생각을 한 결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아내로 삼아서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그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죽게 되고 또 아들 압살롬이 왕권을 탈취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을 강간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악한 생각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뿐만아니라 (약2:4) "너희가 악한 생가으로 서로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생각, 이것이 바로 악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고전12:10) "선 줄로 생각하는 생각, 자기가 최고인줄로 생각하는 이 생각이 육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또 (갈6:3) "되지도 못하고 자기가 된줄로 생각하고 제일인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기 생각이 최고고 자기 주장이 가장 정확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되지도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 그 말입니다. 이 모든 교만한 생각들이 다 악한 생각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악한 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선한 생각을 하는지, 영의 생각을 하는지 육신의 생각을 하는지, 하나님의 생각을 하는지 마귀의 생각을 하는지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받는 모든 스트레스, 모든 염려, 불안, 좌절, 절망, 모든 불행한 사건들은 마음의 생각에 자리잡은 악한 사단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생각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생각은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생각은 삶의 뿌리요, 씨앗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롬8:7)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고후10:5)"해야 합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된 삶을 살려면 먼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이라는 것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과, 성공과, 실패의 원천이요 뿌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우리의 삶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2. 영의 생각은 무엇인가?
1)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음에는 영의 생각이 있습니다. 이 영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성령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영의 생각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첫째는 예수님의 생각, 그것이 영의 생각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령충만은 곧 예수충만입니다. 교만해지려고 할 때 겸손하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힘들 때는 주님의 고난을, 약할 때에 환란 시련에도 넉넉하셨던 우리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억울하게 남의 비난을 받을 때에 침뱉음을 당하셨던 예수님을, 남에게 밟히고 업수히 여김을 당하게 될 때에 빌라도의 법정에 서셨던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괴롭고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때에 십자가를 지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시던 주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또한 사랑을 생각하면 천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부부간에 늘 사랑만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은 부부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모일 때마다 서로 사랑할 것을 생각하면 싸우고, 다투고, 갈라질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 서로 사랑만을 생각하게 된다면 이 민족은 하나님께 복 받는 평화로운 민족이 될 것입니다. 사랑을 생각하는 곳에 사탄이 물러갑니다. 사랑을 생각하는 곳에 하나님이 역사합니다. 사랑을 생각하는 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열심도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예배도 드리고, 봉사도 해야 되고, 헌신도 해야 하고, 헌금도 드려야 합니다. 교육도 중요합니다. 구제도 중요합니다. 선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뿌리에서 모든 좋은 것들이 꽃피게 되고, 열매 맺게 될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쏟아져내릴 것입니다. 사랑 없는 곳은 예수님이 안 계신 곳입니다. 아무리 그가 예수 잘 믿는 것 같고 교회 봉사 혼자 다 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그는 예수님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생각으로 우리 마음이 가득 차야 됩니다.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울 때 사랑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으로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행동하게 될 때에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을 인도합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 사람이 여러분을 성공자로 만듭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의 가는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불행은, 그리고 인간의 삶의 모든 불행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참 사랑, 나를 미워하는 자도 내가 사랑하고 나를 괴롭히는 자도 내가 선대하고, 나를 업수이 여기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주고, 나의 원수까지 사랑해주는 그런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속에 있다면 그 마음 속에는 평화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늘 은혜 속에 충만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대통령이 내일 임명식을 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이 민족이 잘 되고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한 정치인이나 몇 사람에 의해서 행복해지고 불행해지고 잘되고 못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사람 한사람 가슴마다 십자가의 붉은 사랑이 넘치게 될 때에 사랑이 불타오르게 될 때에 그곳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참다운 행복을 체험할 수가 있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 행복한 민족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면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이 안됩니다. 예수를 믿었는데도 마음이 컬컬하고 답답합니다. 왜 그런지 기쁨과 감사가 없습니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습니다. 왜 입니까? 오직 한 가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갈등과 문제는 사랑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불신자입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인간 모임이요, 하나의 사교단체요, 친교단체에 불과합니다. 사랑이 있는 그 심령, 사랑이 있는 그 교회, 정말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이 있는 그 심령, 나를 괴롭히고 업수이 여기고 멸시해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 뜨거운 사랑, 그곳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는, 기적의 역사는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십시오.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나를 대접하는 자를 대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참 사랑은 나를 미워하는 자, 나를 괴롭히는 자, 나에게 불이익을 주는 자, 나를 업수이 여기고 밟는 자, 그런 자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이 참 사랑이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2)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영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을 생각한다는 것을 묵상하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말씀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말씀을 통하여 지혜를 얻게 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생각할 때에 모든 난관을 정복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의 등불이요, 우리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말씀을 생각할 말씀이 약한 나를 강하게 합니다. 말씀이 더러운 나를 깨끗하게 합니다. 말씀이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게 합니다. 말씀이 병들었던 나를 치유해주고, 말씀이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던 나로 하여금 다시 순종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그 곳에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임재를 체험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3)위에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능하다고 생각하라. 또 작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큰 것을 생각하라. 절망적인 것을 생각하지 말고 소망적인 것을 생각하라. 약하게 생각하지 말고 강하게 생각하라.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한다고 생각하라. 악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선한 것을 생각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언제나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영의 생각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위에 것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지 못한다, 불가능하다는 그런 생각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생각, 하면 된다는 생각, 해보자는 생각, 영의 생각, 의의 생각, 예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어서 이제부터 행복한 삶, 승리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심는 일과 가꾸는 생활
로마서 8:5-9 / 이정익 목사
지난 20여 일 동안 중남미 지역 선교지 7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9가정이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저는 이번으로 중남미 지역을 3번째 순회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중남미에는 15명의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중남미 국가들은 모두가 크다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들이 땅이 넓고 광활합니다. 브라질은 남한의 85배입니다. 멕시코가 20배, 아르헨티나가 27배, 칠레가 7배, 페루가 12배나 되고 쿠바도 우리나라 보다 큽니다.
