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싱글즈]를 보면서 느낀 건 영화 [싱글즈]가 정말 입체적인 캐릭터가 등장했고 그것이 전적으로 주연배우들의 공이었다는 것입니다. 영화버전 [싱글즈]에서 감독은 하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재주는 배우들이 다 부렸고 영화의 잔재미와 애드립도 배우들의 재능에 의지했죠. 시나리오의 발랄한 분위기야 원작 소설에서부터 이어진 것이었고 4명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들러붙어 썼건만 정작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기술적인 부분도 그 분야의 전문가들의 맡았고 권칠인 감독은 단순히 고용감독의 의무 이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감독과 장진영,엄정화,김주혁과 함께 한 이 영화 dvd코멘터리를 들어보면 감독인데도 자기가 감독한 영화에 대해 말이 없는 드문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영화의 코멘터리는 배우들 대여섯명 참여시킨 dvd 코멘터리 보다 감독 혼자 코멘터리할 때의 쏟아내는 말이 더 많은데 말이죠. 이범수가 개봉 전에 홍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개봉 때 홍보 활동에 손놓은 이유가 뚜렷한 이유 없이 잔뜩 찍어낸 본인 분량을 덜어낸 것에 화가나서였는데 그런 예를 봐도 감독의 주관이 깊게 개입된 작품은 아니었죠.
그러나 감독의 자의식이 반영되지 않았던 대신 얻을 수 있었던 장점도 생겼습니다. 바로 출연 배우들이 창의력을 가지고 캐릭터 창조를 할 수 있었던거죠.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영화를 보고 있자면 내용보다 배우가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배우들은 물만난 고기처럼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감칠맛나게 연기했고 보다 뚜렷하고 개성있게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는 것은 영화 [싱글즈]의 설정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29살 마지노 선에 놓여있는 젊은 여성의 일과 사랑과 우정을 다룬 여타 작품에서 나올 수 있는 클리셰가 다 담겨있지 않습니까? 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 없고 나이는 들었고 직장에선 치이고 에라 모르겠다 더이상 끓어오르지 않는 오랜 연인과 결혼이나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파구로 생각한 연애or결혼마저도 힘든 고단한 노처녀들의 애환을 다룬 작품은 잊지 않고 만들어져 더이상 새로울 게 없는 소제입니다. 그러니 뻔한 소제를 가지고 어떻게 구워삶느냐가 중요한 거겠죠.
영화 [싱글즈]는 뻔한 이야기를 캐릭터의 개성으로 커버했고 노련한 배우들이 치는 대사들도 시나리오로 봤을 때보다 훨씬 맛깔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뮤지컬 [싱글즈]의 문제가 되었고 말이죠.
아이러니한 게 뮤지컬 [싱글즈]가 영화 버전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 요소를 다 담아 놨는데도 영화보다 재미없다는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뮤지컬로 장르를 옮겼으니 영화보다 훨씬 화려해졌고 활동적인 분위기라 전체 분위기도 영화보다 들떠 있는데도 원작 영화가 훨씬 신나고 인상깊고 감동적입니다. 그것은 뮤지컬 [싱글즈]가 영화 [싱글즈]가 갖고 있는 장점을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사가 같고 상황 전개가 비슷하게 진행된다고 똑같은 장점을 얻을 수는 없는 법이죠. 뮤지컬 [싱글즈]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화 [싱글즈]는 그리 깊이 있는 영화도 나이고 깊이를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여자들에게 공감가는 부분이 굉장히 많은 작품이었죠. 극중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아이러니를 빚어내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많았던 작품이고 사람들은 웃으면서도 맞아맞아를 연발하면서 볼 수 있었던거죠.
나난이 중반까지 일과 사랑 어느것도 성공사키지 못한 채 생활하는 부분이나 매사 자신감 넘치는 동미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사회적 편견에 여러번 엎질러져 끝내 백수로 지내는 부분, 착하지만 경제적 능력이 두텁지 못해 여자친구에게 차이는 정준 등 영화에서 보여준 상황이 뮤지컬에 들어가져 있는데도 뮤지컬은 영화보다 더 깊이 없고 공감도 덜 됩니다.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상상력이 가미된 세트에서 진행된다 하더라도 충분히 개별 작품으로서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까닭은 아무래도 영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작품 고유의 개성이 부족해요. 같은 대사인데도 영화 볼 때는 재치있게 처리된 부분이 뮤지컬로 옮겨오면서는 따라하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현실에 기반한 영화 속 대사의 재치가 공연에선 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을 소화한 배우들의 문제일 수도 있고 영화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커서일 수도 있습니다. 배우의 매력 역시 영화보다 덜하고요.
많은 사람들이 영화와 너무 똑같이 진행되서 긴장도 안 되고 흥미없다는 의견도 많은데 거기엔 동의할 수 없어요. 영화를 원작 삼은 작품이니 영화와 똑같은 건 당연한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영화 원작 작품들도 마찬자기에요. 그리고 막상 극을 보면 영화와 똑같이 진행되지만도 않죠. 결말도 틀리고 캐릭터의 성격도 조금씩 다르고 나난의 판타지 장면도 공연에선 볼 수 없었으니까요. 적정선에서 영화를 가지치기 한 다음 뮤지컬에 맞게 손질된건데도 그런 말이 나오는 까닭은 제 생각에 공연에 대한 불만족한 부분을 영화와 너무 똑같이 진행되는 것으로 돌리고 싶은 심리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 것입니다.
