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을 빽으로 세상과 맞짱뜨다◈031
"마리야, 왜 전화 안 받았어?"
집에 오자마자 기다렸다는듯 엄마가 나와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 10시에 나가놓고 밤 10시가 되도록
연락 한번 없었으니 말야.
경찰서에선 부모님을 불러 합의를 보라고 했지만,
내가 무조건 안 된다고 생떼를 써서 그것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합의금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시휴오빠의 내 신임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핸드폰 잃어버렸어, 엄마..."
"저런, 어쩌다 그랬어. 그거 할부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미안미안. 누가 훔쳐갔나봐. 새로 사줄 거지?"
"너가 싫다고 해도 사줄 수밖에 없잖니. 어떤 걸로 사줄까?"
엄마에게 뽀뽀세례를 퍼부운 후 방에 들어온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두고비를 동시에 넘겼다는 안도감에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일부턴 매일매일 시휴오빠를 간호하며 완쾌될 때까지 곁을 지키고..
곧 있으면 여름방학이니 여행계획도 세워놔야지.
이제 시휴오빠와 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된 것 같아.
"마리, 너 곧 있으면 기말고사 아니니? 데이트도 좋지만, 공부도 좀 하렴."
으으.. 나의 행복한 상상을 무참히 짓밟는 엄마의 잔소리에 난 울상을 지으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래, 내가 한가지 빼먹은 게 있다. 여름방학 이전에
기말고사라는 장대한 벽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나는 공부하면 머리만 아프다는 거 알잖아요."
공부라 하면 이미 자랑스럽게 하위권을 달리는 신마리였기 때문에,
교과서를 피는 순간 막막한 마음만 밀려올 뿐이다.
솔직한 심정으론 대학도 별로 가기 싫고,
엄마처럼 남편에게 사랑받는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조선시대에 태어날 걸 그랬나.
"이번에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아빠가 여름방학 때 너희 휴가보내주신대."
근데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귀가 번쩍 뜨인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너.. 너희라면.. 시휴오빠랑.. 나?!"
"응, 숨겨둔 비자금이 있으신 모양이야."
"진짜, 진짜? 어디로?"
사실 여행계획을 세운다고는 하였으나..
아빠에겐 뭐라고 거짓말을 해야하나,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시휴오빠랑 둘이 가면 극구 반대하실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그야 당연히 해수욕장 아니겠니? 단 둘이서 오붓~하게."
"말도 안 돼! 어떻게 아빠가 그런 조건을 내걸 수가 있지?"
친구들이랑 가는 것도 위험하다며 반대하시던 아빠인데...
이건 분명 나를 공부시키려는 엄마아빠의 계략이야. 믿을 수 없어!
"그게 다 너희 아빠가 시휴군을 믿는다는 것 아니겠니?"
"10... 10등이라고 했지? 10등..."
"응.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0등만 올려."
"그럼 엄마, 각서 쓸 수 있지?"
"못쓸 것도 없지."
좋았어.
내일부턴 시휴오빠의 간호를 하며
그동안 부족했던 공부도 보충해야겠다.
이 신마리도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
"안녕히 주무셨어요!"
다음날, 병실문을 활짝 열어재끼며 소리쳤다.
공부에 대한 넘치는 투지와 의욕으로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다.
시험을 앞둔 기분이 이렇게 즐거운 건
아마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낭군님은 아직도 황천길을 해메고 있는데 넌 무지 즐거워보인다?"
동혁오빠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하지만 즐거운 걸 어쩌리.
"아직도 안 일어났어요?"
"의사 말로는 오늘 안에 안 일어나면 문제가 있는 거라는데... 걱정이 크다."
"걱정마세요. 아직 11시밖에 안 됐는걸요. 곧 일어날 거예요."
시휴오빠의 옆에 앉은 나는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며 말했다.
"너 지금 뭐하냐? 공부하려는 거야?"
"네. 곧 있으면 기말고사잖아요. 공부해야죠."
"허... 난 공부하는 애들 보면 정 떨어지더라..."
동혁오빠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뭐
하고싶어서 하는줄 아나. 나도 교과서만 보면 멀미나는 체질이라구요.
"이번에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아빠가 시휴오빠랑 휴가보내준댔어요."
"지.. 진짜?! 우와! 열라 부럽다! 완전 짱인데!"
빨리 이사실을 시휴오빠에게도 말해야 하는데, 언제 일어나려는 건지..
한바탕 부럽다고 난리를 치던 사람들은 밥먹고 오겠다며 병실을 나가고,
아직도 쿨쿨 잠을 자고 있는 시휴오빠와 머리를 싸매고 공부 중인 나.
"cosθ는 1/sinθ.. secθ는 1/cosθ..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처음엔 다른나라 책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집중해서 읽어보니 제법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기말고사 까지는 정확히 25일. 시간은 충분해.
다행이도 우리학교가 그리 모범적인 학교는 아닌지라
평균 80점만 나와도 반에서 10등은 따놓은 당상이니까.
"(cos(x))^2+(sin(x))^2는 1이다... 음..."
이걸 어떻게 증명하라는 거야.. 으.. 역시 수학은 복잡해.
"야... 너 지금 뭐하냐...?"
