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국회선진화법의 일환으로 도입된 ‘안건조정위원회’(안조위) 제도가 10년 넘게 당초 취지와 다르게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조위는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막고소수당을 보호하기 위해 최장 90일 간 숙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11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21대 국회 들어 신청된 안조위는 총 31차례. 이 중 22차례가 구성된 지 불과 3일 만에 법안을 처리한 것으로 집계됐다.
조 의원 측은 “최장 90일이라는 숙의 기간이 무색한 수준으로 오히려 안조위가 신속처리를 위한 패스트트랙처럼 악용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포함해 180석을 확보한 데에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국회법상 안조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총 6명으로 구성된다. 소속 의원이 가장 많은 다수당에서 3명, 나머지 정당에서 3명을 위원으로 선임하며, 이 중 4명 이상이 찬성 시 의결할 수 있다.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의원이나 위성정당 출신 의원, 또는 비슷한 성향의 1인 정당 소속 한 명만 비교섭단체 몫 위원으로 참여하면 법안 처리가 사실상 보장되는 구조다.
실제 민주당은 지난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위장탈당한 민형배를 동원했다. 민형배는 지난달 20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의혹 관련 청문회 안조위에서도 무소속 자격 조정위원으로 나섰다.
민주당 강민정도 열린민주당 소속이던 시절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만 7차례 비교섭단체 몫 안조위원으로 선임돼 민주당 손을 들어줬다.
19대와 20대 때도 안조위가 무력하긴 마찬가지였다. 19대 국회에서 안조위는 총 6차례 요구됐지만 여야 간 이견으로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도 18번 요구됐지만 이 중 3 차례 열리는 데 그쳤다.
정치권 관계자는 “19대, 20대 때는 원내 1, 2당 간 의석 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 보니 여야가 힘겨루기를 이어간 끝에 결국 안조위를 열지조차 못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19대 땐 새누리당이 152석, 민주통합당이 127석이었고, 20대 땐 더불어민주당이 123석, 새누리당이 122석이었다.
‘무력한 안조위’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면서 정치권에선 안조위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해 5월 제1교섭단체와 제2교섭단체의 조정위원 수를 동일하게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전주혜 의원도 제1교섭단체에 속했다가 탈당한 의원은 조정위원이 못되게 하는 ‘민형배 방지법’을 지난해 5월 발의했지만 여야 간 이견 속에 두 법안 모두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민형배는 지난달 17일 안조위 조정위원 선임을 위원회 구성 후 5일 내로 하고, 최소 한 차례 안건을 심의하도록 한 국회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금보다 안조위에서의 법안 처리 속도를 높이자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