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면(龜山面) 구산이란 이곳의 산세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면적 42.76㎢, 인구 6,878인. 마산시 남단에 위치. 진해만의 좌안에 돌출한 반도. 동, 서, 남 은 진해만과 고성만에 둘러싸여 있으며, 북은 진도면과 경계된다. 본래 성법부곡이었으나, 고려 때 구산현으로 승격, 칠원현에 소속. 조선 때는 구산진, 구산부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다시 창원부에 편입. 1980년 창원시의 승격으로 의창군에 편입. 그러나 1995년 3월 1일 시·군 통폐합에 따라 마산시에 통합되었다. 현재 수정, 유산, 마전, 석곡, 옥계, 선동, 구복, 심람포, 내포 등 10개의 리가 있다. 주산업은 농업과 수산업이고, 주산물은 곡류. 연안에서는 가자미를 비롯한 잡어잡이가 성하며 특히 남포만에는 홍합, 굴양식업이 활발. 취락은 주로 포구를 중심으로 한 어촌이다.
진동면(鎭東面) 진동이란 본래 진해부의 동면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면적 32.14㎢, 인구 9,993인. 마산시 남서에 위치하며, 동으로는 현동, 서로는 진북면, 남으로는 고성만, 북으로는 내서읍에 각각 접한다. 본래 진해부의 지역으로 1908년 창원군에 편입되어 진동면이 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에 편입.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구산면과 진북면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창원부에 편입. 1980년 창원부의 승격으로 의창군에 편입되었으나, 1995년 3월 1일 시·군 통폐합에 따라 마산시에 편입, 지금에 이르고 있다. 농업과 수산업이 주된 산업으로 연안에서는 양식이 활발하다.
진북면(鎭北面) 진북이란 본래 진해부의 북면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면적 46.64㎢, 인구 5,281인. 마산시 남서에 위치하며 동쪽은 진동면, 서쪽은 함안군, 남쪽은 진전면, 북쪽은 내서읍과 함안군에 각각 접한다. 본래 진해부의 지역으로서 1908년 함안군에 1910년 마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동면의 일부와 함안군 병곡면 야현리를 병합하여 다시 창원군에 편입. 1980년 창원시의 승격으로 의창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 시·군 통폐합에 따라 마산시에 편입,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미작이 성한 곳으로, 마산∼통영간 국도가 관통하고 있다.
진전면(鎭田面) 본래 진해부의 서면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면적 78.70㎢, 인구 6,680인. 마산시 서남에 위치하며 동쪽은 진동면, 서쪽? 가포동(架浦洞)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밤구미 또는 율구미로 불리었는데, 이는 고려 원종 때 조근필이 일본에서 사신으로 가서 밤씨를 얻어다가 천양산 일대에 심게 된데서 비롯되었으며, 또 앞에는 포구가 있는데서 가포로 불리게 되었다. 면적 4.41㎢, 인구 2,698인.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창원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43년 마산부 구역 확장에 의해 마산시로 속했다. 연안어업 및 홍합 양식장이 성하며, 취락은 포구에 발달한다.
교방동(校坊洞)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회원현의 향교가 있었으므로 교방이라 불리게 되었다. 면적 2.28㎢, 인구 16,263인. 무학산의 남쪽 완사면에 위치하며, 시청으로부터 동북쪽으로 2.2km 떨어져 있다.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하여 창원군에 편입되었다가 1943년 마산부 구역 확장에 따라 다시 마산부에 편입되었다. 취락은 무학산에서 발원하는 서원천의 상류인 서원골에 따라 발달하며, 서원골 에는 청운사, 원각사, 용암사 등 사찰과 고운 최치원이 수도하던 고운대와 조선 선조 때 문공 정술이 시서를 강론하던 관해정 등 놀이터가 많다.
교원동(校原洞) 면적 0.12㎢, 인구 5,509인. 마산시의 동쪽 무학산의 남쪽 산록에 위치하며, 시청으로부터 2.1km 떨어져 있다.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조선 태종 때 창원부로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의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 1914년 행정구역의 폐합에 의하여 교방동과 회원동 일부를 병합하여 교원동이 되었다. 취락은 본래 무학산에서 발원하는 상남천 상류 하곡에 따라 발달한 자연부락이었으나 마산시의 도시화로 현재는 잘 정비되고 계획된 주택지대로 알려져 있다.