"...!"
예상치못한 어려운 문제에서 당황하는
나를 놀래킨 건 다름 아닌 시휴오빠였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어이없다는듯 말하는 시휴오빠.
"뭐하긴, 공부하지. 아무튼 일어나서 다행이다.
지휴랑 오빠들은 밥먹고 온다고 나갔어."
"너.. 공부하는 애였구나."
공부하는 애였구나...?
이거 왠지 나를 엄청 무시하는 발언 같은데...
"이런 말하면 누워서 침뱉는 꼴이지만, 나 공부못해. 뒤에서 3등 정도는 하나."
"근데 왠 공부야? 그것도 병원에서. 나 교과서 보면 멀미난단 말야."
"정말? 오빠도? 나랑 똑같다! 역시 우린 통하는 게 있다니깐."
내 말에 시휴오빠는 이상한 애 보듯 나를 쳐다본다.
지금 열심히 하라고 발 벗고 응원해줘도 모자랄 판에. 허 참.
"이번 시험에 10등 안에 들면, 아빠가 우리 휴가보내주신대."
"휴가?!"
"응, 경포대나 해운대 같은 해수욕장말야. 무지 기대되지?"
"아버님도 따라가시는 거 아니야?"
"오빠도 참! 우리 아빠가 그렇게 매너없는 사람으로 보여?"
시휴오빠도 엄청 좋아할줄 알았는데,
내색을 안 하는 건지. 당연하다고 여기는 건지.
..아니면 가는 것 자체가 맘에 안 드는건지.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러니까 공부할 맛 떨어지잖아. 씨이.
"야..."
"왜."
안 그래도 슬슬 짜증나려던 참이었는데 잘 됐네, 뭐.
난 잔뜩 심술이 나서 교과서를 덮어버리며
시휴오빠를 쳐다봤다.
"내가 뭐 도와줄 거 없냐?"
***
그날부터 나는 밤낮없이 시휴오빠의 병실에서 공부만 하며 시간을 보냈고,
오빠는 말없이 그런 나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래서 이젠 혼자 있을 때보다
시휴오빠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때 더 집중이 잘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보름이란 시간이 지나, 시휴오빠의 퇴원은 하루앞으로 다가왔고.
며칠 전 퇴원한 수호오빠의 자리엔 교통사고로 입원한 중년아저씨가
하루종일 주무시기만 하며 무의미하고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계셨다.
"세계사도 끝! 이제 두과목만 남았어!"
"조금만 더 힘내라. 음료수 뽑아다 줄까?"
"아니야. 좀 있으면 엄마아빠 올 시간이다."
"퇴원하면 찾아뵙는다고 하지, 뭘 여기까지 오시라 그러냐."
"안 그래도 예전부터 오신다고 했었어. 오빠한테 고맙다고."
요며칠간 내가 밥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부를 하자, 감동을 받은
엄마아빠가 퇴원을 하루앞둔 오늘에서야 병문안을 온다고 하신 것이다.
엄마는 그렇다 치고, 아빠가 알바까지 따로 구해 시간을 비우신 정도면
진심으로 시휴오빠에게 고마운 마음이신 듯 하다.
"시휴구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실 문이 열리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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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소설
[ 장편 ]
◈그 녀석을 빽으로 세상과 맞짱뜨다◈031
알파치노☆
추천 0
조회 228
07.01.16 21:12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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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완전재밌어요-! 다음편팔이팔이~
감사합니다 ^ㅡ^
ㅋㅋㅋㅋㅋㅋ정말재밌어요^^ 다음편기대할께요!
감사합니다 ^ㅡ^
정말 재미있어용>< ㅋㅋ 다음편도 부탁할께요~빨리 나왓으면.....ㅠㅠ
감사합니다 ^ㅡ^ 빨리 올릴게요!
꺄악~ 은근히좋아하는시휴!!>_<죠따 귀엽습니다!!ㅎㅎ 담편원츄!!♡
감사합니다 ^ㅡ^ 시휴가 은근 귀여워용 ㅎㅎ
꺆 넘흐 재밌어요 다음편 기다릴께요 흐흐 시휴 넘흐 멋있어요 꺆~~~~
감사합니다 ^ㅡ^ 시휴멋있졍!
ㅋㅋ 완전 잼잇어욧ㅋ.ㅋ 담편두 마뉘 기대욧..ㅋ
감사합니다 ^ㅡ^
꺅!!!!!!!! 너무너무 베리베리 재밋어여>ㅂ< 다음편 기대 완전 마니할께요♡♡♡♡ 글구 알파티노☆님두 자격증시험 공부 열씨미하세요☆☆☆☆☆☆☆☆
네 열심히 할게요 ㅠ^ㅜ!!!! 감사합니다!!!
끄악- 너무 재미있어요!!!! 아 알파티노님이 자격증 시험공부때문에 소설이 늦는다니까...아혀 어떻케기달려...큭 하지만 자격증 열씸히하셔서 꼭 자격증 붙으세요-!!!!!!!!!!^-^!!!!!!!
그래도 하루에 한편씩은 올릴것 같아용^^ 감사합니다!!!!!
아아,부모님너무멋있어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