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꽃, 아름다운 눈물, 신한국인 위치카 씨, 오리 궁둥이 춤을 추는 찐타 씨, 탄이 이야기, 김치 사장이 되고 싶은 그녀, 눈물로 얼룩진 상장, 그루터기에 난 새싹, 캄보디아 우물 공사, 등이 외국인 근로자를 다룬 글이다.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봉사하는 삶이 아니고 그들과 하나로 어울리므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가슴이 찡해지는 사연들이 많다. 이러한 내용들이 고영옥의 수필세계를 이룬다. 또, 우리안의 사랑, 뚝심있는 남자 쏘팔, 사장이 되고 싶은 여자, 그의 한 마디, 너 안에 사랑은 있니?‘, 슬픈 웃음, 무너진 피진의 꿈, 칸의 야망, 도 외국인 노동자를 다룬 내용의 수필이다. 낯선 땅에 와서 제일 하층 계급으로 치부하는 근로자로 살아가는 삶이 힘들 뿐만아니라 , 눈물로 범벅이 되리라는 것은 짐작이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그의 수필집에서 외국인 근로자와 삶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그들과 생활이 작가의 삶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의 삶이 바로 그의 수필세계이다. 고영옥에게는 또 하나의 삶이 있다.
그의 수필을 읽다 보면, 고영옥의 삶에서, 정말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은 목회자 부인으로서의 삶, 즉 외국인 근로자를 돌보는 삶이라기보다는 초등학교 교사로서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수필에는 교사 생활에서 겪었던 경험들을 다룬 수필도 여러 편이었다. 고영옥의 교사 시절 경험은 대체로 가슴 아픈 이야기가 많다. 그러면서 아이의 심리 묘사를 기가 막히도록 잘 표현하였다는 생각이다. 수필을 끝까지 읽고 나면, 아름다운 이야기인데도 가슴이 찡해오고, 눈에 눈물이 고일 듯한 기분이 된다. 그래서 나는 전에도 교사 시절의 이야기만을 담은 수필로만 책을 내어보시지요, 라고 한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를 다룬 글은 거의 대부분은 어린이를 천사로 표현하였다. 나는 어린이가 천사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행동은 오히려 악마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린이의 그런 행동에는 심리적인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직은 다듬지 않는 보석의 원석이 어린이 이다. 교육이 원석을 보석으로 다듬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다듬는 사람은 바로 선생님이다. 고영옥은 원석을 보석으로 다듬는 내용을 수필에서 잘 표현하였다.그리고 감동을 이끌어 내었다. 그의 작품을 한 편 보기로 하자.
해를 먹은 아이 고영옥
늦은 가을 오후였다. 그해 나는 3학년을 담임하고 있었다. 운둥장에 불이 났다는 갑작스러운 외침에 운동장을 보았다. 뭉게구름이 하늘과 맞닿아 있고, 햇살 먹은 검붉은 느티나뭇 잎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치솟고 있었ㄷ. 수학 문제를 푸느라 숨소리 내기도 조심스러운데, 다급한 아이의 외침에 교실 분위기는 흐트러지기 시작하였다. 우르르 창가로 몰려든 아이들이 싱겁다는 듯이 한 마디씩 했다. “야, 너 또 우릴 놀린거야” 단풍이 빨갛게 물든 것도 몰라?“ 친구들은 킥킥거리며 손가락으로 영준이 옆구리를 찌르려 한 마디 했다. 여전히 영준이는 손가락으로 운동장 쪽을 가르키며 불난 것이 맞다며 장승처러 서 있었다. 아이들은 영준이가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할 때마다 화가 난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잠시라도 공부시간을 빼먹는 재미도 있었지만, 영준이가 글을 읽지 못해서 얼마나 힘든지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준이는 3년 동안 배웠지만, 한글을 읽고 셈하는 것이 서툴렀다. 5살 때 뇌수술을 받았다고 아이들 앞에서 머리의 흉터를 보이며 말한 적이 있었다 하루 다섯 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가끔은 수업시간에 슬그머니 빠져나가 학교 울타리를 한 바퀴 돌고 와도 모른 척 해 주곤했다. 3학년이 되어서 몇 개월 동안은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공부하면서 영준이는 나름대로 터득한 것이 있었다. 때로는 선생님 말씀 듣는 척하면서, 색종이를 접거나 장난감을 만들면서 시간 보내기도 했다. 내키는 대로 옆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장난을 걸기도 했다. 친구들도 내 눈치를 보면서 은근히 그것을 기다렸다. 체육 시간에 돼지 씨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잠깐 긴장을 놓친 사이에 다른 한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한 아이가 영준이의 오른 손을 치켜들고 ’승‘이라고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순간 또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준이와 싸운 친구가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영준이를 향해 빠른 걸음을 걸었다. 삿대질하며 소리 질렀다. ”너는 한글도 더듬거리면서 싸움만 잘 하면 뭐 하겠냐. 그럴 힘 있으면 공부해야 할 것 아냐. 어른이 되면 과수원 사장이 되겠다면서. 사장은 아무나 되는 줄 아냐. 사장이 되어서 자가용 몰고 서울 갈 때에 이정표도 볼 줄 모르면 어떻게 할거야.“ 지금까지 참을 대로 참았다는 것을 우세라도 하는 것처럼 사정없이 쏘아 붙였다. 아이들을 모두 교실로 들여보냈다. 코피가 난 친구에게는 야단을 치기보다 다독거리며 교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영준이를 처다 보았다. 눈을 내리깔고 흐르는 눈물을 체육복 소매로 닦았다. 실컷 울어보라며 등을 나무 밑으로 밀었다. 자존심 상하는 말을 생각도 없이 퍼부은 터라 한켠 마음이 짠하였다. 거세게 반항할 줄 알았는데 순순히 잡아끄는 대로 따라와서 옆에 앉았다. ”영준아, 선생님 많이 밉지?“ 대답이 없었다. ”선생님 많이 미운거로구나.