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을 끼지 않은 손이 시립다 못해 아무런 느낌이 없는 추운 날씨다.
2007년을 하루 남긴 2006년 12월 31일 새벽 5시 30분 가락시장(서울 송파구 송파동)의 백열등은 24시간 꺼지지 않은채 밝게 빛나고 있었다.
가락시장 입구 길가의 과일좌판에서는 불빛에 의존해 사과, 배등을 닦는 사람이 있었고, 수산물시장에서는 얼음장 같은 물을 아무렇지 않게 손을 담가 수산물을 꺼내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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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31일 새벽 5시 30분 가락시장의 백열등은 24시간 꺼지지 않은채 밝게 빛나고 있었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
가락시장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보통 새벽 4시에서 6시까지 장사준비를 마치는 이들에겐 5시 30분이면 늦은 새벽이다.
가락시장의 입구 지하철 8호선 4번 가락시장 출구에서 고추를 파는 아주머니는 작은 난로을 무릎사이에 낀채 새벽을 열고 있었다.
하남에서 새벽 4시에 집을 나선 아주머님은 장사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하남이 집인 아주머니는 "새벽에 고추사는 사람은 있나요"라는 질문에 오늘은 특별히 '요술장갑'을 팔러 나왔다고 말했다.
"아들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어. 지금은 아들이 많이 아파서 돈 버는 사람이 나 밖에 없어"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3만원'어치 정도의 물건을 판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던 이 아주머니는 대뜸 요술장갑을 내밀었다.
요술장갑. 1000원짜리 검은색 장갑의 손바닥 부위에 야광의 무수한 점들로 채워진 장갑이다.
아주머니는 날씨가 추우면 팔릴 줄 알았던 요술장갑이 잘 팔리지 않는다며 "작년이면 더 추웠는데 날씨가 작년에 비해 덜 춥네"라며 장사가 잘 안되자 날씨을 원망했다.
아들 빚이 아직 1000만원이 넘게 남았다는 아주머니의 깊게 파인 얼굴의 주름살이 더욱 깊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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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를 파는 아주머니는 인적드문 시장의 한쪽에서 달콤한 쪽잠을 자고 있었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
과일청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양파를 파는 아주머니는 피곤한 일상을 대변하듯 인적드문 시장의 한쪽에서 달콤한 쪽잠을 자고 있었다. 쪽잠이 방해가 될까봐 아주머님의 가게, 아니 정확히 '천막 가게'를 지나 곧바로 수산시장에 들렀다.
과일과 야채 장사에 비해 비교적 바쁘고 시끌벅적한 수산시장은 꽃게를 다듬는 사람, 홍어를 가게 좌판에 올리는 사람, 얼음상자에서 생태를 쪼개는 사람 등 새벽 아닌 아침의 풍경이 더 어우릴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생태를 파는 한 할머니는 고향이 어디시냐는 물음에 말없이 손을 들어 가게상호명이 쓰여진 판자를 가리킨다.
'구례상회' 전라남도 구례가 고향인 할머니는 가락시장에서 새벽을 맞이한 것도 올해로 36년째. 하루만 지나면 37년째 새벽을 맞게 된다.
"할머님, 고향은 안 내려가시나요?"
"장사하는 사람한테 고향이 어딨어. 오늘이 몇일이지?
"31일이요"
"오늘이 31일이여, 몰랐는디...올 한해도 갔구만"
짧은 대화를 마치고 "할머님 사진 찍어드릴게요"하고 대뜸 사진찍기를 요구하자, 할머님은 '개시'를 하지 않았다고 한사코 사진찍기를 거부하신다.
기자에게 새벽은 특별한 취재의 시간이지만, 그들에겐 일상의 시간이고, 그 일상의 시간을 깨뜨리는 불청객은 썩 반갑게 맞아줄리가 없다.
"어머님, 다시 들릴게요. 건강하세요"
"삼촌도, 건강혀. (사진 못찍게 해서) 미안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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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30분. 뜨거운 국물에 소주한잔, 컵라면으로 늦은 식사를 하는 상인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
곳곳에서 '늦은 아침' 6시 30분에 아침을 먹는 상인들이 눈에 띤다. 컵라면을 먹는 사람. 인근 식당에서 밥을 시켜먹는 사람들.
그들 식사의 한쪽구석에 놓여진 소주한병은 추위와 하루의 고달픔을 푸는 그것이다. 해정상회에서 대게를 파는 함하림씨는 "나도 옛날에 방송기자였는데, 아침에 수고가 많어"라며 소주 한잔을 권한다. 뜨겁게 내려앉은 소주한잔. 어느 때보다 소주 한잔이 뜨거웠다.
인천상회에서 홍어를 전문으로 파는 아저씨는 칠레산 홍어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설명한다. 홍어를 먹을 줄 알면 홍어 한점 주신다는 아저씨와의 대화가 30분정도 이어지자, 아저씨는 '노 선생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시작했다.
"나도 전라도 사람이지만, 노 선생 욕 먹을 짓 많이 한다. 부동산 정책 꿀릴 것 없다고? 내가 어이가 없어서, 꿀릴 것은 바로 부동산 정책이여"라고 일침을 놓는다.
잘사는 사람은 종부세 안낸다고 겉으로 '지랄'하지만 속으로 부동산값 오른다고 좋아하고 있고, 못사는 사람은 세금 오른다고 '난리'라고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진단한다.
그리고 진짜 진보, 보수세력이 문제가 아니라 '진보, 개혁세력을 가장한 보수세력'이 진짜 문제라며, 홍어 다듬는 칼을 도마위에 힘차게 꽂는다.
아침 8시, 2시간 동안 돌아다닌 불청객을 알아보는 상인들이 커피한잔, 소주한잔, 식사 한끼를 권한다. 그리고 기자의 손엔 회 한접시가 들려있다.
새벽을 맞이하는 그들.
2007년 1월 1일 그들의 새벽이 고달픔이 아닌 '희망'을 꿈꾸는 기분좋은 '이른 아침'이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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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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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사람들①] 서울 가락시장의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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