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에 <시문학>의 추천으로 등단한 엄기창 시인이 시조집 『거꾸로 선 나무』를 오늘의문학사에서 발간하였습니다. ‘오늘의문학 대표 시조집 84’로 발간한 이 시조집은 대전문화재단의 2020년 우수작품 지원금을 받아 발간되었습니다.
엄기창 시인은 4권의 시집과 1권의 시집을 이미 발간한 바 있습니다. 시집 『서울의 천둥』 『가슴에 묻은 이름』 『춤바위』 『세한도에 사는 사내』와 시조집 『봄날에 기다리다』에 이어 두 번째로 발간한 시조집입니다.
엄기창 시인은 ‘대전광역시문화상(문학 부문)’ ‘정훈문학상’ ‘대전문학상’ ‘호승시문학상’ ‘하이트진로문학상’ ‘한국인터넷문학상’을 받았고,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문학사랑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문학교육연구원 원장을 맡아 문학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분입니다.
= 서평(신웅순 교수의 해설에서 발췌)
# <세상에서 부처님의 미소를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 고승, 석불, 스님, 청동대좌불, 부처님, 관음송 등 말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포근해지는 단어들이다. 온화하고 따뜻한 시조들이다. 천만번 되뇌어도 싫지 않은 단어들이다.
밤새워 독경해도
멍울처럼 안풀리는
목탁을 만 번 쳐도
바람인 듯
안 보이는
참도는
남의 아픔에
손을 잡아주는 것
― 「고승」 전문
아무리 독경을 해도, 목탁을 쳐도 남의 아픔에 손 한번 잡아주는 것만 하랴. 시인은 휴머니스트인 것 같다. 손 한 번 잡아 준다는 것은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요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은 아픔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기도가 무슨 필요가 있고 더 이상의 위로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렇다. 도가 거창한 것이 아니요, 사랑과 자비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따뜻한 체온을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도요 사랑이요 자비이다.>
# <나이 들면 누구나 다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추억이 없다면 그것은 죽음이나 다름없다.
꽃이 진 자리 옆에
다른 꽃이 피어나서
자연의 순환은
멈춤이 없건 마는
어머니
가신 후에는
기별조차 없는가.
― 「사모가」 전문
자연의 순환은 멈춤이 없는데 어머니 가신 후에는 그도 멈춰 기별조차 없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이렇게도 허망한 것이다. 그리움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구름으로도 바람으로도 그 어떤 세월로도 다스릴 수가 없다.>
# <세상에는 꽃에 대한 시들이 참으로 많다. 꽃이 없다면 시도 없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꽃을 사랑하지 않는 시인이 어디 있으며 미인을 사랑하지 않는 시인 또한 어디에 있을까. 없다.
입 다물고
참다 참다
터져버린 볼멘소리
귀담아
듣다 보면
송이송이 진한 아픔
아내여 긴 세월 견딘
인종 벗어 버렸구나.
— 「능소화」 전문
부부지간의 이야기이다. 시인은 능소화가 피는 것을 터져버린 볼멘소리라고 했다. 볼멘소리는 참다못해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이다. 살아가는 데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잔소리들이 대못으로 박혀오는 아픔들도 많다. 얼마나 많은 부부의 잔 싸움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내 뱉은 말은 두 번 다시 담을 수 없다. 그 때문에 이혼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첫댓글 엄기창 원장님 오늘 시조집 '거꾸로 선 나무'
잘 받았습니다. 발간을 축하하며 항상 불심이 묻어나는 시를
좋아해서 곁에 두고 정독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