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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戰 國 時 代
越(월)나라
춘추시대의 양자강 하류에 존재했던 나라로 吳(오)나라보다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
며 주왕조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았다. 왕성은 姒(사)씨 였는데 제33대 왕인 부담
이후는 확실히 羋姓(미성)이다. 하나라 6대 왕이었던 소강이 서자 無餘(무여)를 회계
에 봉하고, 하나라 시조 우임금의 제사를 받들기 위하여 봉했다고 한다.
1대 왕인 무여, 무여의 10여 대 후손인 무임, 무임의 아들인 무심이후 33대 왕인 부
담까지는 기록이 없다.
越 王 朝 世 家
春秋時代(춘추시대)
越(월) BC. 6세기이전∼BC. 306 위치 浙江省(절강성) 성: 姒(사) 또는 羋(미) 작위 자작
| 代數 | 在位期間 | 位 | 姓名 | 關係 | 首都 | 現地名 |
| 제1대 | 越侯(월후) | 無餘(무여) | 會稽(회계) | 浙江省 紹興 | ||
| 미상 | 절강성 소흥 | |||||
| 제11대 | 越侯(월후) | 無壬(무임) | ||||
| 제12대 | 越侯(월후) | 無瞫(무심) | ||||
| 미상 | ||||||
| 제33대 | BC. 565∼BC. 538 | 越侯(월후) | 夫譚(부담) | 무심의 자손 | ||
| 제34대 | BC. 497 | 越왕(월왕) | 允常(윤상) | 부담의 아들 | ||
| 제35대 | BC. 496∼BC. 464 | 越王(월왕) | 勾踐(구천) | 윤상의 아들 | ||
| 제36대 | BC. 463∼BC. 458 | 越王(월왕) | 鹿郢(녹영) | 구천의 아들 | ||
| 제37대 | BC. 457∼BC. 448 | 越王(월왕) | 不壽(불수) | 녹영의 아들 | ||
| 제38대 | BC. 447∼BC. 411 | 越王(월왕) | 朱勾(주구) | 불수의 아들 | ||
| 제39대 | BC. 410∼BC. 375 | 越王(월왕) | 翳(예) | 주구의 아들 | ||
| 제40대 | BC. 375 | 越王(월왕) | 諸咎(제구) | 예의 아들 | ||
| 제41대 | BC. 374∼BC. 373 | 越王(월왕) | 錯枝(착지) | 제구의 아들 | ||
| 제42대 | BC. 372∼BC. 361 | 越王(월왕) | 無余(무여) | 착지의 친척 | ||
| 제43대 | BC. 360∼BC. 343 | 越王(월왕) | 無顓(무전) | |||
| 제44대 | BC. 342∼BC. 306 | 越王(월왕) | 無彊(무강) | 무전의 동생 |
제1대 무여(BC, ?〜BC, ?) 하나라 왕인 少康(소강)의 서자라고 전해진다.
소강이 그를 회계 땅에 봉해 월나라가 건국되었다고 한다. 그는 구양씨의 시조로도 정
해진다. 그가 죽은 뒤 그 아들이나 동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기록이 없어 자
세한바는 알 수 없다. 그 뒤의 기록은 11대 군주인 무임부터 기록된다.
제11대 무임(BC, ?〜BC, ?) 아버지의 실전
《오월춘추》의 기록에 나타난다. 아버지인 실전이 죽고 그 뒤를 이었다. 그가 죽고 그 뒤
를 아들인 무심이 뒤를 이었다.
제12대 무심(BC, ?〜BC, ?)
《오월춘추)의 기록에 나타난다. 아버지 무임이 죽고 그 뒤를 이었다. 그가 죽고 그 자손
이 뒤를 이었다. 그리하여 33대인 부담 때까지 기록이 없이 이르게 된다.
제33대 부담(BC. ?∼BC. 538) 무심의 자손. 월왕 윤상의 아버지
아버지가 죽고 그 뒤를 이었다. 그가 죽고 아들인 윤상이 뒤를 이어니 그가 월왕 윤상이
다.
제34대 윤상(BC. ?∼BC. 538) 초대왕, 부담의 아들이자 구천의 아버지다.
