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와 반대
김승후
최근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전해 받았다. 작가 이기호의 단편 소설집이다. ‘재미있다’라는 그분의 말은 책에 대해 기대를 갖게 했다. 사실, 어떤 책을 추천받게 되면 추천하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권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서 전해주는 사람이 독서의 취향이 나와 같은가 잠시 고민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책은 기대 이상 재미있었다.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 깃든 메시지가 더 그랬다. 책 속으로 쉽게 빨려들어 가는 것을 ‘재미’로 표현한다면 다 읽고 난 후의 여운은 감동이라 말 할 수 있다. 특히, ‘한정희와 나’라는 작품은 ‘환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그를 위한 것 같지만 실상, 나를 위한 일이 된다. 돕는다는 것은 돕는 자의 자존감을 높여줄 뿐더러 행복감을 안겨준다. 자신이 썩 괜찮은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올해 초 어떤 청년의 기억은 좋게 시작되어 좋지 않게 마무리가 되었다.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던 그가 나의 관심으로 인해 삶의 희망을 찾고 변화되어 간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내게는 만족감과 기쁨이 충만했다.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라 여겼다. 하지만 친절이 계속되자 권리로 바뀌고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더 친절한 남편에게 수차례 씩 돈을 요구했다. 오죽하면...하는 역지사지로 너그러움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내가 총대를 메었다. 형편 따위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그에게 양심이라는 것을 자극시키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상대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우리의 긍휼함을 자극했다. 키워드로 치자면, 공황장애. 응급실. 병원비등이었다. 카드로 내주겠다고 하니 오직 현금으로 입금해 달라는 말이었다. 다분히 의도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틀 사흘 간격으로 돈을 달라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어가는 것이다. 억누르던 분노가 차오르자 바로 폭발하고 말았다. 이기호의 작품 속 화자가 말했던, ‘넌 참 나쁜 아이구나’라고 말한 것처럼 나 역시, “정말 몹쓸 사람이네요.”라고 말해 버렸다. 당황한 상대는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이후 욕만 안 한 장문의 글을 내게 보내왔다. ‘그래요, 나는 호빠 출신이에요’라는 말과 함께. 호빠...단어를 몰라 남편에게 물었더니...하.하.하 ...씁쓸했다.
사람은 누구나 반대보다 환대받기를 원한다. 환대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할뿐더러 자존감을 높여 주기 때문이다. 반면 거절은 말할 나위 없이 불쾌감과 아픔을 안겨준다. 그래서 거절은 매우 부정적이다. 사람에게 무한 긍정적인 환대만을 베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실상, 환대와 냉대 사이에 가끔 갈등을 겪는다. 특히 모든 것을 ‘용납하라’는 성경적 관점에서 더 그렇다. 정말 다 용납하며 살 수 있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만큼이나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를 또는 우리를, 신경 쓰이게 하는 누군가를 환대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그 대상이 정해진 법리적 틀 안에서라면 오히려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계성의 문제라면 사람의 감정이 개입되기에 경계가 모호하다. 불편한 대상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라고 물어 온다면 마땅히 할 말이 없어 당황스러울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것’이 때로 매우 좋지 못한 결과로 진행될 때가 있다. 이러한 경험은 부정적 각인이 된다. 그래서 두려운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사람’이라든지, ‘당신은 친절한 사람이란’ 평은 만족을 줄 수 있지만 뒤집어 보면 불편함에 민감해서 선수를 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둔한 대상은 마냥 좋은 줄 알고 때로 선을 넘어오기도 한다. 결국, 환대가 아닌 반대로 응수하면 매우 실망하거나 분노한다.
환대만을 바라거나 냔대를 상처로만 받아들이는 경우는 본인도 타인도 어려움이 생긴다. 거절 의사를 표했음에도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여전히 환대를 원하거나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거절을 경험한 적이 있다.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신에 대해 더 그랬다. 응답 되지 않았던 수많은 기도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분을 아직 떠나지 못하는 것은 거절 속에 성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거절을 당하면 당장 서운함이 들지만 어느 새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상대를 환대하지 못한 기억들은 여유롭지 못한 마음의 아쉬움과 미안함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환대와 반대, 이 둘은 함께 공존하며 관계의 중간 어디쯤에서 오늘도 나는 서성이며 고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