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핀 매화
내리 사흘 내리던 겨울비가 그친 일월 셋째 월요일이다. 아침나절 근교 들녘으로 산책을 나서려고 아파트단지를 벗어났다. 집 앞에서 외동반림로의 반송 소하천을 따라 원이대로로 나가 북면 마금산 온천장으로 가는 17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명곡 교차로를 지나 도계동에서 소답동을 거쳐 천주암 아래서 굴현고개를 넘었다. 저만치 감계 신도시가 보이는 외감마을 동구에서 내렸다.
찻길에서 마을 어귀로 흘러온 개울을 건너니 묵혀둔 논배미가 나왔는데 한 두렁은 작년 가을 구지뽕 묘목을 심어 놓았더랬다. 나머지 논배미는 몇 해째 경작이 멈추어져 수초와 섞인 무성한 잡초들이 시든 채 겨울을 나고 있었다. 그 논배미로 들어오는 수로에 돌미나리가 자라는데 예전보다 개체가 적어 보였다. 생태계는 변화무쌍한지라 돌미나리의 서식지도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나는 봄이 오는 길목이면 외감마을 앞 묵혀둔 논배미 수로에 자라는 돌미나리를 걷어 봄 향기를 일찍 맡았다. 언 땅이 녹기를 기다려 그곳으로 나가 논배미로 흘러온 수로의 진흙 속에 자란 돌미나리를 뿌리째 뽑아 물에 헹구면 땅속에 감춰진 잎줄기는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이파리는 파릇했다. 우리 집 식탁에 오를 찬거리에 삼기에 앞서 아파트 상가 주점에서 전으로 부쳐 먹었다.
설을 쇤 이후 입춘 무렵 다시 찾아가도 되긴 하겠으나 주남저수지 건너편으로 가볼까 싶기도 하다. 논으로 흘러드는 물길을 따라 올라가니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광대나물이 자주색 꽃잎을 예쁘게 펼쳐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추어 주고 휴대폰 카메라의 피사체로 삼았다. 그 위는 외감마을 농민들의 소득원이 되는 미나리를 키우는 비닐하우스였다.
천주산에 진달래가 피면 전국 각처 상춘객이 외감마을과 가까운 달천계곡으로 몰려왔다. 겨우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미나리는 그들의 식도락을 위한 재료였다. 촉성으로 키워낸 보드라운 미나리는 다발로 팔려나가기도 하고 근처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잎채소로도 쓰였다.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아 인기리에 매진되어 뒤늦게 찾은 상춘객은 미나리를 맛볼 기회가 없었다.
비닐하우스단지가 있는 외감 들녘에서 마을 안길을 지나 새터로 갔다. 새터는 외감마을에 딸린 작은 동네인데 시골집에 서너 가구 살았다. 근래 외지에서 그림 같은 전원주택을 지어 귀촌한 이들이 몇 가구 늘었다. 새터는 조선 중기 학자이며 정치가인 미수 허목이 젊은 날 잠시 머물며 후학을 길렀던 곳이다. 지금도 그가 파 물을 마셨다는 우물과 그가 심은 고목 매실나무가 있다.
미수는 우물 뚜껑을 거북 형상의 돌을 덮어두어 ‘달천 구천(龜泉)’이라 부르는데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한다. 새터에서 멀지 않은 달천계곡의 너럭바위에는 미수가 친필로 쓴 ‘달천동(達川洞)’이라는 글자는 음각으로 새겨져 전해 온다. 새터에는 당시 미수의 제자들이 달천계를 조직해 지금도 계원들의 후손들이 해마다 달천정 재실에서 미수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달천정에서 감계 신도시로 가는 진입 도로에서 올봄 개교될 신설 고등학교 근처로 갔다. 감계천 천변 밭뙈기의 여남은 그루 매실나무 가운데 유독 한 그루만 가지마다 매화가 활활 피어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분홍색의 매화였는데 그윽한 매향이 번졌다. 엊그제 겨울비가 내리면서 날씨가 포근해서였는지 개울 건너편 높은 아파트가 북풍을 막아주어 일찍 핀 듯도 했다.
감계천 둑길을 따라 감계 입구 회전교차로 근처에서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육이를 키우는 온실로 들어가 봤다. 온기가 감도는 넓은 실내에는 여러 종류 다육이가 작은 화분에 담겨 자랐다. 구석진 자리에는 제라늄을 비롯한 월동 화초들이 피운 꽃들도 있었다. 들판에서 야생으로 자라 피운 광대나물꽃과 매화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다육이농장을 나와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23.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