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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역사] 발표자료 [전제왕권의 성립]고려는 어떻게 성립될 수 있었을까?-온새미로(연표게시)
이정민 추천 0 조회 646 06.09.26 01:24 댓글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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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10.01 10:15

    오늘의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갈 지에 대한 코멘트가 없는 것이 아쉽군요. 1) 대외정책면에서도 -> 대외 정책 면에서도

  • 06.10.05 18:12

    신라 말기에 호족들의 싸움과 주도적인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과 혼란의 연속 그리고 민중들은 새 시대에 대한 강한 염원이 있었습니다. 왕권은 고려는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수 우리의 힘만으로 세운 최초의 통일 왕국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은 남북국이라는 형태로 통일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고 고려는 민족의 통일만이 아닌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통합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왕건의 호족 등을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포용력일 것입니다.

  • 06.10.01 11:00

    그래서요? 그러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확인한 공동 삶의 원리가 무엇이라는 것인가요? 오늘의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갈 지에 대한 코멘트가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1) 신라의 삼국통일은 -> 신라의 삼국 통일은 2) 통일 했다는 -> 통일했다는

  • 06.10.05 18:18

    다시 보니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왕건이 호족들과 여러 세력에 행했던 포용력 및 회유책 등을 통해서 그 상황에 맞게 대처했던 융통성이라는 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정하였습니다.^^

  • 06.10.02 08:47

    고려 성립의 원동력에 있어 발표자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에 덧붙여 민중의 염원을 보듬을 줄 알았던 리더로서의 왕권의 존재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보면 나라와 시대를 불문하고 역사상 뛰어난 리더들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건은 휴머니티에 근거한 리더십을 창조했으며, 견훤이나 궁예와는 다르게 항복해오는 호족 세력을 예우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보장해 줌으로써 신뢰와 힘을 동시에 얻어 통일의 기반을 다져 나갔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본성 또한 착하다고 믿고 사랑으로 대했기 때문에 가능한 포용 정책이었던 것입니다.

  • 06.10.01 10:29

    1) 호족세력을 -> 호족 세력을 2) 보장해줌으로써 -> 보장해 줌으로써 3) 다져나갔습니다. -> 다져 나갔습니다.

  • 06.09.30 18:56

    왕건의 이러한 포용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했기 때문에 견훤, 궁예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뛰어난 지도자를 발굴하고 따르는 일 또한 시대의 요구를 인식하는 것이지요.^^

  • 06.10.01 11:02

    그래서요? 그러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확인한 공동 삶의 원리가 무엇이라는 것인가요? 오늘의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갈 지에 대한 코멘트가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공동 삶의 원리를 탐구해야 하는 [민족과역사]의 본질적 물음에 대한 답이 되도록 보완하기 바랍니다.

  • 06.09.30 21:28

    고려의 건국은 새로운 중세 사회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라 봅니다. 또한 유교 사상에 입각한 새로운 질서가 마련되었고 교육과 과거 제도를 정비하였습니다. 농민의 조세 부담을 가볍게 하는 등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노력하였으며 문화의 폭과 질이 크게 높아진 중세 문화를 성립시키고 강렬한 민족의식이 형성되어 북진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처럼 고려는 신라 말의 한계점을 극복하려고 하면서도 새로운 이념 도입으로 민중을 통합하려 하였습니다.

  • 06.09.30 21:30

    즉, 새로운 것은 받아들이고 낙후된 것은 빨리 버리는 결단력을 바탕으로 고려가 건국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고려의 건국은 단순한 왕조의 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대 사회에서 중세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 06.10.01 11:11

    그래서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통일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건국은 오늘의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건가요? 그러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태선이는 어떠한 공동 삶의 원리를 확인할 수 있었나요?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답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라면 [민족과역사] 시간의 댓글이라 할 수 없습니다.

  • 06.10.02 00:19

    교수님 댓글을 읽으며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또한 각 민족사적 주제 속에서 공동 삶의 원리를 추출해 낸다는 것이 어렵기 그지없습니다. 먼저 고려 건국이 우리 삶에 던지는 의미가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지방 세력인 호족이 고려 왕조의 새로운 지배층 세력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새로운 사회 계층의 폭 넓은 수용은 그 사회의 개방성을 보여 준다고 봅니다. 또한 개방적인 자세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갖추어야 할 덕목 중 하나라고 봅니다. 더욱이 고려는 발해인까지 포용한 실질적인 민족통일의 완성이라 볼 수 있습니다. 민족성을 계승하고 사회 계층 변화 가능성을 통해 고려인들의 포용력을 확인하였습니다.

