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문학기행 이후 영남수필55집에 실으면 도움이 될까하여 써 보았습니다.
아가의 바다/이미영
나의 다산은 동백 바람 속에 있었다. 삼월의 바람이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을 때 다산초당으로 봄 인사를 하러 간다. 다도해에서 짠내를 품은 바람은 강진 백련사 앞마당의 동백숲을 키운다. 도타운 잎을 닮은 붉은 꽃봉오리는 풀을 먹인 옷깃처럼 빳빳하다. 시들기 전에 목을 꺾고 툭 떨어져 바닥에서 다시 꽃으로 마감하는 동백의 화생(花生)은 화무십일홍에서 멀다. 다산초당 곁에서 오래 살아온 꽃이라 다산의 삶을 대변하는 까닭일 것이다.
백련사 동백꽃놀이에 흠뻑 젖어야 다산초당으로 오른다. 동백의 먼 친척뻘 되는 차나무가 동백나무 아래에서 지천으로 자란다. 초당 곁으로 맑은 물이 샘솟던 약천과 차를 준비하던 바위인 다조, 소담한 인공 연못, 다산이 정석이라고 쓴 바위가 가지런하다. 숲속 작은 서재와 맑은 다향이 다산의 사상을 도탑게 하고 명저들을 완성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때 이른 더위가 그늘을 찾게 만드는 오월 중순에 다산의 첫 유배지 장기로 문학기행을 떠났다. 이제는 호미곶이 더 익숙한 지명이다. 문학기행이라는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지나는 발걸음에라도 들릴 리가 없는 외진 곳이다. 오월의 장기에는 흐드러진 꽃도 넘실대는 파도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막 들어선 장기유배문화체험촌 앞마당에 당시를 재현하는 죄인 호송용 달구지가 땡볕을 받고 있었다.
장기는 다산이 1801년 3월부터 10월까지 첫 유배살이를 한 바다 근처 마을이다. 다산과 강진의 다산초당은 한 세트로 인식되지만, 장기의 유배는 늘 계산에서 제외되었다. 문학기행을 다녀오고 나서 책꽂이 뒷줄에서 잠자던 그에 관한 책을 앞으로 가져왔다.
장기 유배지에서 지었던 시들 중 「아가 노래」를 자꾸 읽게 된다. 명랑한 듯 슬픔이 묻어나는 노래는 모범생 실학자로 인식된 나의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았다.
아가 몸에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짠 바다 맑은 연못처럼 들락거리네
꽁무니 들고 머리 박아 자맥질하고/오리처럼 자연스레 잔물결 희롱하네.
소용돌이무늬도 흔적 없고 사람도 안 보여/박 한 통만 두둥실 수면에 떠다닌다.
갑자기 물쥐같이 머리통 솟구치고/휘파람 한 번 불고 몸을 따라 돌이킨다.
다산은 ‘아가’라고 쓰고 이곳 경상도 토속 언어에 며느리를 ‘아가’라고 부른다고 주를 달았단다. 그는 유배지에서도 큰며느리의 병고를 걱정하는 편지를 부쳤던 자상한 시아버지였다. 같은 시선으로 해녀인 아가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것 같아 명치가 찌르르해진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물질하는 동네의 어린 며느리를 염려하는 눈길이다. 행여 아가가 바다에서 나오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을 안고 지켜보는 심정이라 뭉클해진다. 젊은 여인의 나신을 몰래 훔쳐보는 시라고 비난을 받을지도 모를 일인데 아랑곳없이 세심하게 묘사한다. 「아가 노래」는 바다에 의지해 살아가는 애달픈 백성에게 바치는 슬픈 찬가로 다가온다.
당쟁에 휘말려 동쪽 땅끝으로 유배된 다산은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기보다 핍박 속에서도 자족하며 살아가는 농민의 삶을 시로 읊었다. 「장기 농가」,「보리타작」 등에는 부패한 관리들에게 수탈당하는 농어촌의 모습과 장기 사람들의 형편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벽촌 백성들의 삶을 연민으로 기록하였다.
밥 먹듯이 배를 곯으며 보릿고개를 넘는 장기의 농민들과 맨몸으로 물질하는 아가를 살피며 공자 왈 맹자 왈 입씨름하는 성리학에서 실천하는 학문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약 하나 쓰지 못하고 굿을 하다가 죽어가는 촌사람들을 위해 의서를 쓰고 칡으로 만든 그물을 쓰는 어민을 위해 개선책을 제시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시험을 치겠다고 달달 외우기만 했던 실학사상이 약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잉태된 줄은 몰랐다. 책상머리에서 실학의 겉만 핥던 그때「아가 노래」를 읽었더라면 진짜 실학을 알았을 텐데. 다산은 아가가 물질하던 장기의 짜디짠 바다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버림받은 바닷가에서 실천학문을 실천했을 것이다.
장기에서는 다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가 유배살이를 하며 쓴 시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의지하여 그곳을 밟아볼 뿐이다. 주춧돌만 오롯한 폐사지에서 잠잠히 절집의 옛 모습을 그려보듯 장기에서 쓴 시들을 읊으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을 그려본다.
해 질 녘에 느릅나무 숲을 거닐며 지었다는 시는 남았으나 그 숲은 흔적도 없다. 노거수 그늘에서 다산을 흉내 내어 거닐어 보면 좋으련만 반질반질한 장기유배문화체험촌에서 장난스레 함거에 올라 사진을 찍는다. 한참 차를 타고 나와 잔물결 치는 바다를 바라본다. 아가가 물질하던 바다에서 다산을 찾는다.
첫댓글 아가, 이제는 들어보기가 어려운 참 정겨운 호칭입니다. 아~가~
이미영 선생님
문학기행 다녀온 후 다산을 연구하셨군요.
강진까지 예를들면 2000리 유배의 형벌이 주어졌다면 길을 채우려 둘러둘러 거리를 맞추는 과정이어서 장기에 들려 쉬어갔다 하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맛깔스러운 글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