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병(壓餠) 관련 쿤밍(昆明) 나들이>
4월 15일
어젯밤 보이(普洱)에서 출발한 야간 침대버스가 어두운 새벽 쿤밍(昆明)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도착한지 한 참이 지나도 버스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고 불안하기도 한데, 주위 사람들은 태연히 계속 숙면 중이다. 중국 사람들이 아무리 만만디라고는 하지만 해도 너무한다 싶어 기사를 찾으니 기사는 이미 하차하고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이른 시간이서 시내버스나 지하철의 첫차가 운행될 때까지 버스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한다는 것이었다.
한 참 후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虎巖선생이 기다리고 있는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전철을 탔다.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내려서 숙소까지 가는 길이 훨씬 가깝고 쉬웠지만, 각자 무거운 트렁크와 한 짐의 배낭을 짊어지고 아침 출근 시간에 시내버스를 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숙소로 가려면 남부터미널 전철역(南部车站) 에서 출발하여 쿤밍역(昆明火车站)을 지나 다음역인 푸드역(福德站) 역에서 내려야 했다.
그러나 쿤밍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는 쿤밍역(昆明火车站) 이전의 리신루역(日新路站)에서 잘 못 내려버렸다.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숙소까지 이동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난감했다. 이럴 때 항상 두고 쓰는말 <窮 則 通>. 전철역 앞에서 호객하는 젊은 친구들의 오토바이를 흥정했다. 10위안을 주기로 하고 출발.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불안하게 한 손에는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바람을 가르며 많은 인파와 차량이 질주하는 시내 중심가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정신이 아득하고 팔이 저려왔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상하이살롱(上海沙龙)의 숙소(鑫元酒店)에 도착해 虎巖선생과 합류했다. 맹해에서 헤어진 후 虎巖선생은 우리 虎巖茶道의 또 다른 茶인 창닝차(昌寧茶)를 위해서 창닝(昌寧)과 영덕(永德)에서 홀로 고군분투 해왔다. 虎巖선생도 어제 밤 永德에서 출발, 10시간 야간 침대차를 타고 새벽에야 쿤밍(昆明)에 도착했다고 한다. 내일로 예정된 압병(壓餠) 과정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들으려 했으나, 차창(茶厰) 사정으로 이틀 후인 18일에야 압병(壓餠)이 가능하단다. 이틀이 연기된 것이다.
하루하루를 허비하지 않고 충실히 보내려고 했던 우리는 실망했다. 그러나 虎巖선생의 설명을 듣고 연기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차창(茶廠)의 압병(壓餠) 조건이 우리 虎巖茶道의 요구에 충족되지 않아 시간을 주고 몇 가지 과정을 더 업그레이드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변수를 현장에서 직접 해결하면서, 차가 완성될 때까지 道닦는 심정으로 대처해야 한다. 茶山의 다원(茶園)관리부터 채엽(菜葉), 살청(殺靑), 압병(壓餠), 포장(包裝) 운송(運送) 뿐만 아니라 그 각각의 과정 사이의 세세한 부분까지 변수가 발생할 수 있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반펀차(班盆茶)는 며칠 전 보이차의 메카인 勐海의 항캉차창(恒康茶廠)에서 압병(壓餠)했다. 그러나 이번 창닝차(昌寧茶)의 茶山은 너무 멀어 茶가 완성된 후 한국행 운송도 고려해 쿤밍(昆明)에서 압병(壓餠)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물론 창닝(昌寧) 茶山 부근에도 압병(壓餠)할 수 있는 차창(茶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곳의 차창(茶廠)은 우리 기준으로 보면 만족할 수가 없다.
일단 오늘은 쿤밍 시내에서 차와 관련된 다른 일을 보기로 했다. 먼저 중국은행(中國銀行)에 갔다. 吳선생의 경비가 바닥나 가지고온 달러를 위안화로 환전하기 위해서였다. 환전은 중국은행(中國銀行)에서만 가능하단다. 그러나 실제 환전은 은행에서 하지 않고, 虎巖선생이 환전상에게 연락해 은행 앞에서 이루어졌다. 환율의 차이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다. 많은 환전상 중에 가장 오래 거래를 해온 믿을 만한 환전상이라고 한다.
