濫吹(남취)
무능한 사람이 재능이 있는 체하는 것이나 또는 실력이 없는 사람이 어떤 지위에 붙어 있는 말을 이르는 말. 악기를 엉터리로 분다는 뜻으로, 무능한 사람이 유능한 체함. 조금 안다고 더 아는 사람보다 유능한 체함. 중국 齊(제)나라 때의 남곽이라는 사람이 생황을 불 줄 모르면서 樂士(악사)들 가운데에 끼어 있다가 한 사람씩 불게 하자 도망하였다는 데서 유래. 南郭濫竽(남곽남우). 濫竽充數(남우충수). 南郭先生(남곽선생).
韓非子(한비자)의 內儲說上(내저설상)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 宣王(선왕)이 竽(우 : 생황처럼 생겼으나 좀 더 큰 악기) 소리 듣기를 좋아했다.
선왕은 독주 보다는 여러 사람이 합주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궁중에서 연주하니 300명 정도의 악사로 정하여 처사가 왕을 위해 우를 불기를 청한다.
선왕이 기뻐 연주자에게 상을 주기까지 한다.
어느 날 南郭(남곽)이라는 사람이 선왕에게 찾아와 處士(처사)라고 자청하면서 우를 불겠다고 했다.
처사로 자칭하여 찾아온지라 그를 상당한 솜씨가 있는 악사로 안 선왕은 기뻐하고 높은 급료를 주고 고용하여 한 대원으로 있게 해 주었다.
남곽은 쟁쟁한 악사들 중에 섞여 그럴듯하게 흉내 내며 거짓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체 했다.
그의 실력은 형편이 없었지만 3백 명의 합주하는 통에 머릿수만 채우고 남곽선생은 가만히(濫竽充數, 南郭先生 : 남우충수, 남곽선생) 있어도 탄로가 나지 않고 버틸 수가 있었다.
그런 후 선왕이 죽고 閔王(민왕)이 등극 한다.
민왕도 아버지 못지않게 우 소리를 듣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민왕은 아버지 선왕이 즐기던 협주곡 보다는 달리 독주를 시켜 고즈넉이 감상하기를 좋아했다.
민왕이 말한다.
일설에 韓(한)의 昭侯(소후)가 우를 부르는 자 중 뛰어난 자를 알지 못한다 하니, 그래서 제일 우를 잘 부르는 사람을 찾으라 한다.
田嚴(전엄)이 대답하길. 한사람씩 불러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제일 잘하는 사람을 알기 위해 매일 한 사람씩 민왕에 불려나가 재주껏 우를 부르게 되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남곽은 坐不安席(좌불안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곽은 자기의 차례가 오기 전에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쳐 버렸다.
이 이야기는 韓非子(한비자)의 內儲說上七術扁(내저설상칠술편)에 있는 임금이 신하를 다스릴 때 쓸 수 있는 일곱 가지 방법을 설명하면서 실례를 든 것이다.
한비자는 법가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司馬遷(사마천)은 한비자를 명과 실이 일치하는 데서 뚜렷한 실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것은 刑名(형명)의 學(학)이요, 법술의 학이었다.
그 연원은 황제와 老子(노자)의 학문이다.
그는 말더듬이었으나 글을 잘 지었다.
젊은 시절엔 친우 李斯(이사)와 함께 順境(순경 : 순자)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는데 이사는 스스로 한비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한비는 韓(한)나라의 국세가 쇠미한 것을 보고 자주 한 왕에게 의견을 써 올렸으나 한 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나라가 아닌 秦(진)나라에서 벼슬을 하게 된 것이다.
이에 한비는 始皇帝(시황제)가 책을 읽고 감동했다는 '孤憤(고분)' '五蠹(오두)' 顯學(현학) 등 십만 여의 글을 지어 자신의 경륜을 밝혀 놓아 이것은 '한비자'로 알려진 불멸의 명저다.
史記(사기)에서는 한비를 한자라고 했는바 그를 한비자로 통칭하게 된 것은 唐(당)의 韓愈(한유)와 혼동을 피하기 위함이다.
韓非子(한비자)가 말하듯이 南郭(남곽) 선생 같은 濫吹(남취)가 우리 주위에 능력이 없으면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무척 많다.
성완용/법고창신 중에서
첫댓글 무능한 사람이 재능이 있는 체하는 것이나 또는 실력이 없는 사람이 어떤 지위에 붙어 있는 말을 이르는 말. 악기를 엉터리로 분다는 뜻으로, 무능한 사람이 유능한 체함. 조금 안다고 더 아는 사람보다 유능한 체함. 중국 齊(제)나라 때의 남곽이라는 사람이 생황을 불 줄 모르면서 樂士(악사)들 가운데에 끼어 있다가 한 사람씩 불게 하자 도망하였다는 데서 유래. 南郭濫竽(남곽남우). 濫竽充數(남우충수). 南郭先生(남곽선생).
이 이야기는 韓非子(한비자)의 內儲說上七術扁(내저설상칠술편)에 있는 임금이 신하를 다스릴 때 쓸 수 있는 일곱 가지 방법을 설명하면서 실례를 든 것이다.
한비자는 법가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司馬遷(사마천)은 한비자를 명과 실이 일치하는 데서 뚜렷한 실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것은 刑名(형명)의 學(학)이요, 법술의 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