단순히 땅만 넓고 큰 것이 아닙니다. 그 땅속에는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나라들이 모두 기름이 나오고 각종 광물이 풍부하며 산에는 열대의 열매들이 열려있는 나라들입니다. 그리고 볼거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관광객이 몰려오는데 평균 300만 명씩 외국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백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이과수 폭포, 얼마나 시원합니까. 스트레스 받은 분들이 가면 단번에 치유될 정도입니다. 그리고 우거진 밀림과 넓은 평원이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거기에 페루의 거대한 잉카문명과 멕시코의 가야문명의 발자취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T. 폴러라는 사람은 “여행을 많이 하라”고 했습니다. 여행을 통해서 다른 문화를 보고 접하고 체험하면 눈이 열리고 생각이 크게 트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나가서 보면 생각과 눈과 마음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열린 눈으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내 나라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가능하면 기회가 되고 건강할 때 여행을 많이 해 보십시오. 그러면 내 나라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교회도 많이 가 보십시오. 가 보아야 내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가도 알 수 있고 내 교회 목사가 얼마나 귀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울안에서만 살면 좁아집니다. 생각도 판단도 정신도 의식도 아주 좁아집니다. 내 입장만 생각하게 되고 내 시야 안에서만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돌아다녀 보면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를 생각하게 되고 우리민족의 장점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하게 된 것은 작은 것도 복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는 참 작습니다. 그 작은 땅에 기름이라도 펑펑 나와 주면 좋으련만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볼거리들도 없습니다. 한강에서 배를 타면 보이는 것은 아파트뿐입니다. 제주도에 가느다란 폭포가 있는데 그것을 보면 마치 애들 장난감 같이 보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보고 돌아갈 때 무슨 생각을 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것이 오히려 축복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없다는 것, 작다는 것, 부족하다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 있습니다. 반드시 넓고 크고 많다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늘 중남미 여러 나라들이 많고 넓고 크고 풍성한 것이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올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넓은 땅, 관광조건이 풍부한 자연, 산에는 열매들이 열리는 그 나라들이 오늘 GNP가 최고 높은 나라가 8천불이고 대부분이 3천불, 2천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브라질의 85분지 일 밖에 안 되는 작은 땅을 가진 한국은 GNP가 2만 불입니다. 많이 주어진 것, 그것이 오늘 그들로 저 꼴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절박감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 절박감이 빨리빨리 정신을 가지게 하였고 그것이 오늘 우리로 하여금 2만 불 시대를 열게 만든 것입니다. 풍부한 유산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땅이 큰 것이 다가 아닙니다. 여러분, 유산타령하지 마십시오. 없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발전하게 하고 공부하게 만들고 노력하게 만듭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없는 것도 작은 것도 때로 은혜일 수 있습니다.
제가 베트남에 갔을 때 공산당 간부하고 이야기 하는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당신 나라보다 더 비참했던 나라였습니다, 당신 나라는 아무리 가난해도 산에 가면 먹을 열매들이 있지 않습니까, 가는 곳마다 열대열매들이 열려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6∙25때 산과 들과 집안에 먹을 것이 없어서 초근목피로 살았습니다. 나무껍질을 벗겨서 먹었습니다, 당신들 나라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나라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 세대 그리고 그 윗세대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뭐가 있었습니까. 산에 열매가 있었습니까, 들에 먹을 것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환경이 악조건이었기 때문에 우리민족이 오늘 기적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이 어딘가 기댈 것이 있었다면 오늘 이렇게 악착같이 살아가는 습관이 발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기댈 곳이 없으니까 강한 자생력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유산 없는 것도 은혜입니다. 땅이 좁은 것도 은혜입니다. 땅을 파도, 산을 파도, 바다를 파도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것도 은혜입니다. 일본에게 지배받은 역사도, 6,25전쟁 때문에 고난당한 역사도 생각해 보면 모두 은혜입니다.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하는 피눈물 나는 아픔과 고난의 역사도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랬기에 오늘 우리는 세계인들이 때로 질시도 하고 때로 부러움도 받는 오늘의 기적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오늘 베트남이, 오늘의 중남미 국가들이 그 좋은 여건, 환경, 비옥한 땅, 넓은 땅, 풍부한 지하자원, 수많은 볼거리들, 산에만 가면 그냥 따먹으면 되는 과일들이 즐비한데도 오히려 그 좋은 환경들, 조건들 때문에 나태해서 오늘 낙후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초라한 환경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기적을 일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로 인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고난 때문에, 아픔 때문에, 배고픔 때문에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고난당하고 삶에 아픔이 있는 분들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장차 그것이 큰 삶의 디딤돌이 되고 발판이 되고 기회가 될 것을 믿으십시오. 집안에 갇혀서 살면 오늘의 고난과 고통은 더 큰 법입니다. 그래서 더 넓은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도 커지고 의식도 삶의 지혜도 하나님의 은혜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심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육신을 좆는 자와 영을 좆는 자를 비교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성령을 좆는 자라고 하였고 육신적인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육신을 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아무런 생각이나 관련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매사를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매사를 육신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면 하나님과 무관하게 됩니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이것은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생각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되기가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 주일 몇 번만 빠지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없어져 버립니다. 사람은 망각의 존재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제 젊은 아들이 죽었습니다. 생각하면 미칠 것 같고 따라서 죽고 싶고 하늘이 꺼지는 슬픔이 임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잊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망각은 그런 면에서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신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관심하면서 살아가면 내 안에서 영적 성장이 쑥쑥 자라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잊고 관심 밖으로 살아가면 하나님도 잊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되는 일입니다. 성경은 그 사람을 육신을 좆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5절을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을 좆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신비한 존재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누구와 대화하고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의 일생이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납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 지금 관계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그리고 내가 지금 무슨 일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일입니다. 영적인 일에 무관심하고 살아가면 불가불 사람은 이생에 집착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7) 육신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8)”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몇 가지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심는 일
조상의 역할은 심는 역할입니다. 후대를 위해서 열심히 심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선배, 어른, 조상, 부모, 스승, 나라의 지도자들은 모두 후대를 위해서 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심은 사람이 있는 사회나 집안이나 나라의 후손들은 복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심지 않은 조상이나 부모나 지도자를 둔 나라의 백성들은 불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늦었지만 자신이 오늘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후손들이 늦게라도 복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심으라고 말씀합니다. 심되 영의 씨앗을 심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야 영적인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당시의 풍조는 지독한 율법주의가 성행하였습니다. 율법주의는 내면의 법 보다는 외면 즉 인간적인 것에 치중하였습니다. 그 인간적인 것은 육신적인 것에 집중하는 삶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삶은 당시는 재미가 있고 즐거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콜라를 마시면 당시는 짜릿하고 톡 쏘는 맛이 있어 좋지만 그 후 얼마 후에는 계속 목마름이 거세어지게 일어나고 사람들은 더 짜릿한 것을 찾게 되듯이 인간적인 삶은 지극히 이생적입니다. 이생적인 것은 모두 썩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썩어버릴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지 말고 영적인 것을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영적인 것은 당시는 밋밋하고 재미도 없고 짜릿함이나 쾌감도 없습니다. 영적인 삶은 마치 냉수와 같습니다. 냉수는 맛이 없습니다. 콜라처럼 짜릿함도 쾌감도 없습니다. 그래도 냉수가 최고입니다. 질리지도 중독도 갈증도 유발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삶이고 신앙의 삶이고 영적인 삶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영적인 것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그날 열심히 영적인 씨를 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나의 선택이나 결단은 내 인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그 영향은 광범위하게 미치게 됩니다. 내 자손에, 내 인생에 엄청난 변화와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나의 삶이 오늘에 연연하는 삶이면 나 자신의 삶에도 피해를 주지만 내 자손의 삶에도 영향을 줍니다. 오늘 내가 과감히 결단내리지 못한 일은 우리의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넘어갑니다. 그러면 내 자손들의 어깨가 그만큼 무거워집니다. 그 옛날을 살아간 내 부모 세대가 그때 일찌감치 영적으로 빨리 결단내리고 결심했더라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삶에, 나의 자손들에게 엄청난 영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오늘 우리의 삶은 훨씬 더 가벼워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심되 영적인 것을 심어야 합니다.
