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판 n번방' 가해자들의 심리…"현실 불만, 약자를 표적 삼아"
머니투데이
정경훈 기자
채팅방 이용자들이 길고양이를 잔인하게 학대하고 영상을 공유한 '동물판 n번방' 사건이 큰 공분을 사고 있다. 학대범을 무겁게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시작 5일만에 20만명을 돌파했다.
사건을 접한 전문가들은 상습적 동물학대는 사람에 대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엄벌을 촉구했다. 아울러 교육·교정 시설에서 범행 예방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물판 n번방' 파문…엄벌 청원 쇄도
'동물판 N번방'에 공유됐다는 고양이 학대 장면 /사진=뉴스1(독자 제공)
1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성동경찰서는 고양이 학대 영상 등을 공유한 오픈카카오톡 채팅방 '고어방' 이용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중이다. 동물자유연대는 이 방에 동물 살해 장면 영상이 공유됐다며 동물보호법·야생생물법 위반 혐의로 이용자들을 고발했다.
동물자유연대가 알린 채팅방 대화에는 화살 맞은 고양이가 피 흘리는 장면, 고양이 머리로 추정되는 물체 사진 등이 공유됐다. 단체는 "이번 사태는 '동물판 n번방 사건'과 같은 심각한 사안"이라며 "결국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폭력성이 내재돼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 방 참여자들을 엄벌해달라며 7일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은 12일 오후 3시35분 기준 22만492명의 동의를 받았다.
끊이지 않는 동물학대…도대체 왜?
고양이 학대 오픈카카오톡 채팅방 이용자들을 엄벌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 글. 12일 오후 3시35분 기준으로 22만492명이 동의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동물학대 영상을 서로 유포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상당한 불만족을 느낀다는 기본 특징을 갖는다"며 "명확치 않은 피해의식에 잡혀 약한 존재를 괴롭히는 방법으로 스트레스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공 교수는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범죄를 공유하면서 '동물학대는 용인된다'는 왜곡된 정당화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며 "학대할수록 중독돼 더 잔인하게 진화하면서 결국 아동이나 여성 등 자기보다 약자를 표적으로 한 범죄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동물, 약자에 공감능력 못느끼는 개인들이 동물을 도구화해 벌인 범죄"라며 "고어라는 단어 자체가 '자신은 특별한 것에 관심을 두는 사람'임을 과시하는 말로 읽히는데, 어디선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불법적 방법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엄벌로 '중범죄'라는 메시지 던져야…교육은 체계부터 만들자"
전문가들은 처벌과 교육을 동시에 강화해야 동물학대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동물보호법상 학대범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야생생물법은 학대범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송시현 변호사(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이사)는 "증거가 뚜렷해 범인들의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면서도 "동물보호법상 처벌이 2월 12일부터 3년 이하 징역에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시행되지만 이 사건은 현조항 적용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송 변호사는 "학대를 막으려면 일단 엄벌을 통해 '동물학대도 큰 범죄'라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이 범죄에 대한 아직 형량이 약하고 제대로된 양형기준도 없어 판검사의 '동물권 인식' 정도에 처벌 정도가 크게 갈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행 기준에서 최고형을 구형·선고해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라며 "엄벌에 그치지 말고 아직 부족한 동물학대에 관한 교정시설 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고양이를 상대로 학대행위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이 11일 동물자유연대를 통해 공개됐다./사진=뉴시스(동물자유연대 제공) 2020.1.11.
공 교수도 "서양의 경우처럼 한국도 상습범에 대해서는 신상공개를 검토하는 등 관련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예방을 위해 생명 존중 인식을 어린 시절부터 익힐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은의 변호사(변호사 이은의 법률사무소)는 "단순히 동물을 학대하기만 한 범죄가 아닌데다가 향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중범죄로 이어지거나 영향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심각한 범죄"라며 "적용법조에 대한 검토가 다각적으로 필요한데, 이를테면 동물을 성적으로 학대한 영상을 올렸다면 정보통신망법 위반에도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대 장면 등 공포감·불안감을 유발한 영상을 남에게 반복적으로 도달하게 해도 같은 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며 "다만 현재는 해당 영상을 반복적으로 도달시킨 것만 처벌하는 등 맹점이 있는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혐오나 학대 관련 영상 등 전시·배포하는 행위를 포섭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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