월나라가 윤상때 부터 칭왕했다. 오왕 합려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였다. 이 당시부터 월나
라가 강성해지기 시작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정복 전쟁에 나서기 시작했고, 칭왕을 시
작해, 오나라와 본격적으로 사활을 건 전쟁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월나라왕의 관계는 본
격적으로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오왕 합려가 월나라를 두들기면서 충돌이 본격화되었고
윤상이 죽은 뒤 합려가 월나라를 치고 패해 그 부상으로 인해 죽게 되어 부차가 월나라
에게 복수하려는 원인이 된다.
제35대 구천(BC. 520∼BC. 464) 월왕 윤상의 아들이다.
월왕 구천 원년(기원전 496년), 아버지 윤상이 사망하자 태자로서 왕위를 이어받는다. 이
때 복상 중이었는데 윤상의 부고를 알게 된 오왕 합려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구
천은 결사대를 구성하여 맞서 싸우고, 한편 전장에서 월나라는 노역을 시키려고 끌고 온
사형수들에게 유족들에 대한 보상 등을 댓가로 집단 자살을 시켰고, 눈 앞에서 벌어진
난데없는 집단 자살쇼에 오나라 병서들이 어안이 벙벙해진 틈을 타 본대로 기습을 가했
다. 이 계책으로 檇李(취리)에서 오나라 군대는 월나라 군에게 대패하고, 결국 오왕 합려
는 화살을 맞아서 부상을 입어 이로 인해 진중에서 죽는다. 월왕 구천 3년(기원전 494년
오나라에서는 태자 부차가 오왕으로 즉위했으며, 오자서의 보좌를 받아 오나라를 부흥시
키고 부차는 구천에게 절치부심 복수심을 불태웠다. 이 소식을 들은 구천은 범려의 만류
에도 불구하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석매를 보내 오나라를 먼저 쳐들어갔으나 대패하여
오히려 월나라의 수도가 포위되고 말았다. 싸움에 크게 패한 구천은 얼마 남지 않는 군
사를 거느리고 會稽山(회계산)에서 농성을 하였으나 구천은 범려의 진언에 따라 부차에
게 항복하며, 부차는 이를 받아들였다. 충신 오자서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범려가
간신 백비에게 뇌물을 써서 백비를 통해 부차를 회유했기 때문에 구천은 항복하고 목숨
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왕이었던 구천은 오나라에서 부차의 하인 노릇을 하게 되었
다. 몇 년간 치욕을 겪다가 범려의 공작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월왕 구천 7년(기원전 487년), 범려의 공작으로 겨우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컽으로는
부에게 복속된 척 하면서, 은밀하게 오나라의 국력을 악화시키고 월나라의 국력을 키우
면서 복수를 다짐한다. 구천은 온갖 굴욕을 참으며 범려의 계책으로 오왕 부차에게 재물
과 미녀(서시)를 바치면서 부차가 향락에 빠지도록 만든다.오왕 부차는 서시와의 향락에
빠졌으며, 간신 백비의 말을 듣고, 명신 오자서가 자살하도록 만드는 등, 오나라의 정치
는 혼미해졌다. 결국 오왕 부차가 중원의 회맹에 나갔을 때를 노리고 구천이 오나라를
공격했다. 부차는 당황하여 오나라로 돌아와서 황급히 방어에 나섰지만 결국 패배하고
만다. 부차는 구천에게 전에 살려준 예를 들어 항복했다. 마음 약해진 구천은 순간 망설
였지만 범려가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하던 일을 잊어셨습니까!? 라며 진언하자 이
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에 자신을 살려쥤기 때문에 차마 죽일 수가 없었는지 백호의
장으로 봉하겠다고 제안한다. 부차는 자신이 늙어 군왕을 섬길 수 없다며 그 제안을 거
절하고 저승에서 오자서를 볼 낯이 없다며 고소산에서 얼굴을 가린채 자결했으며 오나
라는 멸망했다. 한때 패자의 위세를 떨치던 강성한 오나라는 고작 몇 년 만에 허무하게
멸망하였다. 오나라를 멸망시킨 구천은 중원의 제후들과 회맹을 하고 패자가 되었다.
