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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할아버지의 전쟁이야기/솔방울 (전쟁이 벌어진지 오래 되어서 이젠 증조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되는 군요. 빨리 통일이 되어야할 텐데 말이죠... 점점 더 잊혀지는 듯 해요.)
"뒤뚱뒤뚱! 할아버지 궁뎅이는 오리 궁뎅이래요."
"현아, 그러면 못써."
"허허! 어멈아 그냥 놔 두거래이."
내가 다섯 살 때 증조할아버지가 절룩거리며 걷는 모습을 흉내 내다 엄마한테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증조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부상을 입었다. 할아버지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보다 짧아 발뒤꿈치를 들고 발가락 끝으로 걸었다. 이제 4학년이 된 나는 왜 할아버지가 다리를 절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반친구들한테 증조할아버지에 대해 말하기도했다.
"증조할아버지란 말이야. 어떤 할아버지를 말하는지 알아?"
아이들은 내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
"내 참! 한심하긴. 말해 줘 말어?"
"야, 치사하다 치사해. 너희 집에는 할아버지가 두 명이란 걸 알아."
빈이가 약이 올라 말했다.
"그래, 알았어. 말해 줄 게. 증조할아버지란 아빠에 아빠의 아빠야."
"뭐 그리 복잡해?"
찬이도 거들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할아버지의 아버지란 뜻이지. 그건 그렇고 오늘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6.25 참전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는데 너희들 우리집에 갈래?"
"우와! 나도 갈래! 재미있겠다."
승철이가 잴 먼저 끼어 들었다.
"가똑똑이 넌 좀 빠져주라."
찬이가 늘 잘 난 척하는 승철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누구 희망자 또 없어?"
몇몇 친구들이 더 가겠다고 나섰다.
아이들은 전쟁이야기에 호기심도 있지만 고층아파트 한가운데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더 궁금했을 지도 모른다.
방과 후 친구들이 증조 할아버지댁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증조할아버지는 뒤뜰 감나무 밑 평상에서 새끼 줄을 꼬고 있었다.
"증조할아버지, 핵교 댕겨왔습니다."
나는 할아버지 말을 흉내 내며 학교 다녀왔다고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요새 누가 새끼줄을 쓴다고 새끼를 꼬세요?"
"오냐, 핵교 댕겨 온 겨? 줄다리기는 새끼줄로 해야 제맛이 나는 기라."
증조할아버지는 새끼를 꼬아 통일이 되면 남북이 함께 화합해서 줄다리기를 할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손에 침을 "퉤퉤!" 뱉어가며 새끼줄을 꼬았다. 증조할아버지 손이 무척 빨라 새끼 줄 꼬리가 뱀이 또아리를 튼것처럼 증조할아버지 뒤에 쌓여있었다. 아빠는 지방대학으로 지원해서 증조할아버지댁에서 함께 살게 되어 작년에 전학을 왔다. 증조할아버지댁에는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엄마 아빠와 나, 이렇게 사대가 살고 있다.
"우와! 집 멋지다."
친구들이 떠들어 댔다.
"애들아! 여기 좀 와 봐. 감나무도 있고 은행나무 밑에 우물도 있어."
찬이가 마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소리 질렀다.
"증조할아버지! 오늘 학교에서 증조할아버지가 전쟁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자랑했더니 친구들이 몰려 왔어요."
"안녕하세요? 증, 증조할아버지."
"야, 너희들 증조할아버지 발음도 못 해? "
"허허, 그려, 우리 현이 친구들도 왔는겨? 어서 오거라."
"증조할아버지, 얘는 내 짝 빈이에요."
"안녕하세요? 증조할아버지."
"오냐, 훤하게 생겼구나."
"얘는 찬이고 얘는 우리 반 반장 승철이에요."
"안녕하세요. 증조할아버지."
찬이와 승철이는 큰소리로 인사를했다.
"다들 똑똑하게 생겼구나."
"참, 증조할아버지, 승철이 아빠는 군인이에요."
"그려,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구나."
"야! 너거들 우리 증조할아버지도 소대장이셨던거 알지? 증조할아버지, 제가 막 자랑했어요."
"허허, 녀석! 어서 앉거라. 배고프제?"
"네, 증조할아버지!"
