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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한한(大知閑閑)
큰 지혜는 여유롭고 한가롭다는 뜻으로, 큰 지혜를 지닌 사람은 항상 여유롭고 담담하다.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려 하지 않고, 누구를 이기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여유로운 것이라는 말이다.
大 : 큰 대(大/0)
知 : 알 지(矢/3)
閑 : 한가할 한(門/4)
閑 : 한가할 한(門/4)
사람은 누구나 귀한 존재다. 그렇다고 어디에나 제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거짓으로 꾸며서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병을 쳇병이라 할 정도로 '아는 체, 있는 체, 잘난 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한 분야에서 크게 잘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앞에 나서는 이런 사람이 각자이위대장(各者以爲大將)이다.
반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잔재주를 보이지 않으므로 어리숙하게 보인다고 대지약우(大智若愚)라 했다.
이것은 최고로 치는 싸움닭이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다고 목계양도(木鷄養到)라 한 것과 통한다. 겉으로 어리석게 보여도 감춰진 위세에 근접하지 못하는 경지가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목계(木鷄)는 '장자(莊子)'의 달생(達生) 편에서 유래했다. 앞서 나오는 제물론(齊物論)편에서는 지식이나 진리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 난해한 구절이 많기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 절에 있는 '큰 지혜는 여유롭고 한가롭다(大知閑閑)'는 말은 특히 많이 인용된다. 큰 지혜를 지닌 사람은 혼자 있을 때나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나 여유롭고 담담한데 남의 약점을 캐거나 이기려고 파고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반면 바로 뒤의 '작은 지혜는 꼼꼼하고 자세하다(小知間間)'는 말은 조금 아는 것으로 시시콜콜 따지기 좋아하지만 조금만 막혀도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바로 이어지는 것이 '큰 말은 기세가 대단하고 보잘것없는 말은 공연히 수다스럽다(大言炎炎 小言詹詹)'이다. 짧은 구절이라도 큰 말은 감동을 주고 되씹게 하는데 구구절절 수다스런 말은 남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장자(莊子) 내편(內編) 제물론편(齊物論篇)
도(道)의 오묘한 원리를 헤아리지 못하는 이는 이 세계가 오로지 대립과 차별로써 가득찬 곳으로만 보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시비, 선악, 미추의 대립적인 가치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도 자체는 그저 무차별한 하나의 세계일 뿐이다.
이와 같은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이치를 깨달은 이는, 시비와 차별과 이해타산에서 벗어나 절대의 경지에 노닐수 있다. 그는 스스로 자연의 질서에 합일함으로써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 작은 지혜에서 벗어나라
大知閑閑, 小知閒閒.
큰 지혜는 여유롭지만, 작은 지혜는 남의 눈치만 본다.
큰 슬기를 지닌 이는 언제나 여유가 있지만, 작은 슬기의 사람은 늘 소심하다. (큰 꾀는 느긋하고, 작은 꾀는 좀스럽다)
大言炎炎, 小言詹詹.
훌륭한 말은 담담하나, 작은 말은 쓸데없이 수다스럽다.
위대한 말은 꺼림이 없으나, 하찮은 말은 움직인다. 큰 말은 거리낌이 없고, 작은 말은 떠들어 수다스럽다.
其寐也魂交, 其覺也形開,
잠잘 때는 꿈으로 뒤숭숭하고, 깨어 있을 때는 감각 기관이 일을 시작하고,
與接爲構, 日以心鬪.
이처럼 바깥세계와 접촉하여 관계를 맺으며, 나날이 마음에 갈등을 일으킨다.
縵者, 窖者, 密者.
느린 사람도 있고, 깊이 빠져드는 사람도 있으며, 꼼꼼한 사람도 있다.
小恐惴惴, 大恐縵縵.
조그마한 두려움에 떨기도 하지만, 막상 큰 두려움에는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其發苦機栝, 其司是非之謂也.
그 튕겨 나가는 기세가 활에 건 화살처럼 모진 것은 시비를 따지기 때문이다.
활 틀에 꽂아둔 화살이 나가는 것처럼, 사람들이 시비를 가릴 때의 모습을 이른 말이다.
其留如詛盟, 其守勝之謂也.
신에게 맹세한 것처럼 꿈쩍하지 않음은 승세를 지키려는 고집 때문이다.
완고함이 맹약을 지키는 제후와 같다
함은, 보다 많이 차지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其殺苦秋冬, 以言其日消也.
가을 겨울처럼 쇠한다는 것은 그들이 날로 쇠약해짐을 표현한 말이다.
시들어 가는 것이 가을, 겨울의 초목과 같다고 함은, 사람들이 나날이 쇠약해 가고 있음을 형용한 말이다.
其溺之所爲, 之不可使復之也.
이렇게 하는 일에 자꾸 빠져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이렇게 그들은 욕망의 수렁에 빠져 들어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하는 일에 빠져들면 헤어날 길이 없다.
其厭也如緘, 以言其老洫也.
끈으로 묶듯이 마음을 닫는 것은 늙어 욕심이 넘치기 때문이다.
또한 상자속에 갇힌 듯하다는 것은, 늙어 갈수록 도리에 어긋나고 있음을 이른 말이다.
近死之心, 莫使復陽也.
이런 마음은 죽음에 가까이 간지라 다시 살게 할 수가 없다.
이처럼 죽어가는 이의 마음은 다시 소생시킬 수 없는 것이다. 죽음에 가까워진 그 마음은 다시 소생시킬 수 없다.
(解)
작은 지혜의 사람은 사물을 쪼개고 나누어 그 차별상에 집착한다. 따라서 그는 언제나 잘고 까다롭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은 육신으로서의 거짓된 나와 온갖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그는 늘 선과 악, 미와 추의 대립된 가치 판단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만일 그가 만물의 차별상이 도(道)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게 된다면, 갈등과 번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늘 경계하는 말을 남긴 조선 중기 학자 허목(許穆)의 '기언서(記言序)'에도 말을 줄이라는 것이 나온다.
毋多言, 毋多事.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일을 많이 벌이지 말라.
多言多敗, 多事多害.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고 일이 많으면 손해가 많다.
또한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속담 위에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고 했다. 한자 표현은 '언감가 장불감(言甘家 醬不甘)'이다. 필요한 말은 '일어치천금(一語値千金)'이라고도 했다.
말뿐이 아니고 겉으로 드러내려 노력하는 대신 속으로 재주와 실력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실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은 저절로 드러나게 마련이라 어리숙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난득호도(難得糊塗)란 성어도 있는 판이다.
말로써 말이 많은 동네에서 쓸 말만 할 수 있게 다시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다.
성담년(成聃年) 부회(賦懷)
大知無閑忙, 小知形所役.
대지는 한가하거나 바쁨이란 게 없고, 소지는 물질로 하여 정신이 육체에 매여 시달리네.
간간한한(間間閑閑)
매일 말의 성찬(盛饌) 속에 살아간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언어에는 실속이 없다. 사람들은 그저 있기 불안해 자꾸 떠든다. 약속하고 장담하며 허세를 부린다.
아무 문제 없다고, 끄떡없으니 나만 믿으라고 큰소리 친다.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그는 어느 틈에 숨고 없다. 아니면 그럴 줄 몰랐다고 남 탓만 하고 운수에 허물을 돌린다. 끝내 반성하지 않는다.
허목(許穆)은 '기언서(記言序)'에서 이렇게 말했다.
戒之哉. 毋多言, 毋多事.
경계할진저.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일을 많이 벌이지 말라.
多言多敗, 多事多害.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고, 일이 많으면 손해가 많다.
安樂必戒, 毋行所悔.
안락을 경계하고 후회할 일은 행하지 말라.
勿謂何傷, 其禍將長.
문제없다고 말하지 말라. 그 화가 오래가리라.
勿謂何害, 其禍長大.
괜찮다고 하지 말라. 그 재앙이 길고 크리라.
勿謂不聞, 神將伺人.
못 듣는다고 말하지 말라. 귀신이 사람을 엿보고 있다.
명나라 육소형(陸紹珩)이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에서 말했다.
少言語以當貴, 多著述以當富.
말을 적게 함이 귀(貴)에 해당하고,
저술을 많이 함은 부(富)에 해당한다.
