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교수 “한국대학, 서열과 학비 없고 교육기회와 교육수준 보장하는 독일식 개혁 필요해”
-독일 대학은 입학시험 및 서열과 학비가 없고,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어
-독일에서는 교육이 아버지의 돈 지갑 부피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야만이라고 봄, 한국도 대학을 보는 관점을 바꿔야
-서열화 되지 않고서도 독일 대학은 노벨상 수상자 숫자가 줄어들지 않아... 경쟁을 통해 서열화 시켜야 학문 수준이 높아진다는 말은 옳지 않아
-서구사회의 성격을 질적으로 변화시킨 68혁명을 통해, 독일은 대학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누구나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됨
-수학공식 영어단어에 갇혀 있는 우리 아이들 보면 눈물나, 성적에 매이지 않고 누구나 잠재력을 발현하는 대학체제 만들어야
■
제2편 동영상 보기(이미지 클릭 시 실행됨)- 1부
-2부
[제1부]
△김태훈 : 대학서열해소를 위한 전문가 연속 인터뷰의 두 번째 시간으로 김누리 교수님을 이렇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김누리 교수님은 독일과 프랑스의 68혁명 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으시고 또 독일에서 공부도 하셨기 때문에 유럽의 대학체제에서 뭔가 시사점을 얻을 수 있겠다 싶어서 꼭 한번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김누리 : 평소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훌륭한 일을 하신다 멀리서 응원하고 있었는데 오늘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 사회를 이렇게 희망 없는 사회로 만들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좌절 상태에 묶어두는 대학서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일 대학은 입학시험 및 서열과 학비가 없고,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어
△김태훈 : 우선 첫 번째 질문은요, 한국과 독일의 대학체제가 어떻게 다른가, 또 그 차이는 왜 나타나는 건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누리 :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대학을 가거나 또 대학원을 가거나 할 때 항상 경쟁을 통해서 하고 또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생각을 하죠. 저도 독일에 가기 전까지 대학원생인데도 독일의 교육 체제를 잘 몰랐어요. 그런데 독일에 가 보고 너무나 놀란 거예요.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대학의 모습이 유럽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보고 놀란 거죠.
독일의 경우는 대학 입학시험도 없고 소위 대학 서열이라는 것도 없고 학비도 없어요. 이거 상상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 시험만 있구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아비투어' 라고 하는데 이 아비투어는 대체로 80-90% 가 붙어요. 다시 말하면 대학에 가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거의 다 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놨다 이렇게 보면 돼요. 그 다음에 이 아비투어에 붙으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어요. 그것도 놀라운 거예요. 우리처럼 서열화 돼서 그야말로 살인적인 경쟁을 하는 이런 체제하고는 전혀 다른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거지요.
-독일에서는 교육이 아버지의 돈 지갑 부피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야만이라고 봄, 한국도 대학을 보는 관점을 바꿔야
▲김누리 : 독일의 교육 이라고 하는 것은 '경쟁은 야만이다'라고 하는 아도르노의 교육철학에 입각해서 독일의 교육이 진행이 돼요. 초등학교 때부터 석차나 등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아이를 어떻게 석차나 등수로 그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구분할 수 있냐는 거예요. 그건 인간에 대한 모독이라는 거지요. 숫자를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는 아이들보다 우수하다, 라고 우리가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거지 그걸 누가 규정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독일에서는 그게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아이도 '나는 이걸 좋아하는데 쟤는 저걸 좋아하는구나' 정도의 취향의 차이 정도로 생각하는 거지 독일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무슨 대학을 가든,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에 가야지 하면 아비투어 시험 봐서 들어가면 돼요. 공부를 한다는 것이 한국에서는 나와 다른 자를 차별하는, 위계를 만드는, 서열을 만드는 수단으로 공부가 사용되잖아요. 사실은 공부를 하거나 학습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런 걸 없애는 그런 과정이어야 되는데 그러니까 '야만 교육'이라는 거죠. 그래서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라고 아도르노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한국은 절대적인 야만 교육이죠.
미국은 내 돈으로 내 자식을 교육시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은 기본적인 관점이 다른 거예요. '교육이 아버지의 돈 지갑의 부피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야만이다' 이렇게 보는 거지요. 한 사회가 결과의 평등은 가져올 수 없으나 최소한 기회는 평등해야 된다고 보는 것이고, 그 기회의 평등을 부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이 바로 대학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자식이든 기업가의 자식이든 재벌의 자식이든 그 어떤 학생이든 다 동등한 조건에서 공부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학비가 없는 거예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폐허 속에서도 수업료가 없었던 거예요. 놀라운 거죠. 우리는 내 돈 내고 공부하는 미국식 제도를 따르고 있는데 이것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되기는 어렵다고 봐요. 단순히 서열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죠.
