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
김태길/대한민국 학술원 회장 역임
"인생관"이라는 말로써 명백하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정리된 의식의 체계를 일컫는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의 지식 또는 의식에 도달한 사람들만이 갖는 사상이라는
뜻이 될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한 언어로써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된 형태의 것은
아닐지라도 자기들 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
이러한 생각과 판단도 "인생관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며 그러한 뜻의 인생관은 조선시대
의 일반 대중에게도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같은 넓은 뜻으로 "인생관"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의 인생관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았으며 인생에서 무엇을 소망했으며 또 어떠한 태도로써 소망의
달성을 꽤했던 것일까?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서 그 시대의 소설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대략 살펴보기
로 하자.
조선시대의 사람들도 여러가지 계층이 있었으므로 그들의 인생관을 일률적으로 논할 수는
없다. 여기서 할수 있는 것은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경향의 대강을 추리는 일에 그치며
특수한 사람들의 특수한 생각들을 파헤치는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오늘날 서구 문명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 문명속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과 인간을 대립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은 인간
에 의하여 정복되고 이용될 대상으로서 눈앞에 떠오른다.
자연은 두려움과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초월적인 존재였다.
조웅전<趙雄傳>의 다음 구절은 그러한 사고방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더듬어 들어가는 산은 신선이 살 법한 극히 험준한 절경뿐이었으며 자연과
인간이 동감이 된다기보다도 그 거창한 자연의 품 안에 싸여 들어가 비로소
자신의 작고 힘없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고 하는, 그것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 위대한 자연의 위엄을 보여주는 광경이더라.
바위도 나무도 하늘도 순정한 원색의 빛을 보여주고 그 하나하나가 거대한
힘의 조화에 의해서 인간의 상상을 압도해 주고 있더라.
종교적인 경건한 감명이 절로 나서 위대한 자연의 시위 앞에 무릅을 꿇고
복종과 노예를 맹세하고 싶을 정도였으니....
조선시대 소설 가운데서 자연 풍경을 묘사한 대목은 어느 작품에서도 찿아볼 수 있거니와
거기에 나타난 자연은 아름답고 놀랍다. 자연과 인간의 거리가 가까웠다기보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더 상징적인 대목으로는 춘향전 끝머리에 춘향이 서울로 떠나갈 때
"놀고 자던 부용당아 너 부디 잘있거라. 광한루 오작교며 영주각도
잘있거라" 하며 자연에까지 작별인사를 잊지 않은 장면을 들 수 있다
한시나 시조에 있어서 자연을 읊은 작품이 대단히 많으며 산문으로 인간을 묘사할 경우에도
자연에 비유한 표현들이 많다.
미인을 묘사할 때 "입술이 앵두같다" "눈썹이 초생달 같다."허리가 細柳같다. 하는 따위다.
모든 자연물에는 영혼과 마력이 있는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큰 산 깊은 강. 높은 바위 굵고 큰 나무 등은 외경과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본래 우리 조상들의 태고적부터 깃들었던 샤머니즘의 사고방식이라고 하겠으나
단순히 샤머니즘에 국한된 사상이 아니고 적어도 조선시대의 소설을 즐겨 읽는 우리 조상들에
관한 한,그들의 것으로서 소화된 유교,불교.도교,어느 사상 가운데도 깔려있는 기본적
관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학술원상수상
김태길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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