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등반사

에베레스트(8,848m) 북동릉은 라피우라(Rapiu La·6,510m)에서 정상까지 길이가 약 5km다.
이 루트의 최난 구간은 북동숄더(8,393m) 아래 피너클 지대인데,
3개의 검은 암탑이 커니스진 칼날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1982년 영국의 피터 보드맨과 조 태스커가 실종된 곳이다.
북동숄더에서 우측으로 또 하나의 능선이 갈라져 창체(북봉·7,550m) 안부까지 이어지는데, 이것이 북릉이다.
창체 안부를 창라, 즉 노스콜(6,990m)이라 한다.
북동숄더에서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거리는 1.6km가 채 못 되는데,
악명 높은 퍼스트스텝과 세컨드스텝이 난 구간을 이루고,
그 위쪽에 1924년 영국대의 말로리와 어빈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서드스텝이 있다
에베레스트의 3개 능선 가운데 가장 긴 서릉은 전체 길이가 6km가 넘는데,
로라(Lho La·6,006m)에서 시작되어 웨스트숄더(7,205m)를 지나 난 구간인 암릉지대를 거치며 정상으로 뻗어 있다.
1953년 힐러리-텐징 조의 초등루트인 남동릉은 사우스콜(7,986m)에서 정상까지 길이가 1.6km에 불과한데,
가파른 설사면을 이루는 남봉(8,765m)을 지나고, 커니스 진 정상능선을 따라 높이 12m인 바위,
즉 힐러리 스텝을 거치며 정상에 이른다.
남동릉 출발지점인 사우스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표고차 900m인,
수많은 빙탑과 크레바스 투성이의 위험한 쿰부 아이스폴을 돌파해야 하고, 3.2km 길이인 웨스턴쿰을 통과한 후,
사우스콜까지 표고차 1,000m의 로체 서벽을 오르고, 제네바스퍼 위쪽으로 기나긴 트래버스를 해야 한다.
북릉과 서릉 사이가 북벽이고, 북릉과 북동릉 사이가 제2 북벽이다.
그레이트 쿨와르까지 북벽을 최초로 횡단한 산악인은 영국의 노턴이다.
그는 1924년 북동릉 상의 세컨드스텝을 우회하기 위해,
능선에서 150m 내지 200m 아래쪽 엘로밴드 레지(ledge)를 따라 그레이트 쿨와르까지 건너갔는데,
여기를 ‘노턴 트래버스’라고 한다.
그는 단독으로 해발 8,580m 지점까지 무산소로 진출하고 하산했다.
1933년 영국대의 해리스, 웨이저, 스마이스 대원도 노턴의 발자취를 따라 같은 고도에 도달했다.
1960년 중국대는 노스콜을 통해 북릉으로 오르고, 북동릉 상에 최종캠프(8,500m)를 구축했다.
그들은 동료의 어깨를 사다리 삼아 세컨드스텝의 상부 3m 슬랩을 돌파하고,
왕푸주(Wang Fu Chou) 외 2명의 대원이 새벽에 등정하여 에베레스트에 제2 루트를 개척했다.
1963년 미국대는 웨스턴쿰에서 서릉의 웨스트숄더에 오르고, 서릉 상에 C4(7,640m)를 구축했다.
혼바인-언솔드 조는 서릉 중앙의 암릉구간을 피하기 위해 북벽으로 트래버스하여 쿨와르(혼바인 쿨와르)를 돌파하고,
서릉 상부를 지나 등정하여 제3루트를 열었다.
1975년 일본대의 다베이 준코가 남동릉으로 최초의 여성 등정자가 되었다.
며칠 후 중국대는 북동릉의 세컨드스텝 상부에 알루미늄 사다리를 설치하고 티베트인 8명과 중국인 1명을 정상에 세웠는데,
그중 티베트 여성 판토그(Phanthog)는 두 번째 여성 등정자가 되었다.