-서열화 되지 않고서도 독일 대학은 노벨상 수상자 숫자가 줄어들지 않아... 경쟁을 통해 서열화 시켜야 학문 수준이 높아진다는 말은 옳지 않아
▲김누리 : 빌리브란트 정부가 69년에 최초의 정권 교체를 이루게 됩니다. 이 때 브란트는 정말 아름다운 선거 구호를 가졌었어요. 첫 번째가 '민주주의를 감행하자', 즉 어디까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지 다 해 보자는 거예요. 그 다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 즉 모든 사람들이 고등교육까지 받을 수 있게 나라에서 기회를 줘야한다는 거였어요. 독일은 대학생들에게 생활비를 줘요. 부잣집 아이들은 공부만 하는데 가난한 집 아이는 일하면서 공부를 하는 건 사회적 정의 어긋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공부만 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줘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나온 게 '바펙'이라는 거예요. 이게 지금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어요.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는 거지요. 그러니까 한국 대학 교육이 금방 그렇게 되긴 어렵죠. 그러나 그 방향으로 가야 되는 건 분명해요. 왜? 우리 사회가 좀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이런 끔찍한 사회적 지옥이 되서는 안 되는 거지요 그런데 그런 체제가 학문적인 수준을 낮추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독일이 교육 개혁을 통해서 지금 같은 방식의 이런 서열화 되지 않은 대학 체제를 갖춘 이후에 독일에서 노벨상을 받은 학자들의 숫자를 보면 전혀 줄지를 않았어요. 그러니까 '경쟁을 통해서 서열화시켜 놔야 그 학문 수준을 유지하거나 제고시킬 수 있다'라는 류의 주장에 대해서 독일이 거기에 반박하는 실질적인 사례죠.
[제2부]
-서구사회의 성격을 질적으로 변화시킨 68혁명을 통해, 독일은 대학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누구나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됨
△김태훈 : 이번에는 68 혁명이 대학에 미친 영향에 대한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는데요, 흔히 서열이 없는 대학체제를 얘기할 때 프랑스 사례가 주로 언급되지만 교수님 연구에서도 보니까 독일도 68혁명의 흐름 속에서 대학 개혁들이 있었다는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프랑스나 독일에서 68혁명 시기에 있었던 대학체제의 변화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누리 : 문제는 뭐냐 하면 우리가 68을 모른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아마 주요국가 국민들 중에서 68을 가장 모르는 국민일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주요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68이 없었던 나라이기 때문에 그래요. 68혁명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서구사회를 포함해서 주요 선진국들의 사회 형태를 만들어 낸 혁명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쉬워요. 다시 말하면 68 이전에 서구사회는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랑 비슷해요. 연고주의, 권위주의, 그다음에 불평등. 지금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그런 문제들이 있었죠.
68혁명을 촉발한 것은 65년부터 점점 격화되기 시작한 베트남 전쟁이에요 우선. 베트남 전쟁을 보면서 그 당시에 전 세계 젊은이들이 경악한 거예요. 특히 서구의 젊은이들이 '아니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유세계를 지키는 수호자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까 일개 제국주의 국가에 불과한 것 아니냐.' 이런 식의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그 당시에 미소 간에 아주 격화되던 핵무기 경쟁이 이미 60년대 중반이 되면 인류를 50번 이상 절멸 시킬 그런 규모의 핵무기를 이미 쌓아두고 있는데도 더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매진했던 거예요. 이것을 보고서 젊은 세대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부조리'였어요.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세계는 나이 든 저 세대가 만들어 놓은 터무니없는 부조리한 세계다. 그러니 이들이 이 세계를 지배하는 제도나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상, 이념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회의해야 된다, 의문시해야 된다, 이런 생각들이 광범위하게 퍼진 거예요.
