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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행운의 법칙 스크랩 동기 부여의 10가지 방법
김박사 추천 0 조회 398 08.05.27 22: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동기 부여의 10가지 방법


1. 학생들의 필요를 느끼게 함으로 동기부여 하라.

대개 사람들이 어떤 것을 공부할 때는 그것이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성도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당신은 왜 성경을 안 읽으시죠?"

아마 이유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지적하자면,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에'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현재 성경을 읽을 필요나 중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희생해서라도 그 일을 해야 할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구도자 한 사람을 그에게 데려가서 그 더러 이 구도자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요청해보라. 적어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펴야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전해야 할 말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부분을 찾아보고 생각하며 준비할 것이다. 필요하면, 정말 필요를 느끼면 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을 필요가 없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기 부여시키는 제1원리가 '필요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필요에는 두 가지 영역이 있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필요'가 있고, 나는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지만 '정말 나에게 필요한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동기 부여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을 무엇일까? 바로 학생에게 실제 필요를 느끼는 필요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학생을 교사가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실제 필요를 느끼고 살지 못하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영혼에, 우리 삶에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못 느끼고 살아가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대인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문제를 다루면서 그것에 대해서 좋은 예를 얻었다. 내가 그 문제를 다뤄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청년 초기였다. 나 자신이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실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농담, 반어법들을 사용하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었다. 그리고는 내가 조금 다듬어지고 난 후에 지나치게 농담을 잘 하는 사람을 보니까 그 말이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 사람은 성경을 인용해서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 때 생각했다. `아, 이것이 좋은 것이 아니구나.' 나는 그 때 결심을 했다. 그리고는 이 부분에 대해서 배워가려고 노력했다. 사람들과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계속 이 문제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예전에 한 형제가 5년 동안 군대에 있을 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부분을 가지고 교제한 적이 이었다. 교제를 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형제가 이야기를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웃으면서 동조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화가 끝난 후에 모두에게 물어 보았다. "조금 전에 이야기 한 형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습니까?"그렇게 묻자 모두들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왜 웃었냐고 묻자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상관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했던 형제에게 찾아가서 물어봤더니 자신은 말을 아주 잘 했다고 알고 있었다. 난 이것이 아주 심각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다루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세미나를 하고 책도 출간하게 된 것이다. 내가 그 문제에 대해서 뚜껑을 열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이것이 이렇게 심각한 문제인지 몰랐습니다." 이렇게 해서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

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필요'라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의 발전이 이 필요를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요에 대한 인식은 더 수준 높은 삶에 대한 깨달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말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서 달려간다고 말했다. 오직 주 예수를 위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 모든 자신의 과거들을 놓게 만들고 모든 삶의 애착들을 끊어버리고 주님만을 위해서 고난과 핍박과 그 아픔의 길을 걷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그가 셋째 하늘에 올라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셋째 하늘에 올라 간 사람이 사도 바울이라고 믿을 수 있지 않는가? 그 곳에 올라가서 가히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하늘의 신비를 경험했고 깨달았다. 그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봤을 때 그것들을 추구해야 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다른 것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더 수준 높은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나니까 헌신의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이다. 선교사들이 왜! 어떻게 선교의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금 당장 선교지로 떠나라고 한다면 도망갈 것이다. 왜냐하면 대개의 성도들에게는 당장 그것을 선택할만한 개인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신앙 안에서 본 것, 경험한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하늘의 신비를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하늘의 보화가 얼마나 부요로운 것인지 내게 약속된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아직 내 마음에 확실히 새겨놓지 못했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삶의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포기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더 높은 수준의 삶을 깨달아야만 기꺼이 그것을 버리고 헌신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특히 가정 사역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 대개 그렇다. 내가 가정사역에 대해서 비전을 품고 있고 그냥 처음부터 `내가 이것을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동기부여 받은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누군가의 삶을 보고, 책을 통해서 이런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깨달음이 나의 가치관이 바뀐 것이다. 더 수준 높은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면 이전에 내가 생각해 왔던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에 대한 비전을 가지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이런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발견이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새로운 필요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시킬 때, 학생들이 필요를 느끼게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더 수준 높은 영적이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었을 때 그들이 `그렇다면 나도 그것을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라고 느끼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말로 설명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또 실제로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학생이 '이런 삶이 가능하구나. 진짜구나."라고 느낄 때 스스로가 그것을 추구하고 자발적인 헌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학생들에게 진짜 무엇이 필요한지 또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우리들의 삶의 문제, 학생들의 삶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시급한 문제를 찾아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급한 것 위주로 살아가기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중요한 것을 볼 줄 안는 눈이 필요하다. 삶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학생에게 진짜 무엇이 중요한가.