복의 씨앗을
영적인 것을 심으면 영적인 것을 거두게 됩니다. 육신적인 것을 심으면 육신적인 것을 거두게 됩니다. 인생의 삶 중에서 복이나 은혜나 은총이나 형통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과일나무에서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서 자손들이 힘들이지 않고 따 먹습니다. 그것은 조상 중 누군가 심어서 후손이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는 삶이 중요합니다. 심되 복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저 너머를 잘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만 보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낙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현실은 우리에게 희망이 아니고 낙심을 주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일이나 먼 장래를 바라보면 희망이 주어지고 소망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오늘 불가능한 일 같은 것들을 먼 훗날에 희망의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시작한 일이 50년 후 손자시대에 큰 결실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일을 통해서 세대를 넘나들며 섭리하시고 형통하게 하시고 이루십니다.
다윗왕은 성전 짓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지으려고 자재준비를 완료했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을 준비하고 각종 금과 보석과 건축 자금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불허하셨습니다. 다윗이 너무 손에 피를 묻혔기 때문에 그 손으로 거룩한 성전을 지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짓게 하였습니다. 모든 일은 반드시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 올바른 판단을 하고 결단하고 씨를 뿌리면 하나님의 때가 되면 결실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없는 사람들은 투덜대지 말고 지금 내가 심고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내 자손들이 투덜대지 않고 거두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그런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내 집안에 이런 점을 깨달을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풀어야 할 것은 풀고 시작할 일은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은 우리 집에서 누군가가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누군가가 나룰 위해서 중보기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있으셔서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믿음의 유산이 주어지면 이렇게 언젠가 그 씨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곳에서 가능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그것은 행운이 아니고 기도 덕분입니다. 내 선조들이 선하게 살아서, 기도해서, 뿌려서, 거두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사는 큰 집 그 집은 내가 지은 집이 아닙니다. 내 아버지가 지었고 내 조부가 증조부가 지은 집입니다. 나는 그 누군가 심은 덕에 사는 것입니다. 오늘 사과나무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그래서 마음껏 따 먹습니다. 그것도 내가심은 것이 아닙니다. 내 부모가, 내 조부가 심은 것을 나는 공짜로 따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십니다.
우리는 복을 불러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집에, 내 교회에, 내 직장에, 내 나라에 복을 불러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가정, 교회, 사회, 나라가 복된 곳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사회를 건강으로 이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잘 가꾸는 일
유산이 주어지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넓은 땅, 좋은 조건, 풍부한 물질, 얼마나 좋은 유산입니까. 그런데 주어지는 것 보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잘 가꾸는 일입니다. 잘 가꾸지 못하면 에서처럼 주어진 몫도 챙기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됩니다.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경하게 여기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잃고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중남미 사람들이 주어진 좋은 조건도 간수하지 못하고 심고 가꾸지 않아서 오늘 저렇게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주어진 것을 간수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조상들이 많이 심어 놓는 일은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것들을 잘 관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생각이 운명을 결정한다
로마서 8:5-9 / 남 호 목사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일생동안 행복하게 살든지, 불행하게 살던지, 그렇지 못하면 별 의미없이 시간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지는 그 사람의 생각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원래 태어날 때부터 행복을 보장받고 태어나는 사람도, 불행할 것이라고 예고받고 태어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살아가면서 그 사람의 생각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즉, 행복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불행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되고, 별 의미없이 시간따라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의 생각에 따라 그럭저럭 살다 어디론가 가버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웃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되고,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지고 맙니다. 또한, 악한 생각을 가지고 살면 악한 사람이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육신의 일만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사망을 가져오고, 영의 생각을 가지고 살면 영의 일만 하게 되어 생명과 평안이 온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Ⅰ. 영의 생각을 가지고 삽시다.
영의 생각이란 성령의 인도함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살면 생명과 평안이 주어지게 됩니다. 영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할 때 성령님은 이런 일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사업을 할 때도 이 사업은 성령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성령님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도 역시 성령의 인도를 요청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시비할 때도 성령님께 물어보고 인도함을 받는 생활이 영의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가정에 불화가 생길 때도,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에 순종하지 않을 때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성질이 격해질 때 성질대로 하지 말고 성령님께서는 어떻게 하실까?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답답해질 때, 자기 방법으로 일을 저지르지 말고 이때 성령님은 어떻게 하실까? 욕심이 생겨도, 불리한 방법으로 자기의 욕망을 채우고 싶을 때도, 욕심대로 하면 육신의 생각이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영의 생각이 됩니다.
