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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격투기 "어설프게 따라하단 다칠 걸" |
영화·드라마·코미디도 이종격투기 열풍 생생함 매력…짜고치는 오락 전략땐 팬들 외면 [조선일보 어수웅 기자] 6월 11일 개봉하는 태국영화 ‘옹박’의 홍보문구는 ‘CG(컴퓨터그래픽)는 가라. 100% 리얼액션’이다. 올해 도빌영화제에서 ‘액션 아시아상’이라는 진기(珍奇)한 이름의 상을 받은 이 영화에 대해, 한 네티즌은 “장 클로드 반담은 명함도 못 내민다. 남자라면 피가 끓을 만한 노 와이어(wire) 정통 액션”이라고 표현했다. 태국의 전통무예 무에타이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드라마’보다 ‘격투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SBS 인기 주말드라마 ‘폭풍속으로’(극본 최완규, 연출 유철용)의 주인공 김민준은 이종격투기 선수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무시무시한 격투기와 이 깎아놓은 듯한 매력남이 현실에서 겹쳐질 리 없지만, 김민준은 스스로를 이종격투기 선수로 만들기 위해 4개월 가까이 트레이닝을 하며 체지방을 뺐다. 이종(異種)격투기는 지금 이종교배(交配) 중이다. 철조망이 포위한 8각의 링(옥타곤) 밖으로 튀어나와 다양한 대중문화 장르와 유전자를 섞어가고 있는 것. 영화와 TV드라마는 물론 만화와 코미디까지 자신의 영토를 탐욕스럽게 불려가고 있다. 19권까지 출간된 일본 만화 ‘군계(軍鷄)’는 비례와 균형 넘치는 인체묘사와 박진감 있는 경기 장면 묘사를 통해 열혈 독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제목은 ‘싸움닭’이라는 의미. 컷과 말풍선 안에 이종격투기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 만화는, 너무 잔인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오히려 그 비장미와 잔혹미가 이 작품을 찾는 이유”라는 반박도 있다. 어쩌면 WWF로 대표되는 현대의 프로레슬링이 “스포츠가 아니라 쇼비즈니스”로 밝혀진 이후, 대중들의 무의식 한 켠에 숨어있는 폭력적 욕망은 이종격투기라는 장르를 통해 대리충족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먹싸움의 묘한 짜릿함과 관절이 꺾이면서 터져나오는 비명을 통해 대중들은 알게 모르게 “내가 살아 있다”는 쾌감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이종격투기’는 물기, 꼬집기, 고환공격, 뒤통수·척추 직접타격 등 몇몇 동작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공격이 허용된다. 실제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의 ‘막싸움’을 지켜보다 보면, 진정한 ‘싸움 구경’이 뭔가를 절감할 수 있을 정도. 무술을 크게, 선 채로 상대를 가격하는 입식 타격기(킥복싱, 가라테, 태권도, 쿵후 등 때리고 차고 찍는 기술)와 유술기(레슬링, 유도 등 잡고 꺾고 던지는 무술)로 나눌 수 있다면, 이를 동시에 구사하는 것이 바로 이종격투기다. 세계 3대 이종격투기 대회로는 ‘K-1’ ‘Pride FC’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등이 꼽힌다. 케이블과 위성의 스포츠채널에서 매니아들의 환호와 함께 중계하고 있는 이종격투기 대회는 바로 이 3개 대회의 ‘싸움 풍경’이다. 지난 10일 단 1회만 방영하고 별 설명 없이 중단된 MBC TV ‘코미디하우스’의 새 코너 ‘이중격투기 CFC’는 역설적으로 이 이종격투기라는 종목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웅변하고 있다. ‘프로레슬링과 이종격투기의 첫 만남’이라며 ‘이중(二重)’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UFC’처럼 영어약자 ‘CFC(Comedyhouse Double Fighting Championship)’로 패러디했지만, 코미디하우스 시청자들조차 “별로 재미없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가죽 옷 차림으로 나타난 심판 조혜련과 중계방송을 맡은 캐스터 김학도가 분위기를 띄우려 애를 썼지만 ‘이중격투기 CFC’ 안에는 육체의 솔직함보다는 어설픈 쇼비즈니스의 흔적만이 난무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척 팔라닉의 소설 ‘파이트 클럽’에서 사람들은 “싸워 봐야 진정으로 자신을 알 수 있다”며 1대1 맨주먹 싸움을 벌인다. 이종격투기는 현대인의 그 도착적 욕망을 대리(代理)하면서, 단순히 공허한 이미지로 전락하고 있는 우리 육체의 원초적 의미를 2004년의 언어로 ‘간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