구천은 복수에 성공하고 월나라의 전성기를 열었지만 그 역시 모략을 믿어 고난을 함께
했던 신하 범려를 떠나보내고, 명신 문종을 자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월나라 전성기는
길지도 않았고 구천도 오래가지 않아 병사한다. 구천의 사후 월나라는 쇠퇴하였으며 결
국 초나라에 멸망당하고 만다. 월나라는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姑蘇(고소. 浙江省
蘇州 절강성 소주)로 천도한다.
제36대 녹영(BC. ?∼BC. 458) 월왕 구천의 아들이며 월왕 불수의 아버지다.
범려와 문종의 도움으로 오왕 부차를 물리치고 오나라를 멸망시켜 패권을 잡은 월왕 구
천의 아들. 월왕 구천 33년(기원전 464년), 월왕 구천이 사망하자, 그 아들인 녹영이 뒤
를 이으니 그가 바로 월왕 녹영이다. 월왕 녹영 6년(기원전 458년) 월왕 녹영이 사망하
자, 그 아들인 불수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월왕 불수다.
제37대 불수(BC. ?∼BC. 448) 월왕 녹영의 아들, 월왕 주구의 아버지다.
월왕 녹영 6년(기원전 458년), 녹영이 사망하자 아들인 불수가 뒤를 이었다. 월왕 불수
10년(기원전 448년), 태자 주구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인 불수를 잔인하게 시해하고
그 뒤를 이었다.
제38대 주구(BC. ?∼BC. 411) 월왕 불수의 아들이며, 월왕 예의 아버지.
월왕 주구 34년(BC. 414년), 주구 35년(BC. 413년), 월왕 주구는 병사를 풀어 滕(등)나
라와 郯(담)나라 등 소국을 쳐서 병탄했다. 그리고 담나라 군주인 고를 포로로 잡았다.
월왕 주구 37년(BC. 411년), 주구가 죽고 태자인 예가 즉위했다.
제39대 예(BC. ?∼BC. 375) 월왕 주구의 아들 월왕 제구의 아버지다.
월왕 예 7년(기원전 404년), 월왕 예는 강성한 월나라의 힘을 믿고 齊(제)나라를 쳤다.
당시 繒(증)나라는 제나라만 믿고 월나라를 경시했다. 월왕 예는 거기에 분노해 증나라
를 쳐서 멸망시켰다. 월왕 예 20년(기원전 391년), 제나라 상국 田和(전화)는 제 강공을
외딴섬으로 보내고 자신이 제나라를 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왕 예는 거기에 간섭
하기 위해 출동했다. 그러나 전화가 신중히 대처하는 바람에 월왕 예는 이득을 얻지 못
했다. 월왕 예 25년(기원전 386년), 주 안왕은 전씨를 제나라의 후작에 봉했다. 한편 날
로 강성해 가는 초나라와 복수를 노리는 옛 오나라 귀족들의 자손들이 두려워 중원의
일에 간여하지 못했다. 월왕 예 33년(기원전 378년) 수도를 琅琊(랑야)에서 고소땅으로
옮겼다. 월왕 예 36년(기원전 375년), 동생인 공자 豫(예)가 왕위를 계승하고자 3명의
왕자를 살해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월왕 예에게 태자 제구를 제거하도록 부추켰다. 그
러나 월왕 예는 거절했다. 7월 태자 제구는 그 일로 두려움을 느끼고 공자 예를 치고자
궁을 포위했다. 그 중에 월왕 예가 살해 당했다. 그리고 월왕 제구가 즉위했다.
제40대 제구(BC. ?∼BC. 375) 월왕 예의 아들. 월왕 착지의 아버지
월왕 예 33년(기원전 378년), 월나라가 쇠락해 랑야(琅琊)에서 수도를 옛 오나라 땅으로
옮겼다. 월왕 예 36년(기원전 375년), 월왕 翳(예)의 동생인 豫(예)가 월왕 예의 3명의
아들을 죽이고 왕이 될 야심을 품어 태자 제구를 살해하라고 부추켰으나 월왕 예는 듣
지 않았다. 7월 태자 제구는 살해당할 것이 두려워 병사를 거느리고 공자 예를 몰아내
기 위해 왕궁을 포위했는데 그 여파로 월왕 예가 죽었다. 10월 월나라 사람들이 월왕
제구를 죽이고 그 아들인 착지를 왕으로 추대하니 그가 월왕 착지다.