우리가 영의 생각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방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영의 생각을 가지고 성령님의 인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마귀는 사람의 생각을 악하게 만들고 격하게 만들고 불안과 공포증을 일으켜서 사리분간을 흐리게 만들어서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가롯유다 속에 들어가니까 예수님을 배반할 생각을 들게 해서 실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결과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한 사람이 되고 저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귀가 다윗의 마음에 들어가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되었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위를 생각하고 군사력을 자랑하게 된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만들었고, 무고한 7만 명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슬픔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육신의 생각을 하도록 만듭니다. 결국은 하나님과 원수되게 합니다. 영의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잘못된 것에서 빨리 회개합니다. 회개한다는 말은 "메타노이아"라는 말인데 "생각을 바꾸어 갈아넣는다"라는 뜻입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것을 뜻합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원래 사람들은 육신의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육신의 생각이란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적인 생각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변화를 받아 육신의 생각이 영의 생각으로 바꾸어진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대 부흥사였던 길선주 목사님이 기도하면서 입을 삐죽거리고 고개를 흔드니까 어떤 분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고개를 흔들고 입을 삐죽거리십니까?" 목사님이 대답합니다. "과거의 나쁜 습관이 내 머리를 스치려 하니까 이것들을 못 들어오게 하려고 그럽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마치 봄에 곡식을 심은 사람이 밭은 잘 가꾼다고 좋은 알곡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밭에 좋은 곡식을 심으면 좋은 알곡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마음에 주님의 마음으로 채우면 영의 생각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Ⅱ. 행복한 생각을 가지고 삽시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행복한 사람은 항상 행복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것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기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불평하고 탄식하는 사람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반면에 언제나 감사하고 좋은 것을 생각하는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채울 때, 그 사람은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천국을 바라보고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케 해주신 좋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신 은혜를 생각하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을 낱낱이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3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늘 감사할 것을 찾고 마음에 은혜로운 생각을 할 때, 행복해 집니다. 섭섭한 생각, 미운 생각, 원통한 생각, 불안한 생각을 품고 있으면 불행해 집니다. 이럴 때, 생각을 즉시 바꾸어야 합니다.
가난할 때, 가난을 원망하지 말고 머리둘 곳도 없이 사신 주님을 생각하고, 고난이나 환난이 왔을 때 주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고 내가 배신당해 억울할 때 제자에게 배신당한 주님을 생각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빌라도의 법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십자가에 달려서 기도하시던 주님을 회상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생각으로 자기를 채우는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까지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어려운 고비들이 많았는데 건강하게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의 부모님 보내주셨고, 친구를 만나게 하셨고, 가족들을 만나게 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목사님께 세사람의 처녀가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물었습니다. 한 아가씨는 글쎄요 인생이 별것 있습니까? 그럭저럭 살겠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한 아가씨는 행복할 것이라고 했고, 한 아가씨는 괜찮게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말한 아가씨는 제일 못생겼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저 호박을 누가 데려가서 행복할까? 라고 생각했답니다.
세월이 지나서 10년이 흘렀고 세 아가씨는 만났는데 그럭저럭 살겠다던 아가씨는 그럭저럭 살고 있었고, 괜찮게 살겠다고 한 아가씨도 괜찮게 살고 있었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한 아가씨는 그 말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그 사람의 생각에 달려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환경이 행복한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닐 테지만 그 속에 행복의 조건과 환경을 찾고 행복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면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너의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Ⅲ. 성공할 생각을 가지고 삽시다.
청주 상왕교회 목사님 친구 중에 장애인 판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천 한 마을에서 자랐는데 자기 집은 잘살고 친구네 집은 너무 가난했습니다. 이유는 아버지가 늘 술 마시고 도박을 하기 때문에 집팔고, 논·밭 팔아서 도박으로 날려버리자 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해서 근근히 살아갔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도박을 해서 돈을 다 잃어버리고 눈이 벌개서 집에 들어오더니 대뜸 부인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말합니다. 다 팔고 전셋집에서 사는 형편인데 내놓을 돈이 없다고 하자 잠자고 있는 아들을 번쩍 들어서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아들은 척추가 고장이 나고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이것이 장애인이 된 원인입니다. 몸에 장애가 있으니까 아이들이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는 골방에 들어가서 공부만 했습니다. 그래서 사법고시 합격을 하고 판사가 된 것입니다. 장애인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관광을 다닙니다. 아버지께 정중하게 효도를 다합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판사가 된 것보다도 효성을 다하는 그 아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장애인으로 만들었는데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아버지를 만나게 하셨고, 내가 장애자가 됨으로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나 바꿈으로 위대한 사람, 고을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버지를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보통사람이 될 터인데 오히려 성공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꾸면 인격과 운명이 바뀝니다.
두 가지 생각
롬 8장 5~9절 / 최병남목사
에머슨은 말하기를 '사람의 생각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대로 운명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그 사람의 사람 됨됨이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고 그 사람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로 외부 환경이 우리 일생을 결정지어주는 줄로 알지만 그것보다는 생각이 우리의 일생을 결정지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잠23:7)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은 중요합니다. 성공을 생각하면 성공하게 되고 실패를 생각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또 행복을 생각하면 행복하게 되고 불행을 생각하면 불행해지게 됩니다. 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 되게 되고 못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못 되게 됩니다. 선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선하게 되고 악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악하게 되어집니다. 이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축복의 도구요, 그릇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가 어떻게 되느냐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두 가지 생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바로 육신의 생각이고 또 하나는 영의 생각입니다. 영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을 말하고 그 결과는 생명과 평안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죄의 생각, 악한 생각을 말하며 그것은 마귀의 생각이고 결과는 사망입니다.
1. 육신의 생각은?
먼저 육신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이 시간에 육신의 생각, 이 죄악의 생각, 악한 생각을 돌이켜서 모두 영의 생각, 성령의 생각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육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즉 악한 생각이요, 죄된 생각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막7:21-22)에서 이 육신의 생각을 잘 설명해놓았습니다. 즉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으로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등 모두 12가지인데, 악한 생각의 중추는 바로 음란한 생각, 더러운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음란한 생각을 한 결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아내로 삼아서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그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죽게 되고 또 아들 압살롬이 왕권을 탈취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을 강간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악한 생각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뿐만아니라 (약2:4) "너희가 악한 생가으로 서로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생각, 이것이 바로 악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고전12:10) "선 줄로 생각하는 생각, 자기가 최고인줄로 생각하는 이 생각이 육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또 (갈6:3) "되지도 못하고 자기가 된줄로 생각하고 제일인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기 생각이 최고고 자기 주장이 가장 정확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되지도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 그 말입니다. 이 모든 교만한 생각들이 다 악한 생각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악한 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선한 생각을 하는지, 영의 생각을 하는지 육신의 생각을 하는지, 하나님의 생각을 하는지 마귀의 생각을 하는지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받는 모든 스트레스, 모든 염려, 불안, 좌절, 절망, 모든 불행한 사건들은 마음의 생각에 자리잡은 악한 사단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생각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생각은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생각은 삶의 뿌리요, 씨앗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롬8:7)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고후10:5)"해야 합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된 삶을 살려면 먼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이라는 것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과, 성공과, 실패의 원천이요 뿌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우리의 삶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2. 영의 생각은 무엇인가?
