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을 열다
이경숙 소설
쪽 수 : 224쪽
판 형 : 125*190
ISBN : 979-11-6861-368-3 03810
가 격 : 17,000원
발행일 : 2024년 9월 9일
분 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책 소개
▶ 상처와 이별, 패배에도 분투하는 보통의 삶을
선명하게 그려낸 이경숙의 첫 소설집
“과학자의 관찰력”을 통해 “자칫 간과하는 삶의 어두운 부분을 밝혀준다”는 평을 들으며 2021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경숙 소설가가 첫 소설집 『새장을 열다』를 출간했다. 이경숙 소설가는 등단 이후 꾸준히 우리 곁 평범한 사람들과 약자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며 “덧없음과 삶의 패배 속에서도 놓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해 왔다.
이번 소설집에는 작가의 등단작인 「얼음 창고」와 가족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약자의 연대를 담은 「새장을 열다」, 아이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한 부모를 그린 「우리는」, 「나만의 장례식」을 비롯한 총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저자는 작품에서 삶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실패와 아픔에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의 마음을 그려낸다.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는 고통스러워 외면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고통을 겪어낸 이들은 출발점에 다시 서기로 마음먹는다. 비록 그 모습이 우아하지 않을지라도 끝까지 삶의 영역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 상처를 주고받은 관계에 뒤늦게라도 건네는 사과와 화해. 이것이 이경숙이 보여주고자 하는 삶과 사랑의 모습이다.
▶ 폭력에 맞서 여성들이 이루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
표제작 「새장을 열다」는 가정폭력 피해자 사이의 연대를 담아낸 작품이다. 폭력적인 미혼부로부터 도망친 어린 화자 ‘나’와 폭력적인 아들과 함께 살던 ‘강숙’ 씨는 하나뿐인 가족이 되어 보통의 일상과 위로를 주고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강숙 씨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고 ‘나’는 혼자 남는다. ‘나’는 강숙 씨의 아들로부터 강숙 씨의 흔적과 강숙 씨와 함께 키우던 꾀꼬리를 지키기로 결심한다. ‘나’는 폭력이라는 새장을 열고 자유를 향해 날아갈 수 있을까.
나는 바람신 영등할매가 지나던 골목을 길고양이처럼 헤매고 다녔다. 강숙 씨는 나를 넙죽 안고 집으로 가서 아랫목에 묻어 두었다. 내가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살아나자 뉘 집 아이냐고 물었다.
“우리 아빠 앤데요.”
“그럼 이 할매 집 애 돼 보련?”(102쪽)
「물고기 비늘」은 오랜 시간에 걸친 엄마와 딸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딸은 어릴 적 생선 장사를 하는 어머니에게서 나는 비린내 때문에 어머니를 기피하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향기에 집착하게 된다. 그녀에게는 별로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남자와 이어가는 연애만이 유일하게 맺고 있는 친밀한 관계다. 그러던 중 그녀가 운영하는 네일샵 앞에서 활어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고, 주인공은 문득 물고기 비늘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리고 어머니의 생선 냄새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 노동의 현장, 그 자리에 어긋난 채로 존재하는 사람들
「초대」의 화자는 과거 일하던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후 배달 기사가 되었다. 눈이 내리는 날 장례식장으로 근조 화환을 배달하던 중 사고를 당한 그는 견인차를 타고 어떻게든 자신의 일을 끝마치려 한다. 화환의 주인공은 산재 사고로 장애를 얻은 후 자살을 선택한 근처 공단의 노동자. 돈 때문에 오직 자신의 이해에만 몰두하는 인물들의 태도는 노동자끼리 연결되지 못하게 만드는 노동 구조와 그곳의 사람들을 생각하게 한다.
「얼음 창고」는 오래된 상가의 재건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을 묘사한다. 상가에서 얼음 장사를 해온 문 씨는 건설업자 엄 소장에 맞서 자신의 얼음 창고를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과 같은 삽차의 움직임 한 번에 그의 삶의 장소는 스러지고, 그의 목소리는 힘없이 흩어질 뿐이다.
“다 끝난 일 조용히 마무리하죠.”
엄 소장이 손으로 입술을 훔치며 웃었다.
“땅, 산다고 했잖아. 불하받게 손써 줘.”
“도시 환경 해친다고.”
“누구를 위한 문, 문, 문이야!”
