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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5월 이글을 썼었는데...정말 올 여름 너무 더웠습니다.***
얼마 전 브레인스토밍이라는 명목 하에 봄 소풍을 다녀왔다. 모세의 기적이 펼쳐진다는 큰 간판이 다리 입구에 써 붙여진 섬, 제부도. 바닷물이 둘로 갈라지는 시간 때를 연간 자료로 만들어 나누어 줄 정도니 불변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지 기적이라 할 것은 아닌데 성서가 담긴 극적인 상황과의 매칭으로 그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꽃들이 곳곳에 만발했다. 온천지를 주름잡다시피 한 왕 벚꽃, 우리나라는 왕 벚꽃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봄꽃은 크게 나누어 꽃부터 만개하고 이파리를 내놓는 족속과 정반대로 이파리를 살며시 내놓고 꽃을 피우는 두 파벌이 존재한다. 이 세상은 언제든 무엇이든 급진과 보수 색채가 있으며 이 또한 그 형색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당연 이조시대 연인을 연상하는 다소곳한 후자 쪽 꽃들을 마음속으로는 선호하지만은 가슴팍을 다 드러낸 글래머 육체파 여인 같은 왕 벚꽃에 시선이 가는 것은 또한 어쩔 수 없다. 이를테면 보수에 가깝지만은 지루함에 새로움을 원하는 마음도 감출 수는 없다싶다. 어느 시대 연암 박지원도 그러하였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것 참 큰일이다 싶다.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던 옛 풍속이 어느 참 몽땅 사라지고 만 것만 같다. 굳이 나는 이를 풍속이라 하겠다. 요즘 세태하고도 너무 닮아있다 싶어서다. 서로 자기가 잘 났다고 으스대는 듯 위계질서도 없고 눈치도 없고 제각기 아우성인 것이 심상치가 않다.
매화가 피고 나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등이 행차한 연후에 그 다음 순번을 지켜오던 것이 관례인데 뒤죽박죽 엉망이 된 현실. 누가 이 무질서를 야기 시키고 자연의 섭리를 위반한 것일까. 인간 세상에는 경찰이라도 있는데 이 질서를 과연 누가 잡는다는 말인가. 이 세상은 안 믿어도 나무는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정말 큰일이다 싶어진다.
그들은 자연의 섭리를 한 자 한 치도 위반한 적이 없는 존재들이다. 매일 다니는 길 너머 산을 보면서 늘 그 생각을 했다. 언뜻 보기에 한 겨울 삭막한 산의 형색이지만 자세히 보자면 무심한 정경 같아도 여러 채색이 존재하며 가진 색채는 점점 달라져 뭔가를 애써 이루려 참아내는 그런 형상이었다. 겨울 농군이 방심하고 태만을 연출하는 사이 숨죽이며 물길을 트고 물을 길어 올린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화사한 봄의 날 진진한 삶의 갖춤을 나타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빛의 자손이라는 엄연한 사실, 신의 계시로서 빛은 자양분이고 이는 삶의 근원인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질서가 흐트러진 것은 왜일까. 시간의 문제, 문제는 시간이 아닐까. 나는 그들로부터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 그들은 빛의 후예처럼 이에 아주 민감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 지구상에 주인은 우리가 아니고 나무이다. 우리는 바람처럼 왔다 이내 사라지지만 나무는 그 자리에서 수천 년도 버티고 또한 종자도 지구상에서 제일 많다. 어쩌면 신은 그들을 제일 많이 믿고 지탱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나무가 착각을 하는 것은 바로 빛 때문이다.
삼한 사온의 겨울을 조용히 물을 끌어올리며 지내다가 차츰 변해가는 온도를 빛으로 감지하고는 순서별로 삶의 희열을 화답하곤 했는데 빌어먹을 온도센서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순식간 10도에서 20도로 개구리 튀듯이 펄쩍 튀어버리니 이를 어찌 하랴. 어느 날 갑자기 초여름 되듯이 변해버린 세상, 안타깝기 그지없다.