그 해 가을 영국 보닝턴대는 남서벽의 거대한 중앙 걸리와 록밴드를 돌파하고,
작은 빙원 하부에 최종캠프(8,321m)를 구축했다.
해스턴과 스코트가 등정하여 제4등로를 열었다.
2차로 피터 보드맨과 셰르파 페르템바도 등정했다. 단독등반을 감행하던 버크 대원이 안개 속에서 실종되었다.
1978년 메스너와 하벨러가 남동릉으로 등반사상 초유의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1979년 유고대는 로라에서 웨스트숄더를 지나 영하 35℃의 혹한과 강풍 속에서 서릉 상에 C5(8,120m)를 구축했다.
만프레다 대원이 난이도 5급의 침니를 돌파하고, 자플로트니크와 스템펠리 대원이 만프레다 침니로 암릉지대를 통과하고,
서릉 직등에 성공하여 제5루트가 개척되었다.
며칠 후 벨라크, 보지크, 셰르파 앙푸도 등정했는데, 하산 중에 앙푸는 추락사했다.
1980년 2월 폴란드대의 치치와 비엘리키 대원이 남동릉으로 동계초등에 성공했다.
그 해 5월 일본대가 롱북 빙하에서 북벽 하부 록밴드를 걸리(일본 쿨와르)로 돌파하고,
C4(7,800m)까지 중국 산악인들의 지원을 받으며 설사면과 빙사면을 등반했다.
아키라 대원이 눈사태로 사망했지만, 그들은 혼바인 쿨와르를 통과하고 8,350m 지점까지 고정자일을 설치했다.
시게히로와 오자키 대원이 등정하여 제6루트가 개척되었다.
같은 달 폴란드대가 웨스턴쿰에서 남봉으로 바로 이어지는 사우스필라 루트를 개척하여 제7루트가 열렸다.
그들은 빙벽을 오르고, 높이 200m의 록밴드를 16일만에 돌파한 후, 최종캠프 C5(8,300m)를 구축했다.
공격조 초크와 쿠쿠츠카 대원이 남봉에 도달했을 때, 산소가 바닥이 났지만 등정에 성공했다.
그 해 8월, 메스너는 무산소 단독등정으로 제8루트를 개척했다.
그는 노스콜 아래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8m를 추락했으나 무사히 탈출했고,
북릉 7,800m 지점에서 비박한 후, 7,900m 지점까지 진출했는데,
눈사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북벽을 가로질러 그레이트 쿨와르 부근 8,220m 지점의 위쪽 바위턱에서 두 번째 밤을 보냈다.
다음 날 그는 쿨와르와 노스필라 암벽을 오르고 북동릉 상부를 따라 등정했다.
1982년 러시아대가 남서벽 중앙필라에 제9루트를 개척했다.
이 루트는 중앙 걸리 좌측 벽 중앙에서 가파른 암릉이 서릉 상의 8296m봉으로 이어진다.
모두 17명으로 구성된 등반대는 벽에 C2(7,350m), C3(7,850m), C4(8,250m)를 설치하고,
서릉 상에 최종캠프 C5(8,500m)를 구축했다.
발리베르딘과 미슬로프스키 조는 적색 록밴드를 2시간만에 돌파하고,
눈 덮인 슬랩에 피톤을 설치하며 최종캠프를 떠난 지 8시간 반만에 정상을 밟았다.
여러 조가 차례로 등반하여 도합 11명이 등정했다.
1983년 가을 미국대가 캉슝벽(동벽)의 중앙 버트레스로 열 번째 루트를 개척했다.
그들은 버트레스에 고정로프를 설치하고 설원에 최종캠프(7,865m)를 구축했다.
뷸러, 몸, 라이차트가 설릉으로 남동릉 상부에 올라 남봉을 경유하여 등정했다. 제2차로 카셀, 로우, 리드 대원이 등정했다.
1984년 호주의 소규모 등반대는 북벽의 그레이트 쿨와르 직등루트를 무산소로 완등하여 제11루트를 개척했다.
