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생존자 A 씨는 지난 12일 국회의사당에서 생존자 증언을 했다. 그는 올해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예비신랑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10시 2분쯤 여자친구와 함께 결혼식서 입을 드레스를 구경하고 이태원에 잠시 들렸다가 10여 분만에 참사를 겪었다.
그의 공청회 진술에 따르면. 세계음식거리를 걷던 중 인파를 피해기 위해 해밀턴호텔 옆 골목을 통해 이태원역으로 내려가던 중 휩쓸려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들고 약혼자인 여자친구를 찾았을 때, 여자친구도 정신을 잃어 있었고 발목은 뒤로 꺾인 상태였다. 모든 사람이 앞으로 10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다. 정신을 잃은 여자친구의 발목을 원위치 시킨 뒤, CPR을 하고 싶었지만, 끼인 상태로는 도무지 CPR을 할 수 없었다. 인공호흡만 겨우 할 수 있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압박이 계속됐고, 그렇게 15분쯤 흐른 뒤 소방대원들이 도착한 것을 봤다.
하지만 구조대원의 수가 부족했고, 구조된 사람들을 눕힐 공간도 없어 구조 활동은 매우 더뎠다. “압박은 50분 이상 지속됐다”고 진술한 점을 고려하면, 그와 여자친구는 50여분 만에 겨우 구조된 것으로 보인다.
구조 후 여자친구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던 소방대원은 다른 부상자를 보러가야 한다며 A 씨에게 심폐소생술을 맡기고 떠났다. 또 소방대원 한 명이 “지연이야 지연”이라고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의 뜻이 ‘회복하기 힘들다’는 의미로 들렸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CPR을 했다. 인공호흡을 하던 중 여자친구가 구토를 했다. 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소방대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도 그는 CPR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큰 도로변에 경찰과 소방관이 많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한 시민의 말을 들었다. 여자친구를 들쳐업고 도로변으로 나갔다. 도로변에 응급차는 많았지만, 환자를 이송할 수 있을 정도의 도로통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소방대원은 병원으로 못 간다며 빈 상가 안으로 여자친구를 옮겼다. 상가 안에서도 CPR을 계속하려 했지만, 경찰과 소방은 그를 상가 밖으로 내쫓았다.
빈 상가에 안치됐던 희생자들을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으로 옮긴 뒤에도, 당국은 계속 그가 여자친구를 만날 수 없게 통제했다. 실종신고를 하면 빨리 찾을 수 있다고 하여, 실종신고를 했고,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대기하라는 말에 한없이 기다렸다. 그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경찰과 구청·시청 직원도 알려주는 것은 없었다. 직접 여자친구를 수소문해서 찾았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검시필증이 필요하다는 말에 여자친구 오빠와 함께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이 질문하면 답하는 식의 조사를 받았다. 그곳에서 경찰은 여자친구 오빠에게 여자친구의 사망 사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부검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사고경위에 대해 덤덤하게 진술한 A 씨는, 끝으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159번째 희생자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10월 29일 이태원에 친구들과 함께 갔다가 가장 친한 친구 2명을 잃은 고등학생 B 군은 구조되어 살았지만,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유가족에 대한 온갖 온라인 폭언 등에 고통스러워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59번째 희생자 소식을 듣고 너무 안타깝고 충격을 받았다. 저 역시 그런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라고 말하는 A 씨의 목소리가 흐트러졌다. 그는 “힘든, 힘든 시간을 버티고 견뎌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약혼자 가족 분들 덕분”이라며 “희생자를 잃었다는 아픔에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하여 버틸 수 있었다. 이런 공감이 없었다면 저 역시 159번째 희생자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만큼 같은 슬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래서 유족이 서로를 만날 수 있도록 정부에 요청했다”며 “하지만 정부는 그런 모임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이 또한 2차 가해다. 더 이상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발 저희 요청에 응답해 달라”고 호소했다.
첫댓글 했다..하 국민청원도 없어서 더 관심없어지는거 같아서..올려줘서 고마워 글쓴여시
했다ㅜㅜ
했어
서명했어 ㅜㅠ
서명했어ㅜㅜ
서명하고 옴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