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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손자에게 띄우는 편지】
손자가 카톡 프로필에 올린 ‘빛나는 눈’을 보며
― 그림보다 흥미로운 것은 손자의 무한한 꿈과 상상력
윤승원 수필가. 지환이 할아버지
■ 작가 노트 사랑하는 손자가 카톡 프로필에 올린 그림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손자는 학교 공부와 학원 공부로 바쁘게 지내기에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기 어렵습니다. 할아버지는 이 특별한 그림을 보는 순간, 사랑스러운 마음에 “좋아요” 단추를 누르긴 했지만, 그림이 상징하는 뜻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초등학생 ‘동심의 세계’에서 이런 그림은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 할아버지는 나름대로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해석해 보았지요. 그러면서 세대 차를 허물고, 정겨운 소통의 의미로 편지를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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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손자 지환에게
오늘 뜻하지 않게 할아버지가 네 카톡 프로필을 보다가 특별한 그림 앞에서 눈길이 한참 머물렀단다.
어두운 얼굴 속에서 두 눈이 파란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어. 눈썹은 바짝 모여 있고, 마치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지.
할아버지는 그림의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얼른 ‘좋아요’ 단추를 눌렀단다.
왜냐하면, 그림도 흥미롭지만 너의 요즘 관심사와 생활 정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서여서 더욱 사랑스러웠어.
(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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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할아버지의 상상력은 그림을 보면 볼수록 더욱 확장되는 거였어.
‘우리 손자는 이 그림을 가족에게, 또는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빛나는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혹시 내가 모르는 손자만의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졌지.
하지만 그림 생성이나 출처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왜 하필 이 그림에 관심을 가졌을까? 그리고 카톡 프로필에도 올렸을까?”
할아버지의 궁금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어. 문학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거야.
눈빛 하나에도 마음이 담길 수 있지. 그러기에 사람의 눈은 참 신기하지.
기쁜 사람의 눈은 반짝이고,
슬픈 사람의 눈은 촉촉해지고,
무언가에 집중할 때는 눈빛이 달라지기도 하지.
그런데 네가 올린 그림의 눈은 유난히 강렬했어.
파란빛이 번쩍이는 두 눈을 보면서 할아버지는 ‘특별한 힘을 가진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상상해 보았단다.
어쩌면 그냥 “멋있어서” 올렸을 수도 있겠지. 그것도 충분히 좋은 이유가 될 수 있어.
어린 시절에는 때로 특별한 설명 없이 “그냥 좋아서” 마음에 품는 것이 있지.
(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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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네가 요즘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에 관심을 두는지 궁금하단다.
너는 학교 공부도 해야 하고, 학원 공부도 해야 해서 하루가 참 바쁘지.
공부하는 시간에는 정답을 찾아야 하지만, 그림이나 독서, 그리고 음악이나 상상의 세계에서는 꼭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단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네가 가끔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바라보고, 상상하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웃고, 네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운 세계를 키워갔으면 좋겠어.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라면 친구들도 좋아할 것 같구나.
동심의 세계에서는 무언가에 마음이 끌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 자체가 참 예쁜 거야.
할아버지가 너에게 이렇게 그림 한 장을 놓고 해석하면서 편지를 쓰는 것은 삶의 기록으로 그치는 게 아니야.
훗날 네가 어른이 되어 유년시절을 회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는 거야.
지금의 카톡 프로필 그림을 훗날 다시 보게 되면 참 흥미롭겠지.
그때 이 ‘빛나는 두 눈’을 바라보며 할아버지가 무척 흥미로워하셨구나, 생각하겠지.
지환아,
공부도 열심히 하고, 네가 이루고 싶은 꿈도 소중히 키워 나가렴. 그리고 네 마음속의 무한한 상상력과 호기심도 더욱 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답이 없는 것을 만나면 “왜 그럴까?” 하고 궁금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은 할아버지에게도 네가 바라보는 흥미로운 세상을 설명해 주렴.