동성동(東城洞) 면적 0.24㎢, 인구 2,069인. 구마산항의 일대. 본래는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조선 태종때에 창원부로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의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동성리, 오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왜식으로 '萬町'이라 하였다가, 1946년 왜식동명 변경에 의하여 마산시 동쪽이 되므로 동성동으로 고치고, 1958년 시조례에 의하여 동성동, 남성동을 합하여 동성동회가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부산, 충무, 진해, 거제 등으로 왕래하는 정기 여객선의 부두와 마산만을 비롯한 남해안 일대를 무대로 하는 연안어업의 어항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배후에는 어판시설은 물론 수많은 낚시, 어구점들이 즐비해 있다.
반월동(半月洞) 면적 0.67㎢, 인구 11,628인. 마산 시청으로부터 서쪽 1.6km 지점에 위치.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조선 태종 때 창원군으로 편입. 1910년 마산부제의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해 신월리 일부를 갈라서 왜식으로 '新町'이라 하였다가 1946년 왜식 동명변경에 의해 반월동으로 고쳤으며 1958년 시조례에 의하여 반월동, 신월동, 월포동, 대성동 1가, 장군동 1가, 중앙동 1가를 합하여 반월동회로 되었다. 가로는 격자 상으로 일제시대에 건설된 주택지로서, 과거 신마산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부림동(富林洞)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숲이 많은 거리, 즉 숲거리 또는 쑥거리에서 유래. 면적 0.09㎢, 인구 1,550인. 마산시청으로부터 동쪽 1.5km에 위치.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의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통합에 의하여 서성리 일부를 갈라서 '富町'이라 하다가 1946년 왜식 동명 변경에 의하여 부림동으로 고쳤으며, 1958년 부림동과 창동을 합하여 부림동회로 하였다. 부림동은 마산시의 상설시장으로서, 청과물 도매시장과 1933년에 개설된 중앙도매시장이 있으며, 중부경남의 중심적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
산호동(山湖洞) 면적 1.24㎢, 인구 28,419인. 마산만으로 유입하는 근주천의 하구 좌안의 저지대에 위치하며, 동의 중앙에는 용마산이 있다.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뒤에는 용마산, 앞에 합호(合湖)의 바다가 있어 산호라고 하였는데 조선 태종 때 창원부로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의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하여 마산시에 편입. 현재 산호 1,2동회로 되어 있다. 산호동은 본래 마산만에 면한 해안 저지대로 논으로 이용되었으나 마산시의 인구증가와 특히 인근에 수출 자유지역이 입지하면서부터 신주택지로 개발, 현재는 마산시의 가장 잘 정비된 주택가로 되었다.
상남동(上南洞) 면적 0.42㎢, 인구 10,523인. 구마산의 중앙에 위치하며, 시청으로부터 동쪽으로 2.1km 떨어져 있다.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상남이라 하고, 조선 태종 때에는 창원부에 편입되었으며, 1910년 마산부제의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하여 상남동이라 하여 마산시에 편입되었다. 현재 상남 1동과 2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상남동은 일제시대 한국인의 거주지였으며, 취락은 상남천과 구마산역을 중심으로 발달. 동의 서쪽에 있는 제비산에는 고려 원종 때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몽고병 4,500명이 머물렀던 절도사구영터가 있다.
서성동(西城洞) 면적 0.52㎢, 인구 6,440인. 중앙동의 남쪽 마산만의 해안선을 따라 위치.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 서성이라 하였는데, 조선 태종 때 창원부로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의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 1914년 행정구역통합에 따라 성호리, 성산리의 각 부분을 병합하여 '辛町'이라 하였다가 1946년 왜식 동명 변경에 의하여 서성동으로 고치고 1963년 마산시 구역 재정비에 의하여 서성동, 수성동을 합쳐 서성동회가 되었다. 가로는 신마산, 북마산, 구마산의 3방향으로 갈리는 옛 서성동 로터리를 중심으로 뻗어 있으며, 가로를 따라서는 각종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옛 서성동 로터리 북쪽에는 1960년 3월 15일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한 시민 학생들의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3·15의거 탑이 있다.