두 번째로는 영혼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균형이 이뤄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고 그것을 밝혀주어야지 그 학생이 그 필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순간순간 그 학생들과 반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사는 마치 축구 심판과 같아야 한다. 교사는 아나운서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 높은 곳에 앉아서 뛰어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서 "네, 누구는 잘합니다. 누구는 이렇게 뛰고 있네요, 저러면 안 되죠!"라고 말하는 교사가 되어선 안 된다. 교사는 오히려 축구장에서의 심판과 같이, 선수의 곁에서 함께 뛰며 지켜봐야 한다. 순간순간 같이 반응을 해주면서 필요를 인식해야만 진짜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깊은 통찰력을 가져야 길러야한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훌륭한 교사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미리 보고 그것을 준비하도록 사람들을 격려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훌륭한 교사는 이런 리더들이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먼저 생각하고 남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의 중요함을 깨달아서 그것을 자기 마음에 새겨 남들에게 알려줬던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움직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모세는 왕궁의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깨달아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사람들에게 가나안을 향해서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왜? 사람들은 그 필요를 못 느꼈지만 모세는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이 속박으로부터 풀려나서 먹을 것 마음대로 먹고, 입을 것 마음대로 입고 구박 받지 않고 사는 것이었지만, 모세가 느끼는 필요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준 필요는, 인생의 목표는 더 높은 수준의 하나님의 사명이었다. 그것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적인 눈을 소유했던 엘리사는 어떠했는가? 자기 주변을 둘러싼 적군의 주변에 있는 천군 천사들의 그 놀라운 호위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통찰력을 길러야만 학생들의 진정한 필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말한다. 우리의 마음눈을 밝히사 지혜와 총명을 주사,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해주시고 성도의 기업의 풍성함의 어떤 것을 알게 해달라는 특별한 기도를 드린다. 우리 모두도 또한 그러한 기도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학생들의 필요를 알 수 있고, 그 필요를 드러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은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슬쩍 드러내서 "야, 이거 너한테 필요한 거 아니었니?"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놀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중요한 것을 왜 몰랐지?'

그 때부터 내 학생은 변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참된 필요 앞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자기가 느끼는 필요는 우리를 어려움과 바쁨 속으로 끌고 가지만 진짜 필요는 우리를 성숙으로 심각한 고민가운데로 이끌어 가면서 주님 앞에서 결단하는데 까지 나아가게 한다.


여러분이 모두 많은 일들로 바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많은 어려움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교사대학이라는 주제를 함께 다루려고 애썼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기에 지금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필요가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다. 너무나 중요하다. 모든 것을 희생하고 지금부터 출발할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습] 현 시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2. 책임감을 개발함으로 동기부여 하라.

책임감을 개발시킴으로써 동기를 부여시킬 수 있다. `스스로 한 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을 주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스스로 한 시간 동안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계획해서 하도록 하는 것, 이것도 일종에 학생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해서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다.