載淸明以當車, 咀英華以當肉.
맑고 밝음을 지님이 수레에 해당하고,
좋은 글을 곱씹는 것은 고기에 해당한다.
귀하게 되고 싶은가? 말수를 먼저 줄여라. 부자로 살고 싶은가? 저술 풍부한 것이 바로 부자다.
좋은 수레를 자랑하는 대신 마음을 맑고 밝게 지니는 것이 어떤가? 병을 부르는 고기로 배불리지 말고 아름다운 글을 읽어 되새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는 또 말한다.
一失脚爲千古恨, 再回頭是百年人.
한 발짝 헛디디면 천고의 한이 되고, 다시 고개 돌리니 백년 사는 인생일세.
길어야 백 년 인생이 도처에서 실족해서 천고의 한만 길게 남긴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나 싶은데 수습하기엔 너무 늦었다. 탐욕 탓이다.
장자(莊子)는 '제물편(齊物篇)'에서 이렇게 말한다.
大知閑閑, 小知間間.
큰 지혜는 툭 터져 시원스럽고, 작은 앎은 사소하게 따지기나 좋아한다.
大言炎炎, 小言詹詹.
큰 말씀은 기세가 대단해도, 잗다란 말은 공연히 수다스럽다.
간간(間間)한 작은 지식을 버리고, 한한(閑閑)한 큰 지혜 속에 노닐고 싶다.
염염(炎炎)한 큰 말씀에 귀 기울이고, 첨첨(詹詹)한 잗다란 말을 내버려야지.
第二篇 齊物論
장자 내외편(內外篇)을 통틀어 가장 난해하기로 이름난 이 편(篇)은 제물론이라는 편 이름의 의미부터 학자들의 논의가 분분하다.
당대 이전까지의 주석가들은 제물론이란 시비(是非)와 미추(美醜)라는 편견과 아집의 세계를 떠나 일체의 사물이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세계를 주장한다는 의미로 보는가 하면,
송대 이후 주석가들은 유(儒), 묵(墨)을 비롯한 세속의 온갖 중론(衆論)과 시비를 가지런히 통일시킨다(齊)는 의미에서 물론(物論)을 제(齊)한다는 뜻으로 풀이했는데 어느 쪽의 견해를 따르느냐에 따라 제물론은 물론 장자 사상 전체에 대한 이해가 달라질 수 있다.
전자의 입장에 서 있는 곽상(郭象)은 제물론(齊物論)을 제물지론(齊物之論)으로 풀이하여 만물(物)을 가지런(同等)히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는 스스로를 옳다 여기고 다른 사람을 그르다 하며 자신을 아름답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 그 때문에 시비가 달라도 피(彼)와 아(我)가 균등하다(夫自是而非彼 美己而惡人 物莫不皆然 然故是非雖異而彼我均也)로 풀이하여 제물론의 중심 논의를 만물제동의 사상으로 이해하였다.
반면 송대의 임희일(林希逸)은 齊物論을 齊 物論으로 풀이하여 그는 物論이란 사람들의 논의이니 衆論이라고 말한 것과 같고, 齊는 통일한다는 뜻이니 뭇 논의를 합쳐서 하나로 통일시키고자 함이다.
전국시대에는 학문이 같지 않아서 서로 간에 시비를 따졌다. 그 때문에 장자는 시비를 모두 잊고 자연으로 돌아감만 못하다고 여겼으니 이것이 편의 명칭을 제물론이라고 한 뜻이다(物論者 人物之論也 猶言衆論也 齊者 一也 欲合衆論而爲一也 戰國之世 學問不同 更相是非 故莊子以爲不若兩忘而歸之自然 此其立名之意也)고 풀이하여 후자의 입장에 섰다.
이 편의 제1장은 남곽자기(南郭子棊)와 안성자유(顔成子游)의 긴 대화로 진행되는데, 이는 이케다 도모히사(池田知久)가 지적한 것처럼 도가사상의 역사적 전개의 개막을 고하는 기념비적 문답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 문답은 장자를 비롯한 도가의 제 문헌 가운데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성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동시에 가장 난해할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제1장 도입부의 지뢰(地籟)에 대한 다채롭고도 리얼한 표현은 왕안중(王安中)이 책을 덮고 있어도 바람 소리가 윙윙 들리는 듯하다고, 감탄할 만큼 뛰어난 문학적 표현이며,
명말의 방이지(方以智)가 한 편의 천풍부(天風賦)라고 이름을 붙일 만큼 음악적일 뿐만 아니라, 숱한 아류작(亞流作)들을 낳았다는 점에서 고금을 통틀어 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문장이라 할 만하다.
제물론에서 道는 一이며 또 無로서 인간의 知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후 도가사상의 다양한 전개는 이 편에 나온 논의를 확대, 심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第二篇 齊物論 1章
○ 南郭子綦隱机而坐, 仰天而噓, 荅焉似喪其耦.
남곽자기(南郭子綦)가 책상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길게 한 숨을 내쉬는데, 그 모습이 멍하여 흡사 짝이라도 잃은 듯했다.
顔成子游立侍乎前, 曰: 何居乎. 形固可使如槁木, 而心固可使如死灰乎. 今之隱机者, 非昔之隱机者也.
안성자유(顔成子游) 앞에서 모시고 있다가 물었다. '무슨 까닭입니까? 육신을 마른 장작처럼 움직이지 않으시고 마음을 참으로 불 꺼진 재처럼 하고 계십니다. 지금 책상에 기대어 앉아 계신 모습은 예전의 그 모습과는 아주 다릅니다.'
子綦曰: 偃, 不亦善乎 而問之也. 今者吾喪我, 汝知之乎. 汝聞人籟而未聞地籟., 汝聞地籟而未聞天籟夫.
자기가 대답했다. '언(偃)아, 기특하구나, 그런 질문을 하다니!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잃었는데 자네도 이를 알고 있었는가! 그런데 자네는 사람의 퉁소소리는 들었어도 땅의 퉁소소리는 못 들었을 게야. 설령 땅의 퉁소소리는 들었더라도 하늘이 내는 퉁소소리는 못 들었을 것이네.'
子游曰: 敢問其方.
자유가 말했다. '세 가지 퉁소 소리가 나는 까닭을 알고 싶습니다.'
子綦曰: 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窺怒呺. 而獨不聞之翏翏乎? 山陵之畏佳, 大木百圍之竅穴, 似鼻, 似口, 似耳, 似栟, 似圈, 似臼, 似洼者, 似汚者, 激者, 謞者, 叱者, 吸者, 叫者, 譹者, 宎者, 咬者. 前者唱于而隨者唱喁. 冷風則小和,飄風則大和, 厲風濟則衆竅爲虛. 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
자기가 대답했다. '무릇 대지가 내쉬는 숨결을 바람이라고 이름하네. 바람이 일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지만, 한번 바람이 불게 되면 온갖 땅 위의 구멍들이 성난 듯이 소리를 내지. 자네도 큰 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어 보았겠지.
그 바람이 숲을 흔들면 백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나무들의 구멍은 흡사 사람의 코 같고, 입 같고, 귀 같고, 옥로 같고, 바리때 같고, 절구 같고, 깊은 웅덩이 같고, 얕은 웅덩이 같기도 한 곳에서 소리를 내기 시작하지. 그 구멍들은 제각기 격렬하게 물 흐르는 듯한 소리, 화살이 나는 듯한 소리, 꾸짖는 것 같은 소리, 숨쉬듯 가냘픈 소리, 외치는 듯한 소리,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 아득히 먼 소리, 소곤대는 듯한 소리를 내기도 하지. 앞바람이 우우하고 울리면 뒤따르는 바람은 오오하고 울린다네. 산들바람에는 나즉이 응하고, 돌개바람에는 거칠게 화답하지. 그러다 사나운 바람이 그치면 구멍들은 고요해지지. 자네도 초목들이 크게 흔들리기도 하고 가볍게 흔들리기도 하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子游曰: 地籟則衆竅是已, 人籟則比竹是已. 敢問天籟.
자유가 말했다. '그렇다면 땅의 퉁소란 땅위에 있는 온갖 구멍이 내는 소리이고, 사람의 퉁소란 대나무로 만든 악기 비죽(比竹)과 같은 것이군요. 그런데 하늘의 퉁소란 어떤 것입니까?'