아이들은 합창으로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안채를 바라보시고 큰 소리로 말했다.
"어멈아! 텃밭에서 딴 수박 좀 가오거라."
"네, 할아버님!"
엄마가 먹음직스럽게 익은 수박을 한 쟁반 가져왔다.
"와! 맛있겠다."
"이게 증조 할아버지가 직접 가꾸신 무공해 수박이야."
"잘 먹겠습니다."
"히야! 정말 꿀맛 같네."
아이들은 쟁반속으로 들어갈 정도로 머리를 디밀고 수박을 서로 많이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수박 한 쟁반을 다 먹어 치웠다.
"할아버지, 이제 전쟁이야기 해주세요."
"그려! 그려!"
아이들은 무릎을 끌며 할아버지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너거들 오늘이 6·25날인 줄은 알고 있는 겨?"
"네, 할아버지."
"한국전쟁은 언제 난 줄은 알고 있고?"
"네, 1950년 6월 25일이에요."
"허허! 잘 알고 있구나."
"그럼 올해가 몇 주년이 되는지도 금세 알것제?"
"네, 64주년요. 할아버지."
속셈학원에 다니는 빈이가 얼른 대답했다.
"허허, 그렇구나. 벌써 64년이나 지난 겨. 이 이야기는 이 할애비가 22살 때 이야기야."
할아버지는 그때를 연상하시는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햇빛이 따가워 무척 더웠지만,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서 감나무 밑 평상 위는 시원했다. 감나무에서 매미가 "매앰 맴!" 울어댔다. 할아버지 이야기에 반주를 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현이 할아버지가 막 태어났을 때였지. 그 전쟁을 6·25 사변이라고 했는디 지금은 한국전쟁이라고 하제?"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잊혀져 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씀하셨다. 그 전쟁은 김일성이가 남쪽까지 차지하고 싶어 일으킨 전쟁이며, 그 처참한 일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전쟁으로 인해 우리 국군과 민간인이 약 200만 명이나 죽거나 다친기라. 생사를 모르는 사람도 있고."
"와! 그렇게나 많이요?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할아버지."
친구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뿐만 아니야. 북한군도 350만이나 죽었대."
"그려, 승철이라고 했나? 군인아들 답구나."
"그래서 이산가족이 많이 생겼대요."
"야! 할아버지 말씀하시는데 자꾸 끼어들래?"
빈이가 짜증 섞인목 소리를 했다.
"허허 괜찮어. 할애비 숨차는데 승철이가 알고 있는 만큼 말해 보거라."
"안 돼요. 할아버지!"
나는 승철이 말을 가로 막고 나섰다.
"친구들끼리 그러면 못쓴다."
"한국전쟁이야기 울 아빠한테 들어 알고 있단말이야."
"좀 아는 척하지마. 알고 있으면서 뭐하려 왔니?"
찬이도 한마디 거들었다.
"허허! 고놈들 봐라. 친구 말을 들어주는 것도 중요한기라. 친구를 소중히여겨야 혀."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그려, 그러면 이 할애비가 계속하마."
"물론 실종된 사람 수에는 어딘가에 살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시체도 못 찾은 죽은 사람이라고 보면 될 거여. 우리 쪽보다 인민군의 피해가 더 심했지. 승철이가 말했듯이 북한군뿐만 아니라 북한 민간인 하고 보태서 약 350만이나 죽거나 다친기라."
"김일성이는 나빠요. 벌 받아야해요. 증조 할아버지."
찬이가 큰소리로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그려, 사람 욕심 때문에 애매한 사람들이 죽은기라.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목숨은 귀한 거란다."
"맞아요. 증조할아버지. 하지만 우리국군과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친게 불쌍해요."
빈이는 우리 국군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콜록콜록!"
현이는 얼른 물 컵을 할아버지께 드렸다.
"고맙구나."
증조할아버지는 물을 한모금 드시고 기침이 잦아들자 계속 이야기를 하셨다.
"북한군의 피해는 우리 쪽의 두 배에 가까운 숫자였어요."
"또 끼어든다."
승철이가 아는 척하자 찬이와 빈이가 가로막고 나섰다.