1)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음에는 영의 생각이 있습니다. 이 영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성령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영의 생각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첫째는 예수님의 생각, 그것이 영의 생각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령충만은 곧 예수충만입니다. 교만해지려고 할 때 겸손하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힘들 때는 주님의 고난을, 약할 때에 환란 시련에도 넉넉하셨던 우리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억울하게 남의 비난을 받을 때에 침뱉음을 당하셨던 예수님을, 남에게 밟히고 업수히 여김을 당하게 될 때에 빌라도의 법정에 서셨던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괴롭고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때에 십자가를 지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시던 주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또한 사랑을 생각하면 천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부부간에 늘 사랑만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은 부부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모일 때마다 서로 사랑할 것을 생각하면 싸우고, 다투고, 갈라질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 서로 사랑만을 생각하게 된다면 이 민족은 하나님께 복 받는 평화로운 민족이 될 것입니다. 사랑을 생각하는 곳에 사탄이 물러갑니다. 사랑을 생각하는 곳에 하나님이 역사합니다. 사랑을 생각하는 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열심도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예배도 드리고, 봉사도 해야 되고, 헌신도 해야 하고, 헌금도 드려야 합니다. 교육도 중요합니다. 구제도 중요합니다. 선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뿌리에서 모든 좋은 것들이 꽃피게 되고, 열매 맺게 될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쏟아져내릴 것입니다. 사랑 없는 곳은 예수님이 안 계신 곳입니다. 아무리 그가 예수 잘 믿는 것 같고 교회 봉사 혼자 다 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그는 예수님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생각으로 우리 마음이 가득 차야 됩니다.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울 때 사랑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으로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행동하게 될 때에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을 인도합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 사람이 여러분을 성공자로 만듭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의 가는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불행은, 그리고 인간의 삶의 모든 불행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참 사랑, 나를 미워하는 자도 내가 사랑하고 나를 괴롭히는 자도 내가 선대하고, 나를 업수이 여기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주고, 나의 원수까지 사랑해주는 그런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속에 있다면 그 마음 속에는 평화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늘 은혜 속에 충만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대통령이 내일 임명식을 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이 민족이 잘 되고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한 정치인이나 몇 사람에 의해서 행복해지고 불행해지고 잘되고 못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사람 한사람 가슴마다 십자가의 붉은 사랑이 넘치게 될 때에 사랑이 불타오르게 될 때에 그곳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참다운 행복을 체험할 수가 있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 행복한 민족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면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이 안됩니다. 예수를 믿었는데도 마음이 컬컬하고 답답합니다. 왜 그런지 기쁨과 감사가 없습니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습니다. 왜 입니까? 오직 한 가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갈등과 문제는 사랑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불신자입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인간 모임이요, 하나의 사교단체요, 친교단체에 불과합니다. 사랑이 있는 그 심령, 사랑이 있는 그 교회, 정말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이 있는 그 심령, 나를 괴롭히고 업수이 여기고 멸시해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 뜨거운 사랑, 그곳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는, 기적의 역사는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십시오.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나를 대접하는 자를 대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참 사랑은 나를 미워하는 자, 나를 괴롭히는 자, 나에게 불이익을 주는 자, 나를 업수이 여기고 밟는 자, 그런 자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이 참 사랑이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영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을 생각한다는 것을 묵상하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말씀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말씀을 통하여 지혜를 얻게 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생각할 때에 모든 난관을 정복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의 등불이요, 우리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말씀을 생각할 말씀이 약한 나를 강하게 합니다. 말씀이 더러운 나를 깨끗하게 합니다. 말씀이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게 합니다. 말씀이 병들었던 나를 치유해주고, 말씀이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던 나로 하여금 다시 순종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그 곳에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임재를 체험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3) 위에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능하다고 생각하라. 또 작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큰 것을 생각하라. 절망적인 것을 생각하지 말고 소망적인 것을 생각하라. 약하게 생각하지 말고 강하게 생각하라.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한다고 생각하라. 악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선한 것을 생각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언제나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영의 생각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위에 것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지 못한다, 불가능하다는 그런 생각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생각, 하면 된다는 생각, 해보자는 생각, 영의 생각, 의의 생각, 예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어서 이제부터 행복한 삶, 승리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자
롬 8장 6~11절 / 성홍모목사
고난주간에 가지려는 ‘거룩한 걷기 묵상’을 준비하면서 양평에 있는 모새골에 다녀왔습니다. 모새골은 영락교회와 주님의 교회를 시무하셨던 임영수목사님이 운영하시는 영성수련원입니다. 모새골이라는 말이 특이합니다. 계시록21:5의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는 말씀을 가지고 “모두 다 새로워지는 골짜기”란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좀 시간을 내어서 모새골에 입소하여 피정의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우선 거룩한 걷기 (래버린스) 묵상을 준비하러 갔기 때문에 우선 묵상동산을 둘러보았습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영성수련을 위하여 수도원을 두거나,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공동체로 유명한 곳은 프랑스 동쪽 리옹 근처의 마콘이라는 시골 마을에 있는 떼제라는 수도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수도원이라고 하지만, 떼제공동체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천주교회가 중심이지만, 개신교, 정교회도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곳은 절대로 외부의 기부금을 받지 않고, 가족의 유산도 받지 않고, 자급자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내 것이 없고, 내 것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사용할 뿐입니다.