성호동(城湖洞) 면적 0.16㎢, 인구 4,212인. 북마산에 위치하며, 마산시청으로부터 북동으로 2km 떨어져 있다.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성과 바다가 있었으므로 성호라고 불렀으며,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었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하여 왜식으로 '新町', '石町'의 일부에 속했다가, 1946년 왜식 동명 변경에 따라 성호동으로 고쳤다. 원래 성호동은 마산시의 근교 농업지대로서 비닐하우스에 의한 고등소채의 재배가 성했으나, 수출 자유지역과 한일합섬을 비롯한 각종 임해 대단위 공장이 입지하면서부터 새로운 배후 주택지역으로 변모하였다. 취락은 무학산의 산록선을 따라 발달하고 있다. 또한 무학산의 산록에는 용화사, 금강사, 극락암 등 많은 사찰이 있다.
오동동(午東洞) 면적 0.33㎢, 인구 4,834인. 구마산의 중앙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상남동과 접하고 남으로는 마산만에 면한다.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하여 동성리, 오산리, 상남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오산과 동성의 이름을 따라 오동리라 하여 다시 마산부에 편입되었다. 오동동은 상남동과 함께 일제시대에는 한국인의 거주지였으며, 취락은 현재 상남천을 따라 발달한 밀집된 취락이다.
완월동(玩月洞) 면적 2.71㎢, 인구 15,665인. 마산시의 중앙. 무학산 산록에 위치.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 완월이라 한데서 비롯된다. 조선 태종 때에는 창원부에 편입.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의 서면에 소속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일부는 '通町'과 '道町'으로 되고, 나머지와 신월리 일부를 병합하여 완월동이라 하여 마산부에 편입. 1958년 시조례에 의하여 완월동, 장군동 4,5가를 합쳐 완월동회로 되었다. 마산고등학교를 비롯한 중·고등학교가 이곳에 집중하고 있으며, 취락은 중앙동, 월남동 등 격자상의 가로와는 달리, 무학산의 산록선을 따라 발달한 자연부락의 성격을 띠고 있다. 동의 동쪽, 장군천에는 고려말 왜구가 침입했을 때 왜구와 홀로 싸우다 전사한 장장군묘가 있다.
월남동(月南洞) 면적 0.32㎢, 인구 6,728인. 마산시의 서쪽 해안 저지대에 위치.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조선 태종 때에는 창원부에 편입. 1889년(광무 2년) 개항과 함께 일본인들의 거주지로 되면서 '本町'이라 불리웠다. 1946년 왜식 동명 변경에 의해 월남동 1,2,3,4,5가로 고치고, 1958년 시조례에 의해 월남동 1,2가, 두월동 1,2가, 평화동, 문화동, 신창동을 합하여 월남동회가 되었다. 가로는 계획된 격자상으로서 일제시대의 상가 및 유흥가가 아직도 남아 있고, 신마산의 상업의 중심지이며, 구한말에서 일제시대까지 러시아 영사관 및 일본 영사관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월영동(月影洞) 면적 3.72㎢, 인구 24,604인. 무학산 서쪽 산록에 위치.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월영대가 있었으므로 월영리라 하였는데, 조선 태종 때에는 창원부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의 외서면에 편입.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해 리에서 동으로 고쳤으며, 현재 월영동과 월남동, 창포동과 함께 일제시대의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계획된 신가로로 구분되며, 신가로는 격자 상을 취하고 있다.
자산동(玆山洞) 면적 1.16㎢, 인구 17,787인. 완월동의 동쪽에 인접한 지역으로서, 무학산의 산록에 위치.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고개가 있는 산 밑이 되므로 자산 또는 척산이라고 불렸다. 조선 태종 때에는 창원부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의 외서면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리에서 동으로 되었다. 마산시의 전형적인 주택 지역으로서, 취락은 무학산의 산록선을 따라 발달한다.
중성동(中城洞) 면적 0.10㎢, 인구 2,012인. 구마산의 중앙에 위치하며, 마산시청으로부터 동쪽으로 1.9km 떨어져 있다. 본래 합포현 지역으로 조선 태종 때 창원부로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의 외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하여 동성리, 성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왜식으로 '俵町'이라 해서 마산부에 소속되었고, 1946년 왜식 동명 변경에 따라서 중성동으로 고쳤다. 동성동과 함게 일제시대에는 한국인들의 거주 중심지였으며, 아직도 구한말의 가옥이 남아있다. 북마산과 오동동으로 뻗은 간선도로변에는 보석, 시계, 양품점과 같은 중심지적 시가가 즐비하다.
