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중방리공소
중방리공소는 1956년 원치리공소에서 분리, 설립되었다.
이곳에 전교가 된 것은 1930년경으로 구합덕성당에서 영세를 받은
이 마리아가 최요셉(당시 외인)과 혼인하면서였다.
1971년 시멘트벽돌조 공소 건물을 마련하였고,
1979 정면의 종탑과 공소 평면의 확장을 위한 증축이 있었다.
신합덕성당에서 2015년 순성성당 설립으로 관할이 이관되었다.
공소에는 매월 주일 및 평일미사가 있으며
30세대 중 40여명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충남 당진시 순성면 북창로 160 (중방리 산29-4)
72. 아찬공소
1960년 아찬리 양순례(안나)의 집에서 기도 모임을 시작하여 1967년까지 이어지다가
1967년 10월 13일 신합덕성당 중방공소에서 아찬리공소가 분리,설립되어
문진영(바오로)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1971년 현 위치에 20여 평 규모의 흙벽돌집 첫 공소를 건축하였다.
당시 건축 자재는 신합덕성당에 있던 ‘병막(나환자 치료시설)’을
철거하면서 나온 자재를 재사용하였다.
현재의 공소는 철근콘크리트와 적벽돌조(연면적 112㎡)로 건축하고,
1995년 12월 2일 윤영균 신부의 집전으로 봉헌되었다.
신합덕 성당 소속이였다가
2015년 순성성당 설립으로 관할이 이관되었다.
관할본당: 순성성당
충남 당진시 순성면 아찬1로 97-4
53. 신촌리공소
신촌리공소는 솔뫼성지와 가까이 위치하며,
1921년 합덕성당 페랭 신부의 사목담당(신자수 34명) 공소였다.
6.25한국전쟁 전후로 이홍만(바오로)회장이 봉사를 하였고,
전쟁 후 공소예절은 이병석,이기석 형제의 집에서 있었다.
1960년에는 신합덕성당이 분리 설립되어 공소의 관할도 바뀌었다.
현재의 공소 건물은 1977년 조재형(요한) 회장 재임시기에 건립되었다.
건축 비용은 공소 신자들의 모금으로 쌀200가마가 소요되었다.
1976년에 교우수가 120여 명에 이르렀고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하는 등 신심 깊은 교우들이 많았다.
관할본당: 신합덕성당
충남 당진시 우강면 다리목길 64-22
74. 사기소 새터 공소
천주교 신자들이 새로 일군 마을이라 해서
‘새터말’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지역에 정식으로 공소가 설립된 것은 1898년이었다.
당시 양촌(현 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거주하던
퀴를리에(Curlier, 南一良, 1863~1935, 레오) 신부가 처음으로 사기소를 방문하고
윗 사기소(64명)와 아래 사기소(58명) 두 곳에서 공소를 치른 것이었다.
이때 새터말 신자들은 아래 사기소에서 성사를 본 것으로 추측된다.
퀴를리에 신부에 의해 새터 공소가 설립된 것은 그 후 1901년이었다.
그러나 사기소(점말)의 두 공소는 그 뒤 신자들이 이주하였고,
따라서 현재는 그 유래를 잘 알 수가 없다.
사기소 지역의 신자 수가 줄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생활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즉 옹기 마을에서는 점토가 부족하여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했고,
새터에서는 가뭄이나 좁은 농토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했다.
비록 신자들은 줄어들었지만, 남아서 교우촌을 지킨 신자들은 힘을 합쳐
1956년에 현재의 공소 강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충남 당진시 면천면 면천로 198-39 (사기소리 산 119)
75. 방계리공소
설립년: 1950년
지금의 공소 강당은 1987년에 봉헌된 것임.
아래의 내용은 공소 강당을 짓기위해 부지를 제공한
신자분의 증언을 기록한 것으로
초창기 공소 예절은 1987년 공소 강당이 건축된
공소 정면에서 약 20여m 떨어진 곳에 주택이 있었고
그 주택 사랑방에서 하였다 함
당진 성당 소속 공소에서
2003년 기지시 성당이 설립되면서 기지시 성당으로 편입
기지시 성당 설립으로 미사 참례를 본당이 된 기지시 성당으로 다님.
