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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두 친구가 그들이 지나쳐왔던 추억에 묻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두가지 마음은…
여느때와 같이 책을 펼쳐두고 코를 박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어제 같이 플레이한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시끌벅적한 반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생각외로 일이 늦게 끝난데다가, 아침을 거르고 나와 서점안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오느라 도착시간이 예전보다 조금 늦어 있었다.
8시…이쯤이면 아이들 대부분이 도착하고도 남았을시간….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준호와 우현수, 강지현은 매점이라도 간 것인지 자리에 없었다.
그렇게 교실 안을 두리번 거리다가 한우영의 모습을 보자 나는 문득 어제 준호녀석에게 들었던 말이 다시 생각이나 나도 모르게 어깨를 잔뜩 굳히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척 그 옆을 지나쳐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순간 한우영에게 뭔가 코를 톡 쏘는 약향기가 난다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모른척 하려했던 한우영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녀석은 마스크를 쓰고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져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녀석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게다가 몸이 불편한듯 처음에는 느끼진 못했지만 계속해서 움찔거리며 자리에서 눈치채지 못할만큼 작은 움직임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난방기가 빵빵하게 들어오는 교실안에서 외투와 마스크 거기에다 장갑과 목도리까지 꽁꽁 싸매고 있는 모습은 어딘가 굉장히 비정상적여 보였다. 뭔가 불편한 것일까?
그렇게 나도 모르게 넋을 빼고 한참을 한우영의 뒷목을 주시했을때였다.
갑작스럽게 한우영의 얼굴이 옆으로 살짝 틀어지더니 녀석의 샐쭉한 눈동자가 나를 주시했다.
나는 그 눈빛을 보고 잠시간은 상황을 인지 못한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멀뚱멀뚱 그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내가 몰래 한우영의 뒷모습을 훔쳐보고있었다는 사실이 상기되자 답지 않게 흠칫 굳고 말았다.
아니, 그 보다는 마스크 위로 떠오른 한우영의 눈 옆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는거에 더욱 놀랐다.
어딘가에서 굴렀다거나 공을 맞았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갈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상처를 보고 문득 강지현의 얼굴을 떠올렸다.
"왜 계속 쳐다보냐"
'눈 옆에…화려하네…"
"…"
"굴렀냐?"
분명히 굴렀냐라는 물음의 속뜻에는 너 맞았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을테고, 너 맞았냐?라는 의미 안에는 너 강지현이랑 싸웠냐?라는 의미도 내포되어있을것이다.
나는 차마 그 내포된 의미의 내포된 의미를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못하고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난 당연히 한우영이 '그렇다'라고 대답할줄알았다.
"우현수한테 맞았어"
"…"
"왜? 친구라서 찔리냐?"
"아니…"
우현수는 친구라기 보단, 친구의 친구라는 관계가 더 적절하다고 보는데…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입을 꾹 다물고 한우영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왜 내게 이런말을 하는 걸까? 분명히 한우영은 우현수에게 돈을 뺏기고 얻어맞고 다닌다는 것에 굉장히 창피함을 느끼곤했었고, 그것은 강지현 앞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 날, 놀이터에서…, 너 왜 거기 있었냐?"
한우영의 물음에 나는 그만 표정을 굳히고 말았다. '다 알고 있었던건가…?'
하긴 그정도 기척에 내가 한우영이 있음을 눈치챘는데 한우영이라고 내가 있는 것을 눈치채지 말란법은 없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입술을 달싹거리며 시선을 외면했다.
왠지 오늘 한우영은 대하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하지만 한우영은 꼭 대답을 들어야겠다는듯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결국 떨어지지 않는 입을 달싹여 말했다.
"가족이랑 싸웠어"
"그래? 나 미행한건 아니지?"
"그건 절대 아니야"
"음…그 방금말 때문은 아닌데…
넌…좀 괜찮은 녀석같다"
갑자기 뜻을 알 수 없이 튀어나온 한우영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뭔가 굉장히…지치고 피곤한듯한 얼굴로… 마스크를 벗었다.