환전을 마친 우리는 완성된 우리 湖巖茶道의 茶를 한국까지 운송해 줄 회사를 찾아갔다. 회사는 남부터미널(南部客運站) 바로 건너편에 있는 로스완 국제시장(中豪•螺蛳湾国际商贸城)에 있었다. 로스완 국제시장의 규모는 상상한 것 보다 훨씬 컷다. 한 개 동(棟)이 한 블록을 차지하고 있는 5층으로, 건물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로 넓었다. 이런 동이 9개나 이어져 있어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시장의 건물 안에서 땀이 날 정도로 한 참 걸은 후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평범한 차 가게처럼 보이지만 여사장이 물류 운송도 취급하는 비교적 깨끗하고 넓은 공간이었다. 젊고 아담한 체구에 비해 말이 당차고 머리회전이 엄청 빠른 분이었다. 한국으로 들어가는 거의 대부분의 차가 이 여사장을 통해 운송된다고 한다. 압병(壓餠) 후에는 운송을 맡기고 처리할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오늘 미리 와서 확인하기 위해 들렀다.
로스완 차 시장에서 나와 전철을 이용해 캉러 차 시장(康樂文化茶城)으로 이동했다. 이곳에 우리 창닝차(昌寧茶)를 압병할 차창(茶厰)을 소개해 줄 사람이 운영하는 차 가게가 있다. 양펑(揚峰)이라고 하는 한족 출신의 젊은 차 상인이다. 본인은 출장가고 부인이 차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이 차 가게도 다른 가게와 마찬가지로 노반장(老班章) 보이차를 비롯한 다양한 유명한 차가 진열되어 있었다.
물론 무늬만 노반장(老班章)이고 내용물은 알 수 없는 차일 것이다. 진정한 노반장차(老班章茶)인지 가게 주인에게 물어 보았다. 대답 대신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가게 한 쪽에서 두 젊은이가 사탕 모양의 일회용 茶를 만들고 있었다. 저 차는 무슨 이름으로 팔려나갈까? 이 차 가게에서 야생차(野生茶)라 부르는 전차(磚茶)를 만들기도 했단다.
캉러(康樂) 차 시장은 진스쇼치(金實小區)에 있는 웅달차성(雄達茶城) 차 시장보다는 작지만 차 유통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보이차 시장에 밝지 못한 차 상인들은 勐海 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쿤밍에 있는 이곳 캉러(康樂) 차 시장에 들러 시세를 파악하거나 차를 구입해 간다고 한다. 물론 勐海에서 보다 비싼 가격으로. 그러나 이곳까지 올 수 있는 차상인 이라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한국의 많은 차상들이 북경의 마련다오 차시장(北京馬蓮道茶城)에서 차를 구입한다. 물론 캉러(康樂)에서 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압병(壓餠)에 필요한 준비 절차를 점검하고 숙소로 귀환하던 도중 재래시장에 들렀다. 雲南의 다른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이곳 쿤밍의 재래시장도 풍성하고 다양한 식재료가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었다. 저녁 식사에 필요한 채소와 거위 알을 구입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가능한 식사를 직접 요리해 먹는데 익숙해 있다. 장기간 중국에 채류하다 보면 식비도 만만치 않지만, 무엇보다 몸과 입맛에 맞는 음식이 필요했다.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직접 만든 올해의 반펀차(班盆茶)를 음미하며, 압병(壓餠) 전 이틀간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계획을 세웠다. 虎巖선생의 조언으로 내일은 졘수웨이(建水)에 다녀오기로 했다. 졘수웨이(建水)는 보이차를 우리기에 적합한 자도(紫陶)가 생산되는 곳이다.
- 素 雲 -
첫댓글 2016년 한 해 中國 雲南省을 네 번 다녀왔다. 모두 普洱茶와 관련된 여행이었다. 普洱茶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과 경험을 공유하고자 틈나는 대로 과거의 기억 속으로 잠시 들어가고자 한다. 苦難한 긴 여정들이었지만 요즘같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도피할 수 있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이기도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