우리 개신교회들이 기도원이나 수련원을 가지고 있으나, 영성훈련과 공동체 생활을 위한 모임은 사실 전무합니다. 모새골에는 한 주간에 20여명이 입소하여 공동생활하고 있지만, 각자의 방에서 기도하고, 도서관에서 독서할 뿐이지 떼제공동체와 같은 생활은 하지 않습니다. 새벽, 점심, 저녁 세 차례 모여서 함께 묵상하고 간단한 세미나를 열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적으로 보내면서 야외에 만들어진 ‘묵상동산’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골짜기 아래쪽 텃밭에는 자급할 수 있도록 30여 종의 야채를 키운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데 변화 하는 속도가 너무나 빠릅니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습니다. 인류의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전통적인 가치관도 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정신적인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에 노예가 되었고, 오직 소유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자아를 상실하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일중독 현상이 만연되었고, 병적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새골에 입소하는 사람들처럼 한 주간을 떼어내어 자신을 돌아보지 않아도,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우리의 영성을 새롭게 하여야겠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신령한 영에 들렸다는 말입니다. 옛날 귀신이 들린 사람들을 보고서 “신 지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표현이 너무 저속하고 남을 비하하는 말이지만, 사실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된 것이나, 지금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성령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성령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삶은 거듭남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거듭남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3:5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성령은 우리 주님이 보내어주신 하나님의 영으로, 생명을 주시는 영이시며, 우리 죽은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누구나 성령님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있는 성령님을 모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존스토트 박사는 성령세례와 충만이란 책에서 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그 후에 성령을 주시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아들의 영 곧 성령을 주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는 바울사도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두 가지 다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갈4:6을 인용합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를 먼저 자녀로 삼으시고, 후에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주시므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롬8:14을 다시 인용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곳은 먼저 하나님의 영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아들을 삼아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정확한 순서는 잘 모릅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는 일이란 영적인 일이요,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에 성령을 보내주시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시는지, 동시적인 사건인지, 결과는 다 같은 이야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이란 사람이 감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동시적인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영, 성령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는데, 성령을 소유하였다거나 성령을 소유하였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있을 수 없습니다.
고전12:3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는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롬8:16 말씀처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예수님을 주님을 모시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든든하며, 이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우리는 복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홀로 두시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아들을 대신하시는 성령을 보내주시고, 그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셔서 주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천국이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생명이요, 평안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성이 있습니다. 영성이 뜨겁고 예민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성이 이성에 눌려서 크게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성이 다 있습니다. 영성이란 무엇입니까?
위르겐 몰트만이란 학자는 소망의 신학을 주창한 사람인데, 현대 신학자로 독일 신학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영성이란 하나님의 영 안에 있는 삶과 하나님의 영과의 살아 있는 교제다”라고 했습니다. 영성이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며, 성령과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원을 창설하신 대천덕 신부는 영국성공회 소속 신부로 신부라고 하지만, 개신교회 목사입니다. 성공회에서는 목회자를 신부라고 부르기에 천주교회의 신부는 아닙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셨지만, 남아계신 사모님이 지금도 예수원을 운영하시고 있습니다. 대천덕 신부가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라는 책을 쓰고, 다음에 “산골짜기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책을 두 권 쓰셨는데, 두 번째 책은 성령론에 대한 책입니다. 그가 첫 장에서 강조하는 것은 우리들과 성령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성령과의 관계를 말하면서 우리와 성령과의 관계는 첫째로 우리가 성령 안에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경우라고 말합니다.
대천덕 신부는 성령의 사역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이시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역사하는 성령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으면 성령님의 사역을 놓고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오해가 모두다 일시에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경우는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성령님,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 구원사역에 있어 조금도 모자라지 않는 충분하신 성령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 안에 있는 경우는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성령님, 성화의 길을 가게 하시는 성령님, 충전해야 하고 충만하신 성령과 연결됩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님,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님, 인격적으로 충분하고 온전하신 성령님으로 구원받았고, 우리는 성령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우리가 성령 안에 있어야 하며,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하고, 성화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소진되었을 때에 충전해야 하듯이 성령의 충만, 재 충만, 계속 충만을 사모하고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인격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면서도 우리의 인격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일에는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님을 부르고, 나의 삶에 개입하여 달라고 의탁하면 우리의 생각한 것보다 더 훌륭하고 멋지게 인생을 설계하시고 이끌어 가십니다.
오늘 본문의 11절 말씀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런 능력의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죽을 몸도 살려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서 마침내 우리의 죽을 몸도 부활에 동참하는 날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에게 속하여 육신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에게는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지만, 여러분이 의를 선택할 수도 있고, 불의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선택하면 성령님은 말할 수 없이 슬퍼하십니다. 때로는 탄식하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선택하고, 성령님에게 모든 것을 위탁하고 내어 맡기면 우리 안에 생명과 평안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6절에서도 육신의 생각, 7절에서도 육신의 생각, 8절에서 육신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마침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을 법을 따르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 육신에 속한 생각, 그것의 결과는 죽음뿐입니다.
우리의 육신이란 요구사항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무리 잘 먹여주고 입혀주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육신이 흙에서 왔기 때문에 많이 먹이고 땅에 눕혀놓으면 참 평안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마침내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겨우 죽기 위하여 살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령에 속한 생각, 성령님이 원하시는 생각,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육신의 생각을 하고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고, 마침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에 지배를 받고 싶습니까? 육신의 지배를 받고 싶습니까? 여러분에게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원죄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육신은 이 땅에서 죽는 날이 오지만, 우리의 영은 주님이 대속의 피를 흘리심으로 주님의 의를 힘입어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신에 속한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시므로 우리는 성령에 속한 사람이요, 성령의 사람이요,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영성은 무엇으로 나타날 것입니까? 성령과 교류하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으면 우리는 믿음의 영성을 가지게 됩니다. 믿음은 우리 기독교 영성의 핵심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담대한 믿음, 확신에 넘치는 믿음, 나는 못하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령 충만은 곧 확신에 넘치는 믿음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은 성령 충만한 결과입니다.
우리의 영성은 다시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성령과 교류하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으면 우리는 사랑의 영성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1997년 세상을 떠난 인도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는 지난 세기의 인류의 어머니로 존경받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마더 테레사라고 부릅니다. 그는 천주교회만이 아니라, 전 세계 개신교회, 그리고 모든 이교도들로 그를 존경하였습니다. “우리 가운데 굶주린 자가 있는 것은 우리가 나누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는 테레사의 말은 지금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감동주고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의 집은 세계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테레사의 영성의 핵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해서 인도는 테레사를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것은 20세기의 기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힌두교의 나라에서 가톨릭 수녀 한 사람, 자기네 나라 사람도 아닌데 국장으로 장례를 모신다는 말입니까? 테레사는 인도의 국장으로 장례를 모실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이름으로 장례를 모셔야 했습니다. 그는 성령이 충만하여 큰 이적을 베푼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아프리카 성자 슈바이처의 영성의 핵심도 사랑에 있었습니다. 그는 신학적으로 위험한 발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일 교회는 그에게 목사의 직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빈집은 위험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전에서 석유를 끌어올리는 사람들은 석유를 끌어 올린만큼 물을 집어넣어 채워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석유를 끌어올리다 땅이 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석유도 끌어올릴 수 없게 됩니다.
