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일정 쪼개 국회.한국기원 찾아
11급 부테린(이더리움 창시자), 9점 깔고 한 수 배워
목진석.김성룡 등 프로 만난 자리선
'알파고'등 화두로 화기애애 얘기꽃
'바둑 게임의 전략적 가치 무궁무진'
27일 낮 12시30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한 외국인 청년이 상기된 표정을 하고 나타났다.
그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2위 암호화폐 '이더리움'을 창시한 비탈릭 부테린(23.Vitalik Buterin)이었다.
부태린이 국회를 찾은 이유는 '바둑의 전설' 조훈현 9단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더리움의 확장 가능성과 향후 계호기을 한국 투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지난 25일 한국에 온 그가 바쁜 일정을 쪼개 조9단을 만나러온 것이다.
러시아계 캐나다인인 부테린은 예정된 약속시간보다 1시간 일찍 국회에 도착해 조 9단과의 만남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국회 이곳저곳을 돌며 한국 문화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한글을 막 깨우친 그는 국회에 있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관계자'가 누구냐는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후 1시 반, 드디어 조훈현 9단과 마주한 부테린은 더듬더듬 한국어로 인사말을 건넸다.
조훈현 9단이 악수를 하며 반갑게 맞이하자 부테린의 얼굴엔 환한 웃음꽃이 폈다.
평소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난 팬의 얼굴이었다.
부테린은 '바둑을 정말 좋아해서 한국 방문 기간 바둑의 전설인 조훈현 9단을 꼭 만나 뵙고 싶었다.
많이 부족하지만, 한 수 지도 부탁드린다.
바둑을 잘 두기 위해 고쳐야 할 부분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바둑판을 가운데 놓고 전설과 마주 앉은 부테린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기력이 11~12급 정도인 부테린은 조9단에게 9점을 깔았다.
부테린은 한 수 한 수를 놓을 때마다 신중하게 생각을 거듭했다.
조 9단은 부테린이 둔 수 몇 개를 되짚으며
'중앙으로 향하는 행마는 한 칸 뛰는 모양이 더 효율적이다'고 조언했다.
부테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전설의 지도를 경청했다.
조 9단과의 만남이 끝난 뒤 부테린은 곧장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으로 넘어가 기원 곳곳을 관심 있게 둘러봤다.
또 목진석.김성룡 9단, 이다혜 4단 등 프로기사들을 만나 30여 분 동안 바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의 화두는 단연 '알파고'였다.
부테린은 '지난해 3월 열린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계기로 바둑의 존재를 알게 됐다..
당시 대결은 흥미롭게 봤다'며 '나는 당연히 이세돌 9단이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알파고가 4승1패로 이겨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부테린은 이날 여러차례 바둑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요즘 바둑에 푹 빠져서 하루종일 바둑 생각만 한다'며
'스마트폰에 바둑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서 여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틈틈이 바둑을 둔다'고 했다.
그러자 부테린의 협력자 조나단 최는 '부테린이 개발흘 열셈히 해야 하는데,
요즘 바둑에 너무 빠져서 개발에 진도를 못 내고 있다.
걱정스럽다'고 농담을 던졌다.
부테린은 바둑의 매력에 대해 '바둑은 규칙이 매우 간단하지만, 알면 알수록 심오한 깊이가 있는 것 같다.
특히 게임의 전략적 가치가 무궁무진한 게 매력적이다'라며
'바둑은 흥미 면에서도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라 바둑을 두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에 오기 얼마 전부터 바둑 공부를 더 열심히 헸다.
바둑 강국인 한국에서 조훈현 9단 등 여러 프로기사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며
'다음에 한국에 오면 알파고를 상대로 최후의 1승을 거둔 이세돌 9단을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