子綦曰: 夫天籟者, 吹萬不同, 而使其自己也, 咸其自取, 怒者其誰邪.
자기가 대답했다. '바람이 온갖 것에 불어대어 각기 같지 않은 다른 소리를 내게 되는데, 이는 저마다가 스스로 그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네. 스스로가 모두 그 소리를 내는 것이지, 성난 소리를 내게 하는 게 따로 누가 있겠는가!'
○ 大知閑閑, 小知閒閒.
커다란 지혜는 아주 한가롭지만, 자그마한 지식은 몹시 바쁘다.
大言炎炎, 小言詹詹.
훌륭한 말은 담백하고 맑으나 하찮은 말은 따지고 헤아린다.
其寐也魂交, 其覺也形開, 與接爲搆, 日以心鬪.
잠들어서는 꿈을 꾸고 깨어나면 활동을 시작해 접촉하는 것마다 얽혀들어 마음이 날마다 다툰다.
縵者, 窖者, 密者.
싸우는 사람 중에는 우유부단한 사람, 음흉한 사람, 꼼꼼한 사람 등 갖가지이다.
小恐惴惴, 大恐縵縵.
조금 두려운 일에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크게 무서운 일에는 두렵지 않은 체한다.
其發若機栝, 其司是非之謂也.
그 말투는 화살을 쏘는 것같이 모질어 시비를 판결하는 재판관이라도 된 것 같다.
其留如詛盟, 其守勝之謂也.
얻은 것을 지키려는 경우 맹약을 지키려는 제후처럼 완고하다.
其殺若秋冬, 以言其日消也.
이러다 보면 가을과 겨울에 시드는 초목처럼 그는 나날이 소진해 간다.
其溺之所爲之, 不可使復之也.
이런 인물은 작위적인 것에 빠져서 다시는 참됨을 회복할 수 없으며,
其厭也緘, 以言其老洫也.
욕심에 억눌려 꽉꽉 막히는데 늙을수록 더해진다.
近死之心, 莫使復陽也.
이 같이 죽어가는 이의 마음은 원래대로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
○ 喜怒哀樂.
세상 사람들은 기뻐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한다.
慮嘆變慹.
또한 걱정과 한탄을 하기고 하고 변덕을 부리거나 집착하기도 한다.
姚佚啓態.
또 아첨을 하기도 하고 교만을 부리기도 하며 솔직하기도 하고 꾸미기도 한다.
樂出虛, 蒸成菌.
이는 빈 구멍에서 음악 소리가 나오듯 습한 곳에서 버섯이 돋아나듯이,
日夜相代乎前, 而莫知其所萌.
밤낮없이 눈앞에 바뀌어 나타나지만 그것이 생겨나는 연유를 모른다.
已乎, 已乎.
아서라, 공연한 짓은 그만두자.
旦暮得此, 其所由以生乎.
아침 저녁으로 이같은 변화는 그 연유하는 바가 있어서 그러하겠는가.
非彼無我, 非我無所取.
만일 저것이 없다면 내가 있을 수 없고, 내가 없으면 취해야 할 바가 없다.
是亦近矣, 而不知所爲使.
이것이야말로 서로 가까운 것일진대 무엇이 그렇게 되도록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若有眞宰, 而特不得其眹.
설령 참된 주재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조짐을 파악할 수가 없고,
可行已信, 而不見其形. 有情而無形.
그 행해지는 작용은 일상에 있어 또렷하나 그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작용은 있는데 그 형체가 없는 것이다.
百骸, 九竅, 六藏, 賅而存焉, 吾誰與爲親.
사람에게는 백 개의 골절과 아홉 개의 구멍, 여섯 개의 장기가 갖추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어느 것과 친해야지만 할까?
汝皆說之乎, 其有私焉.
너는 모두 좋아하는가 아니면 그중 특별히 좋아하는게 있는가?
如是皆有爲臣妾乎.
모두가 같다면 그 모든 것이 신하와 첩같은 것인가?
其臣妾不足以相治乎.
그러나 신하나 첩같은 것들은 서로 대치하기 부족한 것인가?
其遞相爲君臣乎?
아니면 차례로 돌아가며 임금 신하가 되는 것인가?
其有眞君存焉.
아니면 참다운 지배자가 존재하는가?
如求得其情與不得, 無益損乎其眞.
그 실정을 알든 모르든 참된 진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 一受其成形, 不化以待盡.
한번 그 이루어진 형체(成形)를 받게 되면 억지로 벗어나지 않고 목숨이 다 할 날을 기다린다.
與物相刃相靡, 其行進如馳, 而莫之能止, 不亦悲乎.
그런데 주위 사물과 서로 다투고 해치기를 마치 말을 타고 달리듯 하여 능히 막을 수 없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 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 可不哀邪.
평생토록 애를 쓰지만 결국 성공을 보지 못하고 고달프고 지쳐도 그 돌아갈 바를 알지 못하니 이 어찌 애닲지 아니한가!
人謂之不死, 奚益.
세상 사람들은 이를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하지만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其形化, 其心與之然, 可不謂大哀乎.
형체가 변화함에 따라 그 마음도 더불어 그렇게 되니 매우 가엾지 아니한가.
人之生也, 固若是芒乎.
其我獨芒, 而人亦有不芒者乎.
인간의 삶이란 이다지도 어리석은 것일까! 아니면 나만 혼자 어리석고 어리석지 않은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일까!
○ 夫隨其成心而師之, 誰獨且无師乎.
본래 이루어진 성심(成心)을 좇아 스승으로 섬긴다면 그 누가 스승이 없겠는가!
奚必知代而心自取者有之.
어찌 바뀌는 마음을 알고서 그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에게만 스승이 있겠는가!
愚者與有焉.
어리석은 자라도 똑같이 있는 법이다.
未成乎心而有是非, 是今日適越而昔至也. 是以無有爲有.
성심을 따르지 않고 시비 다툼을 벌인다면, 이는 '오늘 월나라로 떠나는 자가 어제 도착했다'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이것은 실제로 있지 않은 일을 있다고 억지로 우기는 처사이다.
無有爲有, 雖有神禹, 且不能知.
吾獨且奈何哉.
없는 것을 있다고 고집하는 자는 신묘한 우임금이라 하더라도 어찌하겠는가! 하물며 나 또한 그것을 어찌 알겠는가!
○ 夫言非吹也.
무릇 말이란 불어서 내는 소리가 아니다.
言者有言, 其所言者特未定也, 果有言邪, 其未嘗有言邪.
말에는 말하고자 함이 있으니 그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과연 말을 한 것이 되는지, 아니면 말하지 않은 것이 되는지 알 수 없을게 아닌가?
其以爲異於鷇音, 亦有辯乎, 其無辯乎.
그것이 새가 우는 소리와는 다르다고 하면 거기에는 구별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없는 것일까?
道惡乎隱而有眞僞, 言惡乎隱而有是非.
도(道)는 무엇에 가리어져 참과 거짓의 구별을 낳고, 참된 말은 무엇에 가리어져 시비 다툼이 생기는 것일까?
道惡乎往而不存, 言惡乎存而不可.
도는 어디에 간들 있지 않을 것이며, 참된 말은 어떻게 하든 가능하지 않을까?
道隱於小成, 言隱於榮華.
하지만 도는 자그마한 분별 지식에 의해 가려지고, 참된 말은 거창한 논변에 의해 가려진다.
故有儒墨之是非, 以是其所非而非其所是.
그렇기에 유가와 묵가의 논쟁이 벌어져 상대방이 그르다고 주장하는 바를 옳다고 하고, 옳다고 하는 바를 그르다고 하게 된다.
欲是其所非而非其所是, 則莫若以明.
만일 상대방이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하고, 옳다고 하는 것을 그르다고 하려함은 '밝게 비추는 것(以明)'으로 하는 것만 못하다.
○ 物无非彼, 物无非是.
만물은 저것이 아닌 게 없으며 이것이 아닌 게 없다.
自彼則不見, 自是則知之.
저쪽에서 보면 보이지 않지만 내쪽에서 보면 환히 알게 된다.