2년 전 미국의 위태커대가 8,380m 지점까지 진출했고, 여성 클라이머 마티 호이가 8,000m 지점에서 추락사한 루트다.
호주대는 쿨와르 오른쪽 설릉에 설동을 파고 제2캠프(6,900m)를 쿨와르의 크레바스 속에,
제3캠프(7,500m)를 쿨와르 건너편에 텐트 한 동으로 제4캠프(8,150m)를 구축했다.
공격조가 옐로밴드를 넘어, 정상 사면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등반 중에 앤디 대원은 포기했고,
팀과 그레그 두 대원은 서릉 상부에 도달하여 작은 록밴드를 넘어 일몰시각에 정상에 섰다.
같은 달 미국 위태커 대가 노스콜을 경유하며 북릉의 7,300m 지점에서 그레이트 쿨와르까지 북벽을 횡단하여 C5를 구축했다.
로스켈리 대원은 무산소로, 어실러 대원은 산소장비를 휴대하고 C6(8,100m)를 출발하여 옐로밴드 위쪽까지 진출했을 때,
로스켈리는 저체온증세로 등반을 포기했고, 어실러는 등정하여 제12루트가 열렸다.
1986년 캐나다 여성 샤론 우드가 동료 여성 콩든과 서릉을 등정했다.
같은 해 스위스 산악인 로레탕과 트루아예가 북벽의 일본대 루트,
즉 혼바인 직등 루트를 순수 알파인스타일로 등정했다.
그들은 고정캠프도 설치하지 않고, 셰르파 지원도 없이 텐트나 로프도 휴대하지 않고,
설동 설치용 삽 한 자루를 가지고 야간등반을 시작했다.
그들은 도중에 긴 휴식을 취하고, 등반을 계속하여 39시간만에 등정하고,
정상에서 1시간을 보낸 후 글리세이딩으로 3시간 반만에 하산했다.
1988년 소규모 영미 합동대의의 베너블즈가 캉슝벽과 남동릉으로 등정하여 제13루트가 열렸다.
그들은 캉슝벽 중앙 버트레스 좌측의 가파른 버트레스에 고정자일을 설치하며 6,500m 지점까지 오르고,
1,500m 설벽을 오른 후, 사우스콜에 제3캠프를 구축했다.
8,600m 지점에서 웹스터와 앤더슨 두 대원이 등반을 포기했으나, 베너블즈는 단독으로 무산소로 올랐다.
같은 해 영국대의 테일러와 브라이스는 북동숄더까지 북동릉의 미등구간을 등반하여 제14루트가 개척되었다.
그들은 북동릉을 완등하지 못하고 북릉을 따라 노스콜로 하산했다.
같은 해 프랑스 산악인 바타르가 남동릉을 BC에서 정상까지 22시간 반만에 등정했다.
1995년 일본대가 4,000m의 고정자일을 깔며 북동릉을 완등했다.
같은 해, 말로리의 손자 조지 말로리 주니어가 북릉과 북동릉으로 등정했다.
1996년 러시아대의 페트르, 발레리, 그리고리 세 대원이 북릉과 북동릉 사이의 벽,
즉 제2 북벽에 있는 가파른 암설 쿨와르를 돌파하고
북릉의 8,250m 지점까지 신루트를 개척하며 등정하여 제15루트가 완성되었다.
1997년 초등자 텐징 노르게이의 손자인 체링이 남동릉으로 등정했다.
1999년 미국대의 앵커 대원이 북벽 8,160m 지점에서 말로리의 유해를 발견했다.
2003년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을 기념하여 힐러리의 아들 피터가 남동릉으로 등정했다.
2006년 상업등반대에 참가한 70세의 일본인 아라야마가 북릉~북동릉으로 등정했다.
국판 789쪽. 2000년 미국 마운티니어즈 출판사 제3판 간행.
이창기 전 강릉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