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출처 : 국제신문 최현녕 기자 2002/01/14 >
부산의 맛거리 - 서면 뚝배기 골목
화려함은 없지만 은근하면서도 소박한 멋이 나는 옹기그릇. 찌개나 탕이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가 식탁 한가운데 올려지면 남부러울 것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네 깊은 장맛을 지켜 주던 것이 뚝배기 그릇이었다.
일반 가정집 식탁에서 뚝배기 그릇을 찾아 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그 옛날의 우리 맛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은 이 뚝배기 그릇의 편안함을 잊지 못한다.
투박하게 생겨 경상도 말로는 ‘툭사바리’라고 불리는 뚝배기. 식당에서는 음식이 식지 않도록 온기를 유지하는데 그만이고, 국그릇을 따로 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서면 롯데백화점 뒷문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골목 안으로 쭉 들어가면 청국장 된장찌개 등을 뚝배기에 담아내 주는 밥집들이 모여 있다.
최근 화려한 상가지역으로 변모한 이곳에 뚝배기집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 그 때만 하더라도 부산상고와 여관 등 숙박업소만 즐비했다.
한두 곳 생겨난 음식점에서 파는 뚝배기가 소문이 나면서 뚝배기집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10여년 전 10여 곳이 넘는 뚝배기 전문집이 생겨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으나 높은 집세와 인건비를 견디지 못하고 속속 문을 닫았다. 이제는 롯데백화점 뒤편 소공원을 중심으로 5곳의 뚝배기 전문점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원조뚝배기는 구수한 청국장 맛이 일품이다. 집에서 직접 콩을 삶은 뒤 더운 여름에는 5일, 추운 겨울에는 7일 정도 발효시켜 청국장을 만드는데 고향의 맛을 느껴 보지 못한 젊은 사람이라도 그 깊은 맛에 반하고 만다.
순수 국산 콩을 사용해 맛이 순하고 부드러우며 청국장으로 만든 청국장뚝배기(5천원)도 구수하고 깔끔하다. 두부와 해물 파가 듬뿍 들어간데다 콩이 씹힐 듯 걸쭉한 맛이 느껴진다. 뚝배기 한 그릇만 나오면 섭섭해서일까 함께 내놓는 반찬 또한 맛깔스럽기 그지없다.
싱싱한 채소에 고등어조림을 폭 싸서 쌈장을 넣고 한 입에 넣으면 향긋한 채소향과 쌈장의 구수함이 입안 가득 전해진다. 담백하고 싱싱한 고등어와 어우러진 청국장 맛은 미각을 돋우어 준다. 아침 저녁 담그는 생김치와 시원한 물김치 맛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인근 호텔에서 묵는 일본인들이 자주 찾는데 김치 맛에 반해 김치만 따로 사 가기도 한다. 싱싱한 게장도 남기면 손해다.
맞은 편의 부전뚝배기는 3천5백원짜리 된장뚝배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저렴한 가격과 집에서 먹는 음식처럼 편한 것이 이 집 음식의 특징. 된장뚝배기는 짭짤한 듯 구수한 맛이 나고 까나리액젓으로 맛을 낸 반찬들이 깔끔하다. 된장과 순두부(3천5백원)는 멸치와 다시마 등을 우려낸 물로 끓이는데 된장의 텁텁한 맛이 덜하고 뒤끝이 개운하다.
골목에서 약간 벗어나 있긴 하지만 오랜 전통과 빼어난 맛을 자랑하는 곳으로 할매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지금 만남의 광장 맞은 편에서부터 자리를 두 번 옮겼는데 단골들이 발길을 돌리지 않고 식당을 따라 다닌다. 아들과 며느리가 대를 잇고 있는 데도 된장과 간장만은 처음 뚝배기를 끓여 내던 할머니가 직접 담근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식당 입구에는 된장통이 여럿 나와 있고 통 위에는 시래기들이 말려지고 있다.
한정식(4천원)에는 시래기국이 나오고 쌈밥정식(4천5백원)은 된장뚝배기가 나온다. 쌈에 고등어조림을 싸 먹기도 하지만 작은 접시에 함께 나오는 멸치젓갈은 비릿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