故曰彼出於是, 是亦因彼.
彼是方生之說也.
따라서 저것은 이것으로부터 나오고 이것 또한 저것에서 비롯된다고 한 것이다. 이는 저것과 이것은 함께 생겨난다(彼是方生)는 말이다.
雖然, 方生方死, 方死方生.
바야호로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니 삶도 있는 것이다.
方可方不可, 方不可方可.
가능한 것이 있으므로 불가한 것이 있고, 불가한 것이 있으므로 가능한 것도 있는 것이다.
因是因非, 因非因是.
옳음에 연유해서 그릇됨이 있고 그릇됨을 근거로 옳음이 있다.
是以聖人不由, 而照之於天, 亦因是也.
따라서 성인은 이러한 시시비비를 떠나 하늘 이치에 비추어 보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옳음이다.
是亦彼也, 彼亦是也.
이것은 곧 저것이며 저것은 또한 이것이다.
彼亦一是非, 此亦一是非.
저것도 또한 하나의 옳고 그름이 있고, 이것에도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다.
果且有彼是乎哉.
果且无彼是乎哉.
과연 저것과 이것은 있는 것일까? 저것과 이것은 없는 것일까?
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以應无窮.
저것과 이것의 대립이 그치는 것을 도추(道樞)라고 일컫는다. 추(樞; 문짝을 열리고 닫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도리)는 고리의 한가운데에 걸려 무한히 회전한다.
是亦一无窮, 非亦一无窮也.
故曰莫若以明.
옳음도 하나의 무궁한 변화이고 그름도 또한 하나의 무궁한 움직임이다. 그러므로 '밝게 비추는 것(以明)으로 하는 것만 못하다'고 한 것이다.
○ 以指喩指之非指, 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也.
이 손가락으로 저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밝히는 것은, 손가락이 아닌 것을 가지고 저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밝히는 것만 못하다.
以馬喩馬之非馬, 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
이쪽 말(馬)을 가지고 저쪽 말이 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아닌 것으로 저 말이 말이 아니라고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
하늘과 땅도 하나의 손가락이며, 만물도 한 마리의 말일 따름이다.
○ 可乎可, 不可乎不可.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한다.
道行之而成, 物謂之而然.
길은 지나다님으로 이루어지고 만물은 그렇게 일컬으니 그렇다고 된다.
惡乎然. 然於然.
어찌 그러할까? 그렇게 하니까 그런 것이다.
惡乎不然. 不然於不然.
어째서 그렇지 않은 것일까? 그렇지 않으니까 그렇지 않은 것이다.
物固有所然, 物固有所可.
만물은 본래 그렇다 하는게 있으며 만물마다 본래의 옳음이 있다.
無物不然, 無物不可.
어떤 만물이건간에 그렇다는 바가 있으며 어느 것이라도 옳은 바가 있다.
故爲是擧莛與楹, 厲與西施, 恢憰怪, 道通爲一.
그래서 커다란 대들보와 자그마한 집기둥, 추한 문둥이와 미녀 서시(西施) 등 엄청난 것과 괴이한 것을 함께 거론하더라도 도는 통하여 하나가 될 뿐이다.
其分也, 成也. 其成也, 毁也.
나뉨은 한 편에서는 이루어짐이며, 이루어짐은 한 편에서는 허물어짐이다.
凡物無成與毁, 復通爲一.
무릇 만물은 본래 완성도 파괴도 없이 다 함께 하나이다.
唯達者知通爲一, 爲是不用而寓諸庸.
오직 통달한 사람이라야 모든 것이 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을 알아 시비를 내세우지 않고 평상시의 보편적인 것에 맡긴다.
庸也者, 用也.
用也者, 通也.
通也者, 得也. 適得而幾矣.
맡긴다(庸) 함은 작용(用)이란 뜻과 같다. 작용한다 함은 두루 미친다(通)는 것이고, 두루 미친다는 것은 얻는 바가 있게 되어 도에 가까워지리라.
因是已, 已而不知其然, 謂之道.
그저 그렇게 될 뿐 이미 그러면서도 왜 그런지 모르는 것을 도라고 일컫는다.
○ 勞神明爲一, 而不知其同也.
정신을 수고롭게 하여 한쪽에 치우치려 함은 모든 게 한 가지임을 알지 못한다.
謂之朝三. 何謂朝三.
이를 조삼(朝三)이라 일컫는다. 조삼이란 무엇인가?
狙公賦芧曰, 朝三而暮四.
원숭이 사육사가 사과를 원숭이에게 주면서 말했다.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
衆狙皆怒. 曰, 然則朝四而暮三. 衆狙皆悅.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벌컥 화를 냈으므로 사육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 주겠다.' 이에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名實未虧而喜怒爲用, 亦因是也.
명분이나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으나 기쁨과 노여움이 교차됐다. 이 역시 시비로 말미암은 것이다.
是以聖人, 和之以是非, 而休乎天釣, 是之謂兩行.
따라서 성인은 시비를 조화시켜 자연히 고르게 되는 것(天釣)에 의지하는데 이를 양행(兩行)이라 일컫는다.
◼ 02편 제물론(齊物論) - 2
○ 古之人, 其知有所至矣. 惡乎至, 有以爲未始有物者. 至矣, 盡矣, 不可以加矣.
옛사람은 지혜가 지극했다. 어느 정도에까지 이르렀냐 하면 처음부터 사물이란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것은 지극하고 극진한 경지에 도달하여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其次, 以爲有物矣, 而未始有封也.
그 다음은 사물은 있으나 구별하지 않는 경지이다.
其次, 以爲有封焉, 而未始有是非也.
그 다음은 사물에 구별은 있지만 아직 옳고 그름이 없는 경지이다.
是非之彰也, 道之所以虧也.
道之所以虧, 愛之所以成.
그러나 시비 분별을 드러냄에 도가 이지러졌고, 도가 이지러지자 편애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果且有成與虧乎哉.
果且無成與虧乎哉.
과연 이지러짐을 따라 이루어짐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없는 것일까?
有成與虧, 故昭氏之鼓琴也.
無成與虧, 故昭氏之不鼓琴也.
이지러짐을 따라 이루어짐이 있는 것은 옛날 소씨(昭氏)가 거문고를 연주했을 때이다. 이지러짐을 따라 이루어짐이 없는 것은 소씨가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을 경우이다.
○ 昭文之鼓琴也, 師曠之枝策也, 惠子之據梧也, 三子之知, 幾乎皆其盛者也, 故載之末年.
소문(昭文)이 거문고를 탄 행위, 사광(師曠)이 북채로 박자를 짚었던 일, 혜자(惠子)가 책상에 기대어 담론한 행위, 이 세 사람의 앎은 최고 경지에 다다른 큰 인물이라 말년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살았다.
唯其好之也, 以異於彼.
其好之也, 欲以明之.
이들은 좋아하는 바가 세상 사람들과 달랐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도 밝히려 하였다.
彼非所明而明之, 故以堅白之昧終.
이들은 밝힐 수 없는 것을 밝히려 했기 때문에 혜자는 견백(堅白)의 어리석은 궤변으로 끝마쳤다.
而其子又以文之綸終, 終身無成.
소문의 경우도 아들이 아버지의 재주를 흉내 냈으나 평생동안 성취를 얻지 못했다.
若是而可謂成乎, 雖我亦成也.
이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면 나 역시 이루었노라고 해야 할 것이다.
若是而不可謂成乎, 物與我無成也.
혹은 이루었다고 하지 못한다면 사물과 나도 이룬 것이 없으리라.
是故滑疑之耀, 聖人之所圖也.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한 어두운 데에 빛을 비추는 일은 바로 성인이 도모하는 바이다.
爲是不用而寓諸庸, 此之謂以明.
성인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내세우는 대신 모든 것에 맡겨 둔다. 이를 '밝게 비추는 것(以明)'이라 한다.
○ 今且有言於此.
가령 여기에 하나의 말(言)이 있다고 하자.
不知其與是類乎, 其與是不類乎.
그것이 본래의 밝음과 같은 부류인지 아니면 다른 부류에 속하는지 알 수가 없다.
類與不類, 相與爲類, 則與彼无以異矣.
