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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찬송가 406장 ( 구 464장 ) / 히브리서 12 : 9 - 17
● 다함께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406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히브리서 12장 9절 – 17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는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아멘!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을 믿었으니 항상 좋은 일만 생기고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사람에게도 어려운 일들이 닥칩니다. 그것을 겪다 보면 서서히 믿음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하고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근거를 ‘하나님이 과연 복을 주시느냐? 일이 잘되게 해 주시느냐?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게 막아주시느냐?’ 에 둡니다. 그러면 믿음은 종잡기 어려울 정도로 요동치게 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금방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지만 어려움을 겪고 실패를 하고 징계를 당하는 일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성공, 축복이 아닙니다. 거룩함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면서도 징계하시는 지를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입니다.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은, 단순히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천국 가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온 것만도 아버지에게는 큰 기쁨이지만 아버지의 더 큰 기쁨은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의 아들답게 반듯하게 사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돌아온 탕자의 신분에 머물면 안 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점점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십니까? 작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까? 3년 전, 5년 전과 몰라보게 달라졌습니까? 만약 자신이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면 죄 안짓고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죄의 심각성에 대하여 여전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심을 믿는다면, 돈 벌고 성공하기 위하여 살 사람은 없습니다. 당연한 것을 왜 목표로 삼습니까? 죽기 살기로 죄와 싸우며 거룩하기 위하여, 단순히 돌아온 탕자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능한 자로 평가받을까봐 안절부절합니다. 세상에서는 무능한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무능하면 징계를 받습니다. 직장에서 쫓겨납니다. 죄를 지어도 유능하면 받아줍니다. 정치인도, 기업인도, 군인도, 유능하고 사회에 공헌한 것이 크면 어느 정도 면죄부를 받습니다. 적당히 죄를 지어야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무능한 것을 징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무능한 자를 일부러 택하여 쓰신다고 하셨습니다.(고전 1:27-2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지 못한 것, 죄에 대하여 징계하십니다. 아무리 유능하여도 바로 징계하십니다.
다윗이 자신의 충복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처절한 매를 가하십니다. 밧세바에게서 낳은 첫 번째 아들을 낳자마자 죽습니다. 그리고 잘 생긴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다윗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죄의 종, 마귀의 종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이 자신이 세운 왕이 되었기에 더욱 무섭게 치셨습니다.
여러분! 성공하고 높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이런 각오가 되어야 합니다. 높아지고 부자되고 성공하면 매 맞을 확률이 더 큽니다. 부자가 천국가기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징계하십니다. 한때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처럼 귀하게 쓰임받던 사람이 은밀히 죄를 짓다가 죄가 드러나 하루아침에 고꾸라진 것을 봅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탄식이 나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주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셨구나!’ 깨달아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비참하지만 그들에겐 잘 된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여기서 회개할 기회를 얻었으니 말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징계를 받지 않은 사람, 은근히 다행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야 비로서 자신의 죄를 보게 되면 차라리 그 실족한 사람을 부러워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 돈 잃고 건강 잃고 실패합니다. 그러나 사실 감사할 일입니다. 그래서 회개하였다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징계하시는 이유는 거룩하지 못하고 죄짓고 살면 구원의 복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14절 말씀처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으면 주님을 뵙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죄짓는 것은 자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예배당에 들어와 강단 위에서 술판벌리고, 담배 연기로 가득하게 하고, 음란한 짓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멱살잡이를 하고 싸우면,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저 사람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크게 벌을 받으려고 저렇게 하나?”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은 이 예배당이 아니라 우리 몸입니다. 그런데 술 마시고 담배를 피고 욕하고 소리지르고 음란한 짓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하시는 것은 마귀로부터 끊어 놓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우리를 깨우칠 수 없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못 알아들으니 어떻게 합니까? 다윗도 못 알아들으니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셨습니다. 발람 선지자도 알아듣지 못하니 자기가 타고 다니는 당나귀를 통하여 책망받는 수치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죄의 종이 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지금 그런 사람은 정신차려야 합니다. 마귀가 무조건 우리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미있고 흥미있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우리에게 주는 자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는 분처럼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하고 싶은 것은 못하게 하고, 안된다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라 하고 그러다가 툭하면 징계합니다. 하나님은 무섭습니다. 마귀는 친구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징계가 필요합니다.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죄는 재미있고, 거룩함은 재미없는 삶이라고 속삭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진리처럼 받아들입니다. 완전히 세뇌가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징계가 필요합니다. 죄짓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깨달아야 벗어나려 하게 됩니다.
거룩한 삶을 살 때,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처럼 무릇 징계는 어떤 것이든지 그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정의의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평화는 전쟁이나 무기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평화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근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말로 확실히 깨닫게 해주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기도해 드릴까요? 풍랑이는 바다에 던져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또한 조심할 것은 징계로 인하여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낙심에 대하여 길게 말씀하십니다. 낙심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죄를 끊어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라고 돈을 가져가고, 건강을 치시고, 시련을 주실 때, 돈 잃은 것, 건강 잃은 것, 시련이 닥치는 것만 안타까와하는 것입니다. 정말 정신차려야 합니다. 죄를 끊어 버리고 거룩하게 살려고 하면 징계는 끝납니다. 깨달았는데 왜 징계하시겠습니까? 깨달으면 반드시 갑절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징계가 아무리 아프고 괴로와도 징계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내게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아파서 죽어가는 아들을 징계할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징계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계 3:19) 사생자가 아니고 참 아들이기 때문에 징계하신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당할 때, 오히려 당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목표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삶을 삶의 목표로 삼아 보셨습니까? 그런 적이 없었다면 이제 결단해 보십시오.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징계받지 않고도 깨달았다면 왜 징계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무서워할 것은 징계가 아니라 죄입니다. 그러면 징계가 없습니다. 징계하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혼자해도 됩니다. 그러나 거룩한 손을 서로 잡고 연합하면 더 좋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우리 거룩한 공동체를 함께 만듭시다.(전 4:9-12) 잘 되는 것, 복 받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믿음을 세우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오늘 본문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처럼 우리의 목표는 얽매인 죄를 벗어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사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벗어던지고, 얽메이기 쉬운 죄도 벗어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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