문 씨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빛처럼 흩어졌다.(57쪽)
▶ 가족의 죽음, 남겨진 사람들이 마주하는 애도와 작별의 과정
「비거 동해로 날다」는 괌으로 강제 징용된 아버지와 이별한 아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어느새 팔순이 넘은 노인이 된 아들은 한국인 유해 발굴단으로부터 사이판에서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향한다. 긴 시간이 걸린 이별을 마무리하기 위함이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의 마지막 장소를 찾고 직접 만든 비거를 날리며 아버지를 떠나보낸다.
「우리는」과 「나만의 장례식」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는」의 부부는 아이의 사망 신고를 하기 위해 구청으로 향한다.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줄무늬 고양이와 옷가게를 지나치며 부부는 슬픔에 빠지는데, 시어머니는 계속 전화를 걸어 그들을 괴롭힌다. 구청의 사망 신고 절차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부부에게는 허탈함만이 남는다.
「나만의 장례식」의 주인공은 고인의 뼛가루로 사리를 만들어주는 회사에 다닌다. 어느 날 한 부부가 아들의 골분을 들고 그곳을 찾는다. 사리와 함께 아이의 소원이었던 세계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그들의 계획을 듣고, 화자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죽은 아이에게 제대로 된 장례식도 치러주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그 부부와 자기 아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리라고 결심한다.
하얀 눈으로 덮인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운전하는 내내 옆 좌석에 앉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곧 아버지를 볼 수 있다고, 눈 때문에 길이 막혀도 엄마는 계속 갈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220쪽)
연관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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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p33
그는 빈소가 썰렁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세상, 지인, 가족, 자신에게조차 내쳐진 김건아. 발 디딜 곳을 정하지도 못하고 휘청이다가 넘어져 버린 사람. 그는 회사에서 자신을 밀어낸 과장을 떠올렸다._「초대」
p66
언제 왔는지 문 씨가 내 옆에 섰다. 그의 손에는 얼음을 자르던 전기톱이 들려 있었다. 은색 날이 햇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문 씨가 날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오늘따라 더 날카롭게 보였다. 전기톱의 전원을 켰다. 엔진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기둥 가까이 톱을 가져다 댔다._「얼음 창고」
p91
그의 눈이 창을 넘어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월리엄은 김민규의 추락 사실을 이제야 알려 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해저 탐사 도중 가라앉은 비행기를 발견했고, 그 안에 김민규의 이름표가 있었다고. 비행기를 찍은 사진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아직도 유해가 발견되고 있어요, 전쟁이 끝난 게 언제인데?”
“기다린 게지. 가야 할 곳이 있었으니.”_「비거 동해로 날다」
p128
나의 날개는 얼마나 자란 것일까. 깃털이 성기고 엉성해서 제대로 바람을 타지 못한다. 나는 기다릴 것이다. 내 몸을 띄울 수 있는 굵고 튼튼한 깃이 다 자라기를. 나는 아직도 새장 속에 머물고 있다._「새장을 열다」
p136
호랑이가 그르렁거리며 나에게 몸을 기댔다. 그녀에게 태몽으로 호랑이 꿈을 꾸었다고 했다. 꼬리가 없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녀가 용감한 아이가 태어나려는가 보다며 맑게 웃었다. 나는 따라 웃지 못했다._「우리는」
p193
그녀는 네일 도구들을 챙겼다. 청어의 비늘로 만들어진 반짝이를 섞은 폴리쉬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그녀는 어머니의 수술이 끝나면 손톱을 정리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어머니의 손을 변신시켜 줄 것이다. 그녀의 몸에서 구수한 생선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_「물고기 비늘」
p217
부부처럼 아이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는 아이에게 한 번도 아버지를 보여 주지 않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이도 알 권리가 있었다. 자신을 세상에 나오게 하는 데 한 부분을 담당한 사람. 나는 뛰어가 아이의 돌 사진을 안았다. 아이의 소원을 이제야 알았다고, 나 혼자만 아이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가족이라고 불릴 수 있는 모든 사람이 기억하면 좋겠다고. 나는 아이에게 약속했다._「나만의 장례식」
저자 소개
이경숙
소설이라는 나무 옆, 늘 그 자리에 머물고 싶다.
2019년 여름 「물고기 비늘」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받았다. 글을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아서 행복했다. 2021년 「얼음 창고」로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이제 글을 쓰는 걸 천직으로 여겨도 괜찮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울산소설가협회에서 격간으로 발행하는 문예지 『소설21세기』에 매년 글을 싣고 있다. 2023년 앤솔러지 『울산, 소설이 되다』와 짧은 소설집 『창밖의 여자, 창안의 여자』에 글을 발표했다. 현재 울산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차례
초대
얼음 창고
비거 동해로 날다
새장을 열다
우리는
물고기 비늘
나만의 장례식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