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립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지난주 일요일 1987년 6월 민주항쟁 기간에 전두환 군사독재의 폭압 속에 최루탄에 맞아 희생된 친구, 한열이 25주기를 맞아 광주 망월동 공원묘지에 성묘를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5월과 6월에 걸쳐 한국전쟁과 민주화운동 관련 많은 행사가 있었고 해마다 상흔과 상처가 도드라지면서 다시 정치이념 싸움화되는 경향이 여전하지만, 올해는 좀 남달랐습니다.
청년기 스무살에 스스로 선택해서 경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과 구조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어쩔 수 없이 당함으로써 그에 맞서거나 눌리거나 피하거나 외면하거나 등등 크건 작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들에 관한 문제입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이상의 첫째 부인이자 김환기와 재혼한 변동림이자 김향안 여사는 신여성. 근대여성으로 살아내려고 했지만 "일제 강점기는 어쩔 수 없이 한계에 봉착하게 했다"고 좌절의 고통을 얘기했지요. 덕수궁미술관의 근대회화 <꿈과 시>전.
그리고 그 이후 세대들은 한국전쟁이라는 결정론에 처하고 맙니다. 일제 해방의 자유를 만끽하고 새로운 근대국가를 주체적으로 성립하려는 시도가 무산되는 즈음, 이데올로기 갈등은 끝내 동족상잔의 비극과 더불어 분단체제로 고착화됩니다. 1950년 6.25이니 벌써 60여년.
그리고 전쟁의 가난과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기에는 다시 남북 분단과 미국의 우산, 그리고 민간이든 군사이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지난한 독재의 시기를 거치게 되지요. 그리고 1980년대의 민주항쟁 이후 25년...이명박 집권 5년기...민주주의는 빛바랜 80년대 사진을 다시 회상케 합니다.
지난 6월 현충일에 국립현충원에서 큰아버님 60주기를 맞아 성묘를 하고, 지난 일요일 대학동기 한열이 25주기를 맞아 망월동 묘지에 성묘 겸 참배를 하다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버님 세대의 상흔과 제 세대의 상처는 할아버지 세대의 일제 식민지처럼 한국현대사 속에서 '사회적 트라우마'이고 '시대적 결정론'으로 구조적 모순이자, 새로운 시대로 가기 위해 해결하거나 극복하거나 포섭하거나 포용하거나 해야 하는 '시대정신이자 시대적 과제'이겠지요.
물론 인류의 물질적 문명적 진보 뿐만 아니라 문화적 사상적 역사적 발전을 추동하는 한편 그 바탕에서 자유평등박애 등의 정신을 고양하고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고 행복을 증진시키고 자연과 우주를 아우르는 야무진 꿈을 꿔야겠구요.
여튼 지난해 고수와 신하균 주연의 <고지전>을 보면서 큰아버님을 비롯한 전몰장병들의 최후가 오버랩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데, 올해는 다시 최루탄 맞던 6월 9일 현장과 이후 30일 가량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3교대로 지켰던 시절, 그리고 7월 5일 일요일 새벽 사망 소식으로 절망했고 7월 9일 장례식날 그 땡볕에 수많은 대학생들이 울고, 시민들과 함께 시청에서 광주 망월동까지 운구했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스무살 당신은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한국전쟁과 군사독재기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만큼 청춘을 어루만져주고 이해하고 공감해주려는 <청춘 콘서트>같은 따뜻한 대화의 공간 역시 없었던 듯합니다. 그저 누가 나라를 구하고, 누가 싸워 민주주의를 지켜야할 것인가 하는 큰 주제가, 무조건 살아야 한다는 처절한 생존욕구와 약육강탈의 환경에서 경쟁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악받치던 시대상이, 스무살 나이대를 지배했던 것 같습니다.
세대별 차이는 있지만 스무살들의 희생은 오늘날 한국사회를 유지하는 데 크게 한 몫을 했고, 현재의 세대들 역시도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는 시기를 당해 아프면서 청춘의 트라우마를 이겨낼, 자기 시대의 표정을 만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광주 성묘를 다녀오면서,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열이의 죽음으로 우리는 청소년기에 주로 쓰는 말이겠지만, 어머니의 몸에서 탄생했지만, 스무살에는 사회적으로 다시 탄생했습니다. 이후 25년의 삶을 살았습니다.
거친 소주지만, 술을 한잔 한잔 올리면서 우리의 짦고도 긴 스무살의 시대와 동료들, 그리고 이후 지나왔던 시대에 대해 읊조리며 또는 묵언의 대화를 나눴습니다. 의기있고 건강하고 사랑스럽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시대를 소원하는 마음도 담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더했습니다. 개인적인 슬픔만으로 가슴에 담을 수만은 없는 일들이라, 그간 그 무게감으로 밖으로 내지 못할 만큼의 고통이 지속됐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주관적 감정이입과 반발 수준에 그치지 않고, 성숙하게 거리감도 유지하면서 차분하게 되내이며 우리사회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작업하 해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침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관 20주년을 맞아 한국의 20세기 현대미술을 구상과 추상으로 대별하며 ,두개의 모더니즘>으로 묶으면서 구상으로는 고향 및 한국미의 추구, 자연 및 순수의 갈망을, 추상으로는 새로움의 추구를 소주제로, 1960년대 앵포르멜과 1970년대 단색화의 흐름을 보이는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1990년대 이후의 한국미술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일상성과 다원성을 실험하고 창작하며, 상업화와 도시화 정보화, 그리고 자본과 미술시장의 급성장을 포착하며 <진통 進通 - 나아감과 소통함>으로 묶으면서 일상의 변용, 테크놀로지의 활용, 타자의 시선, 개념적 발상으로 분화하여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가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다원의 시대와 글로벌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면, 21세기 10년이 경과한 현재의 난삽한 듯, 무의미한 듯, 낯선 듯, 그러면서도 이제 조금씩 창작 동기와 서로의 교감과 소통을 논의하며, 개인의 주관과 더불어 시대의 단상과 맥락을 보이고 추억하고 기억하고 펼치려는 의지와 그에 따라 펼쳐진 지평의 너른 확장을 체감하는 공간이 새삼스레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현재적 삶은 미래보다는 과거에 더 매이고 맥락지어져 있고 구조화돼 있는 상태. 미래의 긍정적 기대감보다는 과거의 거친 트라우마들이 서럽게 뒤엉켜 하나라도 보듬지 않고 외면하고 무시하고 이념적으로 눌러 깨려고만 하는 작태들이 만연된 상태. 시대와 사건과 사물과 인간들을 바로보는 자세를 더욱 가다듬어야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광주 성묘와 전시를 다녀오면서 새삼스레 다시 하게 됩니다.
첫댓글 광주 망월동 공원묘지. 한열이 25주기, 소주 한잔씩 번갈아 올리며 25년전 그때 스무살 무렵의 모습을 보며 지난 시대와 세월을 회고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한국현대미술 2부 1980년대 민중미술 중에서 현실과 발언의 회원공동작품에서 만났습니다. 부분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네요 ^ ^ 한리님 기억이 고맙고 나는 미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