믿지 못할 인간들이 아직 시간이 이르다고 해봐야 믿을 리 없으며 정작 자신의 시간을 만든 인간은 스스로 시간을 지키지 않으니 무어라 할 말도 없다. 나는 두렵다. 신이 최고로 믿는 자손이 저 혼돈이니 신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싶기 때문이다. 신은 개망나니 짓을 하는 치가 누군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나무는 그렇다고 때를 거르거나 이파리와 꽃의 순서가 뒤바뀌거나 때가 되면 자태를 감추는 그런 짓은 결코 하지 않는다.
신이 준 질서와 특혜를 거역할 리 없는 나무. 수천 년을 살아온 비결이 거기에 있음이다. 그러니 더욱 더 큰일이 아니겠는가. 나무도 제멋대로이고 망가진다면 그나마 할 말이라도 있는데 그들은 전혀 그런 기미가 안 보인다. 아름답고 우아하면서도 뽐내지 않으며 자신을 지키는 겸손함,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모세의 기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을 감복시키고 탄복할 일이 요즘 세상에 있기나 한 건가. 사랑도 자비도 근면 성실함도 모두 나무가 대신 하니 한낱 인간은 이기적인 자기 소산만이 그득할 뿐이다. 기적은커녕 겸손의 미덕이 보다 시급한 현실이 아닌가싶다. 옛 성인들이 말한 자율적 규약, 이를테면 인의예지, 배품과 사랑으로 신에게 잘 보이고 싶고 다가서려 했던 성인 성자의 의지, 나는 늘 생각하기를 이는 신이 바라던 바이고 이 틀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그간 자부했는데 솔직히 지금 세상은 갈수록 멀어져만 간다싶다.
문화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문명은 너무 앞서 간다. 빛의 감지가 필요 없다는 듯 시간으로서 말하는 자연의 섭리가 너무 느리다는 듯. 혼돈과 혼란이 만개하고 있다. 기도하고 구원을 청하면 무엇을 하나. 진정으로 회개하고 자성하고 있는 것으로 신이 받아나 줄까. 정말 걱정이다. 이러다가는 신은 신의 꿈을 송두리째 저버린 저주스런 종자로 우리를 기억하고 두 번 다시는 이런 세상을 펼치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오늘 밝은 봄볕이지만 어두운 이 세상을 다시 본다. 우리는 대책 없이 문명의 빛만 쫓을 뿐 어두운 그림자를 애써 외면하고 오늘도 환하게 살았다고 자득하는 것은 아닌지, 빛과 그림자, 그 의미처럼 서로 정의롭고 견제하며 앞서거니뒷서거니 살펴 세상을 보듬어라 했더니만 태고이래 그 놈의 갈림으로 늘 아우성이며 오늘도 제 잘났다고 시끄럽기 그지없다.
이겨서 어떻고 져서 또 어떨 것인데, 마치 지구상에 유일한 존재가 스스로인 양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빛의 세기가 강해서는 올 여름도 무사하지 않을 것만 같다. 올해만 또 그럴 것인가. 재앙은 갈수록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문제는 시간의 빛에 있다. 너 잘난 흑백이 문제가 아니라 뒤죽박죽 혼미한 지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이제 제대로 알아보아야만 한다. 정말 큰일이다. (2016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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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넥타이 부대 출신이다
① 남자의 한가운데 달려있다.② 걸을 때 흔들린다.③ 보통 때는 축 늘어져 있다.④ 앞쪽이 굵다. 이 대상이 무얼까. 이 물음에 대개는 대답을 안한다. 몰라서가 아니다. 뻔한 것인데 말하기가 뭣해서 안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들은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웃기만 한다. 그러나 그 짐작은 완전히 틀렸다. 언제나 잘못 넘겨짚으면 팔이 부러진다.