입가는 다 터져버렸는지 핏자욱이 선명하게 굳어 있었고, 왼쪽뺨은 멍이 든채 퉁퉁 부어 있었다.
아마도 지금은 겨울이라 두꺼운 외투와 와이셔트와 마이로 꽁꽁 싸매어져 있지만 녀석의 몸 상태도 엉망일 것 같았다.
현수녀석은 늘 강지현의 뒤에서 강지현의 위세만 믿고 떵떵거리는 보잘것 없는 녀석이라 다른 애들을 겁줘서 삥을 뜯거나 하는 일은 있어도 함부로 누군가에게 손찌검을 하진 못했다.
유일하게 녀석이 손찌검을 하는 것은…한우영이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우현수는 혼자 한우영을 때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 옆에는 다른 누군가가 있었겠지, 녀석이 좀 아는 친구들과… 혹은 여자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겟고…
그런 녀석들에게 쎄보이고 싶은 심리가 강한 우현수는 아마도 죽어라 한우영을 팼을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데…?"
"내가 우현수한테 삥뜯기는거 보고도 아무말 안하고, 타임캡슐에 대해 놀리지도 않잖아…. 게다가…"
"…"
"계속 나 보고있었잖아"
"…그게…왜?"
"나 걱정되서 본거아니냐?"
'아니다'라는 대답이 선뜻 나가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나는 한우영의 몸에서 약하게 코를 톡쏘는 약향기가 났을때부터 녀석을 주시하고 있었다. 몸의 상처를 숨기려는듯 꽁꽁싸맨 옷들과 움츠리듯 계속해서 잘게 움직이는 몸….
나는 '정곡을 찔렸다'라는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우영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타임캡슐 열어봤냐?"
"비밀번호걸려있잖아…"
"비밀번호 가르쳐줘?"
"…왜?"
"그야…"
한우영이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몇몇 아이들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준호와 우현수가 들어오고 강지현이 들어온다. 손에는 하나씩 캔쥬스와 빵을 들고 잇었다. 한우영은 그 모습을 보자 너무나도 무서운 얼굴로 표정을 굳히더니 고개를 돌렸다. 순간 강지현이 이쪽을 쳐다보는듯 했지만, 이내 무의식적으로 본것인듯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조용히 강지현과 한우영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며 한우영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느새 마스크를 다시 착용한 한우영은 눈빛으로 왜 불렀냐는듯 의사를 표하며 고개를 돌렸다.
"왜 비밀번호 가르쳐주는건데? 비밀번호도 가르쳐줘-"
한우영은 너무나도 당당한 내 요구에 어이가 없다는듯 바라보다가 이내 눈웃음을 흘기며 말했다.
마스크때문에 가리워지고, 또 주위가 너무 시끌벅적하여 단번에 묻힐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나한테는 너무나도 똑똑하게 들려왔다.
"그딴거 이제 필요없으니까, 누가 보던 상관없어…나만 기억하고 있는 비밀번호를 가진 타임캡슐같은건…쓰레기니까"
강지현은 한우영을 보고 있었다.
"너 안가냐?"
익숙한 음성에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교문앞에서 가방을 삐뚤어지게 맨 강지현이 우현수와 다른 여럿 소위말하는 발랑까진 녀석들과 무리를 지어 선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새끼, 전교 아니냐?' 라는 불쾌한 소리가 났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강지현은 나를 '전교'라는 별명으로 부른 녀석한테 저 놈 내 친구다 라고 한번 일갈한뒤 녀석들을 모두 조용히 시켰다.
참으로 대단한 지위로구나, 라는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조용히 녀석을 보며 입을 열었다.
"타임캡슐 비번 뭐야?"
"…뭐?"
"타임캡슐 비번 뭐냐고"
"뭔 타임캡슐? 내가 무슨 시간을 달리는 소년이냐?"