중앙동(中央洞) 면적 0.39㎢, 인구 9,974인. 마산시의 중앙에 위치. 본래 합포현 지역으로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서면에 편입.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하여 신월리, 완월리의 일부를 병합, 왜식으로 '都町'이라 불리웠다가, 1946년 왜식 동명변경에 따라 중앙동 1,2,3가로 고치고, 1958년 시조례에 의해 중앙동 2,3가, 장군동 2,3가, 대성동 2가, 시흥동을 합쳐 중앙동회로 되었다. 마산 시청을 비롯한 주요 관청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으며, 가로는 격자상이다.
창포동(昌浦洞) 면적 0.26㎢, 인구 7,671인. 마산시의 서쪽, 해안 저지대에 위치. 본래 합포현 지역이었던 것이 조선 태종 때에는 창원부에 편입되고, 1989년(광무 2년) 마산항이 개항됨에 따라 마산부에 편입, 일본인 거주지로서 '濱町'이라 불리웠다. 1946년 왜식 동명변경에 의해 창포동 1,2,3가, 월남동 3,4,5가, 두월동 3가, 유록동, 청계동, 대의동, 홍문동을 합쳐 창포동회가 되었다. 마산 항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에 부속된 창고가 많다.
추산동(騶山洞) 면적 0.16㎢, 인구 3,127인. 시의 중앙에 위치하여, 시청으로부터 동쪽으로 1.4km 떨어져 있다. 본래 합포현 지역으로서,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었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하여, 서성리, 성호리, 성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왜식으로 '新町'이라 해서 마산부에 편입. 1946년 왜식 동명 변경에 의하여 추산동으로 고쳤다. 인근 완월동과 함께 마산시의 주택지역으로서, 취락은 무학산의 사면에 있는 독립구릉인 추산(392m)의 산록선을 따라 발달하고 있다. 동의 중앙에는 고려 원종 때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하고자 군대를 합포에 주둔시키고 식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팠던 몽고정(고려정)이 있다.
현동(縣洞) 면적 19.39㎢, 인구 4,122인. 마산시의 서남단에 위치하며, 시의 중심지로부터 7.5km 떨어져 있다. 본래 합포현의 현동리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창원군 구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마산시에 편입되는 동시에 리에서 동으로 되었다. 산업은 주로 농업으로서 비닐하우스에 의한 고등소채의 재배가 성하며, 덕동리를 중심으로 하는 해안에서는 홍합의 양식도 성하다. 취락은 청량산(323m)과 당마산(218m)간의 하곡에 따라 발달한다.
내서읍(內西邑) 면적 55.32㎢, 인구 28,474인. 마산시 북쪽에 위치한다. 내서읍은 고종 32년 창원군에 소속되었으며 1910년 마산부 설치와 함께 마산부에 예속되었다가 1914년 다시 창원군으로 편입되었다. 이때 외서면 구역인 회원·교방·산호 등 5개 리와 함안군 산인면 일부가 병합되어 19개의 리로 되었다. 1943년 10월 1일 부로 양덕·산호·교방·회원·석전리가 다시 마산부로 편입되어 나갔고 1973년 7월 1일자로 다시 구암·회원·합성·두척 등 4개 리가 마산시로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폐합에 따라 창원군이 폐지되면서 중리·평성·호계·용담·상곡·원계·삼계·신감·감천 등 10개 리의 내서면이 마산시에 통합되었고, 1995년 3월 1일자로 읍으로 승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구암동(龜岩洞) 면적 3.13㎢, 인구 32,191인. 마산시 북동부에 위치하며, 창원시와 경계를 이룬다. 구암이란 주변의 산 모습이 거북이와 같다는 데서 비롯된다. 본래 의창군 내서면에 속하였으나 1973년 7월 1일 회원·합성·두척 등 3개리와 함께 마산시에 편입,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구암 1.2동회가 있다.
봉암동(鳳岩洞) 면적 5.65㎢, 인구 7,668인. 마산시 동쪽, 남산천의 하구에 위치. 시청으로부터 5.1km 떨어져 있다.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봉망이라 하였는데 이는 동의 뒤에 있는 산봉우리가 봉과 같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조선 태종 때 창원군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내서면에 편입.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하여 봉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봉암리라 해서 창원군 내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43년 마산시 구역 확장에 의하여 마산시에 편입되었다. 봉암동은 본래 연안어업을 위한 어촌이었으나, 수출자유지역이 이곳에 입지하면서부터 공업지대로 변모하였다.