[싱글즈]류의 설정이 많은데 제목과 설정만 빌려오고 내용을 뒤집어 엎어버리면 그건 [싱글즈]가 될 수 없죠. 원작료도 지불했을 텐데 내용을 전면 수정하느니 영화랑 흡사한 진행이 훨씬 낫다고 봅니다.
단점이 우선 눈에 띄이긴 했지만 장점도 많은 작품입니다. 캐릭터의 개성과 고민이 줄어들었지만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를 지향했으니 크게 문제될 건 없어요. 뮤지컬적인 요소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생각입니다. 노래도 대중 가요와 같이 가볍고 무난하며 세트도 볼 만해요. 현대 오피스 걸의 역동적인 모습을 대형 빨간 구두를 이용한 나난의 방과 산책로(?) 처리나 그 '구두방'이 자동으로 이동하는 것도 인상적이며 블라인드 막(?)을 사이에 두고 캐릭터가 처한 갈등을 담은 것도 효과적입니다. 무엇보다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앙상블입니다. 단 5명의 남,녀 앙상블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1인 다역을 다들 훌륭하게 소화해 마치 40명은 족히 나온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로 인해 앙상블이 1인 다역을 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커튼 콜 때 제법 놀랐어요.
나난와 수헌이 구치소에 갇힐 때의 창살 조명 효과, 나난이 식음팀 매니저를 맡기로 결정하는 부분에서의 넘버도 자연스럽게 흘린 것 같습니다.
상황 전개에 아쉬운 점이 하나 있는데 이야기 비중을 영화와 달리 우정에 중점을 맞췄기에 마지막에 삽입되는 영화엔 없는 정준과 지혜와의 해피엔딩이 이야기를 매듭짓기 위한 사족같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뒤틀거면 영화 개봉 당시 가장 말이 많았던 동미의 싱글맘 선택을 뜯어고치는 게 보다 생산적일겁니다.
배우들은 무난합니다. 여자배우 보다 남자 배우가 돋보였는데 영화보다 비중이 높아진 정준 역의 김도현이 인상적이죠. 의아한 캐스팅이었지만 우려를 불식시키며 아주 귀엽게 배역을 소화하더군요. 혼자만 땀 뻘뻘 흘리는 등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영화에선 소심하고 여린 면이 강조된 정준이었다면 뮤지컬에선 귀여움을 앞세웠는데 이범수를 의식한 몇몇 대사 처리를 제외하곤 가장 성공적인 캐릭터였고요. 문제의 이현우는 예상했던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현우의 모습입니다. 가장 개성없는 역할을 영화에서 김주혁이 재미나고 능글맞게 연기해 낸 수헌 역이 뮤지컬에선 이현우 스타일로 바뀌어 영화보다 재미없는 인물이 됐지만 다행이 그런 이현우의 모습을 매력으로 느끼는 [싱글즈]의 여성관객 타깃층이 많기에 문제는 없습니다. 연기는 t.v나 영화보다 더 어색했지만 근사하게 뽑아낸 노래로 기본은 먹고 들어가더군요. 그래도 5년 동안 쌓은 필모그라피인데 헛되지 않게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뮤지컬 [싱글즈]는 몇몇 단점이 눈에 띄긴 하지만 인터미션 없이 진행되는 2시간의 공연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공들이 무대와 실력있는 배우들의 가창력, 깔끔한 상황 전개 등 가볍게 보기엔 딱입니다. 저 또한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흥미있게 관람한 작품이었고요. 이 작품을 제대로 즐기려면 영화를 잊고 보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나 그러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죠.
- 영화 속에 삽입된 노래가 한 두곡 정도 나와도 좋을 뻔했어요. 극중 사용이 불가피하다면 커튼 콜 때라도 집어넣었다면 더욱 흥이 났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첫댓글정말 멋진 리뷰입니다~ 어쩜 이리도 장단점을 콕콕 집어내시는지... 저 역시 김도현씨의 연기와 노래가 재일 맘에 들었습니다. 전 구원영/이현우로 봤는데 구나난은 오나난에 비해 좀더 장진영에 더 가깝지 않나 합니다. 털털하고 씩씩하죠....ㅎ 이번주 토요일에 오나라/서현수 캐스팅으로 또 보러갑니다. 서현수씨가 생각외로(?) 괜찮다고 하더군요^^
첫댓글 정말 멋진 리뷰입니다~ 어쩜 이리도 장단점을 콕콕 집어내시는지... 저 역시 김도현씨의 연기와 노래가 재일 맘에 들었습니다. 전 구원영/이현우로 봤는데 구나난은 오나난에 비해 좀더 장진영에 더 가깝지 않나 합니다. 털털하고 씩씩하죠....ㅎ 이번주 토요일에 오나라/서현수 캐스팅으로 또 보러갑니다. 서현수씨가 생각외로(?) 괜찮다고 하더군요^^
이거.. 7월 7일 오나라/서현수 캐스팅으로 볼건데.. 음.. 보고 마음에 들면 구원영/이현우 캐스팅으로도 보게 될지도.... 아님.. 구원영/이현우 캐스팅을 먼저 볼까.. 순간 고민이...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