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스펙타클한 올해 휴가였네요.
수요일부터 어제까지 근 일주일을 손놓고 놀았는데 더 놀고 싶네요.
수요일에 고인이 되신 외조부께서 현충원 납골당에 들어가셨습니다. 덤으로 화랑훈장을 받게 되셨습니다.
제가 고3 때인 97년에 췌장암으로 소천하셔서 그동안 용인 천주교 추모공원에 계셨는데,
이번에 남은유해를 화장 후 현충원 납골당에 모실 수 있게 됐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이등병으로 입대하셔서 대위로 전역하셨는데, 전시 때 워낙 많은 지휘관이 전사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시 때는 군생활을 경력을 평소보다 2배로 적용한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전역 후에도 군무원으로 정년을 채우셨기 때문에 군인연금을 대상자라 노후가 풍성하셨습니다. 삼촌들도 대기업 임원에 병원장으로 일하고 있기도 하고요.
나이 일흔에 면허를 취득하시고 92년도형 엘란트라를 뽑으셔서 할머니와 전국 여행을 다니실 정도로 멋쟁이셨고, 큰손자인 저를 유독 예뻐하셨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우면산 등반도 하실 정도로 정정하고 키도 훤칠하셨던 멋쟁이 할아버지는 본인은 99살까지 살다 갈 거라고 이야기 하셨는데, 73세에 췌장암 판정을 받으시고 3개월마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엘란트라는 우리 집으로 왔고, 지금 제 나이 때 쯤 됐던 엄마 아빠는 그 때 차를 양도 받기 위해 면허 취득을 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 엘란트라는 할아버지-엄마아빠-나와 내동생까지 3대가 운전한 차가 됐고 2004년 내부순환로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총 운행거리 25만킬로였죠.
올해 초 그동안 월 60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할아버지의 무덤을 관리해주던 천주교 추모공원에서 갑자기 계약 기간이 지났으니 추가 계약을 하던 이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엄마는 할아버지 정도의 군경력자가 현충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아해 보훈처랑 국방부에 연락을 돌리니, 자격요건 중에 복무기간이 인정받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정확한 건 잘 모르겠는데 결론은 가족들이 인지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복무기간과 국방부가 갖고 있는 복무기간 사이에 상당한 갭이 있더군요. 이를 증빙하기 위해 진짜 할아버지 할머니의 골동품을 싹 다 털어서 증거찾기가 한동안 이어졌고, 사진과 편지, 기차표까지 스캔을 떠서 국방부에 이메일을 보낸 끝에, 현충원 안장이 확정됐습니다. 거기에 늦었지만 화랑무공훈장까지 더해졌습니다.
29년생인 외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실 때 이런 결정을 들려드릴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란 생각 뿐입니다.
두 분이 워낙 금슬이 좋으셔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주변인들이 할머니도 오래 못사실 거라고 이야기 하셨는데 여기저기 편찮은 곳이 많긴 해도 할머니도 아직 살아 계십니다.
수요일은 그렇게 할아버지를 현충원에 모셨습니다.
목요일에는 엄마 아빠와 넷플릭스로 우 투더 영 투더 우를 정주행했습니다.
다시 봐도 재미있긴 한데, 확실히 최근 에피소드는 힘이 빠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엄마 아빠가 재미있어 하니까 그걸로 됐습니다.
금요일에는 엄마와 제수씨를 데리고 을지로 롯데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남파고택이라는 한정식집인데 강추입니다.
사실 남파고택은 나주에 실존하는 호남 최대규모의 고택입니다. 박경준 가옥이라고도 하는데,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되는 나주역 사건의 주인공인 박준채 박기옥 님이 이 집안의 어른이지요.
양반과 부자가 많았다는 나주에서도 꽤 규모있게 잘나가는 집안이었던만큼 초가집과 전통한옥, 그리고 근현대 건축물까지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남파고택은 주요 민속자료로 등재되어있습니다.
남파고택은 긴 역사만큼 100년 넘은 일상도구들을 박물관 수준급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소반, 부채, 뒤주, 곰방대, 찬합 등등
그리고 200년된 씨간장!
롯데 남파고택 음식점은 이 씨간장을 비롯해 이 집안의 주요 음식소스와 레시피를 활용해 떡갈비, 간장게장 등 주요 남도 음식을 제공하는데 아주 맛이 괜찮습니다. 명동 근처 직장인들에게는 강추합니다. 엄마는 간장게장 정식을, 제수씨는 떡갈비 정식을 먹었습니다.
식후에는 안국동에 있는 공예박물관을 방문해 둘러봤습니다.
전통공예부터 현대공예까지 볼거리가 정말 풍부하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아주 직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전시 수준을 감안하면 SHOP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서울페스타 기간이라 안국역앞에서 팝업스토어가 하나 들어섰는데 감홍로를 샷으로 팔고 있더군요. 5천원이길래 냉큼 사마셨는데 역시 감홍로는 맥켈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좋은 전통주입니다.
이날 저녁부터 엄마가 재미난 넷플릭스 있으면 정주행하자고 하셔서
갯마을차차차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참 재미나게 보셨는데 저는 보면 볼수록 영화 홍반장이 더 낫다고 느꼈습니다.
김주혁이 그립더라고요. 그리고 보좌관이나 우리들의 블루스때도 느낀 거지만 신민아의 연기는 참... 아쉽습니다. 얼굴이나 몸매 생각하면 공평한 거 같기도 하고...
엄마가 재미있으면 뭐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집으로 다시 내려왔고,
마지막으로 모범가족을 정주행했습니다.
속도감 있는 전개는 오케이!
흥미로운 소재도 오케이!
그런데 뭔가 허전하네요.
사실 살면서 많은 약속을 받고 또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약속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약속이 이뤄질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믿고 싶어합니다. 아무리 거짓이라도 말이죠.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그런 거짓약속의 환상으로 점철된 그런 공간은 아닐까... 관계의 근본이라 불리는 가족 간의 관계 역시 말이죠.
뭐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은 드라마였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뭐 이런 메시지와는 거리감이 제법 있는 그냥 우당탕탕 느와르 10부작이었던 거 같습니다. 흡연씬이 드럽게 많이 나와서 간접흡연 당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
어지간하며 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저조차도 5점만점에 3점 정도 드려야 할 거 같네요.
첫댓글 먼저 할아버님의 현충원 이장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화랑훈장이라니 정말 할아버님께서 하늘에서 기뻐하시겠어요
한참을 늦고 여러 노력이 필요했지만
잘 마무리가 된듯하여 보는 제가 기쁘네요.
부모님과 넷플릭스 정주행이라니 정말 멋진 효도를 휴가기간에 하셨네요
그것또한 너무 근사합니다.
엘란트라 얘기도 괜히 찡하구요
휴가기간에 정말 여러가지 일들을 마무리 하셨어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진단 3개월만에 가시다니 췌장암 정말 나빠요ㅠㅠㅠㅠㅠ
그래서 늦게라도 그간의 노고를 인정받으신거 같아 다행이고 축하드립니다.
충분히 의미 있고 보람찬 휴가를 보내신거 같아 글읽는 내내 흐뭇하네요. 멋지십니다. :O
많은 일들을 하셨네요. 또 새로운 추억들이 소복소복 쌓이시길....
늦었지만 현충원 안장 축하드립니다
기록들을 찾느라 고생많으셨겠어요..할아버님도 좋아하실 껍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