"그뿐만이 아니여. 우리 종족끼리 일으킨 전쟁 때문에 죄 없는 세계 젊은이들이 많이 희생한 거여. 연합군이 약 50만 명이 희생되었고, 중국 인민군은 약 100만 명 이상이었제 아마……"
천문학적인 숫자가 죽거나 다치거나 실종되었다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정말 슬픈일이네요. 할아버지."
"가슴이 아파요."
"끔찍한 일이네요."
아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근데 할아버지, 그 많은 숫자를 어떻게 다 기억하실 수가 있어요?"
아이들은 증조할아버지의 기억력에도 놀라워했다.
아이들이 감탄하자 나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군인이었던 이 할애비와 친척이자 동갑내기 절친한 친구는 군대 말기 휴가를 함께 나와 있었는데 전쟁이 난기라. 친구와 나는 부랴부랴 귀대했던기라. 동네 젊은이들 모두가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오로지 한가지 신념과 충성으로 전쟁에 나갔어. 우리는 곧바로 전쟁터로 나가서 젊은 혈기로 겁없이 총을 들고 싸웠지. 시체를 밟고 지나가기도 했어. 내가 총을 쏘지 않으면 내가 죽기 때문에 죽기 아니믄 살기로 무조건 총을 갈겨 댄 거여. 우리가 쏜 총에 맞아 낙엽처럼 적군이 쓰러진 겨. 그중에는 부상당한 적군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걸 총을 싸 죽이기도 했어. 정말 끔찍한 일이었제."
"할아버지도 총을 쌌단 말이예요?"
"북한군 몇 명쯤 죽였어요? 쏠 때마다 다 맞췄어요?"
"무섭지 않으셨어요? 총 이름이 뭐였어요?"
남자 아이다운 질문공세를 해댔다.
"우리 아빠도 총 잘 쏘시는데."
승철이는 못 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려, 의련하시겠어요? 대령님!"
승철이 아빠가 무궁화 세개라서 대령이기 때문에 자신도 대령 대접을 받아야한다고 학교에서 으쓰대기도 했다.
"허허, 그만하거라. 친구를 자꾸 놀리면 못쓰는기라."
"승철이가 자꾸 나서잖아요."
이번엔 현이도 참다 못해 한마디 했다.
"그래도 친구끼리 잘 지내야 하는기라. 너거가 자꾸 그러면 할배 더 이야기 안할기다."
"아,아니에요. 안그럴게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물을 한 모금 드시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때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이 있었어."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은 공비를 소탕하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했다.
1951년 2월 그해 겨울, 지리산에 숨어 있는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한 목적으로 많은 양민을 한꺼번에 총살했다고 말씀하셨다. 누가 공비인 줄 모르니까 무조건 잡히는 대로 끌어다가 죽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고 우리 아군이 죽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단다.
"하지만 그러는게 아니었어. 민간인을 죽였다는 것은 엄청난 실수였지. 나는 그 작전에 참여한 걸 무척 후회했던 기라."
아이들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때 공비 대작전에서 수 백 명의 공비를 대적하는 우리 군인은 숫자적으로 밀리고 있었어. 이 할애비가 우리 소대를 이끌고 있었던 겨. 할애비의 작전에 공비들을 소탕했지만, 민간인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승리의 기쁨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는데, 부상한 적군 한 명이 총을 난사했던겨."
증조할아버지는 그 끔찍한 일이 기억 나시는지 머리를 크게 한 번 흔들었다.
부상당한 다리에 통증이 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총탄에 할애비는 다리 부상을 당하고 아군이 몇 명 죽고 말았어. 살아남은 우리 소대원들은 부상 입은 나를 업고 산을 내려오며 시체들을 밟을까 봐 발을 옮겨 놓기가 무서울 정도였어. 인산인해였제. 정말 끔찍했던기라."
"할아버지 많이 아팠겠어요. 근데 인산인해가 뭐예요 할아버지?"
빈이가 질문하자 현이가 이번에는 아는 척을 했다.
"인산인해란 사람이 산과 바다를 이룬다. 즉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는 뜻인기라."
현이는 할아버지 말을 흉내내며 말했다.
"현이 너는 왜 끼어 드는데?"
승철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히히! 미안미안."