“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끝내 영준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과정을 따져보지 않고 친구와 싸운 것이 무조건 영준이의 탓이라는 편협된 생각이 있는 나에게 무언의 반항처럼 생각되었다. 나의 상식없는 휘두름이 얼마나 영준이를 소외시키고 자존심을 내려앉게 했는지 영준이의 눈물을 보는 순간 느꼈다. 다음 날, 영준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친구들도 걱정하였다. 수업이 끝난 후 몇 번이나 전화했지만 부모님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십 분도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가 다섯 시간씩 교실에 앉아있었던 것은 최대의 인내였다. 이런 아이에게 막무가내로 말을 내뱉은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나의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으면 학교에 오는 것까지 거부했을까.’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이튿날 일찍 출근하고 수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준이가 교실 문을 열고 씩씩하게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가방을 열고 급하게 공책을 꺼내어 나에게 내밀었다. 일기장이었다. ”우리 아부지 해 사주따. 해를 머거다. 채해다.“ 내가 일기를 읽고 있는 동안, 고개를 옆으로 비끼고 빤히 쳐다보고 웃는 영준이의 눈과 마주쳤다. 해를 정말 먹었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버지가 해를 사 주었다고 했다. 금방 읽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기 내용이었다. 몇 번 읽은 후에야 해가 아니라 생선회를 먹고 채했다는 것을 알았다. 학교에 가끔 찾아와서 수고한다며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날 때마다 엉뚱하게 속 썩이는 영준이 때문에 신경쓰게 해서 죄송하다며 몸 둘 바를 몰라 하던 아버지였다. 영준이에게 비싼 회를 사주면서까지 자존심과 용기를 키워준 것은 희망과 해를 따준 것과 다름이 없지 않는가. 아버지는 느리고 많이 부족할지라도 닦달 하지 않았다. 영준이의 가치를 인정하고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했다. 항상 희망의 해를 따주는 영준이 아버지 앞에서 부끄러워졌다. 나를 쳐다보는 영준이의 눈과 웃음 속에는 하늘에 떠 있는 해를 품고 있었다. 영준이의 일기를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면서 희망의 해를 보았다. ******
여러 해 전에 정진권 선생이 수필에도 어린이 용 수필을 도입하여, ‘동수필’이라는 장르를 만들자고 한 일이 있었다. 어른이 동수필이라는,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수필을 쓰자는 제안을 하셨다. 어른이 어린이 용 수필을 쓸려면, 어린이를 잘 알아야 한다. 과연 어른이 어린이의 세계를 잘 알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보이면서 나는 반대했다. 어린이는 절대로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는 말이 교과서에 나온다. 어른과는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는데, 어른이 과연 그런 세계를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내가 반대한 이유였다. 고영옥의 수필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교사 생활이, 교사 생활을 하면서 어린이의 세계를 유심히 관찰한 탓인지 어린이 세계를 비교적 잘 표현하였다. 어린이의 심리는 동물적인 속성이 강하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그러므로 행동이 거칠고, 공격적이며, 반항적이다. 교화를 하면 얼마든지 빛나는 보석으로 바뀐다. 우리나라의 동화책에 나오는 어린이는 모두가 이미 보석이 되어 있다. 천사들이다. 그러나 고영옥의 수필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은 장난꾸러기이고, 고집이 세고, 선생님의 속을 썩이는 아이들이다. 그들과 인간적인 접촉을 통하여 사회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다듬어 가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어린이를 세계를 다룬 참 이야기라고 믿는다. 교훈적인 가치도 지닌 이야기이다. 고영욱은 어린이 세계를 이렇게 다루므로 진실이라고 느껴진다.
고영옥은 대구의 수필 문단에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수필작가이다. 외람된 말이지만 나는 이런 작가를 대구 수필 문단에 소개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작가들의 수필세계를 쓰고 있다.. 이번에 쓰는 고영옥의 수필 세계를 소개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생각에 자긍심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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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선생님의 수필세계를 써 보았습니다. |
첫댓글 이동민 학장님
부족하고 서툰 글임을 압니다
그래서 5년 전 지인 문우님께서 책을 같이 내자고 권유 받았을 때 선뜻 책을 내지 못한 이유였습니다
불구하고
학장님께서 꼼꼼하고 섬세하게 짚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힘 입어서
앞으로 수필이 좋아서 글을 쓰기 위해 더 많이 배워나갈 것입니다
진정어린 평가와 격려, 박수에 감사드립니다
고영옥 선생님
수필집에서 가슴 먹먹할 때도 있었고 진한 감동에 한 소년으로 되돌악 가기도 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영옥 선생님의 솔직 담백한 수필과 이동민 선생님의 전문적인 소개 글 모두 감동입니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많은 귀감이 될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