"이만한 크기의 타원형이고 색은 약간 연하늘빛이었는데 밤이라서 나도 잘 기억은 안나, 한우영이 너한테 물어보라네"
그러자 킬킬거리며 웃던 강지현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버린다. 뒤에 있던 녀석들은 웬 미친새끼가 길을 막냐는듯한 반응이다.
강지현은 조용히 내 얼굴을 내려보다 이내 뒤에 있던 녀석들에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녀석들은 '뭐라고?'라며 반문하며 킬킬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지현은 고개를 살짝 틀어 뒤를 향해 소리쳤다.
"피씨방 너네들끼리 가라고 씨방새들아!!!!"
그러자 우현수 외 다른 아이들이 강지현더러 왜그러냐는듯 웅성웅성거렸고, 그나마 상황파악이 빠른 우현수는 당황한 얼굴로 아이들을 수습시켜 데리고 교문 앞을 빠져나갔다.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저 멀리 사라져갈때쯤, 강지현은 예의 그 서글서글한 미소는 온데간데 없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전부터 한우영이 유학간다는 소문이 퍼지고, 강지현이 부쩍 준호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때마다 준호는 빠짐없이 나에게 강지현과의 일을 말해주었는데, 그때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는 나의 말에 준호녀석은 '니가 궁금해 하잖아'라는 대답으로 항상 일갈했다.
그렇다.
나는 궁금했다.
이 둘 사이가 왜 이렇게 된건지, 왜 나는 이들을 보며 그 빌어먹을 김상윤의 얼굴을 계속 떠올리는 건지, 왜 계속 잊었던 일들이 하나 둘씩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는건지….
왜 강지현과 한우영이 조금이나마 그 친했던 예전의 사이를 회복했으면 하는 바램인건지….
"너 한우영이랑 친하냐"
"조금?"
"한우영 그 새끼가 그러디? 나한테 타임캡슐인지 뭔지 비번 알아오라고?"
"거의 비슷하지"
"똑바로 말해 새꺄!!"
흥분했다. 우현수의 짓궂은 장난질에도, 다른 친하지도 않는 녀석들의 시답잖은 말장난에도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던 강지현이 화를 내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예의 그 녀석들처럼 꼬리를 말고 겁을 내기 보다는…오히려 신기함에 꼬리를 좌우로 흔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엇이 강지현을 이렇게나 화나게 하는 걸까, 한우영이란 이름하나에 강지현은 왜 이렇게 초조해하는걸까….
"너 한우영이랑 친하냐?"
"…"
"난 조금 친해, 넌 조금이라도 친하냐?"
"씨발…"
"욕하는거보니 그리 안친한가보네, 그럼 그딴거 묻지말고 빨리 비번이나 말해- 추워디지겠으니까"
내가 역으로 자신의 질문을 그대로 되받아 친것에 강지현은 조금 당황한듯한 얼굴로 날 보더니 이내 욕을 읊조리며 분을 삭였다.
아무래도 한 대 얻어맞을 것같은 분위기였지만…, 솔직히 나는 한 대 얻어맞는 것쯤이야 그다지 겁은 나지 않았다.
실제로 강지현의 주먹이 핵주먹이라는 비유로 늘 겁을 주었던 준호의 경고가 생각났지만….
'죽이기야 하겠냐…'
"야! 모르면 난 간다!! 추워 죽겠는데 괜히 기다렸네!"
사실은 이런말들을 하기 위해 기다린것이지만 나는 능청스럽게 말하며 돌아섰다.
그러자 더욱 크게 욕을 읊조리던 강지현은 '아오!'하고 소리를 내며 분을 삭이더니, 이내 아까 우현수 외 아이들을 보내버릴때보다 훨씬 큰 소리로 소리쳤다.
"친해!! 존나 친하다고!!!"
"얼만큼?"
"이 새끼가?"
"농담이고… 비번 뭔데?"
"무슨 비번?"
"타임캡슐!"
