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에 들어서는 전라유학진흥원,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사는 것이 참 어렵다. 해야 할 공부는 많지만 시간이 없고,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에 도동서원이 있다. 경상도 대구시 달성군 낙동강 변에 자리잡은 한훤당 김굉필을 모신 도동서원과 이름이 같은 도동서원은 고려말의 유학자인 지포 김구를 모시기 위해 중종 29년인 1534년에 세운 서원이다.
본관이 부령인 김구는 원나라에 대한 외교문서를 담담하는 관리로 재직했고, 제주판관을 지냈는데, 그때 제주에 돌담을 쌓도록 권장하여 큰 업적을 세운 사람이다.
제주의 어딜 가나 지천인 것이 돌담이다. 밭이나 집이나 무덤이나 다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돌담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제주의 돌담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도 한다.
제주의 옛 이름인 탐라耽羅는 ‘담 나라’의 이두음吏讀音처럼 생각될 만큼 제주를 어디로 가든지 돌을 모아 담을 쌓아서 모든 둘레의 경계선을 명백히 한다. 이는 제주도의 삼다三多의 하나인 돌을 처치하는 방법도 되고, 방풍방축防風放畜목적으로 사용되어 이른바 일거양득이다.
《동문감東文鑑》에 이르기를 땅에 어지러이 널려진 돌이 많고 본래 논[水田]은 없다. 진기한 과일과 물건들이 그 땅에서 생산되고, 예전에는 밭 경계가 없었는데 권세가들이 날마다 잠식하니 백성들이 고통이 심했다. 김구金坵가 판관 때 백성의 괴로움을 덜게 하고 돌담 경계를 쌓도록 하니 백성의 편리함이 많았다. 돌담 들이 쌓인 이유다. 땅의 경계를 나누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풍속들이 제주도에 수도 없이 많다.
특히 제주는 지정학적으로 특수한 경우라서 육지하고는 사뭇 달랐는데, 그 내용이 《여지도서》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결혼 상대를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술과 고기를 마련해야 한다. 납채(納采)를 하는 자도 그렇다. 혼인날 저녁에 사위가 술과 고기를 갖추어 신부의 부모에게 뵙고 취한 뒤에 야 방에 들어간다. 여자는 많고 남자는 적다. 중[僧]이 모두 절 옆에 집을 가지고서 처자를 둔다. 비록 거지일지라도 모두 처첩을 거느리고 있다. 또한 공적인 물품이나 사적인 물품을 운반하거나 물건을 파는 배들이 잇따라 끊임없이 오간다. 그런데 바닷길이 험하고 멀어서 표류하거나 익사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딸을 낳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기州記》에 이르기를 “서울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벼슬하기가 어렵다. 제주와 명망이 높은 제주 토박이는 관아에서 일 보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서울의 벼슬살이가 귀하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라고 실려 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 또는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처럼 벼슬아치들을 많이 보지도 못하고 별다른 교육을 받을 수도 없을뿐더러 서울이 수천리 길이니 어디 벼슬을 할 엄두나 냈겠는가.
신정일의 <신 택리지> 제주도 편에서
그의 후손들이 지금도 부안지역에 많은 부안김씨들이고, 그의 묘는 부안군 산내면 운산리에 모셔져 있지만 그를 모신 도동서원은 그 터에 비석만 남아 있는데, 그 터에 반계 유형원, 여암 신경준, 조선의 미자막 유학자인 간재 전우와 전라도에 이름을 감긴 허균이나, 이규보ㅡ 이곡 등 유학자들의 학문을 기리는 전라유학진흥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얼마나 가슴 설레고 뜻깊은 일인가?
2021ᅟᅧᆫ 5월 7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