  • 06.10.02 00:22

    지금 우리는 한국이라는 국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시대는 변화하고 있고, 민족의 개념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개방적 자세와 포용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봅니다. 더불어 고려가 발해인들을 포용하여 실질적인 민족 통일을 이루었듯이, 앞으로 우리는 북한을 포용하여 진정한 민족 통일을 이루어야 함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 진정한 민족 통일을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방법이나 도구는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자 몫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고민하고 <민족과역사>가 던지는 의미를 잘 파악하도록 분발하겠습니다.^^

  • 06.10.01 00:35

    통일신라의 멸망은 이전의 역사와는 달리, 민중들의 요구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 이전의 시대에는 역사의 주체가 주로 일부의 통치자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데에 반해 고려가 성립되던 시기에는 그 주체가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이른바 시대상이라는 것인데, 이처럼 권력의 흐름이 집중되지 않고 순환된다는 것을 파악한 ‘통찰력’이 건국자 왕건의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시대를 앞서 본다고 하죠.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미시적이 아닌 ‘거시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정민 선배님 수고 많으셨어요^-^

  • 06.10.01 10:48

    그러면 왕건은 어떻게 시대를 앞서 볼 수 있는 '거시적' 관점, 곧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통일 신라에서는 왜 왕건과 같은 지도자가 나오지 못했을까요? 1) 통일신라의 멸망은 -> 통일 신라의 멸망은

  • 06.10.01 00:55

    고려 사회는 귀족적 성격과 과거제도라는 개방적 성격을 지녀 통일신라와 조선의 특징을 고루 갖추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일신라와 고려를 살펴보면서 지배층의 정책에 중요성을 잘 알았는데요, 그들의 분열과 부패가 단순히 민중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존망에도 영향을 주는 것에 현대사회에서 정치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 고대사회는 전제정치가 실시되던 신문왕과 고려 광종 때 강력한 왕권으로 정치적인 안정기를 누렸다면 지금은 활발한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부패와 분열을 막을 수 있는 힘입니다.

  • 06.10.01 11:16

    1) 과거제도라는 -> 과거 제도라는 2) 통일신라와 조선의 -> 통일 신라와 조선의 3) 통일신라와 고려를 살펴보면서 지배층의 정책에 중요성을 -> 통일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건국을 살펴보면서 지배층의 정책이 가지는 중요성을 4) 주는 것이 아니라 -> 주는 것만이 아니라 5) 영향을 주는 것에 현대사회에서 정치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 ->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로부터 현대 사회에서의 정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6) 고대사회는 전제정치가 -> 고대 사회는 전제 정치가

  • 06.10.01 00:55

    따라서 그들의 정책에 귀 기울여야 하겠고 선거 유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약이 잘 이루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 06.10.01 11:25

    이번 온새미로 모둠의 발표에서 중심으로 삼았어야 하는 주제는 바로 '어떻게 통일 신라는 멸망하였는가?'이지요. 지혜도 이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의 댓글을 보완하도록 하세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06.10.01 19:51

    통일 신라가 망하게 된 요인들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고려는 어떻게 그 요인들을 해결해 갈 수 있었던가요? 고려의 건국 과정을 통해 선혜가 확인할 수 있었던 공동 삶의 원리로는 어떠한 것이 있나 구체직인 예로서 설명해 보기 바랍니다. 1) 피해가고 -> 피해 가고

  • 06.10.01 19:25

    발표 수고하셨습니다. 신라 말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시고, 고려 성립의 요건들을 정리해 보여주셔서 좀 더 쉽게 고려 성립의 과정을 이해한 것 같습니다. 이정민 학우의 말대로, 문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현재의 요구를 인식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고려의 성립도 신라 말 당시의 어지러운 상황에서 민중의 요구를 인식하고, 힘들었던 삶을 타개해 나가고자 이루어진 것으로 봅니다. 이 점을 본받아 우리들도 현재 상황의 문제점들도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군요.

  • 06.10.06 15:18

    1) 이겨내기 -> 이겨 내기 2) 주인의식을 -> 주인 의식을

  • 06.10.01 23:15

    발표 잘 들었습니다. 준비 기간이 짧았음에도 준비를 잘 해주신 것 같습니다. 고려의 성립에서 ‘새로운 이념의 도입과 기존 종교 장려’는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여러 방면에서 지혜 있는 정책을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고려는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과거제도를 도입함으로서 기존의 신분제도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육두품 계급에게도 지지를 받았고, 기존 종교인 불교를 종교로서 택함으로서 시민들의 반발을 막았을 뿐 아니라 불교 안에 내포되어있는 평등사상이 서민들에게 안정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양면에서의 적절한 대처법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 06.10.02 16:30

    대외 관계에 있어서 신라에 대해 강경책과 회유책을 함께 쓴 것처럼 우리도 어떤 상황에서도 융통성을 가진 지성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06.10.01 23:34