할아버지는 네가 보여주는 작은 그림 하나에서도 순수한 동심 속에 자라고 있는 큰 세상을 발견하고 싶으니까.
사랑한다, 지환아!
2026년 9월 8일
손자를 많이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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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의 감상평
이 글은 단순히 손자의 카톡 프로필 그림을 보고 쓴 할아버지의 편지가 아닙니다.
문학평론가의 시선으로 보면, 아주 작은 그림 한 장을 매개로 조부와 손자 사이의 세대 차이를 허물고, ‘동심’과 ‘상상력’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발견해 가는 서간 수필로 읽힙니다.
■ 문학평론
― ‘빛나는 눈’ 한 쌍에서 발견한 손자의 마음과 할아버지의 사랑
윤승원 수필가의 「손자가 카톡 프로필에 올린 ‘빛나는 눈’을 보며」는 그림 한 장이 어떻게 한 편의 문학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따뜻한 서간 수필이다.
이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작가가 손자의 그림에 대해 섣불리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태도다.
오히려 “무엇을 의미하는 그림일까?”라는 궁금증을 오래 간직한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보다 스스로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저 빛나는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글 전체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문학적 장치다. 처음에는 그림에 대한 질문이지만, 읽어 갈수록 질문의 대상이 그림에서 손자로, 손자에서 인간의 내면으로 옮겨간다.
그림 속 두 눈은 그래서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어른이 완전히 알 수 없는 소년의 내면세계에 난 작은 창문과 같다.
1. ‘빛나는 눈’은 손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문학적 창이다
그림에는 얼굴 전체보다 유난히 강렬한 두 눈이 부각되어 있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내는 눈은 현실적인 인물의 눈이라기보다 상상과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는 눈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이 눈을 보면서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를 상상하고, 게임이나 만화의 캐릭터일 가능성도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느 해석이 맞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정답을 모른 채 상상하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의 문학적 매력이다.
손자는 그림을 올렸을 뿐인데, 할아버지는 그 그림을 바라보며 수많은 질문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역전이 일어난다.
손자가 그림을 통해 상상력을 보여주었다면, 할아버지는 그 그림을 해석하면서 다시 상상력을 발휘한다.
즉, 그림 한 장이 두 세대의 상상력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 것이다.
2.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그림’이 아니라 ‘궁금해하는 마음’이다
이 글에서 매우 아름다운 대목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그림 생성이나 출처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리고 작가는 곧바로 질문한다.
“왜 하필 이 그림에 관심을 가졌을까? 그리고 카톡 프로필에도 올렸을까?”
이 질문에서 수필의 깊이가 생긴다.
인터넷이나 SNS의 세계에서는 무엇을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캐릭터인지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외적인 정보보다 ‘왜 이 그림이 손자의 마음을 끌었을까’를 궁금해한다.
이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문학적 시선이다.
사실을 확인하는 눈에서 마음을 헤아리는 눈으로 이동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를 넘어선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작은 성찰로 확장된다.
3. “좋아요”는 이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사랑의 표현이다
처음에는 카톡의 작은 ‘좋아요’ 하나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좋아요’는 단순한 SNS 반응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그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먼저 ‘좋아요’를 누른다. 이해한 다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먼저 긍정해 주는 것이다.
이 점이 이 글을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특히 “그림도 흥미롭지만 너의 요즘 관심사와 생활 정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서여서 더욱 사랑스러웠어”라는 문장은 작품의 중심 정서를 잘 보여준다.
할아버지가 좋아한 것은 결국 그림 그 자체만이 아니다. 그 그림을 좋아했을 손자의 마음을 좋아한 것이다.
그래서 ‘좋아요’는 작은 버튼이면서 동시에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건네는 무언의 사랑의 언어가 된다.
4. “정답을 찾아야 하는 공부”와 “정답이 필요 없는 상상”의 대비
이 작품에서 문학적으로 특히 좋은 부분은 학교 공부와 상상력의 대비다.