학생들에게 약간의 책임을 맡길 때 그들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내가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네가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찾아서 정리해줄 수 있겠니?"라고 했을 경우, 그 학생은 굉장히 열심히 그것을 준비할 것이다. 이렇게 책임감을 주어서 동기를 부여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늘날 많은 경우 교회에서 배우는 젊은이들에게 책임을 맡기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20대 초반의 파일럿에게 수백억이나 되는 비행기를 맡기는데, 그 청년에게 교회는 아무 것도 맡기지 않는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말이다. 오늘날 많은 경우 젊은이들에게 책임을 맡기지 않는 경우를 본다. 이것이 우리들의 문제이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그런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20대 일군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 수가 없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가 존경하는 분들은 상당수가 20대에 하나님의 일을 전심으로 시작했다. 역사 속에 쓰임 받았던 위대한 종들도 20대에 놀라운 업적을 남기고,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런데 오늘날 20대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20대에 여전히 그 청년들을 어린아이처럼 보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이 아닌가? 나는 이것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맡기지 않고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일을 맡겨서 하게하고 뒤에서 도와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앞에서 다 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이 청년들은 어디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방황해야하는 것이다. 나는 25세에 의사가 되었다. 나라로부터 정식으로 환자를 치료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그 때 교회에서는 어떤 허가를 받았는지 아는가? 사실 그 때까지도 교회는 나를 그저 '기특한 젊은이' 정도로 취급했던 것 같다.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사람들을 다루는 삶은 사는 한 사람에게!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책임을 맡을 수 없는 사람에게 책임을 맡기는 것은 해로운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자꾸 뒤로 물러나는 사람에게 단지 그를 그룹에, 그 일에 참여시키기 위해 책임을 맡기는 경우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을 반대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그런 경우 일도 실패하고 그 사람도 오히려 더 싫증을 느끼고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동기부여라는 측면에서 책임을 맡기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젊은이에게 책임을 맡기고 학생들에게 교사가 창조적인 방법으로 책임을 맡겨줌으로써 그 학생을 움직이고 동기 부여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책임을 줄 때는 그 책임이 교사에 의해서 평가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줘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교사의 그늘 안에서 자기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그것을 지켜보고 있고 언젠가 그것을 확인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줘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다. 70명의 제자를 파송하실 때, 주님께서 책임을 맡기셨다. 그러나 그들이 그 일을 다 끝내고 와서는 그것을 보고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마 토론을 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변론하고 토론하고 다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을 전제로 해서 그 책임이 맡겨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책임감을 통해서 많이 배울 수가 있다. 그것을 앞서 말했듯이 단지 직책만 많아서 우리가 배운다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잘 계획되고 준비되고 배려된 책임, 교사의 보호와 권위 아래서 주어진 책임을 통해서 잘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훈련이라는 측면에서 부여받을 수가 있다.


3. 흥미를 계속 느끼게 함으로 동기부여 하라.

흥미를 계속 느끼게 함으로써 주의를 끌고 동기 부여시킬 수가 있다. 누구든지 한 그룹이나 어떤 한 사람의 주의, 관심을 일시적으로 끌기는 쉽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내 경우를 이야기하겠다. 나는 한 편의 메시지나 한 시간의 이야기를 전할 때도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시도를 한다. 물론 학생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다양한 시도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말씀을 전하기 전에 특송부터 할 때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목적 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 가끔 내가 회중들을 향해 성경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흐트러진 전체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의 하나다.

교사는 학생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힘들뿐 아니라 그 아이들의 시선과 관심과 그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전쟁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수중발레(싱크로나이즈)에 비유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물 위에서 보이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카메라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물 밑에서는 난리가 난다. 물위에 떠있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발을 저어야하는지 우리는 생생히 보아서 알고 있다. 그런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그와 같이 너무나도 힘든 작업이다. 산만해져 있는 학생들의 집중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물 밑에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능한 교사일수록 아이들과 만나는 그 한 시간이 지나면 많이 지친다. 계속해서 학생들의 흥미를 집중시키는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흥미를 유발하고,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위해서는 [교수법]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방법들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흥미집중이라는 것은 물론 장기적인 것이라는 것을 포함한다.


4. 경험을 체계적으로 연관시킴으로 동기부여하라.

경험이 실제적으로 적용될 때 그것이 참된 가르침이고 학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자기가 배운 것들을 실제적으로 삶에 연관시킬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동기 부여하는데 도움이 된다.