같은 부류이든 아니든 간에 서로 더불어 시비함은 다를 것이 없는 부류이다.
雖然, 請嘗言之.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한번 말해 보기로 하자.
有始也者, 有未始有始也者, 有未始有夫未始有始也者.
시작이 있으면, 다시 그 전의 아직 시작하지 않은 때가 있고, 또한 다시 아직 시작하지 않았던 그 전도 있었을 것이다.
有有也者, 有无也者, 有未始有无也者, 有未始有夫未始有无也者.
유(有)가 있고 무(無)가 있으면, 그 앞에 유와 무가 있기 이전이 있을 것이고, 더 일찍이 유와 무가 있기 이전의 그 전도 있었을 것이다.
俄而有无矣, 而未知有无之果孰有孰无也.
그런데 홀연히 유와 무가 대립하는데, 유와 무중에 과연 어느 것이 유이고, 어느 것이 무인지를 알수 없다.
今我則已有謂矣, 而未知吾所謂之其果有謂乎, 其果无謂乎.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있으나, 과연 나의 말이 이루어진 것인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가?
○ 天下莫大於秋毫之末, 而大山爲小.
천하에 추호(秋毫; 가을날 짐승 털)의 끝보다 큰 것은 없다고 하니 태산도 털끝보다 작은 것이다.
莫壽於殤子, 而彭祖爲夭.
어려서 죽은 갓난 아이보다 장수한 이는 없다고 하니 팽조(彭祖)도 요절한 셈이다.
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하늘과 땅도 나와 더불어 생기니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다.
旣已爲一矣, 且得有言乎.
이미 하나가 되어 있는데 이 밖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旣已謂之一矣, 且得无言乎.
이미 하나로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또 어찌 말이 없다고 하겠는가?
一與言爲二, 二與一爲三.
하나인 것과 말은 둘이 되고, 그 둘에 원래 하나인 것은 다시 셋이 된다.
自此以往, 巧曆不能得, 而況其凡乎.
이렇게 나아가면 셈이 뛰어난 교략(巧曆)같은 자라고 해도 다 헤아릴 수 없거늘 일반 사람이야 어쩌겠는가!
故自无適有以至於三, 而況自有適有乎.
따라서 무에서 유로 나아가는 데에도 셋이 되는데, 유에서 유로 나아가는 경우에 있어서랴!
无適焉, 因是已.
나아가지 않고 그대로 맡길 따름이다.
○ 夫道未始有封, 言未始有常.
무릇 도는 시초부터 한계가 없는 것이고 말은 처음부터 정해진 고정된 의미가 없다.
爲是而有畛也.
옳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爲是)의 잣대를 세우면서 구별이 생기는 법이다.
請言其畛. 有左, 有右, 有倫, 有義, 有分, 有辯, 有競, 有爭. 此之謂八德.
그 구별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왼쪽이 있으면 오른쪽이 있고, 관계의 질서가 있으니 그에 따른 마땅함이 있고, 분별이 있으니 변론을 하고, 서로 겨루니 다툼이 생긴다. 이를 여덟 작용(八德)이라 일컫는다.
六合之外, 聖人存而不論,
六合之內, 聖人論而不議.
성인은 천지사방(六合) 밖의 것에 대해 그대로 놓아둘 뿐 거론하지 않고, 천지사방 안에 대해서 거론을 해도 상세히 따지려 하지 않는다.
春秋經世先王之志, 聖人議而不辯.
춘추(春秋)는 세상을 다스렸던 선왕의 기록으로 성인은 이를 살피되 시비곡절을 따지지 않는다.
故分也者, 有不分也,
辯也者, 有不辯也.
그러므로 나누려고 해도 나누지 못하는 게 있고, 분별하려고 해도 분별할 수 없는 게 있다.
曰何也?
聖人懷之, 衆人辯之, 以相示也.
왜 그럴까? 성인은 품으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분별함으로써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故曰辯也者, 有不見也.
따라서 분별한다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게 있다고 하는 것이다.
○ 夫大道不稱, 大辯不言, 大仁不仁, 大廉不嗛, 大勇不忮.
무릇 위대한 도는 일컬을 수 없고, 위대한 변론은 말로써 하지 않고, 위대한 인(仁)은 어질지 않으며, 위대한 청렴은 모자람을 드러내지 않고, 위대한 용기는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
道昭而不道, 言辯而不及, 仁常而不成, 廉淸而不信, 勇忮而不成.
도를 드러나게 한다면 도가 아니고, 말로 분별하는 것은 이르지 못하게 되며, 어짊도 어딘가에 고정되면 이루지 못하게 되고, 청렴은 맑게 드러나면 미덥지 못하고, 용기가 남을 해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五者而幾向方矣.
이 다섯 가지는 원래 둥근 것이었으나 한쪽에 치우쳐 모나버리는 것이다.
故知止其所不知, 至矣.
그러므로 앎이란 알지 못하는 데에 그칠 줄 알면 지극한 것이다.
孰知不言之辯, 不道之道.
若有能知, 此之謂天府.
누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변론과 드러나지 않는 도를 아는가! 만일 이를 알면 하늘의 보고(天府)라 이름하리라.
注焉而不滿, 酌焉而不竭.
而不知其所由來, 此之謂葆光.
아무리 물을 거기에 퍼부어도 가득차지 않고 마구 퍼내도 마르지 않는다. 그러나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므로 이를 드러나지 않은 빛(葆光)이라 일컫는다.
○ 故昔者堯問於舜曰, 我欲伐宗膾胥敖, 南面而不釋然. 其故何也.
옛날에 요(堯)임금이 순(舜)에게 물었다. '나는 종, 회, 서오 세 나라를 정벌하려 하네. 임금 자리에 남면하고 앉아 있어도 어쩐지 마음이 석연치 않으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나?'
舜曰, 夫三子者, 猶存乎蓬艾之間. 若不釋然, 何哉? 昔者十日竝出, 萬物皆照, 而況德之進乎日者乎.
순이 말했다. '세 나라는 아직 쑥대가 우거진 미개한 부족 국가입니다. 마음이 석연치 않은 것은 어쩐 일이십니까? 옛날에는 열 개의 해가 한꺼번에 나와서 만물을 샅샅이 비춘 일이 있습니다. 하물며 덕이 해보다 더 밝다고 하면 무슨 거리낌이 있겠습니까?'
○ 齧缺問乎王倪曰, 子知物之所同是乎.
설결(齧缺)이 왕예(王倪)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만물이 모두 옳다고 하는 것을 아십니까?'
曰, 吾惡乎知之.
왕예가 말했다. '내가 어찌 그것을 알겠느냐.'
子知子之所不知邪.
설결이 다시 물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曰, 吾惡乎知之.
왕예가 말했다. '내 어찌 그것을 알겠느냐.'
然則物无知邪.
설결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만물에 대하여 아는 게 없으십니까?'
曰, 吾惡乎知之. 雖然嘗試言之.
왕예가 말했다. '어허, 어찌 알겠나.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어디 한번 말해 보기로 하지.
庸詎知吾所謂知之非不知邪.
庸詎知吾所謂不知之非知邪.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이 모르는 게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또한 내가 모른다는 것이 아는 게 아닌 줄은 어떻게 알겠나!
且吾嘗試問乎汝.
이제 자네에게 한번 물어보겠네.
民濕寢則腰疾偏死, 鰌然乎哉.
사람은 습한 데서 자면 곧 허리에 병이 나서 반신불수가 되지만 미꾸라지도 그렇던가?
木處則惴慄恂懼, 猨猴然乎哉.
사람은 나무 위에 있을 경우 벌벌 떨지만 원숭이도 그러하던가?
三者孰知正處.
이들 셋 가운데 어느 쪽이 올바른 거처를 알고 있는 건가?
民食芻豢, 麋鹿食薦, 蝍蛆甘帶, 鴟鴉嗜鼠, 四者孰知正味.
사람은 가축의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뜯고, 지네는 뱀을 맛있게 먹고, 올빼미나 까마귀는 쥐를 즐겨 먹지. 넷 가운데 어느 누가 올바른 맛을 아는 것일까?
猨猵狙以爲雌, 麋與鹿交, 鰌與魚游.
