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라 할 것도 없는 동네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제법 사람 흔적이 쌓여 있는 곳이다. 물론 여기 인도에서의 사람 흔적이란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의미한다. 나환자 마을이든 어디든 할 것 없이 사람만 모여 있는 곳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더럽다. 그건 델리나 뭄바이 캘커타와 같은 대 도시라고 해서 큰 차이가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다시 왔다는 것은 아마 아이들의 입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거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차종이다. 다마스라는 차가 있지만 그 보다 더 작지만 그래도 봉고를 흉내 낸 차다. 그 작은 차에 먼지를 날리고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아이들이다. 아마 그 아이들이 지르는 소리를 듣고 내가 다시 마을에 온 것을 알았나 보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그곳에선 나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영어로 -파더- 라고 한다. 그리고 행정관청에서는 나를 -레퍼스 파더- 라고 부르는데, 문둥이 아버지라는 말이다. 물론 그 말은 내 스스로가 지은 말이다. 그렇게 불러달라고 내가 먼저 요청했다.
여기 인도에서 외국인이 어떤 목적을 갖고 활동한다는 게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더욱이 종교적 특히 기독교 선교적인 목적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걸어야 한다. 물론 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 남부 케렐라 주는 아예 기독교 주라고 할 만큼 기독교세가 왕성하고, 심지어 동부 나가랜드 주 같은 곳은 주민의 40% 이상이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이런 특이한 주를 제외하면 전 지역에서 기독교 선교는 절대적 금기사항이다.
지난 성탄 전후로 몇 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선물을 나눠준 적이 있다. 선물이래야 밀가루 10킬로그램 한 포대와 빵 두 쪽이었다. 선물을 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거의 한국에서 올 때마다 조그만 선물을 항상 준비했었다. 특히 지난해엔 이들에게 지하수 모터 펌프를 파주고 화장실을 지어준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번에도 여지없었다. 그러나
도시의 거지 아이들처럼 노골적으로 손을 내미는 아이들은 없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을 보면 나는 알 수 있다. 먼지 가득히 묻은 얼굴, 며칠 동안 아니 몇 개월 동안 씻지 않은 손, 그리고 다 헤진 옷, 그것이 그들의 전부다. 그런 얼굴로 나에게 달려와 붙는다. 나를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다 안다.
어떤 아이는 손가락 상처를 보이며 아픈 표정을 짓고, 어떤 여자 아이는 울음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아마 우는 아이에게 빵을 먼저 주고, 상처 난 아이들을 먼저 안아 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것도 준비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친구들이 모아 보낸 돈은 이미 성탄절 행사로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아침도 먹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아이는 벌써 닷새째 엄마 아빠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도시로 구걸 나가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거다. 그런 아이들은 남아 있는 옆집에서 보살피기도 하지만 제 아이들도 보살피기 부담스러운데 남의 아이들을 돌본다는 게 오죽할까?
언제까지 이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까지 이런 일을 계속해야만 하나? 요즘 나의 고민이다. 물고기 한 마리를 주기보다 고기 낚는 법을 가르치라는 탈무드의 교훈을 누구보다 잘 알고 당연히 그런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당장 한 끼의 식사를 채우지 못하고, 저렇듯 굶주린 얼굴로 나타났을 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가슴만 친다.
이번엔 할 수 없었다. 제 아무리 슬픈 표정을 짓고 아니 실제 내 앞에서 굶어 죽는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나는 미래를 꿈꾼다. 이 몸서리쳐지는 가난의 땅과 그 사람들에게 별을 보여주고 싶은 거다. 하늘에 별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그 별을 보고 꿈을 품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은 거다. 자기들이 보고 있는 것이 별인지 먼지인지 구분 못하는 그들이기에.......
마을 대표자를 만났다. 마트야 프라데쉬 주 정부에서 우리 나환자 정착 마을을 위해 93에이커, 약 20만평을 무상으로 사용허가를 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럼에도 아무런 표정이 없다. 내가 그것을 얻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애원과 호소를 하며 힘들었는지도 모르나 보다. 아니 그들의 생각은 나완 다를지도 모른다. 애써 일을 하며 살아도 한 세상, 지금처럼 구걸하며 살아도 어차피 한 세상인데 굳이 일을 하며 살아야 하나? 할지도 모른다. 노동보다는 구걸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거대한 힘과 싸우고 있다. 인도 역사와 제도 그리고 계급을 중시하는 인두라는 종교와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 그 엄청난 힘 앞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아주 볼품없다. 무엇보다 저들의 움직일 줄 모르는 의식이 너무 안타깝다. 구걸로만 수대를 이어온 탓에 만성병으로 이미 굳어진 구걸 생계를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깨뜨릴지 그게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크게 뜻을 품진 않는다. 설령 내가 못하면 누군가 다시 이어 할 것이라고 믿고, 작은 빗방울로도 커다란 바위를 깨뜨릴 수 있다는 걸 믿고 있다. 오늘의 나에게 주어진 일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일과 모레에 그 누군가가 해야 할 일마저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고민하는 소크라테스 보다는 배부른 돼지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 저들의 의식과 습관을 쳐다보면 아득해 보인다.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산 같다. 그러나 또 다른 가슴으로 보면, 이 세상에 옷 오를 산이 있던가 싶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산정도 결국 다 올랐다.
-열정은 꿈을 낳고, 꿈은 이뤄진다-
첫댓글 날마다 조금씩 좋아지겠지요 . 그러다가 어느날 그들중에 누군가가 눈이 떠지면 확 달라질 날이 올겁니다
훌륭한 일을 하시는군요. 용기 내시기 바랍니다.꿈이 있다면 그 꿈은 이루어 집니다. 행운을 기원 합니다.
세계 곳곳에 잔재하고 있는 서글픈 우리 인간의 현실을 돌아 보고 있는 분이시군요...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사람들도 긍극적으로는 배부른 돼지의 삶을 선택하고자 하지 않나요?..돈걱정 안하고 신나게 놀고,,사고 싶은 것 망설임없이 살수있고..먹고 싶은 것 배터지게 실컨 먹고..ㅋ..부끄러운 제 애기입니다만..ㅎㅎ...한돌님의 그 순수한 열정에 힘내라~박수(짝짝~~)
TV를 통해 몇번 뵌 어느 연세드신 부부... 필리핀 오지에 들어가 우매한 지역민들을 일깨우며 열심히 농사짓고 일을하며 자립해서 살게 만드시더군요. ( 물론 근저에는 선교의 목적이 있겠지만.. ) 어쨋든, 평범한 사람들은 생각도 못하고 더구나 실천은 더 할수없는 숭고한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