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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를 위한 참여불교의 길 / 이병욱 | ||||
특집 | 촛불 이후, 한국사회와 불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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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그러면 이러한 촛불집회 이후에 불교계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주장과 대안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그 가운데에서도 ‘참여불교’에 주목하고자 한다. ‘참여불교’라는 용어는 베트남 출신의 승려 틱낫한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고, 틱낫한이 한국에 방문하면서 ‘참여불교’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참여불교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저술이 크리스토퍼 퀸 · 샐리 킹 편저 《아시아의 참여불교》이다. 여기에는 인도의 암베드카르, 태국의 붓다다사, 술락 시바락사, 티베트의 달라이라마, 베트남 출신 틱낫한 등의 사상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참여불교를 불교해방운동과 관련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불교해방운동은 구체적인 경제문제 · 사회문제 · 정치문제 · 환경문제를 극복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제시하는 이론이 불교적 이념과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참여불교는 불교적 이념과 전통에 근거해서 구체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불교계의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앞에 소개한 참여불교의 정의에 근거해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는 참여불교의 활동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려는 것을 포함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참여불교가 불교적 이념과 전통에 근거해서 구체적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면, 그 속에는 사회적 구조와 대중의 인식 때문에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촛불집회 이후 한국불교의 나아갈 길을 고민할 때에도 하나의 방안을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네팔 여성 찬드라는 1993년,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밥값을 내지 못해 무전취식으로 경찰서에 신고를 당했다. 경찰서에서는 외국인이어서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정신질환자라고 판단하고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다. 또 정신병원에서는 찬드라가 집에 가게 해달라고 아무리 매달려도 정신병자의 헛소리라며 귀담아듣지 않았다. 찬드라는 6년 4개월 동안 병원 두 곳과 부녀자보호소 한 곳을 거쳤고, 마지막 병원의 재활병동에서 의사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 의사는 찬드라가 네팔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주었고, 가족을 찾아주려고 노력하였다. 또 이 의사는 찬드라가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다. 찬드라는 2000년 3월에 병원에서 퇴원하고 같은 해 5월에 네팔로 돌아갔다. 찬드라를 돕는 단체들과 변호사가 찬드라를 대신해서 대한민국과 정신병원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하였고, 2년이 지난 뒤에 1심에서 위자료 2,86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찬드라가 겪은 고생은 본인이 작성한 진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레즈비언들은 프랑스에서 그 대안을 찾고 있다. 1999년 10월 13일 시민연대협약(PACS)이 프랑스 의회에서 통과되었는데, 이는 동성애 부부를 포함한 다양한 동거 형태의 합법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동성애를 포함한 다양한 가족들이 국민연금, 고용보험, 생활보호 등의 복지혜택과 각종 세금제도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② 그렇지만 불교의 사회참여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근대와 현대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식민지 시기에 불교에서 독립운동을 포함한 사회적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은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다. 또한 한용운은 일본강점기에 일어났던 반(反)종교운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이 반(反)종교운동은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 일으킨 것이다. 1985년에는 민중불교운동연합(민불련)이 출발하였고, 출가와 재가를 포함해서 모두 180명의 불교인이 발기위원으로 참여했다. 민불련은 정부 당국에 의해 불순단체로 지목되어 창립총회에 참여했던 105명이 연행되기도 하였다. 이 민불련에 의해 불교의 여러 사회변혁운동 세력이 하나로 묶이게 되었고, 그동안 논의 수준에 머물던 민중불교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 민불련이 1년 정도 지나서 세력이 쇠퇴하였고, 정토구현전국승가회(정토승가)가 민불련을 대체하는 단체로서 1986년 6월 5일에 창립되었다. 정토승가는 이후 불교계 민주화와 민중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980년 중반 이후 민중불교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해인사 승려대회’라고 할 수 있는데, 1986년 9월 7일에 해인사에서 2천여 명의 승려가 모여서 ‘불교의 자주화’와 ‘사회의 민주화’를 주장한 대회였다. 이러한 민중불교운동에는 성과도 있고 문제점도 있다. 성과로는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다는 점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문제점으로는 불교 이론의 해석에서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된 점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우선 도법은 승가개혁운동 결사체인 선우도량을 결성하고 이 단체를 통해서 조계종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하였다. 도법은 1998년 이후 실상사를 중심으로 해서 여러 대안운동을 일으켰다. 여기에는 귀농전문학교, 작은학교,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등이 포함된다. ‘귀농전문학교’는 1999년 3월 실상사가 소유한 농지 3만 평을 공동체의 토지로 기증해서 세워진 것이다. ‘작은학교’는 다양한 체험과 살아 있는 교육을 추구하는 대안학교이다. 그리고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1999년 9월에 설립된 불교 대안운동 단체이다. 