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緣起)와 금강경의 사상(四相)>
질문) 지난 번 쌍윳따니까야 경전 공부 중에
아상(我相)은 ‘주관적 자아’, 인상(人相)은 ‘객관적 자아’라고 설명하시는 것을
잠깐 들었습니다. 그래서 금강경 사상(四相)의 아상, 인상 역시 그렇게 보고
이해를 하고 있는데, 중생상(衆生相)은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중생상이라고 하는지요? 그리고 수자상(壽者相)도 부탁드립니다.
(답변)
일전에 아상(我相)은 ‘주관적으로 느끼는 나’이고,
인상(人相)은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나’라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경전 ‘쌍윳따니까야’에 이런 표현이 곧잘 등장합니다.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
여기서 ‘나’는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드러난 나의 모습,
즉 인상(人相)을 말합니다.
현재 내가 나를 인식하고 있는 모습은 사람의 형태입니다.
‘나의 자아’는 내 깊은 의식 속에 스며있는, 주관적으로 형성돼 있으면서
현재 알지 못하고 있는 ‘자아의식’, 즉 아상(我相)을 말합니다.
왜 ‘나’를 이렇게 ‘객관적인 나’와 ‘주관적인 나’로 구분지어 언급하는 걸까요?
우리의 존재방식은 명색(名色)입니다.
즉 의식[마음/명名]과 육체[물질/색色]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명색 전체로써 지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상(人相)입니다.
이 인상이 나의 깊은 의식 속에 내가 알고 있는 ‘나’라는 정보로 심어지고[형성되고] 있고,
이렇게 심어진 정보는
현재 내가 일으키는 마음작용을 물들이는[형성하는] 정보(업력業力)로 작용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인상은 깊은 의식에 심어지면서 훗날 미래의 나를 복원시키려는
아상으로써의 잠재된 끌림으로 작용합니다.
12연기의 2번째 ‘행(行)’은 ‘형성’으로 번역하는데, 3번째 ‘식(識)’을 물들이는
잠재적 충동력인 셈입니다. 이 형성으로 말미암아 물든 식(識)이 있게 되고,
이 식의 물듦이 인연의 끌림으로 작용하여 태(胎)에 들게 되고, 그렇게 하여
이 세상에 육체와 정신이 결합된 ‘명색(名色)’의 존재방식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사람이기에 인상(人相)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각각의 생명체가 스스로를 지각하는 지능이 있다면 자신의 현재 모습대로
자신을 지각하게 되겠죠. 그래서 인상은 객관적 자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12연기(緣起)에 대한 언급이 나왔으니,
금강경의 사상(四相)을 계속해서 12연기법에 견주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12연기는 첫 언급의 시작을 ‘무명(無明)’으로 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착각과 오류가 일어나는 것은
‘알지 못함’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윤회(輪廻)라는 변화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의
모든 존재의 생성과 소멸은 단지 그 흐름의 한 단면이고 한 현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현상, 즉 '성(成) ⦁ 주(住) ⦁ 괴(壞) ⦁ 공(空)',
'생(生) ⦁ 노(老) ⦁ 병(病) ⦁ 사(死)', '생(生) ⦁ 주(住) ⦁ 이(異) ⦁ 멸(滅)' 등
그 어떤 것도 흐름에서의 변화의 모습들이기에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며
잘못된 현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입맛대로 왜곡해서 보는 그릇된 견해가 있어서 결국 마음에 괴로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릇된 견해는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일까요?
12연기에서 첫 번째 ‘알지 못하는 상태’, 무명(無明) 상태임을 전제(前提)로 하면서
두 번째로 언급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업(業)이 있습니다. 업은 ‘행위’에 대한 ‘정보(情報)’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업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구분해서 언급합니다.
‘심어지는 업’과 ‘제공되는 업’입니다.
심어지는 업은 ‘정신의식에 의해서 깊은 의식으로 가는 업’이고,
제공되는 업은 ‘깊은 의식에서 정신의식으로 가는 업’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업(業)은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지금 나의 의식[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정신의식은 ‘인식’과 ‘반응’을 합니다.
이 인식과 반응은 식(識)이 일으키는 움직임, 즉 행위입니다.
그 행위를 세 가지로 구분하여 정리합니다.
정신적 행위, 언어적 행위, 신체적 행위가 그것입니다.
이를 삼업(三業)이라고 합니다.
행위는 사라져도 행위에 대한 기억은 남게 됩니다.
행위는 정신의식이 일으키고, 그 기억은 깊은 의식에 저장 됩니다.
이 저장되는 업(業)을 ‘심어지는 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신의식에 의해서 일어난 행위, 즉 업[삼업]이 있고,
그 업이 깊은 의식에 저장되는 것입니다.
이 저장된 업은 언젠가 다시 정신의식에 제공되어
인식과 반응이라는 식(識)의 활동을 제약하고 구속하는 요인(要因)으로 작용합니다.
이를 업력(業力)이라고 하며
12연기의 두 번째 ‘행(行)[’형성‘이라고 번역]으로 언급되어 집니다.
이 2번째로 언급되는 행(行)으로 말미암아
‘나’라고 여기는 자아의식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를 아상(我相)이라고 하며,
인상(人相)이 가미(加味)된 자아의식[12연기의 3번째 ‘식(識)’]입니다.