원숭이는 편저를 짝으로 삼고 고라니는 사슴과 사귀며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함께 헤엄치지.
毛嬙西施, 人之所美也. 魚見之深入, 鳥見之高飛, 麋鹿見之決驟. 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
모장(毛嬙)과 여희(西施)는 세상 사람들이 미녀라고 칭송하지만, 물고기는 그를 보면 물속 깊이 달아나고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고라니와 사슴은 급히 달아나지. 넷 가운데 누가 천하의 올바른 미인을 아는 것일까?
自我觀之, 仁義之端, 是非之塗, 樊然殽亂, 吾惡能知其辯.
내가 보건대 인의(仁義)의 기준이나 시비(是非)의 방향이 어지러이 뒤섞여 있는데 나라고 어찌 그것들을 분별할 수 있겠나!'
○ 齧缺曰, 子不知利害, 則至人固不知利害乎.
설결이 또 물었다. '선생님은 이해(利害)를 가리지 못한다고 하시는데 지인(至人)은 본래 이해를 모르는 것입니까?'
王倪曰, 至人神矣. 大澤焚而不能熱, 河漢沍而不能寒. 疾雷破山而不能傷, 飄風振海而不能驚.
왕예가 대답했다. '지인은 신묘한 사람이라네. 큰 연못을 말려버릴 뜨거운 열도 그를 뜨겁게 할 수는 없으며, 황하와 한수를 꽁꽁 얼릴 추위도 그를 춥게 할 수는 없다네. 사나운 우뢰가 산을 부수고 태풍이 바다를 뒤흔들어도 그는 놀라지 않지.
若然者, 乘雲氣, 騎日月, 而遊乎四海之外.
이런 인물은 구름을 타고 해와 달을 부리면서 세상 바깥에서 노닌다네.
死生無變於己, 而況利害之端乎.
죽음과 삶도 그에게 변화를 줄 수 없거늘 어찌 이해 따위에 꿈쩍이나 하겠는가!'
○ 瞿鵲子問乎長梧子曰, 吾聞諸夫子, 聖人不從事於務, 不就利, 不違害, 不喜求, 不緣道. 无謂有謂, 有謂无謂, 而遊乎塵垢之外. 夫子以爲孟浪之言, 而我以爲妙道之行也. 吾子以爲奚若.
구작자(瞿鵲子)가 장오자(長梧子)에게 물었다. '제가 스승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성인은 세속 일을 좇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지도 해로움을 피하지도 않고, 무엇을 애써 얻으려 하지 않고, 정해진 도를 따르지도 않고, 말은 하지 않고 있어도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있고, 말을 해도 말하지 않은 것 같아 초연히 이 세상 밖에서 노닌다고 합니다. 스승은 이를 맹랑한 소리라고 일소에 붙였으나, 저는 오묘한 도(妙道)를 행하는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長梧子曰, 是皇帝之所聽熒也, 而丘也何足以知之.
장오자가 말했다. '이는 황제가 들어도 믿지 않거늘 공구(孔丘)가 어찌 이를 알겠는가!
且汝亦大早計. 見卵而求時夜, 見彈而求鴞炙.
자네도 지나치게 성급하네. 달걀을 보자마자 새벽 닭소리를 기다리고, 활을 보자마자 새 구이를 찾는 격이군.
予嘗爲女妄言之, 女以妄聽之奚.
이제 자네에게 허튼소리를 할 터이니 자네도 그리 알고 망령되게 듣는 게 어떻겠는가.
旁日月, 挾宇宙, 爲其脗合, 置其滑涽, 以隸相尊.
성인은 해와 달을 곁에 두고, 우주를 옆구리에 낀 채, 입술을 맞닿듯 만물과 하나가 되어, 혼돈 그대로에 놓아두어 존비(尊卑)의 구별을 두지 않지.
衆人役役, 聖人愚芚, 參萬歲而一成純.
세상 사람들은 수고로움에 고달프지만, 성인은 어리석고 우둔한 듯해서 만년이 지나도 순일(純一)을 보전하지.
萬物盡然, 而以是相蘊.
만물이 있는 그대로 다하도록 되니 그 속에 감싸인다네.
予惡乎知說生之非惑邪.
삶을 기뻐함이 미혹된 게 아닌지 내 어찌 알겠는가.
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邪.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어려서 고향을 떠나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감을 잊은 자와 같지 않음을 내 어찌 알겠나?
麗之姬, 艾封人之子也.
晉國之始得之也, 涕泣沾襟,
여희(麗姬)는 애라는 변방 관리의 딸이었네. 진나라로 강제로 끌려갈 적에 그녀는 눈물로 옷깃을 흠뻑 적셨지.
及其至於王所, 與王同筐牀, 食芻豢, 而後悔其泣也.
하지만 왕궁에 이르러 왕과 함께 침소를 같이 하고 맛있는 고기 요리를 먹게 되자, 그녀는 눈물 흘린 일을 후회했다고 하네.
予惡乎知夫死者 不悔其始之蘄生乎!
이와 마찬가지로 죽음에 이른 자들도 살기를 고대했던 것을 나중에 후회할지 내 어찌 알겠나!
○ 夢飮酒者, 旦而哭泣,
夢哭泣者, 旦而田獵.
꿈속에서 유쾌하게 술을 마신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면 슬피 울게 되고, 꿈속에서 구슬프게 울던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면 사냥놀이 갈 일이 생기기도 한다네.
方其夢也, 不知其夢也.
夢之中又占其夢焉, 覺而後知其夢也.
한창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그것이 꿈인 줄도 모르고, 또 꿈을 점치기도 하다가 꿈에서 깨어난 뒤에야 꿈인 줄 알게 되지.
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
우리는 이와 같아서 크게 깨어난 이후에야 한바탕 꿈속인 줄을 알게 되지.
而愚者自以爲覺, 竊竊然知之. 君乎, 牧乎, 固哉. 丘也與女, 皆夢也,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깨어 있다고 자처하여 짐짓 아는 체하면서 군주니 목인(牧人)이니 하지만 고루한 짓일 뿐, 공구나 자네도 또한 꿈꾸고 있는 사람이네.
予謂女夢, 亦夢也.
자네더러 꿈꾼다고 지적하는 나의 말 역시 꿈속의 헛소리지.
是其言也, 其名爲弔詭. 萬世之後而一遇大聖, 知其解者, 是旦暮遇之也.
이런 이야기는 매우 괴이한 것이지만, 만세 뒤에라도 큰 성인을 만나서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이는 아침저녁으로 만난 것과 다름이 없겠네.
○ 旣使我與若辯矣.
내가 자네와 논쟁을 벌였다고 해보세.
若勝我, 我不若勝,
若果是也, 我果非也邪.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에게 지면, 진정 자네는 옳고 나는 그른 것일까?
我勝若, 若不吾勝,
我果是也, 而果非也邪.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내게 지면, 정녕 나는 옳고 자네는 그른 것일까?
其或是也, 其或非也邪.
其俱是也, 其俱非也邪.
한 쪽은 옳고 다른 쪽은 그른 것일까? 아니면 둘 다 옳거나 둘 다 그를 수도 있지 않을까?
我與若不能相知也.
則人固受黮闇, 吾誰使正之.
나도 자네도 어떤지 알 수 없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물론 알 수가 없네. 그렇다면 누구에게 이것을 바로잡게 할 수 있겠는가?
使同乎若者正之.
旣與若同矣, 惡能正之.
자네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물어 보면, 이미 자네와 입장이 같으므로 어찌 능히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使同乎我者正之.
旣同乎我矣, 惡能正之.
나와 소견이 같은 사람에게 물어 볼 경우, 벌써 나와 입장이 같으므로 어떻게 능히 이것을 바로잡겠는가!
使異乎我與若者正之.
旣異乎我與若矣, 惡能正之.
나와도 자네와도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물어 보면, 이미 나와도 자네와도 다른데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使同乎我與若者正之.
旣同乎我與若矣, 惡能正之.
나와도 자네와도 입장이 같은 사람에게 물어 본다면, 우리 둘 모두와 입장이 같으므로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然則我與若與人俱不能相知也, 而待彼也邪.
그렇다면 나도 자네도 다른 누구도 알 수 없는데, 그 누구에게 바로잡게 하기를 기다리겠는가?