전쟁터에 나갈 때 할아버지와 친구는 서로 약조를 했다고 했다.
"영호 자네 꼭 살아남아야 혀. 고향에서 봄세 "
"영웅이 자네도 꼭 살아남아야 혀. 살아서 우리 엄니와 아버지 그리고 태어날 아기를 꼭 보살펴 주게나. 부탁하네."
"할아버지 이름이 영웅이에요? 와! 이름 멋지다."
찬이가 말했다.
"우리는 두 손을 꼭 붙잡고 서로의 가족을 부탁하며 전쟁터로 나갔제."
둘 중 살아남은 사람이 두 가족을 책임지자고 굳세게 약속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헤어진 뒤 친구는 포로로 잡혀 북송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살아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는 기라.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는 희망이 있으니께 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나무 사이로 떠가는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셨다.
"저 구름이 북쪽으로도 가것제?"
할아버지는 혼잣말처럼 하시며 친구를 그리워했다.
"내려오다 다행히 연합군을 만나 할아버지를 의료원으로 보내 치료를 받은 겨. 이 흉터가 그때 입은 부상인 기라."
증조할아버지는 아픈 다리를 쭉 뻗어 무릎을 보여 주었다. 아직도 총구멍 흉터가 뚜렷이 남아 있었다. 나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증조할아버지의 다리를 만져 보았다.
"우리 현이, 할아버지 이상하게 걸으니 우습제?"
"아니에요.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얼마나 영광스러운데요. 이제 할아버지 걷는 흉내 절대 안 낼 거예요."
현이는 어릴 때 할아버지 흉내 낸 것이 부끄러웠다.
증조할아버지는 그 끔찍한 일을 평생 잊지 못하고 지금도 악몽을 꾸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집에 오니 온 동네는 불타 버렸고 완전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할아버지 집에는 울창한 큰 대나무밭이 있어 할아버지 가족과 친구 가족은 대나무밭에 땅굴을 파고 숨어 있었다고 했다.
"연기가 나면 안 되니까 밥을 해먹을 수도 없었던기라. 생보리 쌀과 생쌀과 물, 소금으로 연명했지."
"뒷동네에는 아이를 데리고 숨어 있다가 하필이면 적군이 지나갈 때 아이가 배가 고파 우는 바람에 들켜 다 총살을 당하고 말았어."
아이들은 자신들이 들킬까 봐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때 현이 할아버지가 돌이 막 지났을 때인데, 행여나 울지나 않을까 현이 증조할매가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던지 몰랐던 기라."
"아기가 울지 않았네요. 어휴! 정말 다행이다."
친구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가 한숨을 내 쉬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친구와 헤어질 때의 약속을 꼭 지키리라 맹세했다고 했다.
친구 부인은 그 당시 임신하고 있었는데 돌아오니 벌써 아기가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고 했다.
"현이 할아버지보다 한 살 아래 아들이었어. 그 전쟁통에 대나무밭 동굴 속에서 아기를 낳았던 기라. 애비도 없이 자라 내 아들처럼 똑같이 키웠제."
그분이 바로 현이 작은할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
"햐! 진짜 작은할아버지가 아니고 증조할아버지 친구분 아들이었어요?"
"그려, 앞으로 작은할아버지한테 더 깍듯이 대하거라."
"와! 증조할아버지 멋지시다."
할아버지 친구 부인이 작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증조할아버지가 돌보셨다고 했다.
그 할머니는 몇 년 전부터 치매를 앓아 증조할아버지만 보면 어린아이처럼 울었다고했다. 정신이 들면 통일이 언제나 될 련지 걱정을 했단다.
"그 할머니도 불쌍한 기라. 평생 할아버지도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며 외롭게 사시다가 돌아가셨제."
전쟁이 끝난 뒤, 공비소탕작전에서 공을 세운 게 인정이 되어 증조할아버지한테 나라에서 훈장을 수여 했단다. 할아버지는 방으로 가셔서 장롱속에 깊숙히 간직하고 있던 무공훈장을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다.
"와! 멋지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훈장을 만지며 신기해했습니다.
"할애비는 이 훈장과 친구랑 바꾼기라."
그때 엄마가 참외를 가지고 오셨다.
"할아버님, 목타시는데 시원한 참외 드시고 하세요."