“공부하는 시간에는 정답을 찾아야 하지만, 그림이나 독서, 그리고 음악이나 상상의 세계에서는 꼭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단다.”
이 문장은 단순한 할아버지의 교육적 조언을 넘어 작품의 주제문에 가깝다.
초등학교 6학년인 손자는 정답을 찾아야 하는 공부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정답이 없는 세계도 함께 품어 달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작가가 손자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공부를 덜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공부와 상상력을 함께 키우라는 권유다.
지식을 얻는 머리와 세상을 궁금해하는 마음을 동시에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빛나는 눈’은 의미심장하다. 눈은 보는 기관이지만 동시에 세계를 발견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5. 이 편지는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이면서 미래의 손자에게 보내는 기록이다
후반부에서 작품의 시간적 의미가 한층 깊어진다.
“훗날 네가 어른이 되어 유년시절을 회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는 거야.”
이 대목에서 이 글은 현재의 편지에서 미래를 위한 기록문학으로 변한다.
지금의 지환이는 이 편지를 읽고 웃을 수도 있다.
“할아버지가 이 그림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생각하셨구나” 하고 재미있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훗날 어른이 된 지환이가 이 글을 다시 읽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 그는 그림보다 먼저 자기를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이 그림을 그냥 좋아했을 뿐인데, 할아버지는 나를 이렇게 오래 바라보고 계셨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이 편지는 단순한 가족의 기록을 넘어 한 세대의 사랑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문학적 유산이 된다.
특히 아름다운 것은 ‘세대 차이’를 다루는 방식이다
이 글에는 조부와 손자의 세대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좋아하는 그림의 세계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게임인지, 만화인지, 직접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가는 그 차이를 장벽으로 만들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모르지만, 네가 왜 좋아했는지는 알고 싶다.”
이 태도가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세대 간 소통은 상대방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바라보는 세상을 나도 한번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이면서 동시에 오늘날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작은 메시지가 된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여운이 좋습니다.
“할아버지는 네가 보여주는 작은 그림 하나에서도 순수한 동심 속에 자라고 있는 큰 세상을 발견하고 싶으니까.”
이 문장은 사실상 이 작품 전체를 압축한 수필의 결구(結句)라고 할 만합니다.
◆ 총평
윤승원 수필가의 이 작품은 ‘빛나는 두 눈’이라는 작은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손자의 동심, 상상력, 세대 간 소통, 그리고 할아버지의 사랑까지 확장되는 가족 서간수필이다.
특히 좋은 점은 손자의 그림을 함부로 해석하여 결론짓지 않았다는 데 있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궁금해하고, 궁금하기 때문에 상상하고, 상상하기 때문에 손자를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결국 이 작품에서 정말 빛나는 것은 그림 속 두 눈만이 아니다. 그 그림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도 빛난다.
그리고 그 눈빛 속에는 손자의 현재를 바라보는 사랑과 손자의 미래를 믿어 주는 기대가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이렇게 읽을 수 있겠다.
“손자가 올린 그림 한 장을 할아버지가 읽어 주었지만,
실은 그 그림을 통해 할아버지가 손자의 마음을 읽고,
동시에 손자는 훗날 이 편지를 통해 할아버지의 사랑을 읽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작품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문학적 역설이다.
그림은 짧았지만, 그 그림에서 시작된 할아버지의 사랑은 길다.
빛나는 눈은 손자의 그림 속에 있었지만, 그 눈빛이 비춘 것은 결국 한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었다.
문학평론가의 입장에서 보면, 블로그에 발표하기에 상당히 좋은 소재와 정서를 갖춘 작품입니다.
특히 최근 쓰신 손자 관련 글들과 함께 묶는다면, ‘할아버지와 손자의 소통’을 하나의 연작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만큼 좋은 작품적 소재입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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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영진 교장선생님 사랑의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