석전동(石田洞) 면적 1.44㎢, 인구 28,336인. 마산시 동북 근주천의 선상지에 위치하며, 시청으로부터 3.8km 떨어져 있다.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돌이 많아 돌밭 또는 석전이라 하였는데 조선 태종 때 창원군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내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하여 행동리, 외성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석전리라 해서 창원군에 편입. 1943년 마산부 구역 확장에 의하여 다시 마산부에 속했다. 현재 석전 1.2동회가 있다. 회원동과 함께 마산시의 근교농업지대로서, 비닐하우스에 의한 고등소채의 재배가 성화다. 취락은, 본래 근주천의 선상지 말단에 발달하였으나, 마산시의 인구 증가로 인해 지금은 새로운 주택지로서 개발되고 있으며, 종래의 신마산, 구마산, 북마산역을 통합한 새로운 마산역이 이곳에 자리잡게 됨에 따라 현대적인 역촌이 형성되어 있다.
양덕동(陽德洞) 면적 3.20㎢, 인구 31,153인. 마산시 동쪽 근주천의 하구 우안에 위치. 시청으로부터 5km 떨어져 있다.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양동 또는 양덕이라 하였으며,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내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하여 사율리 일부와 외서면의 산호리 일부, 그리고 부내면의 봉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양덕리라 해서 창원군에 편입. 1943년 마산시 구역 확장에 의하여 마산시에 편입되고 리에서 동으로 고쳤다. 양덕 1.2.3동회가 있다. 양덕동은 본래 벼농사가 성했던 곳이었으나 수출자유지역의 각종 공장이 입지하면서부터 일약 공업지역으로 변모했다. 합성동과 함께 마산시의 신개발지로서, 가로는 격자상으로 되어 있다.
합성동(合城洞) 면적 7.7㎢, 인구 34,414인. 마산시 동북에 위치한다.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합포성이 있었으므로 합성이라 하였고,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내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의성리, 석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합성리라 해서 창원군 내서면에 편입. 1973년 마산시의 구역확장에 따라 다시 마산시에 편입되고 리에서 동으로 고쳤다. 현재 합성 1.2동회가 있다. 본래 이곳은 수박, 참외, 토마토의 재배가 성했던 근교농업지대였으나, 마산시의 인구 증가로 인해 인근 양덕동과 함께 신개발 주택지로 변모, 인구와 주택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회성동(檜城洞) 면적 9.55㎢, 인구 15,352인. 마산시 북쪽에 위치.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내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하여 행촌리와 연동리, 행동리, 두곡리, 석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회성리라 해서 창원군 내서면에 편입. 1973년 마산시의 행정구역 확대에 따라 다시 마산시에 편입되면서 리에서 동으로 고치고 회성동, 두척동을 병합하여 회성동회로 되었다. 산업은 주로 축산으로 양계, 양돈이 성하다. 취락은 마산 진주간의 국도변을 따라 발달한다. 회성동의 중앙에는 남해고속도로의 서마산 인터체인지가 있다.
회원동(檜原洞) 면적 4.12㎢, 인구 43,150인. 마산시 북동 무학산의 산록완사면에 위치하며, 시청으로부터 2.8km 떨어져 있다. 본래 합포현의 지역으로서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회원리라 해서 창원군에 속했다가 1943년 다시 마산부에 편입. 현재 회원 1,2동이 있다. 마산시의 전형적인 근교농업지대로서 , 비닐하우스에 의한 고등소채의 재배와 낙농업이 성하다. 취락은 무학산에서 발원하는 회원천의 하곡을 따라 발달한다.
☆마산의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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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야..마산 좋군요..마산에 언제 가봣는지..함 다시 가보구 싶어집니다..
대한민국의 제1의 자유수출지역이며... 7,80년대 이나라의 섬유업의 고장으로도 자리햇던 주역도시엿으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도시입니다...박통께서도 많은 힘을 실엇던 고장인데~아~옛날이여!! 언젠가 또제2의 도약을 기다리며..
수린형 오시면 신동형님과 웃으며 마산의 명물 아구찜에 동동주 한잔 할수잇겟죠~ㅋㅋㅋ
신동님,산호동 사시고요... 저는 구암동이랍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