이것으로 보아 넥타이는 남성의 전유물임에 틀림이 없지 싶다. 여성에게는 대신 스카프가 존재한다. 내가 넥타이를 처음 맨 것은 대학교 3학년 때다. 봄 축제를 참석 할 때 바로 그 축제 때문 맨 처음 사준 콤비라는 옷을 걸치고 겨우 구한 파트너를 모시고 아버지 넥타이를 맸다. 나는 맵시고 뭐고 숨이 콱 막히고 어쩌다 손이 스치기라도 하면 삐뚤어진 것 같은 예감도 들어 자꾸 거울을 들여다보곤 했다.
지금도 나는 넥타이를 거의 매지 않는다. 매면 그 현상, 어딘가가 거북하고 삐뚤어진 것 같은 착각이 엄습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이딴 것을 왜 매는 건지 모르겠다는 게 내 심경인데 이는 얼마나 멋대가리 없는 놈인가를 자인하는 말도 된다. 언젠가 길에서 가냘픈 여자가 남자 넥타이를 잡아당기자 꼼짝 못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도 넥타이만 붙들고 늘어지면 꼼짝을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고보면 넥타이와 남성의 거시기는 성질 까지도 꼭 닮았다. 우리는 직장을 얻으면 양복부터 맞추고 넥타이를 꼭 맸다. 선을 보러 갈 때도 면접을 볼 때도 이는 꼭 필수 차림이다. 넥타이는 사람의 목을 조여 자유를 구속하는 사회적 장치일 수 있지만, 남성이 성인으로 성장해 사회적 활동을 한다는 증표이자 상징적인 액세서리다.
나는 그 조차 못 넘어서지만 옷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신사복과 넥타이 차림이 오히려 가장 편하고 무난한 의상이라는 것이다. 넥타이 차림은 다른 복장과 달리 뭘 입을까 선택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동료나 조직원 사이에서 튀거나 처질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서도 넥타이는 아무리 색깔과 디자인이 다르더라도 근본적으로 점잖으며 규격화된 깔끔한 표정에 스스로 도시화된 매끈함을 가졌다. 그런 복장은 일정한 조직과 규범에 편입돼 충실하게 지키고 따르겠다는 약속과도 같아 어느 직장에서는 의무적으로 그 복장을 착용하여야한다는 묵시적인 규율이 적용되고도 있다.
무질서하고 문란하게 대학시절을 보낸 녀석들이 깔끔하게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이 바로 그런 변화를 상징한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때는 옷차림만으로도 대접을 달리 하던 적도 있다. 잠바 차림으로 은행을 가서 대출을 하자 하면 퇴짜를 받을 수밖에는 없었다.
나는 여직 넥타이 매는법을 모른다. 아내가 매준 넥타이 그대로 와이셔츠를 벗을 때 러닝셔츠처럼 목 위로 끌어올려 옷을 벗는다. 누구는 귀찮아서 그렇게 한다지만 나는 맬 줄을 몰라서 그렇게 한다. 그냥 그대로 처박아두면 좋겠다 싶은데 어쩔 수없이 그 다음날도 매야 할 때는 꼭 그렇게 신주단지 모시듯 올가미 상태로 놔둔다.
배우려면 배울 수 있겠지만 애당초 나는 넥타이가 싫었다. 나만 그렇지 세상사람들은 넥타이에 목을 맨 것인지 출장길에서 꼭 둘러보는 것이 넥타이 상점이다. 넥타이에 관한 유머 중에 이런 게 있다. 별로 우습지는 않지만(진짜 별로다. 약간 뻔한 이야기다.) 넥타이를 고르는 기준이 나라마다 다르다고 한다.
프랑스인:최신 유행하는 겁니까? 독일인:얼마나 오래 맬 수 있지요? 미국인:세계에서 제일 좋은 겁니까? 영국인:신사들이 매는 겁니까?그리고 그 다음 중국인:팔면 얼마 이익이 납니까? 일본인:얼마나 깎아줄 겁니까? 이 개그의 마지막 등장인물은 역시 한국인이다. 뭐라고 했을까? 얼마나 깎아주느냐고 할 거 같은데 그건 이미 일본사람이 말했다. "이 넥타이 진짭니까?"가 한국인의 질문이라고 한다.