제41대 착지(BC. ?∼B. 373) 제구의 아들이며, 월왕 무여의 친척
월왕 제구를 죽이고 그가 뒤를 이었으나 그도 금방 쫓겨났다. 월왕 예 36년(기원전 375
년) 7월 7일 태자 제구가 아버지 월왕 예를 죽이고 10월, 오나라 귀족들이 월왕 제구를
죽이고 월왕 착지를 옹립했다. 월왕 착지 2년(기원전 373년), 대부 寺區(사구)가 그를 몰
아내고 친척인 무여를 세우니 그가 월왕 무여다.
제42대 무여(BC. ?∼BC. 361) 월왕 착지의 친척으로 알려졌다.
그도 제위 12년 만에 살해당했다. 월왕 착지 2년(기원전 373년), 월왕 착지가 경대부 사
구에 의해 쫓겨나자 그가 왕이 되었다. 월왕 무어 12년(기원전 361년), 대부 사구의 아
우에게 살해당하고 그 아들인 무전을 월왕으로 추대했다.
제43대 무전(BC. ?∼BC. 343) 월왕 무여의 아들, 월왕 무강의 형
월왕 무전 대에 수도를 오에서 월나라의 근거지인 회계로 옮겼는데 그것이 월나라가 수
세에 몰렸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월왕 무전 18년(기원전 343년), 월왕 무전이 죽
고, 그 동생인 월왕 무강이 뒤를 이었다.
제44대 무강(BC. ?∼BC. 333) 월나라의 마지막 왕. 월왕 무여의 아들, 월왕 무전의 아우
월왕 무강 대에 그는 齊(제)나라와 楚(초)나라와 다투었다. 이에 齊 威王(제 위왕)이 월
왕 무강에게 사자를 보내 말했다. “월나라가 초나라를 치지 않으면 크게는 왕이 될 수
없고, 작게는 패자를 칭할 수 없소. 월나라가 초나라를 치지 않는 이유는 삼진이 돕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래서 월나라와 화친이 불가능하니 초나라에 집중하시오.” 월왕 무
강이 대답했다. “과인이 바라는 것은 실질적인 도움이 아니라 그저 허장성세만 해주기
를 바랄뿐이오. 그것만 해줘도 땅이 굴러 오는데, 그거 하나 못해준다는 말이오?”
제나라 사신이 제나라로 돌아와 제 위왕에게 보고했다. “월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이 실
로 천만다행입니다. 타국 사정은 훤하면서 근처의 사정은 모릅니다. 초나라는 이미 병력
을 분산시켰는데, 삼진에게 뭘 더해달라는지 모르겠습니다. 월왕 무강이 대책을 물으니
제나라 사신이 제나라 대신 초나라를 치라고 했다. 이에 월왕 무강은 그 말을 그대로 따
라 초나라를 쳤다. 그러나 楚(초)나라 威王(위왕)이 월나라를 쳐서 무찌르고 월왕 무강을
잡아 죽여(기원전 306년) 월나라는 완전히 초나라에 망해버렸다.
월나라의 수도 변천
越侯(越侯) 無餘(무여) 會稽(회계) 浙江省 紹興(절강성 소흥)
越王(월왕) 句踐(구천) 琅琊(랑야) 山東省 臨沂縣(산동성 임기현)
越王(월왕) 羿(예) 姑蘇(고소) 江蘇省 紹州市(강소성 소주시)
越王(월왕) 無顓(무전) 會稽(회계) 浙江省 紹興(절강성 소흥)
사료 출처
司馬遷(시마천)의 史記世家(사기세가)와 曾先之(증선지)의 十八史略(십팔사략)과 馮夢龍
(풍몽룡)의 東周 列國志(동주 열국지) 및 左丘明(좌구명)의 春秋左傳(춘추좌전) 그리고
司馬光(사마광)의 資治通鑑(자치통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