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적인 부촌과 주택시장 트렌드
‘성북동입니다’, ‘이촌동입니다, ‘한남동입니다’
TV 드라마 속 나이가 지긋한 부잣집 사모님들은 전화가 오면 ‘여보세요’라고 말하지 않고 일단 자신이 사는 동네부터 밝힌 뒤 대화를 이어간다. 현재 대기업 총수들의 대부분이 성북동이나 한남동, 이촌동 등지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을 상담하다 보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전원주택이나 펜션보다는 도심속 전원주택풍의 동네분위기를 좋아한다고 볼수 있다.
오래전 한국의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강북의 부촌에서 살다가, 서서히 자녀들이 커가면서 교육을 중시해 대치 도곡동 등을 거쳐, 한적한 나이가 되어 강변쪽의 압구정동 반포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은퇴이후에는 다시 그들의 부모세대들이 거주했던 여유롭고 한가한 동네들을 그리워하면서 안식처로 삼을지도 모른다.
이들 지역보다 조금 저렴한 구기동이나 가회동 같은 도심속 주택가격에 대한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 아파트 가격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이어지면서 이들 지역의 주택 가격은 강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 권력실세의 집결지였던 , 성북동
‘한국의 베벌리힐스’로 불리우고 있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성북2동)은 대한민국 대표 부자들의 상당수가 몰려 살고 있다.
성북동은 권력 실세들의 집결지였는데 박정희정권시절 청와대에서 가까워 차지철 전대통령경호실장, 양택식 전 서울시장 등 정ㆍ관계 인사들이 처음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권력 주변에는 자연스레 '돈'이 모여들었는데 70년대에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청와대에서 가까운 성북동이 부촌으로 탈바꿈했다. 당시 구자경 LG명예회장,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등 대기업 오너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영빈관은 정ㆍ재계 고위 인사들의 사교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현재 성북동에는 성락원마을, 꿩의 바다마을, 대교단지 등 고급 주택단지가 잇따라 형성돼 있다.
◆ 재벌 총수들의 집결지, 한남동
남산을 등지고 한강을 굽어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길지인 한남동도 성북동과 더불어 전통적인 우리나라 양대 부촌중의 한곳이다. 한남동은 남쪽에는 한강이 흐르고 서북쪽으로는 남산이 있다 해 한강과 남산의 머릿 글자를 따 '한남동'이라 부르게 됐다.
유엔빌리지를 중심으로 하는 한남1동 하얏트 호텔 부근의 한남2동이 '우리나라 대표부자들 '의 거주지다. 한남2동은 명실공히 국내 최대의 '갑부촌으로 삼성 LG 현대자동차등 3대 그룹의 총수들의 저택이 자리잡고 있다. 신격호 롯데 회장, 박삼구 금호 회장, 박성용 금호 명예회장 등이 남산 아래 2동에 군집해 있고 김준기 동부 회장, 최원석 동아 전 회장 등은 한남로 건너 유엔빌리지에 거주한다.
한남동이 부촌 대열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1960년대다. 군사정권시절 군 출신 엘리트들이 과거 육군본부가 있던 서울 용산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권력 실세들이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 후 1970년대에 재벌과 부유층이 대거 이주하면서 재벌 1세들의 거주지로 탈바꿈했다.
성북동과 한남동은 오랫동안 부촌 라이벌로 유명하다. 성북동 부촌은 재벌 1세대가 오랫동안 살았으며 한남동은 재벌 2ㆍ3세대들이 자리를 잡았다.
풍수적으로 살펴보면 성북동은 이름 그대로 도성 밖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기(氣)가 센 곳이다. 기가 세다는 뜻은 흙심이 두껍지 못해 암반이 그대로 드러난 곳을 말하며 이런 곳은 척박한 토지라서 생산력이 떨어진다. 이런 터는 백성이 살 곳은 못되고, 생업과 동떨어져 음풍농월을 즐기는 고관이나 부자들에게 알맞은 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남동도 부자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풍수로 알려져 있는데, ‘한강 물이 감싸고도는 데다 남산에서 서빙고동으로 연결되는 산줄기가 품어 안고 있는 형국’이다. 남산서 뻗어 나온 용맥의 기운이 응집되는 곳이 바로 한남동으로 집터로는 더 좋은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국내 굴지의 재벌 총수들이 한남동에 운집해 사는 가장 큰 이유도 이 같은 풍수지리에 있다는 게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성북동과 한남동은 사통팔달의 교통의 중심부로 도심 접근성이 뛰어난데다 위와 같이 풍수적으로도 훌륭해 오늘날까지도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걸로 파악된다.
◆ 각양각색의 부자들의 집결지, 동부이촌동
1956년 5월 부통령선거 때 30만명을 수용할 정도로 넓은 강변백사장. 이후 수자원공사에 의한 공유수립매립공사로 조성된 대규모 택지위에 지어진 고급아파트촌으로 거듭났다. 현재의 동부이촌동의 태생되게 된 배경이다.
1960년대 후반경 대규모 주택지가 조성됐고, 1970년대 중반까지 공무원아파트, 외국인아파트, 한강맨션, 삼익주택, 한양주택 등이 연이어 들어섰다. 대형평형이 많이 포진된 한강맨션은 당시 지나치게 호화로워 사치를 조장한다는 사회적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인기에 편승해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아파트 분양 당시에 정치인, 부자들, 연예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한강을 따라 흐르는 거대한 ‘돈(물) 줄기’를 바라보는 동부이촌동은 현재도 각계각층의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동부 이촌동은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에다 용산가족공원, 국립중앙박물관, 한강공원 등 편의시설이 풍부해 강남 못지않게 자부심이 대단하다.
현재 동부이촌동은 재건축이 활발히 추진돼 새로운 부촌으로 거듭나고 있는데 GS한강자이, 동부센트레빌, 우성, 삼성리버스위트 등이 재건축을 통해 고급아파트로 변신했다. 동부이촌동의 부촌의 명성은 앞으로도 이어갈것으로 보인다. 풍수적으로 볼 때 배산임수형의 재물운이 있는 명당에다 경부고속철도와 경의선복선전철, 용산부도심 개발, 민족공원 조성 등의 호재가 많기 때문이다.
<부동산신문 : 2010년 07월 16일 (금)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