현재는 공소가 폐쇄된 상태임.
충남 당진시 송악읍 가청로 167-19 (방계리 116-12번지)
76. 옥현(리)공소
설립년: 1982년
1980년에 젖소를 키울려고 이주해온 신자 한 분이
공소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당시 신자들이 벽돌을 직접 나르면서 손수 지었다고 함.
이후 돌마루 공소가 1996년에 설립되면서 부터
미사 참례를 돌마루 공소에서 하고 있다.
돌마루 공소로 미사 참례를 한 뒤로는 공소 강당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함
충남 당진시 고대면 정미로 1018 (옥현리 184-5번지)
77. 사성리공소
설립년:1956년
1996년 돌마루 공소 봉헌을 기점으로 6개 공소
(사성리 공소, 도산리 공소, 봉성리 공소, 산성리 공소, 천의리 공소, 마중리 공소)가
돌마루 공소로 통합될 때 사성리 공소도 통합되었으며,
현재(2021년) 6개 공소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사성리 공소 신자들도 돌마루 공소에서 미사 참례를 하고 있다.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 대호로 390-18 (사성2리104-4번지)
78. 구룡리공소
합덕 성당 소속으로 있다가
1992년 당진 성당으로 편입되었고, 이때 부터 본당으로 미사 참례를 하게됨.
구룡리는 신자 자녀들의 신심 교육에 특히 힘쓴 교우촌으로
강습소도 설립하여 자녀들의 교리 교육에도 힘썼으며
세 명의 신부와 여러 수도자들을 탄생시킨 성소의 고장이다.
구룡리에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840년 박해를 피해 떠돌던 한 신자가 정착하기 위해 처음 이곳에 오면서였고,
이곳 교우촌의 신자들은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꾸렸고,
옹기점이 잘되자 규모가 큰 교우촌이 되었다고 한다.
구룡리 교우촌과 이웃하고 있는 사근절 교우촌(현 행정지명: 당진 구룡리)에는
1901년에 퀴를리에(Curlier, 南一良, 1863~1935, 레오) 신부를
맞이함으로써 정식으로 공소가 형성된 것으로 보아
구룡리에 공소가 설립되기 전의 신자들은 사근절로 미사참례를 다닌 것으로 짐작된다.
1909년 합덕본당의 제3대 주임 크렘프 신부 시절 기록에 대화리 공소 이름이 있다.
당시 구룡리와 이웃의 대화리는 행정 구역이 분명하기 전이여서
한 마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구룡리를 대화리라고도 했다고 한다.
이로인해 구룡리 공소를 대화리 공소라고도 불렸다.
지금의 공소 강당은 1947년 9월에 건축된 것이다.
충남 당진시 도동길 4-20
79. 신송리공소
신송리는 1921년 합덕성당 페랭 신부의
사목담당 공소로 설립되어 43명의 신자가 있었다.
1961년 신합덕성당이 분리 신설됨에 따라
김종만 형제의 집에서 공소예절을 하였다.
1966년 신자들의 기금 모금과 노력봉사로
흙벽돌조 초가 형태의 공소를 건립하였으나
이후 노후화로 1979년에 철거하였다.
현재의 공소는 1984년에 준공하고
1986년 8월 15일 경 요셉 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했다.
관할 본당: 신합덕 성당
충남 당진시 신평면 마수머리길 87
80. 세류리공소
설립년: 1952년
6.25한국전쟁 직후부터 세류리와 인근 부락에 사는 신자들 40여명이
공래복(아릭스)회장집에 모여 공소예절을 하였다.
공소 건물 없이 지내다가 1986년에 이르러 현재의 건물을 마련하였다.
1986년 4월에 착공하여 9월 3일 이종대 신부의 집전으로 축성,봉헌되었다.
2022년 현재 20세대 40여 신자 중 19명이 신합덕성당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관할 본당: 신합덕 성당
충남 당진시 우강면 세류골길 5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