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방법에 대해 말했었고,
또 누구는 날씨가 너무 나빴던 이 땅의 날씨를 견디는 방법에 대해 말했었다.
이제 2003년 함민복이라는 시인은 삶과 눈물을 버티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인이 펴낸 산문집인 이 책은 우선 산문집이라는 특징처럼 읽기에 어렵지 않다.
시인은 시의 난해함이나 상징성이라는 어려움을 피해 직설적으로 편하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그 시인이 그렇게 편하게 말하고 있다고 결코 편한 이야기들만 모여진 것이 아니다.
그 스스로도 '눈물은 왜짠가'라고 말했듯이 코가 짠한 감동들이 진하게 녹아 있다.
사실 이책의 소감을 소개 하려 할 때
책의 몇 부분을 인용하려 했지만..선뜻 그 인용 구절을 선택 할 수가 없었다.
뽑고 싶은 인용 구절들이 너무 많아 책장을 덮었을 때는
책이 거의 매장 밑줄로 도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을 때 그 모든 바닷물에도 소금기가 배어 있듯이
이 책은 모든 장마다 그 징한 소금을 머금고 있다.
시인이 그 시대의 소금같은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가공된 소금이 많은 이 시대에 드물게도 이 시인은 전혀 가공 되지 않은 순수한 소금이다.
단지 바닷물만을 증발시켜 만든 아주 염도가 진한 천일염 같은 사람인 것이다.
소금을 얻기 위해 바닷물을 정제하듯 그는 삶의 소중한 詩語를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그 뜨거운 땡볕에 말려 왔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짠내가 난다.
또한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작가인 것 같다.
헛접한 글줄을 적는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만들고
어수룩히 글줄이나 읽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만든다.
이 책은 문학적으로도 꽤나 괜챦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 무엇보다도 문장이 상당히 좋다.
시인이 쓴 산문이라서 그런지 곳곳에 시적 표현이 절절히 묻어 난다.
(예를들면,,,
...그 노파의 삶과 내용물을 다 비워내고 재생되기 위해 쓸쓸히 고물상으로 끌려가고 있는 빈 종이 박스의 신세...
...혼자먹는 밥상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차려진다...
...그대의 가슴에 따뜻한 우표 한 장 붙여주던, 깡마른 우편배달부 아저씨...
...느티나무는 그대 아팠던 기억마저 따뜻하고 푸근한 보름달로 머리에 일지니...
...이방에서 인사성이 가장 밝은 친구는 전기 스탠드입니다. 늘 소녀처럼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저리 고개 숙이고도 밝고 환하게만 살아갈 수는 없을까...)
그의 이런 아름답고 따뜻한 문장은 상당히 시적인 표현을 빌리고 있다.
그래서 마치 산문이 아닌 한편의 시를 보는 듯 하다.
그는 단 석 줄짜리의 ‘성선설’이라는 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됐다고 한다.
- 성선설 -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 세줄이 그의 당선작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 분량에 상관없이 강렬하다.
마치 핵심을 찌르듯 단 몇줄로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 단지 세줄이 주는 감동은 대단하다.
나는 이 세줄을 읽고 사실 상당히 기죽었다.
'아! 정말 대단한 시인다.....'
이런식의 문장이 곳곳에 박혀 있는 이 책은 한마디로 정말 소금처럼 짠 내나는 책이다.
좋은 문장, 좋은 글의 진수를 보여주며 문학을 공부하는 후학들에게도 커다람 귀감이 될만한
깔끔한 단편소설의 느낌을 얻기에도 충분하다.
(실제로 시인은 소설도 공부 했다...)
하기야..그토록 가난한 그가..그 소중한 직장을 그만두고 ... 구도자같은 시인의 길로..
들어섰을때는..
얼마나.. 시가 간절히 쓰고 싶어서였을까..
이런 시인의 글을 보며 '시대의 양심이다'..또는 '잘 구워낸 도자기의 장인 정신을 느낀다'라고 표현해도..
그것은 어설픈 수사 같다..
왜?
아무리 그래도..그의 글..그의 삶..그의 사랑만큼은 간절하게 느껴지도록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작가, 좋은 작품에 대해
이 어설픈 독자가 괜한 어지럽힘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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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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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님은 차 시간도 있고 하니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 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갈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었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었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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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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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나는 날 어머니는 염색을 하고 계셨다.
나는 어머님께 염색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야 자식들이 더 자주 찾아뵙지 않겠냐고 했다.
어머니는 묵묵부답 염색만 하시다가 선문답 같은 말한마디를 던지셨다.
"눈이 점점 침침해져서 염색을 한다."
나는 단단히 맘먹었다. 이번 기회에 위장병도 고치고 심기일전하여 좋은 글도 많이 쓰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이곳 암자로 오기 위해 집을 떠나오던날,
나는 밥속에서 어머니가 빠뜨린 머리카락 한 올을 골라냈다.
그때 나는어머니가 차마 말슴하시지 않은 마음 한자락을 읽었다.
"네 밥그릇에서 내 흰 머리카락 나오면 네 목이 멜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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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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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꼬리로 계란을 끌고 갑니다.
쥐가 꼬리로 병 속에 든 들기름을 빨아먹습니다.
쥐가 꼬리로 유격 훈련처럼 전깃줄에 매달려 허공을 횡단합니다.
쥐가 꼬리의 탄력으로 점프하여 선반에 뛰어 오릅니다.
쥐가 꼬리로 해안가 조개에 물려 아픔을 끌고 산에 올라가 조갯살을 먹습니다.
쥐가 물동이에 빠져 수영할 힘이 떨어지면 꼬리로 바닥을 짚고 견딥니다.
30분 60분 90분 --쥐독합니다.
그래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 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사람들은 샐러리맨의 월급을 쥐꼬리만 하다고 격하하여 말하지만 그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쥐고리처럼 모든 것을 견디고 살아내는 그네들의 삶은 얼마나 슬프고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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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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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세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커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집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짜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짜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짜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첫댓글 읽혀지는 시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지는 시를 쓰고 계신 시인님 한 분 저희들에게 소개시켜 주시는 군요.. 당장에라도 서점에 달려가서 그분과 만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