    발표 잘 들었습니다. 통일 신라의 붕괴와 고려의 성립 과정을 통해 우리 민족이 한걸음 진일보 했다고 여겨집니다. 통일 신라는 골품제도라는 강력한 신분제도로 많은 인재를 등용하지 못했고 이는 6두품 이하 계층의 강력한 불만을 야기 시켜 결국 멸망 요인의 한 축이 됩니다. 왕건은 넓은 포용 의식을 갖고 국지적으로 힘을 키워온 호족들을 수용하여 더욱 강력한 힘을 얻었고 이전의 억압적인 전제정치에 불만을 가졌던 민중들의 지지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은 물과 같이 언제나 변화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한반도를 통일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도 멸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현재는 그 시대의

  • 06.10.06 15:20

    1) 진일보 했다고 -> 진일보했다고

  • 06.10.01 23:34

    흐름이 급속도로 변화해서 잠시만 방심해도 금세 뒤쳐지고 맙니다. 시대의 흐름을 알고 지방 호족과 민중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고려를 건국할 수 있었던 왕건처럼 우리도 항상 민감하게 시대의 흐름을 주시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06.10.07 17:59

    아무리 청렴, 결백한 인품의 소유자라도 최고의 부와 권력을 잡게 되면 끝없이 더 많은 욕망을 추구하다가 타락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를 가지면 또 하나를 가지고 싶어하는 것, 이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통일 신라가 멸망하게 된 이유 또한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여기서는 그게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한 국가의 제도와 전반적인 풍기 문제로 범위가 확장되는 것이겠죠. 고려는 이러한 흐름을 시기적절하게 포착하여 등장한 것입니다.

  • 06.12.12 11:18

    한 국가가 그 初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적절한 제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능력은 있으나 신분상의 제약으로 관직 진출에 불리한 6두품들이 국가에 끊임없이 불평을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낡은 골품제를 유지한 신라의 경우가 바로 그 반대 사례가 될 수 있겠지요. 한 개인의 삶에서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타성에 젖어 살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자신을 쇄신해야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 몸에 익어 버린 잘못된 습관을 따끔하게 고치는 것, 매일 깨어 있는 자신을 의식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 06.12.13 16:05

    1) 하루 하루를 -> 2) 살아가는 것. 그런 -> 살아가는 것, 그런

  • 06.12.12 11:18

    교수님.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 06.10.11 21:12

    댓글이 늦어 매우 죄송합니다. 고려시대는 세계사적으로 보았을때 중세에 해당한다고 들었습니다. 서양 역사에서 암흑기라고 부르는 중세시대이지만 우리 민족, 고려인들은 찬란한 귀족문화를 꽃 피웠습니다. 특히 원의 간섭을 받았지만 삼별초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끈질긴 대몽 항쟁으로 우리나라를 지켜 나갔습니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하지만 고려왕조실록과 황룡사 목탑을 비롯한 찬란한 문화유산이 소실되지 않고 지금 남아있었으면 고려 역사의 위대함을 더욱 드러낼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 06.12.10 14:12

    1) 보았을때 ->

  • 06.12.11 01:14

    고려왕권의 성립의 요인 중 민중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제왕권 속에서 민중 하나하나의 힘은 아주 미약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민중 전체의 뜻이 하나가 되면 나라가 바뀌고 왕이 바뀌는 것입니다. 다른 왕을 죽인다고 그 국가의 왕이 될 수 있는 것도, 영토를 가졌다고 왕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그 왕을 따르는 백성이 있어야 비로소 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왕권은 민중에게서 나온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전제왕권 국가에서도 민중의 뜻에 어긋나면 왕권이 무너졌습니다.

  • 06.12.11 01:14

    현재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민중의 뜻은 고려 때보다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아니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알고 한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 해야겠습니다.

  • 06.12.17 21:55

    통합적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태조 왕건, 고등학교 학생회장을 할 때, 가장 존경했던 위인입니다. 저는 고려의 건국에서 어떠한 업적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왕건이 있었다고 해도 여러 가지 내적, 외적인 요인이 뒷받침이 되지 않았더라면 고려왕조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 호족들의 융합, 그에 따른 뛰어난 인물들(지주, 책략가, 지휘관 등)의 등장, 그들의 주군에 대한 충성심 등 복합적인 요소들의 합작으로 탄생하게 된 고려왕조입니다. 민족과 역사 수업 또한 교수님 혼자 힘으로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학생들의 활발한 참여가 필수조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수님께 매우 죄송하다는 말

  • 06.12.17 21:56

    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렇게 늦게 시도하려는 참여는 기간 내에 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공동 삶의 원리를 가슴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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