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립사이드(The Flipside) 둘째 딸을 어학연수 보냈다. 그런데도 취직에 실패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아담 잭슨이 지은 플립사이드(Flipside)를 읽으면서 어학연수의 실패가 그에게 인생을 다시 보게 되는 큰 자극제가 되었다고 한다.
플립사이드란 ‘레코드판의 뒷면’ ‘사물이나 사람, 현상의 이면’ 등을 뜻하는 단어이다. 책은 성공한 사람들의 ‘뒷면’을 조명한다. 저자는 이들의 성공 이면에 ‘좌절의 순간에 발견한 작지만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고 말한다.
나도 살아오면서 많은 시련을 겪었다. “왜, 하필이면 하나님은 나에게?”를 자주 되뇌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나보다 더 큰 문제나 시련을 겪었던 사람들이 플립사이드를 발견하여 기적 같은 반전을 이룬 스토리들이 담겨져 있다.
65세에 전 재산을 잃었지만 치킨 레서피를 개발하여 KFC를 탄생시킨 할랜드 샌더슨, 레알마드리드와 골키퍼 계약을 맺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차기 골키퍼 1순위로 주목 받았으나 교통사고로 축구인생이 완전히 끝난 경험을 가진 세계적인 팝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여덟 살 때 화재사고로 심각한 전신 화상을 입었으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행동경제학자가 된 댄 애리얼리 등은 삶의 시련과 좌절을 자신의 인생에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더 큰 성공의 발판으로 삼았다.
플립사이드의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다. 모든 문제나 장애물에는 그 문제보다 더 큰 기회가 숨어있고, 이면(flipside)이란 그 기회이다. “씨앗을 손에 들고 새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삶이 때론 작은 씨앗처럼 볼품없이 여겨질 때가 있겠지만, 씨앗은 언젠가 새들이 깃드는 나무가 된다는 뜻이다.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난제와 실패 안에는 언제나 기회가 숨어 있다. 삶의 이면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될 때 그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그래서 헬렌 켈러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원망의 눈으로 닫힌 문만 바라보느라 우리를 향해 열려 있는 또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마이클 거버는 “사업가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기회를 찾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오로지 문제점만 본다.”고 말하고,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뎅은 “이미 벌어진 일을 놓고 왜 그 일이 하필 내게 일어났는지를 묻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 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하고, 월트 디즈니는 “불가능한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재미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엘리너 루스벨트는 “미래는 자신들의 꿈이 아름답다고 믿는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한다.
책에서 나오는 문자 그대로만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을 근본주의자라고 한다. 근본주의자들은 오직 그 책에서 말하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은 모른다. 하나를 알면 열을 깨우쳐야 한다. 그런데도 근본주의자들은 ‘근본’인 ‘실재’는 없고 오직 ‘주의’만 있다.
성경에서의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뛰어난 종교적인 삶과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성경 지식을 자랑했으나, 사실상 가식과 위선에 빠져 있었다(마 23:2-33). 이들은 그들의 ‘주의’에 빠져 성경의 ‘실재’, 곧 ‘진리’를 알지 못했다. 그로 인하여 지식과 말만 있고, 행함과 실재의 삶은 없었다.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하다”란 말이 있다.이 말은 눈빛이 종이를 뚫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글의 이면을 읽어라”는 뜻이다. 글의 이면을 일지 못하면 지식만을 가져다 준다. 문자는 지식만을 가져다줌으로 우리를 교만하게 하여 죽이지만, 글의 이면을 읽으면 그것은 글의 영이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글의 이면에 있는 삶을 살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삶의 이면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글의 이면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지식과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행함과 실재가 있는 참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 |
|
첫댓글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