인간으로 살면서 심어진 자아에 대한 정보[심어진 인상(人相)]는
사람이라는 정보가 많이 들어 있겠지요. 이렇게 인상(人相)이 가미된 아상(我相)에는
자신의 옛 모습을 복원시키려는 끌림이 있게 되고,
이 끌림은 자연스럽게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태(胎)와 인연되게 합니다.
그래서 육체와 결합된 존재방식으로 생겨나게 되는데,
이를 불교적 표현으로는 ‘명색(名色)’[12연기의 4번째]이라고 합니다.
성장하여 인식을 할 즈음부터 현재의 나의 모습을 ‘나’라고 알게 되는데,
이를 인상(人相)이라고 합니다.
의식 속에 심어지는 나에 대한 정보가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생겨난 물질적인 몸에는 대상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감각기관이 있습니다.
이를 육근(六根)이라고 합니다.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 의(意)가 그것입니다.
이 감각기관에 의해 내 안에 들어온 대상의 정보가 있습니다.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觸) ⦁ 법(法)이라는 육경(六境)입니다.
이 육근에 의한 육경이 나의 정신의식에 들어온 대상에 대한 정보인데,
이를 ‘육입(六入)’[12연기의 5번째]이라고 합니다.
이 육입에 의한 정보에 정신의식이 주의를 기울이면
비로소 접촉이 일어나고[12연기의 6번째 ‘촉(觸)’], 이로 인하여
느낌[12연기의 7번째 ‘수(受)’]이라는 의식작용이 비로소 일어나게 됩니다.
이 느낌에 영향 받아서 ‘개념적인 지각’이 일어나게 되는 데,
소위 입맛에 따른 왜곡된 인식입니다. 그 인식에는 자아를 충족시키려는
욕망[12연기의 8번째 ‘애(愛)’]이 있습니다. 그 욕망으로 인해
대상에 대한 나의 반응은 집착[12연기의 9번째 ‘취(取)’]으로 전개되어집니다.
여기서 질문을 볼까요. 중생상(衆生相)을 물으셨죠?
현재 나의 마음 작용에는 욕망과 집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내 마음은 들뜨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이를 괴로움이 있는 상태라고 하는 것이죠.
이렇듯 현재의 나의 마음은 애(愛)⦁취(取)가 들끓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경계에 따라서 마음이 동요(動搖)하고 있는 모습을
‘중생상(衆生相)’이라고 하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자기 충족을 위한 자기 본위로 세상을 살면서
내 의식에는 ‘나라는 자아의식’이 점점 자라게 되고, 내가 지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계속해서 유지 ⦁ 보존하려는 근본 욕망 또한 강성해지게 됩니다.
이를 사상(四相) 중의 마지막 ‘수자상(壽者相)’이라고 하며,
12연기의 10번째 '유(有)'를 수호(守護)하려는 욕망입니다.
이 유(有)는 ‘존재한다는 자아의식’으로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나는
애(愛) ⦁ 취(取)라는 중생심(衆生心)에 의해 덧씌워지고(업데이트되고/형성되고),
이렇게 덧씌워져 심어진 변화된 자아의식은 앞으로 대상을 접촉함으로써
일어나는 마음을 왜곡하는 형성의 업력(業力)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무명으로 시작하여 물든 인식이 일어나는 존재의 상태를 해결하지 못하면,
(금강경의 사상(四相)에 빗대어 말하자면)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을 해결하지 못하면,
윤회(輪廻)의 흐름 속에서 여전한 끄달림에 의한
'생(生)'[12연기의 11번째]이 있게 되고, 이 태어남으로 인해 갖가지 괴로움의 증상인
'노(老) ⦁ 사(死) ⦁ 우(憂) ⦁ 비(悲) ⦁ 고(苦) ⦁ 뇌(惱)'[12연기의 12번째]
또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질문은 간단한데, 언급하다보니 말이 길어지고, 내용 또한 다소 난해(難解)해 졌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성철(性徹) 스님께서는
“금강경의 사상(四相)을 ‘주관’, ‘객관’, ‘공간’, ‘시간’으로 풀이하셨다.”고 하십니다.
이는 스님의 맏 상좌인 천제스님께서 알려주신 내용입니다.
이를 빗대어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상(我相)은 깊은 의식에 심어져 있는, 근원적인 자아의식으로 ‘주관적인 나’입니다.
이것이 제공되는[형성] 업 속에 깃들어 있어 의식을 물들입니다.
--<3번째 ‘식(識)’, 에고의 출현 >
⦁인상(人相)은 명색(名色)이라는 존재방식으로 있는 동안 자신을 지각하는,
현상적인 자아의식으로 ‘객관적인 나’입니다. --<4번째 ‘명색(名色)으로 느끼는 나’>
⦁중생상(衆生相)은 현재 나의 내면이라는 공간[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아를 기반(基盤)한 중생의 모습(마음작용)입니다. --<8번째 ‘애(愛)’⦁9번째 ‘취(取)’의 발현>
⦁수자상(壽者相)은 자아를 영속(永續)시키려는
시간적인 측면에서의 욕망의 모습입니다. --<10번째 ‘유(有)’의 수호(守護)>
평소 금강경의 사상(四相)을 12연기(緣起)와 연결하여 사유(思惟)하곤 하였는데,
질문 덕분에 글로써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공부 수행하는데 좋은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 비구 일행日行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