법륜의 정토회는 불교환경교육원, 제이티에스(JTS), ‘좋은벗들’과 같은 사회참여기구를 움직이는 모집단이면서 공동체이다. 정토회에서는 일과 수행의 통일, 대중 주체의 공동체 실현, 무보수 자원활동 등을 추구하고 있다. 정토회는 순수 종교 공동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불교환경교육원’은 국내 최고의 환경 전문교육기관으로 인정받고 있고, ‘제이티에스’는 1991년에 설립된 국제 민간구호단체인데, 북한 구호활동도 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벗들’은 평화운동을 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도법의 ‘선우도량’ 등과 법륜의 ‘정토회’에서는 사회참여의 성격을 나타내면서도, 앞에 소개한 민중불교처럼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지 않았다. 이는 이론과 실천에서 균형이 잡힌 것이고 이 점에서 민중불교 운동보다 도법의 선우도량 등과 법륜의 정토회가 더 진전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 민중불교의 단점을 극복한 새로운 형태의 불교사회운동이 등장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자비는 사회적 약자(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 장애인을 포함)를 보호해야 한다는 참여불교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평등은 사회적 약자를 존중해야 한다는 참여불교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방편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존중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추어서 알맞은 방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참여불교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나아가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는 방편을 제시하는 것이 그 방편을 실행하는 당사자에게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수행이 된다. 다시 말하면, 《법화경》에 따르면 아무리 사소한 공덕도 결국에는 부처가 되는 길이므로,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게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비록 조그마한 공덕이라고 해도 이 또한 부처가 되는 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방편의 실천은 곧 수행의 길이 된다. 《승만경》에서 승만 부인은 10가지 큰 서원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① 계율을 범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 ②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 ③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 ④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 ⑤ 아끼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 ⑥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중생을 성숙시키는 데 재물을 사용하겠다는 것, ⑦ 애착함이 없는 마음, 번뇌에 물들지 않은 마음 등으로 중생을 포섭하겠다는 것, ⑧ 괴롭고 고통스러운 중생 등을 보면 편안하게 하고 도리[義]로 이롭게 하겠다는 것, ⑨ 잘못된 계율을 따르거나 계율을 범한 사람을 보면, 포섭할 사람은 포섭하고 굴복시킬 사람은 굴복시키겠다는 것, ⑩ 정법(正法)을 포섭해서 사라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①~⑤는 개인적 수행에 관한 내용이고, ⑥~⑩이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참여불교와 관련을 맺어볼 수 있다. 이상의 10가지 큰 서원 가운데, ⑥~⑧의 내용을 더 자세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⑦ 세존이시여! 나는 오늘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섭법(四攝法)을 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애착함이 없는 마음과 번뇌에 물들지 않는 마음[不愛染心], 만족함이 없는 마음[無厭足心], 걸림이 없는 마음[無罣礙心]으로 중생을 포섭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 ⑧ 세존이시여! 나는 오늘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만약 고독한 중생, 갇혀 있는 중생[幽繫], 질병에 걸린 중생, 여러 가지 재앙과 고난에 빠진 중생, 괴롭고 고통스러운 중생을 본다면 끝내 잠깐이라도 그냥 두지 않고 반드시 편안하게 하고 도리[義]로 이롭게 하여 여러 가지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한 뒤에 떠나겠습니다. 앞에서 《승만경》에서 제시하는 자비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법화경》에서는 자비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더 자세히 논하고 있다. 그것은 《법화경》 〈법사품〉의 《법화경》을 설법하는 자세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에서 잘 나타난다. 〈법사품〉에서 제시하는 《법화경》을 설법하는 자세는 자비심을 갖고, 인욕하는 마음을 내고, 모든 존재가 공(空)하다고 보며,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참여불교에 적용하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마음, 곧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고, 그리고 자비의 활동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더라도 인욕의 마음을 내고, 이러한 활동은 공의 지혜에 기초하고, 나아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법화경》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참여불교의 이념 가운데 하나이다. 이 내용에 대해 《법화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고 《법화경》의 〈비유품〉에서는 방편의 필요성을 비유로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불타고 있는 집에서 어린아이들이 놀이에 빠져서 위험한 줄 모르고 있으므로 아버지가 이 어린아이들을 구해내기 위해 방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방편은 원래 불교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이 방편이 참여불교 이념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존중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추어서 보호해줄 필요가 있다. 