*동기부여를 위한 훈련의 4단계


1) 말하기 단계-

말로써 동기 부여시키는 것이다. 또 말로써 동기 부여시키고 난 다음에 그것을 문서화시키고 테이프로 녹음을 해서 반복학습 시키면 동기부여의 효과가 아주 클 것이다.


2) 보여주기 단계-

교사가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교사가 가르치는 것을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로 전도 수련회에 가면 교회 안에서 전도 실습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는 먼저 되신 형제, 자매님들이 하는 방법을 보고한다. 나도 예전에 성경 관찰 공부를 할 때 그랬다. 같이 본문을 정해서 관찰하고 그 관찰한 것을 나누고 정리하고 했었다. 내가 그 때 약속했던 것이 있었다. 같이 공부하고 같이 관찰하고 느꼈던 이것을 내가 전하겠다. 그냥 솔직했다. 그리고 거기서 했던 말씀을 대부분 나눴다. 그래서 깨닫고 느꼈던 것이 어떻게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는가를 여러분들에게 보여줬다.


3) 해보기-

통제된 상태에서 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모의실험이다. 예전에 청년들과 말씀 을 교제할 때 몇 번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토론도 통제된 상태에서 해보는 것에 속한다. 이런 것이 있어야만 실제로 내 삶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적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실생활에서 스스로 해 보는 것-

배운 것들을 구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만들어 줌으로써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좋다. 기도에 대해서 가르칠 때도 이렇게 하면 좋다. 그냥 이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때까지 교사가 도와줄 수 있다. 방법은 많다. 아이와 같이 기도할 수도 있고 아이에게 자기 집의 기도 노트나 기도 신문을 만들게 할 수도 있고 실제로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흥미를 유발시킬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5. 인정하고 격려하고 칭찬해 줌으로 동기부여

너무나 중요하다. 아마 형제, 자매 중에는 나에게 "형제님은 저를 동기 부여시켜 주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동기부여 했느냐고 묻는다면, "형제님은 저를 인정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럴 것이다. 나는 실제로 한 사람을 몇 년에 걸쳐서 격려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학생들을 격려하고 칭찬함으로써 동기 부여시킬 수 있다. 이런 경우 중요한 것은 그 학생이 모르는 장점까지도 드러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축복의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다.

만약 한 형제가 자기 자신도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교사가 먼저 "형제, 이런 일 하면 상당히 잘 할 것 같아."라고 말해줬을 때 그것은 그 형제에게 굉장히 밝은 빛이 될 수 있다. 음악적 재능이 있는 형제, 자매에게 "만약 발성법을 개발시켜서 나중에 찬양을 하면은 많은 성도들의 심금을 울릴 것 같아."이런 말 한 마디로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미래에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하고 기도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칭찬하고 격려함으로써 동기 부여 시켜주길 바란다.

제일 싫은 사람은 '일단 트집부터 잡고 시작하는 사람'이다. 정말 사람을 지치게 한다. 무조건 '안 좋다'는 말부터 하는 사람은 결코 다른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우리는 학생에게 "난 네가 앞으로 할 일이 너무 기대된다."라고 하는 이런 마음으로 지켜 봐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삐뚤게 보기 시작하면 학생들에게서 '왕따'당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하나님을 넉넉한 눈으로 늘 안타까워하시면서 어떻게든 우리가 잘되는 것을 원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교사들이 이와 같아야 한다. 늘 학생들을 걱정해주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그렇게 하셨지 않는가! 늘 엉뚱한 말을 하는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잘 대답했을 때 정말 많은 칭찬을 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아야 한다. 그리고 굳이 칭찬할 거리가 없더라도 기회를 만드는 것이 좋다. 어떻게 해서든 그 학생을 칭찬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적으로 칭찬하고 격려하길 바란다. 그 일을 위해 먼저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간접적으로도 칭찬해야한다. 예를 들어 글을 써서 칭찬하는 방법이다. 또 전화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을 칭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언젠가는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 형제의 허물을 말하는 것도 그대로 전달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남의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어리석음을 피해야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물로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칭찬 받을 만하다.