영성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곧 소명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유일한 것입니다. 유일하다는 말은 나만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나만의 소명의 길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66억명이란 사람들이 있지만, 지문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작은 손가락에 그려진 지문이 다르다는 말은 나만이 살아가야 하는 창조적인 삶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성령을 주시면서 성령의 사람으로, 부름 받은 자리에서 충성하는데, 영혼 구원이 가장 큰 목적이 됩니다. 그리고 섬김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는지 모른다고 하면 성령님의 인도함을 더욱 사모하여야 합니다. 소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악한 사탄을 몰아내고 성령을 모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장을 만들어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쫓겨나갔던 악한 사탄이 다시 들어와 더 크게 역사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빈집은 위험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주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성을 예민하게 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육신에 속하였다고 하지만, 육신의 생각만 좇아가지 말고, 육신의 사람으로 생을 마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난 자
롬 8장 9~14절 / 피종진목사
육신으로 난 자는 육신을 따라 살므로 죄의 본성이 원하는 일을 생각하게 되고, 성령으로 난 자는 성령을 따라 살므로 성령이 원하시는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롬 8:5). 육의 본성을 따르는 생각은 사망이지만, 성령에 의해 지배받는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 8:6). 육의 본성을 따르는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하나님의 법에 복종치 않을 뿐 아니라 복종하려 해도 할 수 없습니다(롬 8:7). 결국 육의 본성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롬 8:8). 그러나 성령으로 난 자는
첫째, 하나님의 영이 내주(內住)하게 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성령이 내주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고(고전 2:10), 진리 가운데서 행하게 됩니다(요 16:13).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 속에 성령께서 가져다주시는 사랑과 기쁨, 평안 등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들을 맺을 수 있게 되고(갈 5:22,23),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게 됩니다(행 1:8). 그러므로 성령이 내주하는 자라야 성령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둘째, 죽을 몸이 살게 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예수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통하여 역시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심으로 비록 우리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혼은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산 것을 밝혔습니다. 그 예수를 믿는 성도 각자에게 임하셔서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장차 이루어질 그리스도인의 몸의 부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시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요 11:25,2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절망 가운데 있는 분이 계십니까? 생명의 주님께로 나와 그분을 믿고 생명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양자의 영을 받게 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성도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롬 8:15). 과거에는 죄의 종으로 살았을지라도 양자의 영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바뀌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확신시켜 주시고 보증해주십니다.
로마서 9장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 중에 ‘양자 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양자 됨’이란 표현은 아들이 아니었던 자를 아들로 삼는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양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인하여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에게는 천국을 상속받을 특권이 주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게 되고, 죄로 인해 죽을 몸이 살게 되며, 양자의 영을 받아 천국을 상속받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생각하고 말하는대로 됩니다
롬 8장 5~8절 / 이용효목사
지난 번 크리스티나 김 선교사가 우리 교회 오셔서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받고 안 받고는 그 환경이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생각하느냐에 달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의 생애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생각은 배의 돗과 같습니다. 돗의 방향에 따라 배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당신의 생각에 따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나뉘어 집니다.
1. 당신의 생각이 당신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실로 중요한 것입니다.
생각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그 사람의 운명이요 미래입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23:7절은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이라고 하였습니다.
생각은 큰 능력입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하였습니다.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겨 붙이듯이 우리가 품은 생각 그 자체가 생각의 실체들을 우리에게 붙게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 부정적인 것들이 현실에 나타나고 악한 생각을 하면 악한 일들이 현실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욥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였던 바로 그 일들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고 탄식하였습니다.(욥3:25)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게 됩니다. 무리의 법칙에 의하여 도다리는 도다리끼리 모이고 망둥어는 망둥어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자신이 우울한 생각을 하면 우울한 감정이 생기고 감사의 생각을 품으면 감사할 일들이 계속 생기고 표정도 밝아지고 행복감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속에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아나모리 가즈오라는 일본 학자는 좋은 것을 생각하면 운명의 흐름도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이것을 “카르마경영”이라고 불렀습니다.
본문 5-6절에는 “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라고 하셨고, 골로새서 3:2절에는 “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영의 생각은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가슴에 품은 것을 말하고, 위엣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 분의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서점에 <진짜 치유>라는 책이 나왔는데 류익태 목사님이 지은 책입니다.
류익태 목사님은 미국유학 시절 만성신부전증으로 12년7개월 동안 투석치료를 받았습니다. 투석은 콩팥이 피안의 나쁜 독소를 제거하고 걸러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어 기계가 대신 그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오랜 투병생활을 겪으면서 자신의 병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한 병의 악화, 그리고 가정해체의 위기 등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을 의지하고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면서 전인적인 치유를 경험하게 되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류목사님은 그런 어려운 가운데 데살로니가전서 5:23절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을 통해 그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나를 건강하게 하시고, 우리를 건강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의 전 영역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평안에 이르는 진짜치유를 주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에 평안이 임하고 병을 초월하는 믿음과 함께 하루하루가 너무 너무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기적을 체험하고 복받은 사람들 모두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 최고의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바디메오, 수로보니게여인, 열명의 문둥이, 혈루증 앓던 여인등, 당신이 최선의 삶을 살려면 자신의 생각을 통제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언제나
1)좋으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2)십자가 대속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내 모습을 생각하여야하고,
3)주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 의롭게 된 나의 모습을 생각하고,
4)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음을 입어 건강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5)주님이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은바 되사 저주 아래 있던 나를 풀어 주셔서 아브라함의 부유한 복을 주셨다는 생각을 하여야하고,
6)주님이 천국 백성으로 삼으셔서 이제 영생천국을 소유하였으므로 이 땅을 떠날 때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여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다 아십니다. 마태복음 9:4절 “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고 하셨고
누가복음 6:8절“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라고 하셨고, 시편 139:2절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시편 28:5절에는 “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 라고 하여 우리들이 하나님과 그 말씀을 떠나 섭섭한 생각, 서운한 감정, 불신앙의 생각, 부정적인생각을 품으면 하나님이 그 생각대로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불신앙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마귀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문을 열어 놓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을 향한 긍정적인 생각을 늘 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도록 계속하여 점검하여 주시고, 말씀을 통하여 다시 믿음의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지도 해 주셨습니다.
