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의식 - 이스라엘 민족이 지켜온 초막절은 추수가 끝나고 곡식을 곳간에 저장하고 지키는 절기이므로 수장절 이라고도 합니다. 이 절기에는 모든 가족과 종들 그리고 레위인, 외국인 고아와 과부등 모두가 함께 모여 잔치를 엽니다(신 16:14) 빈부의 차이나 계층의 차이가 없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되는 의식입니다. 신약의 초대교회는 애찬을 통하여 서로 하나되는 좋은 전통이 있었습니다. 추석의 큰 의미는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가족 공동체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육적 의미 - 초막절은 출애굽후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며 후대들을 교육하는 절기입니다. 그들은 매년 7월 15일이 되면 집을 떠나 들에 나와 나무를 엮어 초막을 짓고 칠일간 머므르면서 조상들이 광야에서 겪었던 경험을 후대들이 경험합니다. 우리들도 오늘의 역사를 이루기까지 선조들이 살아왔던 고난과 빈곤의 삶을 돌아 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감사의 훈련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30년간 노예생활을 청산하게 하고 홍해를 건너 광야 40년을 지나오는 동안 먹을 양식을 주시고 물을 주시고 온갖 질병에서 지켜주시며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면 한발자욱도 전진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우리도 지난 일년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는 자세는 너무도 진지하고 엄격함으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의미없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명절 또는 연휴를 맞아 휴양지로 떠나는 명절 또는 조상을 숭배하는 명절로 의미가 잘못 지켜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제사의 역사 - 세계에 많은 민족이 있지만 제사를 지내는 민족은 몇나라 밖에 없는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일부 국가입니다. 고대 중국의 제사 기록에는 처음에는 부모에게 제사 지낸 것이 아니요 뛰어난 업적을 남긴 황제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황제밑에 소국가의 제후가 생겨나고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자 평민들까지 왕의 조상도 훌륭하냐 우리의 조상도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제사가 확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고구려 시대에 모든 왕이 아닌 특별한 업적을 남긴 왕에게 제사지낸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시대 고려 시대에 불교가 성행하였어도 제사를 지낸 일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불교국가에서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데 절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초기 우리나라 무속과 불교가 섞여서 생긴 특이한 현상입니다. 그후 조선이 건국되면서 이태조는 나라의 종교를 고구려 불교로 부터 성리학을 중심한 유교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에 덕망이 높은 사람에게 제사지내던 풍습을 덕을 쌓으라는 의도에서 일반백성 에게 장려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의 근본은 중국에서 들여 온 것을 우리나라에서 잘못 정착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교문화는 우리 것이요 기독교는 외래의 것으로 받아들이나 불교는 인도에서 유교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제사 지내게 된 동기는 중국이나 우리나라가 공통적으로 왕이나 제후 또는 특별한 충신 에게만 한정되었습다. 그러나 후대에 제사를 지내야 훌륭한 가문이 될 수 있다는 조상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의 유익에서 발단되었습니다.
천주교와 제사 - 천주교가 처음 전래되었을 때는 조상숭배를 금해야 한다고 했으나 1939년 로마 교황 피우스 12세의 교서를 통해 유교의 조상숭배는 종교적 의식이 아니요 시민적 의식이라 하여 1940년 한국 천주교도 신사 참배나 조상숭배는 시민적 의식이라고 표명했습니다. 이런 교황의 교서 배경에는 일본의 압력에 의해 이탈리아가 협조했다는 정치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시대의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없음을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효도와 제사 - 기독교의 효도는 살아계실 때 잘 모시고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의 제사는 그 배경이 효도라기 보다는 신앙적 의미가 다분히 큽니다.
(1) 제사는 숭배의 형태입니다 - 경배와 대상은 하나님 뿐입니다. (2) 재앙을 면하는 수단입니다 - 묘자리를 잘 써야 후손이 복을 받는다. 제사를 지내야 조상이 후손을 재앙에게 막아주고 복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 뿐이요 재앙을 막은 분도 하나님 뿐입니다. (3) 조상을 귀신으로 여깁니다 - 조상귀신이 구천을 떠돌다가 자손이 제사 드리면 제사밥 먹으러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귀신을 모시고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잘못입니까?
이상의 세가지 동기에서 볼 수 있듯이 제사는 부모에 대한 효도의 차원이 아니요 가문이 잘되고 후손이 복을 받으려는 단순한 기복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존재도 인간에게 복을 내릴 수 없고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죽은 자와 산자는 대화할 수 없기에 죽은자는 인격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효도의 차원이 아니요 신앙적인 단계로 넘어서서 의미가 잘못 전달되고 있으며 이해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정말 효도한다면 추모예식으로 모이고 돌아가신 분을 위해 무얼 하려고 살아계실 때 남기신 유언이나 평소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 결론 = 명절은 살아계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절기요 형제가 모여 햇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애찬을 나누며 하나가 되는 절기요 그래서 가족의 힘을 하나로 모아 가문을 지키고 행복한 가정 감사가 넘치는 가정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제사는 언제고 용납할 수 없고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좋은 계절에 자주 만날 수 없는 가족들을 만나 세상풍습과 허례허식에 마음 뺏기지 말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을 보이며 전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지를 깨우치고 어둠을 밝히어서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성도의 가정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