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귀화 뿌리친 안창림, 도쿄 하늘에 태극기 휘날렸다
[도쿄올림픽]재일교포 3세, 유도 73kg급 銅
7초 남겨두고 업어치기 절반승… 도장 운영 아버지 따라 6세때 입문
대학 2년때 전일본학생선수권 우승… 한국에 온지 한달만에 태극마크
“제 모든 정신의 기본은 재일교포, 조부모 생명걸고 지킨 국적 못잊어”
유도 국가대표 안창림(큰 사진 왼쪽)이 26일 일본 도쿄 일본부도칸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유도 73kg급 동메달결정전에서 루스탐 오루조프(아제르바이잔)에게 절반승을 따내며 동메달을 확정지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시상식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건네준 동메달을 목에 걸고 서 있는 안창림(작은 사진).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자신이 태어난 땅 일본 도쿄에서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안창림(27·KH그룹필룩스)이 경기 뒤 꺼낸 단어는 ‘재일교포’였다. 안창림은 “제 모든 정신의 기본은 재일교포 사회에서 나왔다. 재일교포의 입장은 쉽지 않다. 일본에선 한국인 취급을 받고, 한국에선 일본인 취급을 받는다. 나를 보고 재일교포 운동선수들이나 어린아이들이 용기를 내서 큰일을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귀화 제의를 거절한 것에 대해서도 한 치의 후회는 없었다.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명을 걸고 지킨 국적을 잊을 순 없었다”고 힘줘 말했다.
재일교포 3세 국가대표 안창림이 한국 유도 두 번째 동메달을 따냈다. 26일 도쿄 일본부도칸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유도 남자 73kg급 동메달결정전에서 루스탐 오루조프(아제르바이잔)에게 절반승을 따냈다. 경기 시간 4분 중 7초를 남겨놓고 자신의 주특기인 업어치기를 성공시켰다. 라샤 샤브다투아슈빌리(조지아)와의 준결승전에서 8분 37초 골든스코어(연장전) 혈투 끝에 지도 3개를 받아 반칙패한 아쉬움도 풀었다. 이날 안창림은 5경기를 치르는 동안 4차례나 연장을 치르면서 체력 부담이 커졌으나 강인한 정신력으로 시상대에 올랐다. 전날 66kg급 안바울(27)에 이어 한국 유도는 이틀 연속 동메달을 수확했다.
1994년 3월 2일 도쿄에서 태어난 안창림은 엄밀히 말해 재일교포 3.5세다. 친가는 증조부, 외가는 조부 때 각각 일본으로 넘어왔다. 안창림은 가라테 도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안태범 씨를 따라 6세 때 가라테와 함께 유도를 시작했다. 평생을 무도인으로 살아온 아버지는 안창림에게 늘 최선을 강조했다. 중2 때 출전한 시 대회 결승에서 상대에게 방심해 패한 날 아버지는 자신이 선물했던 안창림의 도복을 찢어 방에 걸어놓으며 아들을 일깨웠다고 한다.
일본 유도 명문 쓰쿠바대를 다니던 안창림은 2학년이던 2013년 전일본학생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당시 장소가 이번 올림픽 경기가 열린 부도칸이다. 이 대회 우승 뒤 대학 감독의 귀화 제안을 뿌리친 채 한국으로 향했고 2014년 용인대에 편입했다. 한 달 만에 선발전 3위로 태극마크를 단 안창림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무대를 밟았으나 16강 탈락했다.
첫 올림픽에서 고배를 마신 뒤엔 더 유도만을 생각했다. 이날 경기 뒤 동메달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으로 수차례 “납득이 안 된다”고 말한 것도 준비 과정엔 한 치도 후회가 없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삶의 모든 기준은 유도로 세워져 있었다. 실력이 1%라도 향상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고 말하는 안창림은 심지어 취미로 그 힘들다는 철인 3종을 하기도 했다. “유도에 필요한 체력을 길러주면서 (상대적으로) 유도에 방해되는 부상 위험은 없다 보니 도전했다”는 게 안창림의 설명이다. 도쿄 대회 뒤 상무 입대를 고민했던 안창림은 이번 메달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는다.
다만 숙적 오노 쇼헤이(29·일본)를 향한 설욕은 다음을 기약했다. 안창림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6전 전패 열세였던 오노 집중 분석에 나섰지만 끝내 준결승전에서 패하면서 대결이 성사되지 못했다. 오노는 이날 결승에서 안창림을 꺾은 샤브다투아슈빌리와 연장 승부 끝에 발목받치기 절반 승리를 했다.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국내 취재진에 이어 일본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결승 경기를 보던 안창림은 오노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애써 아쉬움을 감추며 자리를 떠났다. 인터뷰 뒤 시상대에 오른 안창림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 메달을 건네받아 직접 목에 걸었다.
도쿄=강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