넥타이는 명품이면 더 좋지만 색깔도 아주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빨간 넥타이를 매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미신처럼 번져 있다. 정치적으로 많이들 선호하고 이용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처음 도입된 1960년 TV토론 때 민주당 존 F 케네디 후보는 빨간 넥타이를 맸다. 흑백TV 시절이었지만 그의 빨간 넥타이는 눈길을 확 끌었고, 결국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를 제쳤다.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도 집권 2기부터는 중요한 연설 때마다 거의 빨간 넥타이를 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빨간색을 즐긴다. 국내 정치인도 TV에서 많이 보앗지만 굳이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넥타이는 와이셔츠가 겸비되어야 가능하다. 깔끔한 채취, 바로 화이트칼라라고 부르는 상징도 된다.
그렇다면 청바지는 불루칼라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요즘은 청바지에 셔츠를 걸치고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맵시가 오히려 산뜻하기 까지 하다. 셔츠와 청바지로는 좀 부족하다 싶은데 그 맵시는 전적으로 넥타이가 받쳐주고 살려 준 것만 같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라는 말, 참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표현이었는데 그 옷차림이 산뜻하듯 지금에서는 그 말의 뜻대로 세상도 변해가는 것 같다.
불루칼라와 화이트 칼라, 굳이 노동자와 사무직으로 구분 할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는 세상이다. 모두 노동자고 고용인일 뿐이다. 한 때 부모들은 넥타이 매고 양복 빼입고 출근하는 자식들을 그렇게 보고 싶어 했었다. 내 나이 31살 때 넥타이 매고 큰 일을 한 번 낸 적이 있다. 갓 취직하고 갓 결혼하여 처신이 녹록하지 않았는데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다.
''넥타이 부대''를 6월 항쟁의 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넥타이 부대라는 말은 명동을 중심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직장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초기에는 ''명동 넥타이 부대''라는 말이 있었다. 명동지역은 금융권의 본사가 밀집한 지역이어서 명동성당 농성과 함께 이들 금융권 직장인들의 가담이 큰 물줄기를 튼 것이다.
1987년 당시의 거리시위는 대학생들이 주도했다. 그러던 것이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은폐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국적으로 넥타이를 맨 일반 직장인들이 시위에 가담하기 시작하면서 시위의 양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면서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던 전두환 정권이 넥타이 부대의 등장으로 결국 6.29선언이라는 항복조치를 하게 됐던 것이다. '오늘 맥주 무료 제공'이라는 시원한 글씨를 써붙인 술집을 본 경우가 내 평생 딱 두 번인데 한 번은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를 때이고 그리고 바로 6.29선언을 한 날이다. 나는 그 큰 기쁨을 다 만끽하였으니 참 행복한 한국인이다. 또 언제 그런 날이 찾아올까.
당시 우리의 청년문화는 짧기만 하다는 정설을 뒤엎고 앞뒤 가리지 않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었다. 이후 넥타이는 스스로 보통사람을 자처했고 이제 넥타이는 평범한 셀러리맨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평범한 시민은 권위의식을 제일 싫어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 나는 이후 넥타이를 맨 것은 거의 손으로 꼽는다. 검은 색 하나 은색 하나에 알록달록한 것 하나가 고작이다.
남의 집 행사에 초를 칠 수는 없어서 어쩔 수없이 넥타이를 매고 나서는 길 아내도 넥타이 매는법을 까먹었는지 영 신통치 않아 할 수없이 이번에는 아들이 매어주었다. 하지만 말이다. 또 다시 거리로 뛰쳐나갈 일이 생긴다면 나는 넥타이를 다시 매고 나설 것이다. 바로 넥타이는 배움과 고상함 그리고 품격을 모두 갖은 남성의 거시기와도 같은 아주 중요한 상징성을 지녔기에 그 표상은 세상을 능히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여! 괄시마라. 나는 넥타이부대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