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시각장애인용 점자 메뉴판·출력기 만든 ‘모어앤모어’
- “시각장애인이 자유롭게 일상을 즐기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물리적·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메타버스, 인공지능 시스템이 도입된 스피커 등 다양한 제품이 생겨난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삶 속에서도 시각장애인은 여전히 불편함을 느낀다. 점자 메뉴판이 없어서 도움 없이는 음식을 주문할 수 없고, 점자 표기가 없어서 구입해야 할 제품을 구별하기도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과연 없는 걸까?’ 송유빈(경희대학교 미디어학과), 박민희(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두 동갑내기 친구는 함께 의문을 품었고, 그것은 스타트업 ‘모어앤모어’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쓸 수 있는 ‘모두의 메뉴판’과 휴대용 점자 출력기 ‘점점더’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모어앤모어’를 만났다.
Q. ‘모어앤모어’를 소개해 주세요.
A.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된 모어앤모어는 경희대학교 캠퍼스타운 입주 스타트업입니다. 2021년 7월 창업했습니다.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시각장애인이 약국에서 겪는 불편한 사례를 접하게 됐어요. 약 종류에 따라 복용 시간이 다른데도 약사가 시각장애인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봉투 끝을 접어주는 게 전부였지요. 일부 약 봉투에 찍힌 점자 또한 규격이 제각각이라 읽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하루하루 눈부시게 발전하는 세상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순간 ‘한글이나 입말을 점자로 번안하고 출력할 수 있는 기기가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번뜩였죠. 연구 끝에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쓸 수 있는 ‘모두의 메뉴판’을 개발했습니다. 또 휴대용 점자 출력기 ‘점점더’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Q. 어떤 제품인지 궁금합니다.
A. 기존의 점자 메뉴판은 종이를 눌러 점자를 찍는 방식이기에 몇 번 쓰고 나면 점자가 뭉개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시각장애인 손님이 적다 보니 어느 순간 점자 메뉴판은 가게에서 사라지기 일쑤고요. 일반 메뉴판과 점자 메뉴판을 합친 새로운 메뉴판을 디자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점자를 찍는 방식이 아닌 송진잉크를 덮어 씌우는 방식을 택해 점자가 뭉개지는 걸 방지했어요. 점자 출력기의 경우 이전 제품은 크고 무거워서 쉽게 점자를 찍어내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크기를 휴대전화 정도로 줄이는 한편,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해 입말을 즉석으로 점자 번안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점자로 된 문장을 출력해 라벨지에 찍어내는 방식을 구현 중인데, 프로그래밍이나 출력기 사이즈를 맞추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현재 전문 업체와 협력해 제품 구현 및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Q. 창업 과정이 만만치 않았겠습니다.
A. 운 좋게도 교내 캠퍼스타운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아 캠퍼스타운 내부 사무실에 입주할 수 있었습니다. 창업서울국제발명전시회에서 금상, 생활발명코리아에서 대통령상, 한국여성발명협회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발명박람회에 출품해 은상을 수상했어요. 창업보육센터와 산학협력단의 지원이 있었기에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Q.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A. ‘과연 할 수 있을까’라며 걱정 어린 시선을 많이 보냈죠. 점자 출력기의 시장 조사 및 실효성 평가를 위해 100여 곳의 카페와 식당을 직접 찾아갔는데, 당시 대부분의 점주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우리 가게에는 시각장애인이 안 온다”며 고개를 젓는 일도 많았죠. 사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여건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접근이 어려운 것인데 말이죠. 그래서 ‘일상에서의 점자 보급률을 높여 장애인식개선에 나서고 시각장애인의 접근성 확보를 위한 프로젝트도 진행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점자 메뉴판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그때 했고요. UV인쇄 방식을 통해 점자의 훼손을 방지했고,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점묵자 통합형으로 제작했습니다. 점주들이 메뉴판을 구비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디자인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Q. 지금은 반응이 뜨겁다고 들었습니다.
A. 사업 취지에 공감하는 점주들이 많아졌어요. 카페나 식당뿐 아니라 네일숍, 왁싱숍에서도 메뉴판 제작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죠. ‘아메리카노’ 같은 단어만 점자로 찍다가 ‘레이저 제모’를 찍으니 느낌이 새롭더라고요.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이 조금은 향상됐다는 생각에 흐뭇합니다.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이 ‘모두의 메뉴판’을 접한 뒤 방송으로 소개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 일이 계기가 돼 많은 시각장애인이 모어앤모어 누리소통망(SNS)을 방문해 피드백을 줍니다. “메뉴를 하나하나 불러달라고 하기가 미안하고 민망해 매번 아메리카노만 주문했는데 모두의 메뉴판 덕분에 새로운 음료를 맛볼 수 있었다”고요. 점주들도 메뉴판에 대한 감상을 남기곤 해요. “시각장애인 손님이 오셨는데 모두의 메뉴판으로 편하게 주문받을 수 있었다”고요. 모어앤모어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Q. ‘점점더’는 해외에서 더 인기라면서요?
A. 해외 판로를 뚫기 위해 국제발명박람회에 참가했는데 좋은 성과가 나왔고, 뒤이어 유럽발명협회로부터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랑프리상까지 수상하게 됐어요. 우리의 작은 아이디어가 국제사회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순간이었죠. 유럽발명협회 관계자가 “대단한 아이디어다. 계속 도전정신을 갖고 발전하라”고 격려의 뜻을 전했고, 일부 관람객은 행사장까지 직접 찾아오는 등 감동적인 순간을 만끽했습니다. 배리어프리 제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주목받고 대중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우리나라도 배리어프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만큼, 더 많은 배리어프리 제품이 나오리라 믿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A. 아직은 수익 모델이 정립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직원들 월급을 주고 있어요. 학생 신분으로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결코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와 포기하면 더 나은 세상 만들자며 지은 회사 이름값도 못하는 셈이니까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성과는 ‘점점더’의 시제품 완성 및 상용화입니다. ‘모두의 메뉴판’도 다양하고 많은 매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분발하겠습니다. 점자 환경이 잘 구축된 장소를 소개하는 맵 서비스로도 확장해 ‘점자 일상화 프로젝트’를 출판물 제작으로까지 연결하는 게 작은 꿈입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73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