化聲之相待, 若其不相待.
변하기 쉬운 말소리에 기대한다는 것은 아예 기대할 바가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이네.
和之以天倪, 因之以曼衍, 所以窮年也.
시비분별이 없는 경지(天倪)로 모든 것을 조화하고, 무한한 변화(曼衍)에 모든 것을 맡겨둠이 천수(天壽)를 다하는 방법이지.
何謂和之以天倪. 曰, 是不是, 然不然.
천예로서 모든 것을 조화한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다음과 같이 답하겠네. 옳다는 것이 있으면 옳지 않다는 것이 따르고, 그렇다는 입장이 있으면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 생기지.
是若果是也, 則是之異乎不是也, 亦無辯.
만일 옳다는 것이 정말로 옳다면, 옳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과 다르다고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네.
然若果然也, 則然之異乎不然也亦無辯.
그렇다는 입장이 실제로 그렇다면, 그렇다는 입장이 그렇지 않다는 입장과 다르다고 새삼스레 말할 필요도 없네.
忘年忘義, 振於無竟, 故寓諸無竟.
세월도 잊고 옳음도 잊은 채 무궁한 경지에 떨치니 무궁한 경지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지.'
○ 罔兩問景曰, 曩子行, 今子止, 曩子坐, 今子起. 何其无特操與.
그림자를 따르는 바깥쪽 엷은 그림자가 안쪽 그림자에게 물었다. '얼마 전에 그대는 걷더니 이제는 멈추고, 조금 전에는 앉아 있다가 지금은 일어 나는구나. 왜 그리도 일정한 절조가 없는 게야!'
景曰, 吾有待而然者邪. 吾所待又有待而然者邪. 吾待蛇蚹蜩翼邪. 惡識所以然! 惡識所以不然.
안쪽 그림자가 대답했다. '나는 의지하는 게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또한 내가 의지하는 것도 기대는 게 있어서 그렇다네. 혹시 나는 뱀의 비늘이나 매미의 날개에 의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째서 그러한 까닭을 알겠으며 어째서 그렇지 않은 까닭을 알겠는가.'
○ 昔者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언젠가 장주(莊周)가 꿈에 나비가 되어 있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즐겁게 마음껏 기분 내키는 대로 다니며 인간인 장주인지도 몰랐다.
俄然覺, 則蘧蘧然周也.
그러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나 보니 분명히 누워 있는 건 장주였다.
不知周之夢爲胡蝶,
與胡蝶之夢爲周與.
그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서 장주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장주와 나비는 틀림없이 분별이 있는 존재이기에 이를 일컬어 사물의 끝없는 변화(物化)라고 한다.
(終)
▶️ 大(클 대/큰 대, 클 대, 클 다)는 ❶상형문자로 亣(대)는 동자(同字)이다. 大(대)는 서 있는 사람을 정면으로 본 모양으로, 처음에는 옆에서 본 모양인 人(인)과 匕(비) 따위와 같이, 다만 인간을 나타내는 글자였으나 나중에 구분하여 훌륭한 사람, 훌륭하다, 크다의 뜻으로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大자는 '크다'나 '높다', '많다', '심하다'와 같은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大자를 보면 양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크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大자는 기본적으로는 '크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정도가 과하다는 의미에서 '심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러니 大자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大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크다'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사람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大자가 본래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大(대)는 (1)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 큰, 으뜸가는, 뛰어난, 위대한, 광대한, 대단한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존경(尊敬) 또는 찬미(讚美)의 뜻도 나타냄 (3)큼. 큰 것 (4)큰 달. 양력으로 31일, 음력으로 30일인 달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대) ②높다, 존귀하다(대) ③훌륭하다, 뛰어나다(대) ④자랑하다, 뽐내다, 교만하다(대) ⑤많다, 수효(數爻)가 많다(대) ⑥중(重)히 여기다, 중요시하다(대) ⑦지나다, 일정한 정도를 넘다(대) ⑧거칠다, 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대) ⑨낫다(대) ⑩늙다, 나이를 먹다(대) ⑪대강(大綱), 대략(大略)(대) ⑫크게, 성(盛)하게(대) ⑬하늘(대) ⑭존경하거나 찬미(讚美)할 때 쓰는 말(대) 그리고 클 태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태) ⓑ지나치게(태) 그리고 클 다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다) ㉡극치(極致), 극도(極度)(다) ㉢지나치게(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위(偉), 클 굉(宏), 클 거(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작을 소(小), 가늘 세(細)이다. 용례로는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큰 일을 대사(大事), 크게 구분함을 대구분(大區分), 일이 진행되는 결정적인 형세를 대세(大勢), 크게 길함을 대길(大吉), 조금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체로 같음을 대동(大同), 같은 종류의 사물 중에서 큰 규격이나 규모를 대형(大型),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사물의 큼과 작음을 대소(大小), 크게 이루어짐을 대성(大成), 크게 웃음을 대소(大笑), 넓고 큰 땅을 대지(大地), 넓혀서 크게 함을 확대(廓大), 가장 큼을 최대(最大), 몹시 크거나 많음을 막대(莫大), 뛰어나고 훌륭함을 위대(偉大), 매우 중요하게 여김을 중대(重大), 마음이 너그럽고 큼을 관대(寬大), 엄청나게 큼을 거대(巨大), 형상이나 부피가 엄청나게 많고도 큼을 방대(厖大), 더 보태어 크게 함을 증대(增大),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크게 될 인물은 오랜 공적을 쌓아 늦게 이루어짐 또는 만년이 되어 성공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대기만성(大器晩成), 넓고 큰 바다에 물방울 하나라는 뜻으로 많은 것 가운데 아주 작은 것이라는 뜻을 이르는 말을 대해일적(大海一滴), 넓고 넓은 바다에 떨어뜨린 한 알의 좁쌀이란 뜻으로 매우 작음 또는 보잘것없는 존재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대해일속(大海一粟), 거의 같고 조금 다름이나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대동소이(大同小異), 큰 의리를 위해서는 혈육의 친함도 저버린다는 뜻으로 큰 의리를 위해서는 사사로운 정의를 버림 또는 국가의 대의를 위해서는 부모 형제의 정도 버림을 일컫는 말을 대의멸친(大義滅親), 뚜렷이 드러나게 큰 글씨로 쓰다라는 뜻으로 누구나 알게 크게 여론화 함을 이르는 말을 대서특필(大書特筆),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중대한 의리와 명분을 이르는 말을 대의명분(大義名分), 큰 집과 높은 누각이라는 뜻으로 웅장하고 큰 건물을 이르는 말을 대하고루(大廈高樓), 크게 깨달아서 번뇌와 의혹이 다 없어짐을 이르는 말을 대오각성(大悟覺醒), 장군의 별칭으로 매사에 겸손하고 말 없이 수고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대수장군(大樹將軍), 큰 재목이 작게 쓰이고 있다는 뜻으로 사람을 부리는 데 있어서 제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안됨을 이르는 말을 대재소용(大材小用), 큰 소리로 목을 놓아 슬피 욺을 일컫는 말을 대성통곡(大聲痛哭), 몹시 놀라 얼굴빛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대경실색(大驚失色), 크게 간사한 사람은 그 아첨하는 수단이 매우 교묘하므로 흡사 크게 충성된 사람과 같이 보임을 이르는 말을 대간사충(大姦似忠), 바라던 것이 아주 허사가 되어 크게 실망함을 일컫는 말을 대실소망(大失所望), 매우 밝은 세상을 이르는 말을 대명천지(大明天地),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말을 대도무문(大道無門), 덕이 높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질구레한 일에 초연함 곧 도량이 넓어서 자질구레한 일에 얽매이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대인대이(大人大耳), 큰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공명정대하여 잔재주를 부리지 않으므로 언뜻 보기에는 어리석게 보인다는 말을 대지여우(大智如愚) 등에 쓰인다.