"오냐, 너거들도 묵거라."
"네 할아버지."
아이들은 긴장한터라 목이 말랐는지 서로 많이 먹으려고 쟁반속으로 달려 들었다.
"너거들도 혼자만 많이 묵고, 혼자만 잘하려고 친구를 소홀히 하고 이기주의적 생각을 하는 것 아이가? 친구에게 양보 할 줄도 알아야제."
"네, 할아버지!"
그때사 친구의 얼굴을 서로 바라보며 쟁반에서 떨어져 앉았다.
"할애비는 친구를 가슴속에 묻었어. 평생을 살아가는 데는 좋은 친구는 재산인기라."
이제 나는 더 이상 증조할아버지 전쟁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무공훈장을 내 손에 꼭 쥐어 주며 말씀하셨다.
"내 죽기 전에 통일이 되어 그 친구를 꼭 보고 죽으려고 했는데 통일이 더뎌 못 보고 가는구나. 우리 현이가 자라서 꼭 통일을 이루도록 하거래이. 그리고 친구와 하는 약속은 아무리 작은 거라도 꼭 지키는 게 사나이인기라."
"네, 증조할아버지."
"틀림없이 그 친구는 먼저 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기라. 내 얼른 가서 아들이 훌륭히 잘 자랐다고 말해줘야 하는 기라."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올해가 증조할아버지 1주기입니다. 현충일 날이나 연휴가 낀 휴일에는 대전 국립묘지 현충원 용사의 집에 증조할아버지를 뵈려간다.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 가족도 꼭 함께 간다.
증조할아버지는 친구 만나서 심심하지 않겠다. / 42매
잘 읽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가 증손주와 그 친구들에게 전쟁이야기를 해주는 이야기네요.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지요.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들려줄 필요도 있고요. 오늘이 6.25네요.
하지만 저쪽은 나쁜 적군. 우린 착한 아군 식의 편가름으로 끝나면 안 될 듯 해요. 전쟁은 정권이나 정치에 의해 양쪽의 선량한 시민들이 희생당하는 거니까요.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많아서 단편으로는 산만하게 보입니다.
친구분의 가족을 돌보는 이야기로 집중하면 좋을 듯 해요.
아니면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전쟁과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 전쟁으로 나누어서 중편으로 하시든지요. 양민학살사건. 전쟁 중 가족들의 위기상황. 할아버지의 부상씬 등이 다 각기 챕터로 될 수 있겠지요. 아이들의 게임 속 전쟁이야기도 따로 나올 테고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라고 했습니다로 자주 표현하셨는데 읽다보니 지루해지네요.
대화로 생생하게 살려주시든지 아니면 따로 할아버지의 회상씬으로 생생하게 보여주시든지 하는 게 나을 듯 해요.
기승전결 구조로 보면 할아버지의 이야기만 쭉 나열되기 때문에 갈등이나 위기감이 없어요.
지금 아이들의 생각과 할아버지의 생각이 대치를 하든지 아니면 할아버지의 전쟁 이야기 속에 위기감이나 갈등이 들어있든지 해야할 거 같아요.
현이가 친구랑 다툰다거나 해서 우정은 소중한 거야 하면서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도 괜찮을 거 같고요.
할아버지의 전쟁이야기 중간 중간 톡톡 끼어드는 녀석이 하나 있는 것도 좋겠죠? 아버지가 군인인 아이를 잘 이용하면 어떨지요. 아는 척 하기도 하고 뜬금없는 소리를 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지금은 이야기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어서 독자를 아이들로 생각했을 때 지루하게 느끼지 않을 까 싶어요. 현이의 반응이 일반 아이들과 좀 다른 거 같아서 더 그렇고요. 어릴 때부터 같이 증조할아버지와 자란 것도 아니고 작년에 합쳤다고 했는데... 아이답지 않게 애늙은이 같달까요. 현이도 착하고 증조할아버지도 교육적인 이야기만 해서 좀 심심한 기분도 들고요. 일단 전쟁이야기라는 자체가 좀 심각하고 어려우니 아이들 등장 분위기는 좀더 톡톡 튀었으면 좋겠어요.
잘 고치셔서 아이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줄 수 있는 전쟁이야기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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