그러면서 그들이 내세운 것이 가장 유명한 구호가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에요. 그 억압의 형태라고 하는 것은 국가마다 조금씩 달랐어요. 미국의 경우는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억압의 형태가 흑백갈등이었어요. 그 다음에 보편적으로 당시에 서구 세계를 지배했던 그런 갈등은 여성의 자각이에요. 남성들의 가부장적 지배로부터의 여성 해방, 이게 68혁명 때 광범위하게 전 세계에서 다 벌어졌던 것이고 독일의 경우는 나치 과거청산이 돼 있지 않은 현실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이었어요. 그래서 68혁명은 어떤 정치권력을 단기간적으로 장악했던 그런 혁명이 아니에요. 사람을 변화시킨 혁명이에요.
이 68혁명이 이제 대학 교육과 관련된 부분을 물으신 거잖아요? 첫 번째가 대학 민주화에요. 대학 내에서 민주주의라는 건 구성원들의 자치가 민주주의의 핵심이죠. 그 대학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대학을 지배하는 것 그게 민주주의죠. 그다음에 대학이야 말로 사회적 정의가 구현되는 모범적인 사례가 돼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학비도 없고, 또 모든 사람들이 다 공부할 수 있게 생활비는 국가에서 주는 그런 대학이 된 거예요.
-수학공식 영어단어에 갇혀 있는 우리 아이들 보면 눈물나, 성적에 매이지 않고 누구나 잠재력을 발현하는 대학체제 만들어야
▲김누리 : 독일은 학교에서 경쟁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그리고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배우는 것을 제일 강조해요. 독일 아이들이 그 교육에 의해서 변한 거예요. 교육이 비판교육이에요. 교육의 목표는 기존의 질서의 권력자들과 그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키우는 게 교육이다. 그것은 나치즘이라고 하는 희대의 끔찍한 재앙 때문에 생긴 거겠죠.
제 개인적으로 경험을 하나 말씀드리면 이런 거예요. 제가 유학을 하는 시기에 TV를 볼 때 참 신기하다 느끼는 것이 있었어요. 초딩들이 너무 많이 데모를 해요. 초딩들이, 요만한 것들이 현수막 들고 데모를 하러 다녀요. 그러다가 제가 2014년에 베를린에서 내가 꼭 보고 싶었던 그 초딩 데모대를 만났어요. 버스 타고 가는데 하더라고요. 봤더니 현수막에 씌어있는 거예요. '카인 맨쉬 이스트 일레갈', 즉 '어떤 인간도 불법적인 인간은 없다'. 2014년 이니까 그 당시에는 북아프리카 난민들이 독일에 많이 왔는데 그 중에 일부가 탈락해서 본국으로 송환된다는 그런 뉴스를 우리 초딩들이 본 거죠. 그걸 보고 나선 거에요. 그걸 보면서 사실은 눈물이 나더라구요. 우리 한반도에 있는 젊은 우리 초딩들이 생각나서. 우리 아이들은 그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 하면 그거 잘 했다고 그러는데 얘들은 이미 그 어린 나이에 이 세계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게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 새로운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인간을 기르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이 살인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가지고 그냥 너무 피폐해지고... 어떻게 우울한 아이이라는 말이 가능해요? 우울한 아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이죠. 검은 백마랑 똑같은 말 아니에요? 어떻게 아이가 우울할 수가 있어요? 아이는 보이는 모든 게 다 새로움, 호기심의 대상이고 가는 모든 곳이 놀이터고 거기서 모든 걸 자기가 만들어서 놀고 막 하는 게 아이들 아니에요? 근데 한국의 아이들은 기적적으로 우울해요. 정말 우리가 끔찍한 세상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교육혁명을 통해서 한국에서 독일과 같은 교육 시스템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겠죠.
독일은 그 사회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맘대로 할 수 있다고 모든 기회를 주는 사회에요. '공부를 하고 싶어? 뭐 하고 싶어? 이거 하고 싶어? 그거 해!' 그거 하다가 '아유 다른 거 할래요', '그럼 그거 해 봐!' 모든 걸 할 수 있도록 최대한 할 수 있게 해 주는 사회예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총량 같은 게 있다고 한번 상상해보세요. 독일에선 그 잠재력이 다 발현되는 사회에요. 우리 사회는 어때요? 전부 못 하게 하잖아요. '너 그거 하고 싶어? 성적이 안 되잖아.' 다 못 하게 하잖아요. 완전히 반대 방향의 사회인거에요. 한국 사회는 정의의 관점에서 뿐 아니라 잠재력의 구현이라는 실용적인 관점에서도 잘못되어 있는 거죠. 그런 걸 바꿔야죠. 교육에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