칭찬을 할 경우에 언어표현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 나중에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다룰 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실습]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칭찬하고, 그의 [미래]에 대해 격려하고 축복해 줄 수 있는 요소를 3가지 이상 발견하고 나누라.


6. 감정적인 장애를 해결해 줌으로 동기부여하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 실패할까봐 두려워하고 다른 학생에 비해 뒤쳐질까봐 두려워한다. 유능한 교사는 이런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실수를 잘 덮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개봉된 지 좀 되었기 때문에 이젠 잊혀졌는지 모르겠지만, [굳 윌 헌팅]이란 영화가 있다. 나는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서 비디오로 보았는데, 감동받았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온 한 '수학 천재인 청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특별히 주인공과 그를 돕는 정신과 의사인 교수가 서로의 문제를 깨고 가까워지는 장면에서 교수가 그 '상처투성이의 영혼'에게 해준 말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을 드러내기를 철저히 거부하는 청년에게 몇 번이고 교수는 이 말을 해 주었다.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냐!

그리고 그를 안아주었을 때, 20여 년간 청년을 둘러쌌던 왜곡된 인격의 껍질은 깨어지고, 그는 비로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 장면에서 나는 울었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저게 바로 교사다! 저게 교사다!"

사랑으로, 진실 된 마음으로 나의 학생의 영혼을 열어줄 수 있는 교사, 그런 사람이 우리는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내 영혼의 모든 감정적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할 때, 비로소 학생들에게 나아가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7. 건전한 경쟁을 장려함으로 동기부여하라.

여기서 말하는 `경쟁'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사람과 건전하게 경쟁하는 것이 유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피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음이 완악해서 남보다 높아지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가 경쟁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그 학생의 최선을 이끌어 내도록 기회를 줘야한다. 하지만 실패할 때가 많다. 우선 나부터가 나의 모든 최선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교사대학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처음에 이것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규모가 커질 줄은 몰랐다. 그저 몇 명의 학생회 교사를 준비시키려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원래 나의 스타일이, 어떤 것을 준비하면 철저히 준비하고 또 그 내용이 누가 봐도 흠잡을 데가 없고 어디에 내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그런 객관적으로 봐도 옳은 것이길 바라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까 손이 많이 가고 아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을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이렇게 한들 어느 누가 나의 수고를 알아주겠는가?' 그 때 주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네가 누구를 위해 사느냐?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준비하느냐?". 나 자신도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그 중요한 것을 가끔 잊을 때가 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나 사람들과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과연 여러분은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우리는 너무나 쉬운 삶을 살고 있다. 진보와 발전, 혹은 도전과 성취라는 말을 들으면 그것이 마치 세상적인 것처럼 여길 때가 많지 않는가? 그래서 바울이 '푯대를 향해서 달려간다' 말할 때 부담을 느낄 때가 많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는 그냥 가만히 있는데 다 해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의 평안이 어디에 있는가? 늘 뭔가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가? 때로는 체념하고 타협하면서도 만족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한 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살아왔을 수도 있다. 여러분이 먼저 최선을 다해본 뒤에 학생들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길 바란다.


8. 보상과 벌칙을 통해 동기부여.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동기부여를 할 때 이러한 상, 벌 체계를 이용한다. 교회에서도 이런 방법이 가능한지 생각해보자.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을 받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이다. 하늘의 상급을 위해서 열심히 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상은 우리의 동기부여에 있어서 성경 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실습] 그렇다면 [벌칙]이라는 측면은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9. 상호관계를 강화시킴으로 동기부여.


10.개인적인 열심을 냄으로 동기부여.

지금까지 동기부여의 10가지 방법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을 실제로 자신의 삶에서 적용하지 않으면 동기부여가 안 된다는 것이다. 동기부여 방법을 적용시키지 않으면 여러분이 동기부여가 안된 것이다. 그러면 이런 방법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 이 10가지 동기부여의 방법을 가지고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을 어떤 방법으로 동기 부여시킬 지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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