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면허의 반납
미련 없이 운전면허증을 경찰서에 반납했다. 운전학원에서 차를 몰아봤던 게 전부이기에 계륵 같은 존재로서 전형적인 장롱면허 꼴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쓸모없는 것을 지니고 있다는 게 편편치 않았는데 어떻게 눈치를 챘었는지 기특하게도 갱신 통보가 날아들었다. 그동안 한두 차례 갱신을 했었다. 하지만 앞으로 운전을 직접 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비용과 시간을 들여 또다시 갱신한다는 자체가 부질없는 집착이고 연민이며 탐욕아라는 판단에서 내렸던 특단의 조치인 셈이었다.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집에 승용차가 있었지만 그 쓰임새가 따로 있어 나와는 멀어져 단 한 차례도 운전대를 잡을 겨를이 없었다. 돌이켜 떠올리기도 두려운 지난 악몽이었다. 아내가 30대 후반에 가볍지 않은 병고(病苦)로 서울의 K대학 병원에서 3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고 2개월 동안 입원했다가 어렵사리 퇴원했다. 그 후 몇 해 동안 정기검진을 계속 받고 복약했을 뿐 아니라 한 해 남짓 방안에서 누워 지냈다. 아내는 서울에서 성장하며 학교를 다녀 마산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때문에 평소에도 흉금을 털어놓을만한 지인이 별로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툴툴 털고 일어나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맘대로 달려가 힐링 하면서 병마를 이겨내고 건강을 되찾으라는 뜻에서 승용차를 구입해 키(key)와 함께 전권을 넘겼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차와 멀어지는 크나큰 패착(敗着)이었다. 그 조치를 계기로 아내는 승용차 문화에 길들여졌으며 나는 서서히 아웃사이더로 전락했다.
우리 집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이따금 던지는 질문이었다. “왜 운전을 하지 않느냐?”고. 가정사를 시시콜콜 입에 담기 싫어 얼렁뚱땅 응대했다. 예로부터 “탈 것인 말을 몰거나 가마를 메는 일은 아랫것들의 일이라서 양반 체면에 스스로 아랫것 노릇을 하기 싫어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고. 이런 맥락에서 운전면허증은 ‘아랫것 증명서’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나 자신을 합리화 시키려고 둘러대기 급급했다.
운전학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운전대를 잡았을 뿐 그 외에는 운전석에 앉아봤던 적이 없으며 우리 집 승용차를 탈 땐 애초부터 여태까지 조수석이 내 지정석이다. 막노동자도 세월이 흐르면 반장이나 감독으로 승진하건만 내 처지는 요지부동이기에 원래부터 조수로 태어났던가 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아내가 지독한 ‘길치’이다. 삶터의 변두리에 나가도 내가 이런저런 길안내를 해주지 않으면 마냥 헤매기 일쑤인 까닭에 아내는 반쪽짜리 운전기사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 부부는 운전기사와 조수라는 찰떡궁합의 보완관계이다. 한편 지난날 일터를 걸어서 오갈 거리에서 살았을 뿐 아니라 걷기를 즐겨 생활에 그다지 불편은 없었다.
지난 삶에 대한 자성의 단면이다. 삶에서 ‘친구가 강남 간다고 따라 나서’는 강남추우(江南追友) 식으로 대응했던 게 운전면허증 취득이었다. 전후 사정을 고려해 소용이 닿지 않으면 과감하게 내치거나 무시했어야 했음에도 평생 쓸모없는 것을 괜스레 덤벼들어 손에 거머쥐는 객기를 부렸다. 제 구실을 찾지 못한 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것을 반납했더니 두 달 쯤 뒤에 행정복지센터에서 온누리상품권(10만원)을 줘 요긴하게 썼다. 살면서 톺아볼 때 내려놓거나 비워야 할 허접한 탐욕의 잔재들이 어디 한둘 일까?
작가칼럼, 경남신문, 2025년 8월 29일
(2025년 5월 15일 목요일)
첫댓글 잘읽었습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