링컨은 “할 수 있다 잘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방법을 찾으라고 권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분들의 특징은 그들이 항상 긍정적인생각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성공과 승리에 대한 생각을 마음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조엘 오스틴의 교회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깊은 좌절에 빠진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병원의 의사들은 검사를 한 후 의학적으로 임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이 상당을 하여 본 결과 그녀의 할머니가 임신 중독증으로 고생하다가 그녀의 어머니를 낳았고, 그녀의 어머니도 불임으로 고생하다가 그녀를 임신하여 출산할 때도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로 인해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생각이 현실속에서도 그녀를 꽁꽁 옭아 메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그녀는 자기 두려움의 공격을 받았다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녀에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말씀을 묵상하고,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건강한 아기를 주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를 안고 행복해 하는 부부의 모습을 바라보라고 일러 주었고 그녀는 순종하였더니 6개월 후 임신 하였고 10개월 후엔 건강한 사내아기 출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부정적인 틀에 갇혀 있지 마십시오. 오늘 당장 변한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시련에서 빠져 나오는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중독을 극복하는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승진하는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사업이 잘 되는 모습을 마음에 그려 보십시오. 새로운 자아상을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말씀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그 희망을 향하여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현재 월세방에 살고, 자녀들 학비걱정에 힘들어도, 직업이 없어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좋은 환경을 소원하여야만 합니다.
한 겨울 참새도 먹이시고 겨울 풀들의 뿌리를 보존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하나님을 향하여 좋은 생각을 가지십시오.
빌립보서4:8절에는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마귀의 말을 믿고 두려움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생각을 고쳐 평강과 축복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는 당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목회 초기 "일하는 소에게 망을 쒸우지 않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주님은 나에게 먹을것 입을것 마실것 쓸것을 풍족하게 채우신다고 늘 고백하고 시인하였더니 개척교회 시절에 물질로는 어려움이 전혀 없었고 늘 도와주고 나누어 주며 살았습니다.
생각은 방송국의 채널과 같습니다. 채널을 바로 맞추기만 하면 방송국에서 방송하는 것들을 시청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파장을 일으켜 천국에 까지 미칩니다. 성경 에베소서3:20절에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주님” 이시라고 하여 우리들이 주님을 향하여 좋은 생각을 가지면 주님은 그 생각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새해를 맞이하여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고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넓히시길 축원 드립니다.(시81:10)
2. 당신의 말이 당신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정체이며 운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는 대로 된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18:20,21절에는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인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고하였고 잠언 6:2절에는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히고 네 입의 말로 네가 잡히게 되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특히나 성도들이 믿음의 말은 놀라운 위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23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분들은 자신의 말을 점검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은 입 밖에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야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입의 말로 환경을 좋게도 나쁘게도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말한 그대로 당신이 환경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인생이 얼마나 꼬였느냐에 대해 말하고 투덜거리고 불평하면 우리는 매우 불행하고 짜증나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우리말로 부정적인 환경을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이 말에 실수가 많고 부족한 점이 많지만 회개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믿음의 말을 하시고 긍정적인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하시고 저에게 좋은 것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들도 저에게 주셨으니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저는 아버지께서 저를 향한 크고 놀라운 계획을 믿고 있습니다. 곧 좋은 일들이 일어 날줄 믿습니다. 주님은 저의 친구가 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해보십시오.
“하나님은 000 널 인정하시고 널 사랑 하신다”
주님은 연약한 갈대 같은 시몬에게 “너는 시몬이지만 갈대가 아닌 베드로 즉 반석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에게도 주님은 “내가 널 완성하면 너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우리 새해에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믿음의 말을 계속하므로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이루어 주시므로 크고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나 간증하는 일이 일어나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망의 생각을 생명의 생각으로
롬 8장 5~11절 / 윤석전목사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같이 생각하며 분별하는 인격체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의 모양으로 지으신 사람에게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자유하게 하셨으며 무엇이든지 제한 없이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인간은 한시도 생각하는 것을 피하여 살 수 없으며 자신이 옳다 하는 것에는 고집 세게 집착하며 살아갈 수도 있도록 자유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자유로운 고유 권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잘못된 생각을 좇아 영육 간에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영육 간에 영원히 성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다양한 것 같으나 그 엄청난 다양성 안에 일하는 생각을 분리하면 두 가지 생각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생명의 생각이요, 다른 하나는 마귀역사의 사망의 생각인 것입니다. 마귀 사단 귀신 역사의 생각에 미혹된 자들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자신의 영혼에게 멸망을 생산하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7~19).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1~2).
마귀의 미혹에 빠져 타락한 사람들의 근성은 곧 육신의 세속적인 생각을 생산하며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 하나님과 원수
하나님은 인간을 영적 존재로 지으시고 인간이 하나님의 생각에서 생산되는 생명으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요12:47~50).
그러나 마귀의 미혹에 의해 전인격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생각을 알지 못해 잠시 있다가 없어질 육신, 그 육신의 욕심으로 가득 찬 생각으로 그토록 중요한 자신의 영혼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자신의 영혼을 참혹한 지옥에 내던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 악한 영에게 미혹된 생각을 ‘육신의 생각’이라고 정의했으며, 성령에 감동된 영원한 생명의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고 확실하고 분명하게 가르쳤습니다. 또 악한 영에게 미혹된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애타게 가르쳤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5~9).
예레미야 선지자는 악한 영에 미혹된 생각의 결과는 곧 재앙이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며 재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생각에 이르러 하나님과 함께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눈물로 호소하며 가르쳤습니다.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렘6:19).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하셨으니 이는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명의 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법에 도전하는 악한 생각으로 가득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돈, 명예, 권세, 세상 부귀영화에 집착된, 육신의 요구와 욕심이 가득 찬 부정된 생각은 곧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생산하는 생각인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죄악된 생각을 확실하게 멸하시는 분이십니다.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은 결과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5~8).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성령의 생명의 생각으로 육의 생각 이기길
사랑하는 예수가족이여, 나의 생각을 점검해 보십시오. 우상같이 섬기는 내 육신이 얼마나 세상 욕심에 집착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육신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을 육신의 생각에서 지켜 보존하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오직 성령의 생명의 생각만이 육신의 생각을 소멸하고 인간의 영혼을 영원히 보존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
육신의 생각을 성령의 생각으로 소멸하여 이기는 비결은 오직 회개와 기도로 성령 충만해야 하는 단 하나의 길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생각만이 육신의 사망의 생각을 이기고 생명의 생각을 생산합니다.
사랑하는 예수 가족이여, 기도합시다. 성령 충만합시다. 그리하여 육신의 최후 마지막 날이 반드시 천국에서 내 영혼의 첫날이 되게 합시다. 오직 기도와 성령 충만으로 내 영혼이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제발 철듭시다. 자신의 영혼을 기도와 말씀과 성령으로 사랑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