"씨발! 그딴거 몰라!! 타임캡슐인지 타임알약인지 난 존나 그런거 한 적도 없다고!! 그 전에 빨리 말해! 한우영이 나에 대해 말했냐!"
"아니"
한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실망한 기색으로 강지현을 나를 내려다보았다.
누가보면 어디 학교 앞에 유기된 불쌍한 시베리안 허스키로 착각할만큼 굉장히 실망하고 섭섭함이 드러나는 얼굴이다.
너 새끼는 그렇게 친한 친구놈을 니 후광만 믿고 설치는 새끼가 후드려 패도록 놔뒀냐! 라는 외침이 목구멍 바로 앞전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애써 참으며 씩씩거렸다.
그러자 강지현은 아까와는 달리 낮은 목소리로 다시 반문해왔다.
"그럼 이준호가 말해줘서 나한테 찔러보는거냐…?"
"그것도 반쯤있고"
"그럼 나머지 반은?"
"심리적인 이유"
"관심병 있냐?"
"…"
"이준호가 뭐라던데?"
그래도 자기 이야기라고 궁금하긴 하나보네…. 나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한우영이랑 친하다며, 너"
"누가?"
"친해! 존나 친하다고! 라고 소리치던 사람은 네 안의 또 다른 자아냐?"
"아…씨발…. 그래, 존나 친하다!!"
"너 한우영 싫어했잖아"
"그건…!!!!"
무언가 굉장히 억울한듯 말을 꺼내려던 강지현은 이내 내 얼굴을 슬그머니 살피더니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건…'하고 끊어버리면 대체 어쩌자는건데?라는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았지만, 녀석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듯 그저 우물쭈물 거리기만 했다.
'강지현은 한우영에게 집착했다'
그것도 도가 지나칠 정도로….
강지현은 확실히 보기에도 한우영을 굉장히 의식하고 있었다. 뭔가 친한 친구라고 보기엔 삐딱선을 많이 탄 관심이었지만, 어쨌든 강지현은 유독 한우영의 이야기에 크게 반응한다.
우현수가 한우영을 때렸다거나 삥을 뜯었단 얘기를 할때마다 마치 한우영이 들으라는듯 큰 소리로 녀석을 욕했고, 다른 아이들이 한우영을 흉보는 이야기에 제일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솔직히 누가봐도 이건 철천지원수를 대하는듯한 태도였다.
그런데 친하다니? 그것도 그냥 친한것도 아니고 존나 친하다니? 거기서 더 친하면 아예 친구를 죽일기세인데?
"먼저 꺼지라고 말한건 그새끼였어"
"…"
"지 새끼 챙겨주고 지켜준게 난데…나같은건 필요없다고 막소릴 지껄인게 그 새끼였다고!"
"…"
"근데…, 솔직히 난 떠날때쯤은 지 새끼도 양심이 있으면 나한테 뭐라 한마디라도 할 줄알았다고!"
"양심이라고?"
순간 들려오는 제 3자의 목소리에 나와 강지현은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몸이 불편한듯 어정쩡하게 서있는 인영, 마스크를 썼지만, 그 위로 떠올라있는 두 안광이 분노로 시퍼렇게 타오르고 있었다.
천천히 주머니에서 손을 빼 마스크를 벗어내린 녀석은 감정이 벅차오르는듯 약간 쉰 목소리로, 그리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들의 혼선에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읊조렸다.
"추잡한 허세만큼 인간의 더러운 점은 없어, 정말로 지켜주고 싶었으면 그 사람 앞에서 그런허세같은것 따윈 과감하게 버렸어야지….
안그러냐, 강지현?'
강지현은 한우영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 아이고 춥네요..여러분 감기 조심하세요;;;;!!
첫댓글 아 저 친구들 빨리 화해했으면 좋겠는데 ㅠㅠ
다음편에서능 화해 했으면 좋겠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아 완전 궁금!!!!!!!!!!!!!!1
젬있게 보고가요...
다음편!!!다음편!!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