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아버지는 어부였구요...
어머니는 해녀였으예...”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물질을 잘하는 여자가 되라며
이름을 질녀라고 지어주고선
태어나기도 전에
풍랑으로 아빠를
돌이 지나기도 전에
엄마까지
저 바다에 묻어야 했습니다.
그런 질녀에게
피붙이라고는 할머니가 전부였기에
할머니의 사랑과 애정으로 자라
이제는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손녀가 되었답니다.
할머니가
주는 사랑의 농도를 알기에
토란잎에 몽그는 물방울같이
비고인 낮은 자리라도 뭉글게 뭉글게
살아갈 줄 아는 법을 배워가던 질녀는
학교를 갔다 와도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습니다.
할머니를 따라 물질하며
생활비라도 보태어야 하기 때문이죠.
질퍽거리는
가난에 힘겹기도 하건만
꿈 만은 부자로 살아가며
할머니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런 손녀이기에
“알고 있답니다
평생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다닌
할머니가
바람이 섬기고
돌담이 품은 섬마을에
숨비소리 울려가며 바다 밭농사 일구는
해녀의 삶을 택하신걸요”
낮달이
핼쑥한 얼굴로 먼저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학교 갔다 오니
할머니가 집에 계시네요.
관절염에 온몸이 아파
물질을 못 나가고 계셨나 봅니다.
할머니가
잠든 사이 몰래 동네 할머니들 따라
물질을 대신 나가는 질녀
어느새
지나던 갯바람이 잠을 깨워서인지
일어난 할머니는 질녀를 찾고 있는데
선착장 끝자락을 지나 올라오는 손녀는
신이 나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어 댑니다.
“할머니...
소라 전복 많이 잡았데이”
하고 소리칩니다.
태풍의 길목마다
저승의 언덕을 오고 가는
숨비소리 한 번이
아이들 연필이 되고
숨비소리 두 번이
남편의 술 한 잔이 되었던 삶을 닮아오는
손녀가 달가울 리 없는
할머니는
“공부나 하제 뭐 하러 갔노”
역정을 내시는 걸 뒤로한 채
가을 담장 시래기 걸어놓듯
뜯어온 미역을 널어놓는 질녀를 바라보는
할머니는
영동 할멈
세찬 바람에 숨비소리 메아리 되던 날
억척의 고단함을 납덩이에 매달고
밀물에 누웠다가 썰물에 일어서며
저승에서 돈 벌어
이승에서 사는
바다가 집이고 밥인
물녀의 삶을 닮아오는 손녀가
물속 숨을 참을 때보다 더 목이 멥니다.
바람이 손톱 되어 할퀴듯
펄럭이는 바람을 등지고 학교에서 돌아온
질녀는
낡고 해진 가방에서
할머니의 숨은 마음을 닮은
도시락을 내어놓습니다.
오늘이
엄마 아빠 제삿날이라
부엌에선 할머니가 부산스럽게
음식을 만들고 계시는 걸 보고 나간
질녀가
저녁이 다 되어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집이어서
대문만 열고 나가도
훤히 보이는 항구의 불빛 따라
동네 어귀에 구석진 가로등 불을
지나쳐 오는 걸 보고 섰습니다.
징검다리같이 위태로운 손녀의 손에
들려져 있는 생선 몇 마리도 ......
“그게 머꼬?”
“할머니가 그랬잖아 ..
엄마 아빠 생선 좋아한다꼬”
고깃배 허드렛일 도와주고
얻어온 생선을 구워 마저 올리고선
할머니는
향 하나 피우고
눈물 바람 훔치며 나가십니다.
질녀는
사뿐히 엎드려 절을 하고선
한참을 엎드린 채
한질 두질 자맥질하듯
울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보고싶데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지애미 아비가
보고 싶어 우는 손녀의 눈물에
모래언덕 조각구름 같은 맘이 된
할머니는
마당 앞 평상 끝자락에 걸터앉아
소주 한 잔 부어놓고 먼 달을 올려다보며
황량한 모래알 같은 맘속엔
내리는 비를
그렇게 바라보고 앉았습니다.
~꼴~꼴~꼴..
따르는 술잔에
노란 달빛이 어립니다.
"내야 이리 살다 빈 몸뚱이로 가면 되는데
돈 한 푼 물려 줄 게 없는
넌 혼자 어찌 살 것노”
할머니는
바다에 젊음을 바치고도 늙음도 모자라
장작더미 뒤웅박에 망사리 띄우고
물질해대며
물 숨 참아야 사는 사람으로 산다는 게
참을 수 있는 숨만큼의 행복이
저 바다 저 물결에
하루로 곤히 채워진 지 오래이고
아기 낳고,
사흘이면 아기를 구덕에 눕혀놓고
물질했던
검푸른 성게의 가시 같은 지난날에
한숨 소리 그림자보다
긴 삶을 살아오신 지난날을 떠올려봅니다.
매일매일
뒷걸음질치며 늙어가는 게
마음에 걸리신 할머니에게
말없이 다가와 무릎을 베고선
“할머니 무슨 걱정이고
저 앞에 바다가 내 집이고 내 땅인데...”
그렇게
빈 고동 껍질에 머무는 바람 같은
하루가 또 저물어 갑니다.
선생님께서
교실로 황급히 뛰어오신다.
물질하다 협심증에 호흡 곤란이 와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는 할머니를 찾아
응급실에 도착한 질녀의 눈에
휑한 빈 침대만 늘어서 있습니다.
“영안실”
실려 나오는
할머니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오열하는 질녀
망사리 타고 물질하듯 할머니의 배에 올라
울음을 품어대는 질녀는
마지막 가시는 길을
그렇게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엄마가.....
그리고
할머니가...
묻히신 이 바다
질녀에게
전부인 가족을 데려간 바다가
한없이 미운
그 바다를 바다 보고 있습니다.
숨이 멈춰야 살 수 있는 삶을 살다 간
할머니
허리에 무거운 납덩이 달고
물속으로 가라앉는 삶이 아니라
깃털 같은 가벼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래보면서.......
오늘도
학교를 다녀온 질녀는
한없이 한없이
그리운 가족이 있는
저 푸른 바닷속으로
끝없이 끝없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카페 게시글
자유 쉼터
♧물속에 있는 가족!!
강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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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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