내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회적 약자가 실제로 보호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를 인격체로서 존중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보호하려는 방편의 정신이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도 《법화경》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참여불교의 이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위에서 《법화경》의 자비, 평등, 방편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원효는 《법화종요》에서는 《법화경》의 평등을 수용하면서, 방편에 대해서는 자신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방편의 정신이 방편을 실행하는 사람의 수행론이 된다는 것이다. 원효는 《법화종요》에서 일승의 인(因)으로서 두 가지를 제시한다. 그것은 성인(性因)과 작인(作因)이다. 우선, 성인(性因)은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 부처가 될 수 있고, 이러한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성인(性因), 곧 자기의 성품에 본래부터 간직하고 있던 원인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성인(性因)은 어느 한 중생이라도 가볍게 대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평등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나아가 인간존중 사고방식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 다음, 작인(作因)은 어떤 수행을 하든지 궁극에는 부처가 된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러 가지의 수행이 차별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승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여러 수행이 모두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인(作因)은 범부 · 성인(聖人), 불교와 불교 이외의 가르침, 출세간적인 영역으로 도를 닦는 것[道分]과 세간적인 영역으로 복을 짓는 것[福分]을 막론하고, 모든 선근이 수행자를 최고의 깨달음인 무상보리에 도달하게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방편은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추어서 보호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원효는 방편의 정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다양한 방편의 내용이 모두 부처가 되는 길이라고 한다. 이것을 참여불교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다양한 형태의 활동이 모두 부처가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이유로 당신은 사회에 참여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시민으로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불교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회에 참여하는 행위가 부처가 되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에 대한 《법화종요》의 인용문을 살펴보자. 2장에서는 사회적 약자(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 장애인을 포함)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대안을 검토하였다. 3장에서는 한국의 참여불교의 변천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서술하였다. 한국의 참여불교는 만해 한용운의 독립운동을 포함한 사회적 활동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참여불교의 맹아는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이후 해방공간에서 한용운을 따르는 참여불교 세력은 소멸하고 이 땅에는 변변한 참여불교 활동이 없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 민중불교 운동이 일어났다. 이 민중불교 운동은 명맥이 끊겼다가 다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불교사상의 이해에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한계점을 딛고 더 진전된 형태의 참여불교가 1990년대에 등장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도법의 선우도량 등과 법륜의 정토회를 거론할 수 있다. 도법의 선우도량 등과 법륜의 정토회는 사회참여와 불교사상을 균형감 있게 접목하였고, 이는 마르크스주의에 치우쳤던 민중불교보다 더 진전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법화경》에서는 자비, 평등, 방편을 제시한다. 《승만경》에서도 자비를 말하고 있지만, 《법화경》의 자비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 것이다. 그것은 자비에다 인욕, 공, 정진을 추가한 것이고, 이것을 참여불교에 적용하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비만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고, 인욕, 공의 지혜,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정진)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또 《법화경》에서는 모든 중생을 공경하는 상불경보살을 통해서 평등의 이념을 제시하는데, 이것을 참여불교에 적용하면 사회적 약자를 존중해야 한다는 참여불교의 이론적 근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법화경》에서는 방편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중생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추어서 가르침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참여불교에 적용하면,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추어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되고, 이러할 때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원효는 《법화종요》에서 《법화경》의 평등은 수용하였지만, 방편은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방편의 여러 가지 실천이 부처가 되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참여불교에 적용하면, 사회적 약자를 위해 그들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추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불교의 수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부처가 되는 수행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참여불교의 수행론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여불교는 근대와 현대에 들어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지만, 참여불교의 이념을 세우기 위해서 색다른 그 무엇을 찾을 것이 아니고, 우리의 곁에 가깝게 있는 불교 고전을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적 안목으로 불교 고전을 다시 해석하면, 말없이 진리의 길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 |
첫댓글 감사합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