▶️ 知(알 지)는 ❶회의문자로 口(구; 말)와 矢(시; 화살)의 합자(合字)이다. 화살이 활에서 나가듯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말한다. 많이 알고 있으면 화살(矢)처럼 말(口)이 빨리 나간다는 뜻을 합(合)하여 알다를 뜻한다. 또 화살이 꿰뚫듯이 마음속에 확실히 결정한 일이나, 말은 마음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알다, 알리다, 지식 등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知자는 '알다'나 '나타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知자는 矢(화살 시)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知자는 소전에서야 등장한 글자로 금문에서는 智(지혜 지)자가 '알다'나 '지혜'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슬기로운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智자는 '지혜'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고 知자는 '알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智자는 아는 것이 많아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만큼 말을 빠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知자도 그러한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그래서 知(지)는 (1)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정신의 작용하는 힘. 깨닫는 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알다 ②알리다, 알게 하다 ③나타내다, 드러내다 ④맡다, 주재하다 ⑤주관하다 ⑥대접하다 ⑦사귀다 ⑧병이 낫다 ⑨사귐 ⑩친한 친구 ⑪나를 알아주는 사람 ⑫짝, 배우자(配偶者) ⑬대접(待接), 대우(待遇) ⑭슬기, 지혜(智慧) ⑮지식(知識), 앎 ⑯지사(知事) ⑰어조사(語助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알 인(認), 살펴 알 량/양(諒), 알 식(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지식(知識),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지혜(知慧), 지적 활동의 능력을 지능(知能), 지혜로운 성품을 지성(知性), 지식이 있는 것 또는 지식에 관한 것을 지적(知的), 알아서 깨달음 또는 그 능력을 지각(知覺), 지식과 도덕을 지덕(知德), 아는 사람 또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봄을 지인(知人), 새로운 것을 앎을 지신(知新), 은혜를 앎을 지은(知恩), 지식이 많고 사물의 이치에 밝은 사람을 지자(知者), 제 분수를 알아 마음에 불만함이 없음 곧 무엇이 넉넉하고 족한 줄을 앎을 지족(知足), 자기 분에 지나치지 않도록 그칠 줄을 앎을 지지(知止),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 여러 사람이 어떤 사실을 널리 아는 것을 주지(周知), 어떤 일을 느끼어 아는 것을 감지(感知),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지(朋知), 기별하여 알림을 통지(通知), 인정하여 앎을 인지(認知), 아는 것이 없음을 무지(無知), 고하여 알림을 고지(告知), 더듬어 살펴 알아냄을 탐지(探知), 세상 사람들이 다 알거나 알게 함을 공지(公知), 서로 잘 알고 친근하게 지내는 사람을 친지(親知), 나이 50세를 말함으로 50세에 드디어 천명을 알게 된다는 나이를 달리 이르는 말을 지천명(知天命), 천명을 알 나이라는 뜻으로 나이 오십을 이르는 말을 지명지년(知命之年), 자기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 또는 서로 뜻이 통하는 친한 벗을 일컫는 말을 지기지우(知己之友),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의미의 말을 지피지기(知彼知己),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지행합일(知行合一),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한다는 말을 지과필개(知過必改),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을 일컫는 말을 지명인사(知名人士), 지식과 행동이 한결같이 서로 맞음 또는 지식과 행동이 일치함을 일컫는 말을 지행일치(知行一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뜻으로 믿는 사람에게서 배신당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지부작족(知斧斫足), 알면서 모르는 체함을 일컫는 말을 지이부지(知而不知), 형세가 불리한 것을 알면 물러서야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난이퇴(知難而退), 모든 일에 분수를 알고 만족하게 생각하면 모욕을 받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족불욕(知足不辱),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보답함을 이르는 말을 지은보은(知恩報恩), 지자는 도리를 깊이 알고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미혹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지자불혹(知者不惑), 사리에 밝은 사람은 지식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함부로 지껄이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지자불언(知者不言), 밝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대우大愚의 덕을 지키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백수흑(知白守黑), 대우를 잘 받아서 후의에 감격하는 느낌을 이르는 말을 지우지감(知遇之感), 족한 줄을 알아 자기의 분수에 만족함을 일컫는 말을 지족안분(知足安分), 족한 것을 알고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부자라는 뜻을 이르는 말을 지족지부(知足知富) 또는 지족자부(知足者富), 간악한 꾀가 많아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꾸며 대어 상대방을 곧이 듣게 함을 이르는 말을 지족식비(知足飾非) 등에 쓰인다.
▶️ 閑(한가할 한)은 ❶회의문자로 閒(한)은 본자(本字), 闲(한)은 간자(簡字), 嫺(한)과 통자(通字)이다. 門(문)과 木(목)의 합자(合字)이다. 마소가 멋대로 도망치지 못하게 우리의 입구(入口)에 가로지른 나무로, 전(轉)하여 '간을 막다', '막다'의 뜻으로 음(音)을 빌어 '한가하다', '틈'이란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閑자는 '막다'나 '한가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閑자는 門(문 문)자와 木(나무 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閑자는 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뜻하는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막다'였다. 울타리는 산짐승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가축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든 나무 우리를 말한다. 閑자에 木자가 쓰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閑자는 '마구간'이나 '목책'이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집 주위로 울타리를 친 모습은 외부와의 단절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閑자는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는 의미에서 '등한시하다' 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외부와의 단절로 자신만의 시간이 생겼다는 의미에서 '한가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참 많은 것을 연상케 하는 글자이다. 그래서 閑(한)은 ①한가하다 ②등한하다(무엇에 관심이 없거나 소홀하다) ③막다 ④보위하다(보호하고 방위하다) ⑤닫다 ⑥아름답다 ⑦품위가 있다 ⑧조용하다 ⑨틈, 틈새 ⑩법(法), 법도(法度) ⑪마구간(馬廏間) ⑫목책(木柵)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틈 극(隙), 사이 간(間),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쁠 망(忙)이다. 용례로는 할 일이 없어 몸과 틈이 있음을 한가(閑暇), 일이 없어 한가함을 한산(閑散), 현직이 없어서 놀던 벼슬아치를 한량(閑良), 한가하고 고요함을 한적(閑寂), 심심풀이로 하는 이야기를 한담(閑談), 한가하고 조용하게 살음을 한거(閑居), 한가하고 일 없는 사람을 한인(閑人), 한가하여 자적함을 한적(閑適), 심심풀이로 놀러 오는 한가한 손님을 한객(閑客), 쓸모없는 일을 한사(閑事), 한가로이 누워 있음을 한와(閑臥), 조용하고 한가한 지방을 한지(閑地), 심심풀이로 하는 이야기를 한화(閑話), 무심하게 버리어 둠을 한각(閑却), 윤이 흐르고 아름다움을 한려(閑麗), 한가롭고 여유가 있음을 한유(閑裕), 배워서 그 일에 익숙해짐을 한달(閑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내버려 둠을 등한(等閑), 시간의 여유가 있어 한가함을 유한(有閑), 한가하고 조용함을 장한(長閑), 심심함을 잊고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함을 파한(破閑), 농사일이 그다지 바쁘지 아니하여 겨를이 있음을 농한(農閑), 말려서 못 하게 하는 범위를 방한(防閑), 매우 조용함을 심한(深閑), 조용하고 한가로움을 정한(靜閑), 청아하고 한가함을 청한(淸閑), 한가한 말과 자질구레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심심풀이로 하는 실없는 말을 이르는 말을 한담설화(閑談屑話),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 하고라는 뜻으로 글을 쓸 때 한동안 본론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 때 쓰는 말을 한화휴제(閑話休題), 심심풀이로 하는 군말을 일컫는 말을 한담객설(閑談客說), 심심풀이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을 일컫는 말을 한담만문(閑談滿文), 쓸데없는 일에는 손을 대지 말 것을 이르는 말을 한사막관(閑事莫管), 중요하지 않고 일이 많지 않아 한가로운 벼슬 자리를 일컫는 말을 한사만직(閑司漫職), 평화롭고 한가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즐김을 일컫는 말을 안한자적(安閑自適),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물외한인(物外閑人), 놀기만 하는 한가한 공자라는 뜻으로 의식의 걱정 없이 한가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유한공자(遊閑公子), 바쁘지 아니한 모양이나 한가로이 느릿느릿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유유한한(悠悠閑閑), 어부와 나무꾼의 한가로운 이야기라는 뜻으로 명리를 떠난 이야기를 이르는 말을 어초한화(漁焦閑話)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